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단짝친구
‘X됐네.’
단순 숫자 비교로 7명대 2명의 상황.
특히 헌터스 리그에서는 이런 수적차이가 만들어 내는 무력의 차이가 엄청났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단순히 개개의 능력치가 하나씩 합연산으로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연산으로 불어나니까.
시너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 볼 것도 없군. 항복하자.”
류재준이 김이 빠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긴…… 나같아도 이랬을 것 같긴 해.’
팀원 수준은 안 보아도 알겠고, 이런 상황에서는 의욕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으니 그냥 이쯤에서 서로 쫑 내자는 의미.
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데, 그럴 순 없었다.
“붙어 보지도 않고?”
“게임을 끝내자는 의도가 질 것 같아서 끝내자는 걸로 보이나?”
짜증스러운 투로 류재준이 말을 내뱉었다.
저 말의 답은 당연히 질 것 같아서, 그런 차원이 아니라 팀 수준이 형편없어서 더 볼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상대는 전의를 불태우면서 우리를 상대해 주고 있는데, 그냥 질 것 같으니 항복하고 나가자는 거랑 뭐가 다르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일부러 끝까지…….”
류재준이 혀를 찼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힐난하는 어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도 대충 끝내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상대에게 항복을 하거나, 혼자 몸을 던지지는 않았으니까.
‘역시 하기로 한 이상은 해 주는 녀석이라니까.’
물론 그렇다고 의지가 충만한 것도 아니긴 했지만.
그냥 자포자기하고 어차피 니네 팀 대충 수준 알겠는 거, 네가 뭐 하고 싶은지나 한번 보겠다. 그런 태도였다.
입맛이 썼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아예 안 하면 가능성이 0%인데.
‘어떻게든 꺼져 가는 불씨를 살리는 수 밖에.’
일단은 류재준이 경기를 포기하는 건 막았으니, 그 다음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아무리 PER이 그렇게 전력이 뛰어나지는 않다고 해도, 어떻게 그 5명을 한번에 치워 버린 거지.’
김도준, 윤한결, 한지수, 이길한, 이연주.
경험은 전체적으로 부족할 수 있어도, 그 사이엔 1대1 개인기가 출중한 팀원도, 그리고 임기응변도 어느 정도 능숙한 팀원이 끼어있다.
통상적인 다굴로는 아무리 7명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5명을 순식간에 해치우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무언가 파괴적인 공격력을 가진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눈을 빛내며 류재준과 함께 전장에 뛰어들었다.
***
이름 모를 길다란 갈대들. 그리고 듬성듬성 보이는 수직으로 솟아 있는 거대한 돌 언덕들.
‘맵에 특별한 기믹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연습경기인 만큼 유물을 찾아서 쓴 것 같지도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 결과 어느 샌가 PER과 TAK가 격전했던 지역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한 곳에는 기세등등하게 TAK의 팀원들이 두런두런 모여 편안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 참.”
지들 딴에는 경기가 끝났다고 여겼는지,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류재준이 혀를 찼다.
아예 경계를 풀고 있는 것이, 우리가 꽤나 접근했음에도. 접근 할 수 있음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
하지만 내게 이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기회였다.
찰나지만,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TAK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PER의 팀원들은…….’
역시나 일격에 당한 듯 보였다.
정확한 형태가 보이지 않지만, 압도적인 무언가에 탄 듯한 형태가 보여졌다.
상대 팀원들의 상태. 탈락해 버린 우리 팀원들의 상태. 그리고 두런두런 모여 있는 상대 팀의 대화 양상.
모든 것이 관찰 대상이었다.
‘무언가 있는 건 틀림없지만, 상대 팀 7명 모두에게 [꿰뚫는 눈]을 쓸 수는 없으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만개]가 개방되지 않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마나의 소모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와…… 근데 2부 선수분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3부 선수들이랑 비교해서 가진 능력이 확연히 좋네요.”
“뭐, 이정도야. 1부나 국제리그쯤 가면 더한 거 너도 잘 알 텐데.”
“선배님이랑 같은 팀에서 할 수 있으면 확실히 좋겠네요. 진짜 감탄했습니다.”
“아냐아냐, 이것도 다, 결계를 펴준 저 녀석이랑, 급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 팀원 덕분이지.”
‘아주 그냥 훈훈한 분위기고만.’
김진승이 저기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배알이 꼴렸다.
여기저기서 잘한다고 꼬리 살랑살랑 흔드는 녀석이었어?
김진승이 전에 내 플레이를 보고 감탄한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나랑 겨우 저 녀석들을 동급 취급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질라 그러는데?
어쨌든 덕분에, 팀원들이 무슨 능력에 쓸렸는지 알 실마리가 생겼다.
자제해 둔 [꿰뚫는 눈]이 TAK 선수들. 그것도 방금 김진승과 대화한 녀석에게 번뜩였다.
[김낙준]
[스킬]
[파괴광선 : A] :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있는 광선을 발사합니다.
광선은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2차로 폭발합니다.
단, 광선을 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마나축적 : A] :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모아 축적시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과연…….’
가진 스킬을 보아하니 무엇으로 인해 한번에 팀원들을 순삭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스킬 랭크를 보아하니 그리 맞추기 쉬운 능력은 아닐 것 같은데. 다른 팀원들이 보조해서 저 파괴광선을 맞췄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그렇다면 무언가 발을 묶는 기술도 저 팀원들 중 한 명쯤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저쪽은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은데.”
침묵이 길어지자, 류재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
류재준과 눈동자가 마주치자, 무엇을 해야 할지 수많은 전술이 폐기되고 생성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단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기동성 위주로 상대방한테 파고들자.”
“뭐라고?”
류재준은 그런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7대2. 절대적인 인원수 차이와 그로 인한 능력의 개수 차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당연히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사고하고, 계산한 결과.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오히려 몸이 근질거리고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
시너지가 좋고 나쁘다는 것. 괜히 그걸 파악하려고 연습경기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생각보다도 무척이나 파악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이연주 - 윤한결 - 한지수로 이어지는 “폭격기 조합”처럼 명백히 어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계되는 초능력이라면 오히려 쉬웠다.
하지만, 초능력은 그 능력의 범위와 효용이 완벽하게 측정되어 연구되기도 어렵고. 자기 자신도 완전히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원리도, 효과도,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들만 이해할 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에 시너지도 그럴 수밖에.
그렇기에 얼핏 보면 ‘파동’능력을 가진 류재준과 나의 궁합도 왜 그렇게 좋은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단순하게 합쳐졌을 때 특별한 강점을 발휘할 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다만, 성과로 증명할 뿐이었다.
“가자.”
이게 실제 시즌 중 경기상황이라 승리 확률을 최대한 높이려면, 저격을 통해 최대한 줄이고 들어갔겠지만.
‘지금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
류재준에게 보여 주어야 할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비록 다른 PER의 팀원들에게 실망했을지는 모르겠으나, PER에는 내가 있고. 너와 내 능력의 시너지가 상상, 그 이상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하지.”
류재준이 먼저 에어비트를 밟고 TAK의 팀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일대 다수에 유리한 능력. [파동 : S+].
팀원들이 주위에 있으면 그 범위를 제외해야 하기에 그 진가를 완전히 발휘하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먼저 이렇게 혼자 진입하도록 냅둔다면……
키이이잉 ㅡ
그야말로 최강의 효율을 발휘한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딜레이에, 광역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강한 타격을 일으킨다.
물론 광역으로 쏘면 그게 상대를 한 번에 해치울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지만.
‘무서운 점은 막기가 어렵다는 거지.’
무슨 원리인지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류재준의 능력은 아마 진동 혹은 공명을 이용하는 능력이라는 것.
그렇기에 TAK의 팀원들은 갑작스레 난입한 류재준을 향해 마나실드를 펼쳤지만, 그건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 충격에 어지러웠기 때문일까, TAK의 팀원들의 행동이 잠시간 굼떠졌다.
진입하기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딜러를 압도하는 서포터라고는 하나…… 마무리가 부족한 건 녀석의 분명한 단점이지.’
하지만, 지금 녀석. 류재준은 혼자가 아니다.
뒤에는 녀석의 장점과 단점. 습관까지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어느덧 저격총에서 쌍권총으로 변한 무기가 마나로 충만해져, 에테르 탄이 장전되는 하나하나의 흐름이 전해졌다.
마치 총과 몸이 하나가 된 것 처럼. 작은 부품 하나하나의 연결이 장전되고 쏘아질 준비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한 호흡처럼 느껴졌다.
꽤나 오랜만에 느껴지는 반가운 감각이었다.
처음은 에어비트를 밟아 스타트 속도를 빠르게.
그리고 가속도가 붙은 후에는, 정확히 원하는 위치에서 사격을 하기 위해 에어앵커로 공중에서 크게 돌아갔다 잠시 바닥에 착지했다.
곧이어 취해지는 사격자세.
하지만 당연하게도, 7명을 상대로 그 순식간에 제압할 수준의 파괴력과 속도는 아니었기에. 상대의 저항이 이어졌다.
“으읏……!”
총을 쏘려는 순간, 아마도 김진승이 사용했으리라 예상되는 스킬. [염력]에 몸의 무게중심이 뒤로 강하게 쏠렸다.
그렇게 흔들리는 무게중심에 총구가 순간적으로 허공을 가리켰지만,
‘예상 범위 안이야.’
이미 한 번 만난 적 있던, 함께 싸워 보기까지 했던 상대.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재미있게도 상대의 수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
김진승 덕에, 중심이 뒤로 강하게 쏠려 몸을 잠시 못 가눈 그 순간.
동시에 딛고 있던 지면이 무너졌으니까.
그제서야 PER의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예상이 갔다.
‘이 의외성을 이용해 기동성 잠깐 빼앗은 사이, 파괴 광선으로 한번에 싹 쓸어버린 건가.’
썩 괜찮다.
하지만.
내겐 안 통한다.
왜냐면 파괴광선을 보았을 때부터 무언가 기동성을 제한할 능력이 있다는 걸 염두해 두고 있었으니까.
‘그 모든 인원을 [염력]따위로 계속 잡아 뒀을 리는 없을테니까.’
지반이 무너져 몸이 아래로 떨어지려던 찰나.
바닥에 착지했음에도 계속 마나를 불어넣어 손에 연결되어 있던 에어앵커로 인해, 바닥이 크게 무너졌음에도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중을 갈랐다.
동시에 아래로 내려가는 힘을 역이용해 아래가 훤히 보이도록,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공중에서 순식간에 포착한 약점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타타타탕 ㅡ.
결과적으로는 마치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는 듯 말끔하게 이어지는 사격 동작.
경쾌하게 울리는 한 발의 총성.
그 총성이 별다른 방해 없이 깔끔하게 상대의 급소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