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시너지
두 명.
이창현과 류재준이 돌입하고 순식간에 TAK의 죽은 팀원 수였다.
그것도 무려 7대 2의 상황에서.
류재준이 [파동]으로 틈을 비집어 만들어 내고, 그 틈 속에서 정확히 쌍권총을 쏘아 낸 이창현의 콤비였다.
‘그래, 이거지.’
순간적으로 전장에 정적이 흘렀다.
그야, 일반적인 상식으로 2명이서 7명을 상대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심지어 다 죽어 가는 7명이었어도 2명으로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 정적도 잠시.
새삼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장 큰 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TAK가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저 녀석들…… 쉽지 않은데요?”
“저번에 파티 할 때 얘기 나왔던 애들이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 잘못하면 훅 간다.”
TAK의 팀원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평가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리에서 7대2로 싸워서 지는 건 정말로 곤란하니까.
“어차피 상대는 둘이야. 다시 천천히 가 보자.”
침착함을 되찾고는, TAK의 팀원들이 가진 능력들 하나하나가 다시금 쏟아졌다.
‘이제 2부쯤 되어서 그런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머리를 써 가면서 움직인다는 게 느껴졌다.
류재준과 이창현의 동선을 최대한 겹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범위 공격인 [파동]을 쉽게 사용하기 어렵도록.
“큿……!”
류재준도 그걸 깨달았는지, 입술을 짓씹었지만, 어쩌겠는가. 인원이 모자르다는 게 원래 절대적인 불리함을 안고 시작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집중해.”
이창현이 작게 이어폰에 읊조리더니,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동시에 사용했다.
에어비트로 강한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에어앵커로 궤도를 변칙적으로 바꾸는 것이 그야말로 현란한 움직임이었다.
류재준은 왜 갑자기 저런 낭비적인 움직임을 취하나 싶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집중하라는 말의 의미까지도.
동선을 극한으로 압박하는 가운데에서도, 변칙적이고 기동성을 살린 이창현의 움직임이 순간순간 [파동]의 범위 밖으로 삐져나가고 있었으니까.
마치 류재준에게 [파동]을 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주듯이.
그게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류재준으로서도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이창현이 자신에게 기회를 계속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이창현이 자신의 [파동]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키이이잉 ㅡㅡ
다시 한 번 류재준의 [파동]이 작렬했다.
물론 상대도 상대이니만큼 이번에는 싱겁게 바로 당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당할 것 같냐!”
“이런……!”
이창현의 위치에 집중하면서 [파동]을 쓰느라 한 순간 경계가 미흡했던 류재준에게 마나봄버가 날아간 것이었다.
류재준은 순간적으로 마지막이라고 직감했는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집중하라고 했잖아.”
상대의 공격. 자신의 위치. 류재준의 습관과 한계. 모든 걸 읽고 있었던 걸까.
이창현이 언제 던졌을지 모를 에어비트가 이미 류재준의 발 언저리에 있었다.
콰콰쾅!
그 직후 마나봄버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에 류재준이 휘말리는 일은 없었다.
폭발로 일어난 먼지구름 위로 에어비트를 밟아 날아오른 류재준이 솟아났다.
류재준은 피식 웃고 있었다.
“센스 하나는 좀 괜찮네.”
“뭐래.”
폭발을 뒤로하고, 가벼운 농담이 오갔다.
***
경기가 끝난 후, 대기실에는 다들 힘이 쭉 빠졌는지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다.
“와…… 개빡세네 진짜. 초반 전술로 PER녀석들 5명 날려 버려서 끝난 줄 알았더니.”
“마지막까지 집중하라 그랬잖아 그래서.”
“마지막에 그것만 아니었으면 구단 측에서도 높게 평가해 줬을 것 같은데…… 떨어지려나요.”
TAK와 PER의 연습경기가 끝난 후. TAK선수들의 한탄이 뿜어져 나왔다.
경기는 PER의 패배.
그렇지만 TAK의 승리는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였으니까.
이쪽은 7명이서 급습해 상대 팀을 5명 잡았지만, 상대는 2명이서 맞대결로 5명을 잡았다.
제대로 된 전투를 다시 벌인다면, 다음엔 누가 이길지 자명했다.
“2명이서 2대 7로 5명을 잡을 줄이야…… 괴물 같은 녀석들.”
“제가 말했잔슴까! 이창현 선배님이 말도 안 된다는 거 말입니다. 이번 경기만 보더라도 탈 2부급 실력 아닙니까? 역시 TAK말고 PER에서도 시험을 봐야하나 고민이 되지 말입니다……”
“넌 좀 조용히 하고.”
“넵……”
김진승과 진 한도 이번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분명 첫 전술로 PER의 인원을 거의 다 밀어붙였을 무렵에는 팀에 붙는 걸 확신했지만, 지금 와서는 모를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번 경기는…….’
만약 이창현에게 정말로 조금의 마나만 더 있었어도 PER이 이겼으리라.
마나가 떨어지기 전까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 압도적으로 몰아붙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지금 옆에서 경기를 지켜본 코치도 모르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TAK에 뽑힐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대가 잘했다기보다는 어쩌면 시험을 본 인원들이 너무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
한편 TAK의 이번 테스트 총괄과 선발을 맡은 김 코치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과연…….’
그저 이창현과 류재준을 보고나니, 꿈에 그리던 선수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탐이 날 뿐.
애초에, 승강전에 참가한 팀의 코치이자 자신의 친구인 SMB의 코치는 PER이 에이스가 있지만, 밸런스 위주의 팀 파이트를 선호하는 팀이라더니……
전혀 아니었다.
‘SMB상대로는 그저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겠지.’
물론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 준 건 확실히 그 에이스 혼자서 만들어 낸 일이 아니었다.
이전엔 없었던 이창현 옆의 저 선수…… 류재준이랬나.
둘의 궁합 뿐 아니라 능력의 시너지가 엄청났다.
마치 벙커버스터 미사일처럼, 상대의 진영을 완전히 헤집고 들어가 폭발적인 일을 만들어 냈으니까.
‘이창현의 개인기나 저 녀석의 [파동]스킬은 알고 있었는데……’
약점이 없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창현은 원거리 딜러로서 중요한 파괴력, 일격 필살이 부족하다는 점이 있었다.
몇 번 쏘지 못하는 마나봄버를 장착해 총으로 쏘아 내는 걸 제외하면 마나실드조차 정면에서 뚫을 수 있는 공격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약점이 류재준의 [파동]으로 완전히 메워져 버렸다.
‘1차적으로 류재준의 진입. [파동]으로 상대를 무력화. 그리고 2차로 이창현이 돌입해서 마나 실드가 방어하지 못하는 핀 포인트를 사격한다.’
그걸로 공격력은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았다.
공격력이 부족하다고 한들, 녀석도 평범한 총을 쏘는 게 아니었기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재준의 [파동]이 이창현의 결점을 메워주는 것처럼, 이창현도 류재준의 결점을 지우고 있었다.
‘필시 저런 [파동]같은 범위형 스킬은 아군이 가까이 있을 때 쓰는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는데……’
이창현 저 녀석은 어떻게 아는 건지, 정확히 저 스킬을 쓸 것 같은 타이밍에만 아슬아슬하게 범위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온 것처럼 류재준이 스킬을 쓰기 가장 최적의 타이밍에 완벽한 공간을 제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심지어 팀원이 위기에 빠졌을 때, 에어비트를 던져 커버해 주는 센스까지.
한 명의 분석가이자, 자신만의 멋진 팀을 만들자는 작은 꿈을 가지고 있는 김 코치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저 두 명의 조합은 필시 앞으로 2부 리그에 돌풍을 불어오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
연습경기가 끝난 후, 팀 PER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분전했다고는 하나, 사실상 빠르게 먼저 퇴장해 버린 5명 중 한두 명만 더 살아 있었으면 이겼을지도 모르는 게임.
게다가 꽤 뛰어난 팀원을 한 명 들여올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팀의 숨이 텁텁 막히는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먼저 입을 연 건 이창현이었다.
“이제 점심시간인데.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점심 먹고 훈련이나 하다 가자고? 다들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가 보자.”
“어. 그래……”
어영부영 점심을 먹으러 팀원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남은 건 류재준과 이창현 뿐이었다.
“그래서 어땠어?”
“어땠냐니. 사실상 너 빼고는 맞춰 볼 수 있었던 팀원도 없었는데.”
“쩝…… 그래?”
‘뭐…… 솔직히 말하면 많이 놀랍긴 했지.’
PER의 팀원들이 아니라, 이창현이.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난 녀석이었다.
아직까지도 경기 순간처럼 피가 빠르게 돌고,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으니까.
7대2라는 압도적 열세 속에서 뛰어드는 흔치않은 경험.
그리고 단순히 덤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를 압살해 버리기까지.
위기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극한으로 분비되는 전투의 열광. 뭐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상황 속의 싸움 같은 느낌이랄까.
‘녀석이라면 거기에 에어비트를 던져 주겠지만.’
가볍게 웃음이 지어졌다.
“뭐야, 왜 혼자 막 웃고 그래. 우리 팀 전멸한 게 그렇게 우스웠냐?”
“그것도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긴 했어.”
“그것도……?”
이창현이 억울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
다른 팀원이 못해 줬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확실히 특별한 녀석이긴 했다.
‘마치 호흡을 오래 맞춰 본 것처럼 잘 맞았었지.’
광역 스킬을 쓸 타이밍에 공간을 내어주는 영리함.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커버해 주는 센스.
그리고 능력의 시너지까지.
‘솔직히 능력이 잘 맞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간단히 생각해서 따로 노는 능력이었다.
총을 써 정확하게 저격하거나, 혹은 진입해서 회피기동하며 전투하는 원거리 딜러.
그리고 광역으로 상대에게 순간적으로 강한 피해와 혼란을 주는 서포터 겸 딜러.
특별히 맞물리는 구석은 없었다.
‘그런데……’
녀석의 정확한 스킬 타이밍 파악과 범위이해. 더불어서 내가 잘 보지 못하는 것들까지……
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일까.
실제 경기에선 생각지도 못한 굉장한 시너지가 있었다.
선진입으로 광역 피해를 입히지만, 마무리가 부족한 것을.
이창현이 완벽한 사격과 마무리로 숨통을 끊는다.
마치. 원래부터 한 덩어리였었던 것처럼.
동선도, 호흡도, 스킬의 궁합도 너무나 잘 맞았다.
그렇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야 그리고 솔직히 경기 한 번만 해봐서 팀이 어떤지 어떻게 알겠냐. 너무 냉정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회는 보통 삼세번은 줘야지.”
마침 녀석도 이번 경기에서 호흡이 좋았기 때문일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었고.
“기회 삼세번이라…….”
솔직히 다른 PER의 팀원들은 그리 뛰어난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창현이 이 팀의 대부분을 차지하겠지.
하지만……
‘저녀석이라면…….’
함께하는 경기가 꽤나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