101. 2주간의 변화
“방금 그거…… 대체 뭐야?”
김도준의 한마디에 팀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갑작스레 일어난 빛. 그 빛과 관련된 무언가라는 것은 알겠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다른 팀원들은 몰랐으니까.
“뭐긴 뭐야. 네가 해야 할 플레이지.”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플레이가 어떻게…….”
김도준은 그걸 그대로 느꼈으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듯, 약간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치 내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이미지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감각까지도 느껴졌나?’
생각보다 훨씬 좋은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 감각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다음은 한결이.”
윤한결의 경우에는 워낙 성실해서 그런가. 김도준처럼 뭔가 답보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역시 천성이 올곧아서 그런가.
기교나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심리전이 조금 약했다.
그 부분을 지적하자 윤한결도 긍정을 표했지만, 이 역시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니……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다.
방금 전, 김도준에게 하는 걸 봐서 그랬던 걸까. 별 거리낌 없이 머리를 내주었다.
파앗 ㅡ.
이기어검을 펼치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공세를 펼치는 윤한결.
윤한결의 경우에는 능력도 그렇고, 원래 포텐도 뛰어나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대인전 능력은 2부에서도 출중한 편으로 봐야 했다.
‘하지만……’
역시 1부에는 아직 모자라다.
그래서 이번에 윤한결에게 보여 준 건, 이기어검과 적절한 심리전의 조합이었다.
상대에게 날아가는 여러 자루의 검이 동시에 검술을 펼치지만.
‘육안으로 잘 안 보이도록 에어앵커를 이기어검에 걸어 놓아서 페이크를 준다.’
날아가는 이기어검을 보고 상대가 타이밍에 맞춰 막아 내려 하지만, 에어앵커에 걸려 검이 날아가다 말았다.
그리고 타이밍이 엇나간 사이, 에어앵커를 해체해 검이 다시 날아간다.
‘일종의 시간차 공격이라는 거지.’
에어앵커를 이용해 페이크를, 심리전을 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대인전에서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스킬의 빛이 잠잠해지자, 윤한결이 눈을 빛냈다.
“이게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이야?”
‘본 내용보다 내 스킬에 관심을 갖는 건가…….’
윤한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거니까 스킬보다 피드백에나 집중하셔.”
“그래. 생각해 보지 못한 방법인데, 일단은 그 감각. 기억했으니까.”
이쯤 되자, 김도준과 윤한결을 제외한 PER의 팀원들도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긴. 이렇게 쉬운 성장방법이 어디 있겠어.
경험치 부스트 따위가 아니라, 아예 퍼서 먹여 주는 수준인데.
“다음으로 피드백 받을 사람?”
이 날의 PER은 꽤나 시끌벅적 할 뿐 아니라, 그날 밤까지 홈 2층의 훈련실은 연습하려는 팀원들로 바글바글했다.
하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그 감각도 있고.
그걸 하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명확히 보여 주면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그런 연습은 하루에 그치지 않고 당연하게도 계속되었다.
애초에 연습경기를 잡은 게, 리그 개막 전 2주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오전에 헌터 서바이벌을 이용한 개인훈련. 그 후 오후의 팀 연습경기. 저녁을 먹은 후 피드백과 피드백 체화.
그런 식의 루틴이 짜여져 계속 이어졌다.
특히 내가 참여하는 연습경기의 경우에는 특별한 메뉴가 더해졌다.
바로 팀원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
나의 경우에는 그게 류재준이었고, 서로 팀으로 합을 맞출 때 어느 부분을 더 맞출 수 있을지 알아갔기에 팀의 전력이 상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기어검으로 상대의 운신 폭을 좁힌 후에, 길한 형이 [돌진]하는 간단한 연계만으로도 훨씬 확률이 올라가네.”
“말만 들으면 당연하긴 해. 지금까지 뭐에 쫓겨서 그렇게 급하게 싸웠나 싶을 정도로…….”
저런 게 딱 좋은 예시였다. 우리 팀의 팀원이 무엇을 할 지 알고 있고, 그 알고 있는 것에 자신이 가진 패를 더한다.
그것만으로도 그 단순한 스킬의 위력은 곱절이 된다.
마치 테트리스를 맞추는 것처럼. 하나 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 변화는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세네요. PER.”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상대 팀 감독이 나지막이 말했다.
“솔직히 적어도 이번 시즌엔 별 볼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례였습니다. 하하…….”
확실히. 내가 봐도 그렇다.
승강전 때도 특훈을 통해 상당히 강해진 모습을 보여 줬지만, 이번엔 신규인원의 합류뿐만 아니라, 직접 보여 주는 것으로 개개인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실력이 늘었으니까.
“많이 배웠습니다. 이창현 감독님.”
“네. 저희 팀도 많이 배웠습니다.”
2부에 막 올라갔을 때. 그리고 미디어데이 때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지만, 점차 분위기가 변하는 게 느껴지고 있다고 할까.
물론, 모든 감독이 저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긴 했지만.
“이런…… 썅. 한 코치는 뭐하는 거야. 애들 저렇게 묵사발 나는 수준인데 저리 내비 두고.”
우리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팀이 죽 쒔다고 생각하는 감독.
“흐음…… 수고하셨습니다.”
유독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감독까지.
리그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완전히 확실한 건 아니긴 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고 이제 곧 개막전을 앞둔 날의 연습경기였다.
“아……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거의 2주만인가요. 연습경기는.”
다시금 첫 날에 연습경기를 했던 HXG와 연습경기가 잡혔다.
꽤나 연습경기 결과가 예상보다 좋았는지, 팀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감독도 마찬가지로 여유 있어 보이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좋아.’
“PER은 연습경기 잘 되셨나 모르겠네요. 저희는 뭐…… 원래 2부 팀이기도 했고. 적응기간도 필요 없어서 이번 시즌은 좀 잘 될 것 같네요. 어떤가요. PER은.”
여기서 우리 팀은 어떻냐고 물어보는 건 사실상 체면치례고, 자기네 팀이 잘 된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겠지.
근데 아무래도 이번 시즌엔 우리 팀이 훨씬 더 잘 나갈 것 같다.
“저희 팀이요? 뭐…… 지금까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미디어데이 때랑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죽을 쒀도 2부에서 상위권을 할 것 같은데. 니네 팀에서 우리 팀이 뭐 어쩌고 어째?
제대로 쓴 맛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 역시도 내가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괜찮겠어요? 그래도 명색이 PER의 에이스는 이창현 선수일 텐데…….”
“뭐, 두고 보면 알겠지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상대 감독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그러면서도 이를 악물고 티내지는 않았다.
아니, 어쨌든 밖으로 나타났으니 티를 낸 건가?
“후후후…… 뭐. 두고 보면 알겠죠.”
맞다. 두고 볼 일이다.
***
그렇게 각 팀 감독의 기대가 맞부딪히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 감독도 내가 참가하지 않고 팀원을 그대로 낸 걸 의식한 것일지, 혹은 그게 베스트 멤버인지. 저번 경기 때와 완전히 같은 로스터였다.
그뿐만인가, 심지어 저번 경기 때와 맵까지 같았다.
[위대한 성소]인가.
하지만 저번처럼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았다.
마침, 경기가 시작하고 우연찮게 상대팀과 PER의 선수. 윤한결의 시작 지점이 가까워 바로 교전이 이뤄졌다.
상대는 창을 다루는 근-중거리 딜러. 능수능란하게 창을 다룰 뿐 아니라, 중거리에서 공격하는 윤한결에게 참격을 쏘아 내는 등. 무기술에 꽤나 정통한 녀석이었다.
‘윤한결이랑 비슷한 타입인가.’
서로 중거리에서 전투할 수단이 있기도 하고, 윤한결의 전투법을 잘 연구해 왔는지 의외성이 담긴 이기어검술의 묘리도 창을 둥글게 휘둘러 잘 막아 냈는데……
‘첫 날에 보여 줬던 그건가.’
창을 쓰는 녀석이 순간적으로 한 개의 검을 놓쳤다.
공중에서 쏘아지다가, 에어앵커에 묶여 잠깐 검이 멈춘 탓이었다.
그리고 창이 휘둘러지고, 다시 녀석이 윤한결을 바라보며 달려드는 순간.
푹 ㅡ.
막았다고 생각한 한 자루의 이기어검이 에어앵커에서 풀려나 사각에서 녀석을 찔렀다.
가벼운 승리였다.
“크윽…….”
그런 전투가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PER의 승전보만이 계속 울려오는 상황. 한타 단계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전투의 디테일 자체가 이주일 전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경기는 한타 단계, 전술의 차원을 볼 것도 없이 끝나 버렸다.
그야말로 체급 차이가 느껴지는 경기.
“뭐…… HXG도 꽤나 늘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좋은 승부 해볼 수 있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물론 다음에도 좋은 승부는 커녕 격차가 더 많이 벌어져 있겠지.
당연히 말 안 해도 이런 속뜻으로 비꼰 거라는 건 상대도 알고 있으리라.
이제 막 경기가 끝나고, PER의 팀원들이 나오는데 다들 꽤나 표정이 밝았다.
역시 2주 전에 졌던 상대였기에 이겼을 때도 성장이 더 잘 와닿는 듯했다.
“야. 이정도면 2부는 3부 때보다 더 스무스하게 가는 거 아니야?”
“맞아. 진짜 2주만에 다들 몰라보게 늘었네.”
뭐……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아직 긴장을 풀 단계는 아니었다.
“스무스하긴 무슨. PSG랑 QED팀이랑은 한 번도 안했는데 뭘.”
“그렇네…… 걔네가 미디어데이 때 우승후보로 뽑힌 두 팀이지? 왜 걔네랑은 연습시합 안 잡았어?”
쩝. 그러게 말이다. 나도 잡으려고 했는데.
“막 3부에서 2부로 승급 된. 2부 하위권 예상 팀이랑은 연습시합을 잡고 싶지 않았나 보지.”
물론 그 팀에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리라.
회귀 전에 우리 팀도, 하위권 팀이랑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 연습경기를 아예 잡지 않았으니까.
‘상위 팀은 하위 팀이랑 해서 얻어 갈 게 없는 반면, 하위 팀만 얻어 갈 게 잔뜩이니까.’
꽤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가 우세하지 않을까?”
“글쎄. 걔네 이번 시즌 경기를 본 적이 없어서.”
감독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말로는 꽤나 만만치 않은 모양이던데.
팀원 하나하나의 초능력도, 그로 인한 팀 전체의 능력 전술도. 그리고 그걸 상대하는 상대 팀과의 상성도 너무 크게 작용해서 솔직히 가늠해 보긴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궁금해 할 필요도 없긴 해.”
“…….”
“안 그래도 개막전 첫 날. 두 번째 경기가 우리랑 QED의 경기니까.”
1위 팀인 PSG의 개막전을 보고, 그 후 2위 팀인 QED와 직접 손을 맞대어 보게 된다.
어쩌면 헌터스 리그 2부 리그의 행방은 첫 날의 경기만 보고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