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이번 시즌 우승 팀은
류재준이 팀에 합류하겠다는 연락을 받은 후, 결국 테스트를 본 사람 중 한 명만 뽑기로 결정했다.
즉, 새롭게 팀에 합류하는 인원은 류재준과 김유현. 두 명이었다.
그렇게 선발 후, 바로 문자를 보내 지금은 막 둘 다 PER의 홈에 들어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TAK랑 저번에 연습 경기할 때도 봤었죠? 앞으로도 쭉 계속하게 되었네요. 잘 지내 봅시다.”
류재준이 담담하게 팀원들과 악수를 건넸다.
반면 김유현은 눈 밑이 퀭한 게, 별로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전산 착오로 문자가 한 번 잘못 갔다던데…… 그것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컨디션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신 리드해서 소개해 주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자 김유현이 나를 보고는 표정을 괴상하게 찡그린 것이었다.
“[email protected]#?!?”
“?”
뭐지? 아. 저번 테스트 때 시험장에 얼굴을 비춰서 시험자로 생각했던 건가?
“잘 부탁드립니다. PER의 리더를 맡고 있는 이창현입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그제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대체 뭐였던 걸까. 그 표정.
“재준이는 저번에 같이 경기해봐서 알 테고, 이쪽은 김유현 씨.”
이연주는 새 팀원이 들어오는 걸 약간 뚱한 표정으로 보고 있긴 했지만, 다른 팀원들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젠 전술과 디테일한 개인 훈련을 도와줄 코치만 더 영입하면 되나.’
그 부분은 김성준에게 맡겨 놓았으니, 안심해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하나는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자, 그럼. 연습경기 다음 주에 있으니까 그거 잊지 말고 개인 훈련 열심히 하고. 오늘은 해산.”
“뭐야, 오늘은 팀 연습 안 해?”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2부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미디어데이가 있으니까.
***
미디어데이.
꽤나 유서가 깊은 행사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은 2부와 3부에도 있다.
하위 리그 선수들에게도 동기를 유발하고, 미디어에 노출시켜 주어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이번 미디어데이에도, 이종규와 내가 함께 참가했다.
앞에 쫙 깔린 카메라와, 단상에는 팀별 감독 코치 일행이 자리해 있었다.
1부로의 승급도, 3부에서의 2부 승급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다들 얼굴을 익힌 사이인지 두런두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스토브리그는 좀 어때요. 선수 풀 좀 마음에 들게 가져가셨습니까?”
“이번에 팀에서 예산이 없어서 영…… 뭐 어쩌겠어요. 이대로 한 시즌 이 악물고 버텨야죠.”
그렇게 약간 웅성거리는 시간도 잠시. 곧이어 시간이 정각이 되자, 다들 조용히 하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미디어데이의 시작으로 기자들과의 질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팀 TAK의 이번 스토브리그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선 다양한 전략 확보를 위해 선수들의 풀을 넓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암.
지루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이번 스토브리그, 영입전쟁에 성과는 있었는지. 팀의 포부는 어떤지.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이창현에게도 질문이 들어왔다.
“이번 2부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팀 중 하나가 PER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관계자들의 소문에 의하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이창현 선수가 이근택 헌터에게 자신의 뒤를 잇는 헌터로 지목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뭐, 그렇죠.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제 능력과 잠재력을 알아봐 주셨고 그 결과가 지금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팀 PER보다 나에 대한 질문이 먼저인 건가.
하긴 뭐, 이제 막 2부에 올라온 신진 팀 PER보다는, 1세대 헌터 이근택과 엮어 헤드라인을 내는 게 조회수가 높겠지.
나머지는 뭐, 별 내용이나 영양가가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주로 팀의 포부나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항상 등장하지만, 꽤나 재미있는 질문이 등장했다.
“이번 2부 리그에서 우승을 하리라고 예상되는 팀을 꼽으시면 어떤 팀인가요?”
모든 감독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저번에도 같은 팀원으로 가져갔기도 했고, 기본적인 합이 좋은 PSG가 1등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네요. 한지후 선수도 있고, 별 일이 없는 이상 PSG가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 같습니다.”
“뭐…… PSG도 강력 후보지만, 역시 이번 영입에 꽤나 힘을 쓴 QED도 같이 우승 후보가 아닐까 싶네요.”
대체적으로 하는 말은 다들 비슷했다.
저번 시즌의 우승 팀. PSG 혹은 2위인 팀 QED의 우세를 점쳤다.
뭐…… 사실 다 고여 있는 팀들이고 서로의 전력을 다 잘 알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우리 팀을 빼놓은 것을 제외하곤 말이지.’
“이번 시즌은 저희 팀. PER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엔 3부 때와 달리, 다들 내 성정을 들었거나 아는지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의외였던 점이 있었다.
“저도 PER을 꼽고 싶네요. PSG나 QED도 강력하지만…… 저번에 연습경기를 해서 돌려보았는데 상당히 매섭더군요.”
전 시즌, 2부 3위였던 TAK의 감독이 PER을 꼽은 것이었다.
감독들 사이에서는 꽤나 의외라는 분위기가 흘렀다.
“보통 새로 상위 리그에 올라간 팀들은 부진한데…… 데이터도 그렇고,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도 그렇고. 경기자체도 많이 변하니까요. 그런데 PER이 두 표라니.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이번 시즌, 우승 후보로 PSG 5표, QED 3표, PER 2표로 갈렸는데요. 저번 시즌보다 더 뜨겁고 치열한 리그 기대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마치자,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나가는 사람도, 자리를 지키며 인터뷰를 정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나가려는데.
“이창현이라고 했나요? 반가워요. 저번에 나 출장갔을 때 우리 팀이랑 연습경기 했던데. 인상적이었습니다.”
TAK의 감독이 악수를 청해 왔다.
“아…… 반갑습니다.”
“요새 2부 감독들 사이에서, 이근택 회장이 뽑은 신인이라고 해서 화제던데. 그에 걸맞은 실력이더군요. 뭐, 감독 녀석들 중에 인정 안 하는 녀석도 있지만.”
아무래도 3부 미디어데이 때랑은 사뭇 반응이 다르니 새롭게 느껴졌다.
그 때처럼 말을 과격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존중해 주는 모습이, 다시금 헌터스 리그의 중심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뭐. 연락한 번 합시다. 나중에 감독 대 감독으로도 좋고, 선수 대 감독으로도 좋고. 언제나 환영이니까.”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다 싶었다.
얼핏 다른 감독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를 경계하는 사람이나 내가 뛰어나도 결국 팀 싸움이라 별 힘을 못 쓸 거라는 사람은 종종 있었는데.
‘앞으로는 저런 사람이 더 많아지려나.’
회귀 전, 선수 일 때도 저런 경우가 꽤 있었지만 일종의 팀 책임자로 이런 대우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과거에는 보통 팀이 아니라 뛰어난 선수로서의 ‘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팀 PER’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으니까.
***
다름 아닌 미디어데이의 기사가 일제히 올라오는 날.
평소에 헌터스 리그를 보는 것이 낙이었던 김준서는 어김없이 스포츠 란 기사 홈페이지를 열었다.
‘뭐 올라온 게 있나……’
사실 스토브리그에서 대형 선수의 영입같은 건 모두 확인 했기에, 별달리 크게 궁금하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역시……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은 실제로 없었다.
‘이번 1부 리그의 유력한 우승 후보는 수호신인 강준혁 선수가 있는 LTD…… 뭐. 이번 시즌도 폼이 좋나 보네.’
그렇게 대충 슥 읽고, 다른 기사가 없나 내리던 차에 2부 미디어데이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다름아닌 PER의 소식도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얘네 저번에 봤던 걔네 아닌가?’
김준서가 전에 PER의 투명전술을 보고 꽤나 재미있어서 그걸 편집해 넛튜브에 올렸었기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그 영상…… 조회수가 꽤나 좋았었지.’
생각보다 훨씬 폭발적인 반응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났다.
실제로 그 경기가 꽤나 흥미진진하긴 했다.
그랬던 녀석들이 이제 2부로 올라왔단 말이지……?
승강전을 통해 팀이 올라가는 게 흔한 일이 아닌데.
흥미가 갔다.
‘김유현 선수와 류재준 선수를 영입…… 모르는 선수들은 됐고.’
애초에 그때 1부 리그가 없어서 본 것이지, 평소엔 1부 리그만 보았기에 당연히 아는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기사는 꽤나 눈이 동그래질만한 것이 있었다.
[이근택의 후계자로 낙점된 헌터. 이창현의 인터뷰]
‘이근택의 후계자……?’
이근택은 헌터스 리그가 발족되기도 전의 헌터였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적 영웅이었기에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는 헌터였다.
그런 이근택이 후계자로 이런 2부 팀의 헌터를 후계자로 낙점했다고?
신기하다는 마음도 잠시.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이창현] :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 때부터 제 능력과 잠재력을 알아봐주셨고, 그 결과가 지금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 때, 직접 맞부딪혀보시고 큰 인상을 받으신 건 아닐까 합니다. 지금 3부에서 2부로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무승 팀이었던 PER을 진출시킨 것도 크게 작용한 것 같구요.
‘오…… 이런 일이 있었구나.’
자신이 흥미롭게 보았던 팀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헌터. 이근택도 같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흥미가 증명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흥미가 조금 붙자, 확인한 것은 경기의 일정이었다.
‘음…… 다행히 1부 리그는 2부랑 같은 시간대에 잡혀 있는 건 없네.’
게다가 보기 딱 좋은 저녁 시간대로 첫 경기가 잡혀 있었다.
PER대…… QED?
솔직히 잘 모르는 팀들이다. 저 기사만 보지 않았더라도 볼 일은 아마 없었을 텐데.
그래도 기왕 어차피 저 날도 퇴근하고 난 후라 할 일도 크게 없을 텐데 한번 보자고 마음먹었다.
‘미디어데이 때 2부로 처음 올라왔는데, 자기 팀이 우승할 거라고 했는데. 뭐라도 보여 주지 않을까?’
이근택 헌터도 왕년에 젊었을 때, 저런 발언을 자주했다던데.
입터는 외국헌터들을 다 때려잡아서 참교육하고, 유물을 조각까지 싸그리 긁어오겠다고 했던가.
외신에는 심지어 외국 헌터들이 자기한테 깝치면 반쯤 죽여 버리겠다고 인터뷰했던 것 같다.
김준서가 아주 어릴 시절이었지만, 워낙 화제였기에 아직까지도 기억이 났다.
‘캬…… 생각해 보니 그 때가 한국 헌터 전성기였는데.’
탑에서 한국 헌터들이 승승장구하고, 유물들도 다 쓸어먹고.
헌터계에서 변방국가로 취급받는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 때 1세대 헌터들이 다 현역이었으면……’
한국이 아마 지금 미국의 자리에 있었으리라.
아니, 적어도 지금처럼 중국이고 일본이고, 그냥 국제리그에서 상대가 누구든 털리는 일은 없었으리라.
아쉬운 마음에 김준서는 입맛을 다시며 잠자리에 들었다.
나중엔 언젠가. 한국도 세계 헌터스 리그에서 주름잡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