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구실
[요새화 : A+]라……
일단 A+급 능력이라는 것만으로도 꽤나 전술적 가치가 큰 스킬이었다. A+급 정도의 스킬이라면 범용성이 좁을 수는 있어도 보통 국면을 바꿀 정도로 특별한 스킬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느낌에서 이 [요새화 : A+]도 우리 팀에 딱 걸맞은 스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포탑 생성 능력.’
에어앵커로 날아오른 공중에선 자동적으로 은신되어 보이지 않는 꽤나 많은 숫자의 포탑이 보였다.
나야 [꿰뚫는 눈] 덕에 모두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알기 어려울, 포탑으로 인한 무장지대를 순식간에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만약 과거 RIX가 우리에게 썼던 전략처럼 저기에 자리 잡고, 우리가 계속 원거리로 쏘아 댄다면 어떨까.
단순히 그런 전술 하나만으로도 상대는 꽤나 곤란할 수 있으리라. 그게 단순히 나랑 저 녀석 둘만 있어도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엄청났다.
‘물론 능력만 보면 그렇지만, 검증을 들어가야겠지.’
포탑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요새화]된 구역에서 마음 놓고 저격만 할 수 있을지. 한 번 직접 뚫어 보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에어앵커를 타고 우선 하늘로 날아올랐다.
포탑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공중에서 한 행동은 뻔했다.
‘별다른 초능력이 없는 사람의 최대 화력. 마나봄버를 통한 공격인가.’
물론 다른 사람은 나처럼 이렇게 정확하게 포탑만을 저격해서 마나봄버를 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초능력 없이도 이 정도 파괴력을 낼 수 있을 터였다.
콰콰쾅!
그리고 먼지가 걷히자 그 결과가 드러났다.
‘모조리 부서졌나.’
생각보다 별로일지도?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지? 근데 이 정도론 어림도 없겠는데.”
그래서 일부로 상대에게 말을 건넴과 동시에 여유를 줬다. 실전이었다면 뚫자마자 쏴 버렸겠지만, 보여 줄 것이 있으면 더 보여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이 정도의 스킬이 A+급이라고?’
아무리 포탑이 은신되어 있어 찾기 힘들다고는 해도 이런 스킬이 A+급이라는데 의아함이 들었다. 혹시 아니면 포탑이 내구성이 약한 대신 엄청 강력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에어앵커로 김유현의 주변을 날아다니기도 잠시, 그 지역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겨났다.
에어앵커로 풀숲과 나무를 피해 기동하고 있었는데, 지형이 갑작스레 점차 변화하는 것이었다.
꽤나 넓직하게 공중 기동공간이 있었던, 나무가 듬성듬성 있던 숲에서 에어앵커를 사용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빽빽하고 불규칙한 숲으로.
그뿐만일까, 새롭게 변해 가는 지형은 정말이지 에어앵커를 사용하기에 최악이었다.
어째 새롭게 변화해서 자라난 나무인데 거미줄이 막 쳐져 있는 것이……
‘악의적이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어쩌면 이것도 [요새화]스킬은 지역을 요새화 하는 다양한 능력의 총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구성이 구리긴 해도 포탑 소환만으로도 범용성이 굉장했는데,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일부 지형조차도 바꿔 버리는 이 능력. 이건 딜러로서는 미묘하지만 서포터로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이창현의 목 옆쪽으로 무언가가 스쳐갔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이라 어떻게든 피하긴 했지만, 스쳐간 자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뭐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찰나, [꿰뚫는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자 깨달을 수 있었다.
‘포탑이 다시 생기고 있는데?’
물론 마나가 부족했는지, 몇 개 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초능력 금수저가 하나 있었네.”
***
콰콰콰쾅!
포탑이 부서지고 생성되기를 계속 반복하던 도중, 어느 순간엔가 더 이상 상대가 공격하지 않았다.
‘잡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김유현 : 8 kill]
킬 수가 그대로였다.
그렇다는 건 아무래도 이 소모전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사기적으로 좋은 능력이라고 한들, 마나가 거의 떨어져 패배를 염두해 두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그렇게 부숴 대지만 않는다면 일단 여기에 몸을 숨기고 마나를 회복할 때까지만 버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니까.
‘심사하는 사람도 저 괴물 같은 새끼를 몰아낸 걸 다 지켜봤겠지?’
다시금 이번 선수 선발에 뽑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다른 녀석이 문제였다.
회복을 위해 쉬고 있던 찰나, 킬 기록이 잔뜩 올라와 봤더니 아까 뒤를 바짝 추격하던 류재준이라는 녀석이 완전히 따라잡다 못해 추월해 있었다.
‘이걸 어쩐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선수 선발이 1명이라면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런 조급함이 들었으면서도, [요새화] 스킬로 만든 거점을 지금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하늘이 김유현을 도왔던 걸까.
이번에는 류재준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까 온 녀석은 규격 외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 온 녀석도 아까처럼 괴물 같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 번 밀리긴 했어도 3부는 물론, 2부에서도 과거에 화제가 되었던 [요새화] 였던 만큼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올 테면 와봐라…….’
지금은 다시 복구된 포탑들이 격하게 환영인사를 해 줄 테니까.
이번에도 역시, 상대는 에어앵커를 통해 공중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막 포탑들이 가득한 함정에 들어갔기에, 상대가 마나포를 막는데 급급하리라 생각했던 무렵.
포탑이 막 발동되기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키이이잉 ㅡ.
‘어……?’
쇠를 긁는 듯한 괴로운 소리가 중앙에서 울려 퍼졌다.
류재준이 [파동] 스킬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ㅡ.
그 쇠를 긁는 소리 끝에 메아리 치듯 울려 퍼지는 폭발음. 그 녀석을 반경으로 포탑들이 마구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게 대체…….’
그 순간 김유현은 아예 정신을 놔 버렸다.
포탑을 부시다 못해 자신의 [요새화]를 이런 식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녀석이 또 있다고?
김유현은 구단주이자 심사 당사자인 이창현이 자신을 높게 평가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렸다.
***
입단 테스트가 끝난 후, 추후 합격통지를 개인적으로 전달할 예정이었기에, 바글바글했던 PER의 홈은 금세 한산해졌다.
물론, 모두가 나간 것은 아니었다.
“왜 바로 나한테 안 오고, 테스트하는데 거기 끼어들었어.”
감독실에 류재준이 찾아와서, 나와 독대 중이었으니까.
“별 의미는 없다. 헌터스 데이의 파티 이후로 생각해 봤는데…… 역시 상위리그로 가기 위해 팀에서 새로 뽑을 선수들과 주먹을 맞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뭐. 맞는 말이다.
‘녀석 성격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한번 쌈박질 하고 싶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3부에서 꽤나 허무하게 당했던 내게 자신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을 수도 있고.
그건 그렇고 팀에서 새로 충원하는 예비 팀원이라.
아무래도 PER에 들어가겠다고 생각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은 팀원으로 써도 좋겠다 싶은 녀석은 찾았고?”
“음…… 그건 미묘하군. 너한테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이근택 회장님 같은 분에게 배운 만큼, 내 목적지는 2부 정도가 아니야.”
“그래서?”
류재준이 다소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지금 내 실력도 결코 2부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흠…… 그래?”
뭐 객관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초능력도, 그리고 어린 시절 이근택한테 배웠을 경험적인 측면들도.
저번에 3부에서 상대한 게 나였기 때문에 진 것이지, 객관적으로 류재준의 전력이 나쁜 건 아니니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네 안목의 문제겠지.”
류재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재미있는 건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난 어느 정도 보여 줬으니, 이제 네가 보여 줬으면 좋겠군.”
하긴 저 녀석 성격에 그냥 저번에 한 번 권유한 걸로 넘어올 리가 없지.
뭔가 요구할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기껏 요구하는 게 보여 달라는 거라니.
‘너무 쉽잖아.’
회귀 전에 류재준과 꽤 오래 합을 맞췄었던 만큼, 녀석이 어떤 플레이에 반하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1대1 랭킹전이든 내가 헌터서바이벌에서 무쌍을 찍는 모습이든 원하는 걸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뭘 보여 줬으면 좋겠는데.”
“뭐냐니. 팀을 옮기는 건데, 팀원 수준을 봐야 하지 않겠어?”
“?”
“……?”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다면 다 보여 줄 수 있는데, 하필이면 본다는 게 팀원이라니.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근택회장한테 헌터짓 하는 걸 배웠으면 PER은 그냥 구멍가게 수준으로 보일 텐데…….’
물론 그 구멍에 류재준이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 메워 줄 수 있는데, 그것까지 감안해 생각해 줄지 모르겠다.
아마 꽤 많은 2부 팀이 류재준에게 이미 러브콜을 했을 테고, 그곳에서 시설을 비롯해 팀원들도 한번씩 훑어봤을 테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밑천이 잘 들어나지 않게 대충대충 보여 주는 수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연습실에 애들 부를까?”
“아니. 팀 수준을 보려면 아예 연습경기를 잡아야지.”
어떻게든 제대로 보여 주지 않으려는 내 얄팍한 수가 간파당한 걸까.
당연하지만 헌터스 리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이런 일에서 대충 내 말을 듣고 넘어가 주는 일은 없겠지.
결국은 끌어들이려면 경기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으리라.
“후…… 비시즌 중이라 연습경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PER과 비슷한 이유로 이 시즌에도 연습경기가 꽤나 있는 걸로 안다만?”
하여간 속여먹기가 어려운 녀석이다.
결국은 말을 마지막으로, 김성준에게 연락해 2부 팀이랑 연습경기를 잡았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상대, 2부에서 전시즌에 3위를 한 TAK라는 팀이었다.
솔직히 이길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저번에 꼴등이었던 SMB와의 경기도 겨우 이겼고, 2부 경기 특성도 아직 잘 적응하지 못한 상태인데 2부 상위권과의 경기?
될 턱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좋은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뭐, 까짓 거 팀원들 보여 줄 수도 있고, 연습경기 잡을 수도 있어. 근데 솔직히 너 한명 보여주자고 아직 준비도 안 된 애들 비시즌에 모조리 다 연습경기 시켜서 괴롭히는 거 미안하다고는 생각 안하냐?”
류재준은 전부터 이런 상황에 좀 약했다.
자신 때문에 남에게 피해 보는 거.
사실 연습은 어차피 해야 하니 실제로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말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팀원들도 잘 모르고,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개뼉다구 같은 팀에 들어갈 순 없으니까.”
“아니, 그래서 연습경기를 안 잡겠다는 건 아니고.”
“?”
절로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팀에 지금 인원이 몇 나가서 인원이 좀 적거든. 그래도 연습게임을 하려면 7대7 구색은 맞춰야 하는 거 아니겠어?”
“연습경기까지 해 가면서 우리 선수를 봐야겠으면, 그 연습경기에 너도 껴 줘야겠어.”
그렇게 같이 어떻게 나랑 한 판 호흡을 맞춰 보면 비빌 거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