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예상 밖의 상황
한창 팀이 어수선한 시즌.
기존에 있던 팀원들과는 재계약 협상, 방출. 그리고 새로운 팀원을 물색하고 들여오는 시기.
그야말로 격동하는 비시즌. 그게 바로 스토브리그였다.
그런데 비시즌이라고 하면 흔히, 연습경기조차도 안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의 자질을 시험해 보려고 하기 마련이니까.’
이게 헌터스 리그만의 특징이었다. 다른 팀에서 뛰어난 활약과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고 해도, 그게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팀원의 초능력 조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그게 헌터스 리그였으니까.
‘물론 그런 거 없이 그냥 어디서나 환영받는 소수의 선수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소수. 모두가 노리는 그런 매물의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맞는지 맞대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TAK와 PER이 하게 된 연습경기가 잡힐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번엔 대대적으로 선수가 바뀌어서 정신이 없었겠어 김코치.”
“네 감독님. 아시다시피 아직도 조율 중인 선수가 많습니다. 빠르게 한번 씩 테스트 해보지 않으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특히 TAK는 선수 중 절반 이상이 바뀌는 대규모 리빌딩이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지원자를 걸러낸 테스트 대상 선수만 하더라도 꽤나 많았다.
‘되도록 연습 경기를 많이 잡아야 해.’
그런 만큼 우리와 맞는지, 되도록 선수들의 조합을 돌려 가며 많은 연습경기를 해 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연습 경기 상대는?”
“이번에 2부 승급에 성공한 PER입니다.”
“아…… 그 팀.”
꽤나 인상적인 팀이었다.
그 팀도 아마 꽤나 분주하겠지. 2부가 되면서 새롭게 들여오려는 팀원도 많을 테고.
아마 이젠 같은 2부 팀이니 앞으로도 종종 그 팀과 연습경기를 갖으리라.
“상대할 팀원 셋팅은 끝났어?”
“네. 이미 한 번 정보를 다 교류한 상태입니다. 제가 합을 맞춰 볼 수 있는 전략도 준비해 놨구요.”
“아, 그래서 이번에 새로 테스트 겸 맞춰 보겠다고 한 녀석이 누구였더라?”
이번에 꽤나 많은 선수가 새롭게 TAK에 연습 겸 시험을 치려고 했기 때문일까, 김 코치는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대답했다.
“이번 연습경기에 새로 맞춰 보는 선수는 3부에서 콜업한 진 한 선수, 김진승 선수. 그리고 2부의 이한울 선수와 나대엽선수입니다.”
‘네 명…… 그건 그렇고 어떻게 사람 이름이 나대엽…….’
아니 뭐…… 그럴 수 있지.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아무튼 꽤나 많은 인원이지만 김 코치의 역량을 알고 있는 만큼.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 경기 진행하고, 끝나면 결과 보내 줘. 김 코치. 이번 연습경기 기간에는 나 출장 가는 거 알고 있지? 그 동안 맡길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감독실을 나섰다.
***
한편, PER 홈의 2층에 있는 연습실에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와…… 그래서 한 번 임시로 우리 팀 연습경기에 참가한다는 거야?”
“그렇게 됐어.”
임시지만 새롭게 들어온 류재준에게 팀원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보증해서 뛰어난 녀석이라고 이야기하니, 다들 시선이 나쁘진 않아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호의적인 수준까지도 아니었다. 아직 경기를 같이 해보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니 반신반의 하는 거겠지.
특히 이연주는 꽤나 침울해 보였다.
‘정혜연 건 때문인가…….’
오랜 시간 프로생활을 하다 보면 헤어지는 것도, 새로운 팀원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될 텐데.
역시 경력이 적어서 그런지 조금 민감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무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리고 그건 어차피 류재준 저 녀석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거겠지.’
자신의 쓸모를. 뭐, 어차피 이 안에서 초능력만 봐도 압도적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녀석을 데리고 온 건 단순히 초능력이 S+랭크라 데려왔다. 이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전에 3부에서 한 번 붙은 적 있지 않았나?”
“능력은 뭐야?”
마침 모여 있는 팀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하게 파동을 일으키는 능력.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정말 최소한의 정보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저 녀석이 가진 스킬의 진가를 알고 있으니까.
회귀 전. 나랑 류재준 단 둘이서만 국제전에서 7킬을 달성했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때의 나도 아니고, 류재준도 그때의 류재준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초능력의 능력적인 밸런스, 기술, 경험. 모두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이쯤이면 대충 대화도 나눈 것 같고…… 슬슬 헌터연합훈련소로 가 볼까?”
“어? 여기서 한 번 안 맞춰 보고 가도 돼?”
“그랬다간 늦을걸?”
어차피 얜 헌터 경력이 PER팀원 녀석들처럼 짧은 것도 아니라 척하면 척이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워낙 내가 잘 알고 있는 애라.’
굳이 맞춰 볼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짐 다 챙겼으면 가자.”
***
비시즌의 헌터연합훈련소는 일종의 축제 분위기였다.
잠시 팀을 나온 선수도, 새로운 팀과 잠깐만 합을 맞춰 보는 선수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헌터 연합훈련소를 찾으러 온 선수도 있었다.
요컨대, 호승심 높은 헌터들이 자기들끼리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쌈박질하기 좋은 때라는 의미였다.
‘평소에 죽어라 했던 지겨운 7대7 헌터스 리그를 꼭 안 해도 되기도 하고…… 아무튼 다른 헌터랑 손 섞어 보기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하거나 좀 즐긴다 싶은 대부분의 헌터가 찾아오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보는 것도 잠시.
7대7 헌터스 리그 연습장으로 들어가자, 그쪽은 꽤나 분위기가 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매우 가볍게, 한 번 떠봐? 이런 분위기였다면, 여기는 명확히 서로를 평가하고 탐색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쪽이야.”
그 사이에서도 내가 PER을 이끌고 들어간 곳은 앞에 선수들이 꽤나 많이 있는 대기실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선수가 있어 꽤 놀랐다.
‘TAK가 꽤나 대형 팀이던가……?’
아무래도 대부분은 이번에 합을 맞춰 보려고 온 2부 선수들인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사이에 아는 얼굴이 끼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게 누구야.”
큭큭 웃으며 다가오는, 조금은 반가운 얼굴. 김진승이었다.
녀석은 이쪽으로 오더니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오는 주먹이 있으면, 화답해 줘야지.
나도 주먹을 내밀어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혀 줬다.
“뭐야. 살아 있었어?”
“뒤질래?”
성깔은 어디 안 간 것 같긴 한데…… 왜 진짜 못 봤지? 2부 팀으로 올라가라면 최소한 3부리거로 등록된 전적이 있어야 하는데.
“근황이 좀 궁금하다는 표정인데, 감독 잘못 만나서 보결로 있었다.”
“네가 그렇지 뭐.”
전부터 눈치는 꽤 빠른 녀석이다.
그렇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나와 윤한결, 김도준과 김진승이 잠깐 대화를 하는 동안,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거 이창현 선배님 아닙니까! 저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이렇게 잘나가실 거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거 운명인거 같은데 PER에는 남는 자리 없습니까?”
‘시끄러운 녀석이 또…….’
다름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번 물맥여 줬던 진 한이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큰 목소리도,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잔뜩 속사포로 쏟아 내는 것도. 하여간 한결같았다.
“그래…… 반갑다. 그래서, TAK랑 합 맞춰 보는 거야?”
“맞아. 너네가 이번 연습경기 상대라며.”
뭐야, 우리 합 맞추는 것도 우리 팀 상대였어?
“잘 나가는 녀석들 한 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매워서 정신 못 차릴걸?”
그렇게 잠깐이나마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약속한 시각이 되어 연습실로 들어섰다.
***
어차피 당장 팀 합을 기른다거나, 조직적인 훈련을 몸에 익히는 연습을 하는 목적의 경기는 서로 아니었으므로, 맵은 랜덤이었다.
다만, 주로 ‘팀 합’을 위주로 보아야 했기에 새롭게 추가된 옵션이 있었는데, 바로 팀원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리스폰되어 시작하는 옵션이었다.
“연주야. 팀원들 다 모이는 거 고려해서 합류 좌표 찍어 줘.”
서로의 궁합을 맞춰 보는 단계이니 만큼, 되도록 개별 교전을 줄이는 방향의 커스텀 옵션을 넣어 둔 것이었다.
물론 줄였을 뿐, 아예 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필이면 리스폰 된 지역이 나랑 본대랑 류재준 이렇게 셋이 갈라져서 머네.’
나머지는 그나마 거의 가깝게 리스폰이 되었지만, 특히 나랑 류재준은 다소 거리가 있었다.
“5명 합류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상대 팀이랑 거리는 벌려 봐. 지금 빠르게 가고 있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오키.”
그런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대가 먼저 모여서 우리 팀 본대에 들이 박는 거 아니야?’
그랬다가 버티지 못하고 큰 피해를 보면, 류재준이 우리 팀원을 어떻게 볼지 뻔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잘 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이 우습게 이어폰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는 이미 합류가 끝난 것 같아…… 근데…….”
“근데?”
“이쪽으로 오는 속도가 엄청 빠른데?”
아무리 PER의 팀원들이 에어앵커, 에어비트 숙련 수준이 완숙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정도라면……
‘하필이면 이번에 합을 맞춰 보는 TAK 시험자 중에 이동속도 계열 각성자가 있었나.’
어쩌면 그것도 팀 단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능력이.
이러다 먼저 우리 PER팀원 5명이랑 TAK의 7명이 부딪힌다면?
내가 전장에 있는 상황이 아니라 오더도 제대로 못해 줄 테고, 그대로 개박살 나는 거 아니야?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재준은 그 다급한 상황에 이어폰으로 한 마디를 얹었다.
“그 잠깐 합류 타이밍을 못 버티진 않을 거 아니에요. 조금만 버텨 봐요. 엄청 멀진 않으니까.”
확실히 그 말이 정론이긴 했다. 숫자가 적을 땐 2명 차이가 엄청 컸다면, 5대7정도 되면 도망가면서라면 어느 정도 버틸 정도는 되니까.
문제는 PER은 에이스 겸 메인 오더인 나도 빠져있고, 상대와 체급차이도 크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고가 더 터졌다.
“더 도망갈 수가 없어.”
“……? 왜.”
“이것도 무슨…… 능력 같은데?”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기에, [꿰뚫는 눈]의 시야로 응시하니 그 정체가 드러났다.
특정 지역에서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상호 불가침 지역 : A] 능력이 펼쳐져 있었다.
그제서야 TAK가 이번에 시험하려던 초능력의 합. 그 정체를 알 것 같았다.
‘팀원 전체의 이동속도를 올리는 능력과, 일종의 절대지역을 펼치는 능력의 합인가.’
지금처럼 빠르게 합류한 후, 더 적은 인원이 있는 쪽에 돌진해 능력을 개방해 합류를 차단한다.
그렇게 되면 수적 우세를 강제해 한타를 열 수 있다.
‘적인 내가 봐도 꽤 괜찮은 능력의 합인데…….’
솔직히 감탄했다.
하지만…… [상호 불가침 지역 : A]같이 스케일이 큰 능력이 상식적으로 오래 지속될 리가 없었다.
에단처럼 마나통이 태생적으로 말도 안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이미 해외리그에서 에이스 서포터로 입 떡 벌어지는 연봉을 받고 있겠지.
“일단은 도착했는데, 이쪽에서도 들어갈 수가 없네. 근데 조금만 더 버텨 봐. 아마 저렇게 스케일 큰 능력이라면 오래 못 쓸 테니까.”
마침 그 말 하기가 무섭게, [상호 불가침 지역 : A]가 해체되었다.
그런데……
“하. 그 한순간을 못 버티고 5명이 전멸을 하네.”
마침 옆에 합류한 류재준이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