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선수 선발
감독실의 창문 밖으로 봤던 모습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이연주와 정혜연이 포옹하는 것이, 정혜연의 떠나는 뒷모습이 생각났다.
입맛이 썼다.
하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쓸데없는 짐을 잔뜩 싣고서 여행을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필요하고, 또 필요한 것만을 덜고 덜어 내어야 제대로 된 여정을 떠날 수 있는 법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게 정혜연에게 마지막 문자라도 보낼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끝내 다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최소한 다른 팀으로 옮길 때, 힘든 일 없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는. 김성준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그 정돈 해 줄 수 있겠지……’
김성준은 사실상 레만의 부하직원 중 한명이고, 레만은 이근택 회장과도 잘 아는 사이일 테니.
더군다나 실무자이기에 직접 이근택 회장에게 말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그렇게 잠시간 한숨을 몰아쉬고, 눈을 감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였다.
이연주가 답지 않게, 감독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왜…… 왜……!”
꽤나 흥분한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반면 그런 모습과는 달리, 말하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듯 작았다.
‘조금은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그런 거겠지.’
계속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이연주에게 있어 정혜연은 원래서부터 오래간 같이 PER에서 생활해 왔던 팀 메이트였으니, 더 착잡하리라.
첫 팀이기도 하고, 팀을 옮겨 본 적도 없는 녀석이니까.
그래서 이해는 갔다.
하지만 이해와는 별개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라면.
미룰 수는 있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그건 그런 일이었다.
“왜 안 붙잡았어…….”
이연주의 목소리가 기어가듯 작게 들려왔다.
“붙잡아서 어쩌자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한 팀으로, 하나가 되어 이뤄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 팀이 아무나가 될 수는 없었다.
이게 현실이니까.
“필요한 일이고, 구단주이자 감독인 내가 내린 결정이야. PER이 강해지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어.”
냉혈한처럼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승리라는 달콤한 과실은, 한편으론 쓰다.
결코 아무런 대가 없이 취할 수 없는 것이니까.
“대신, 우린 반드시 1부 최고 찍는다. 정혜연이 자랑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안 쪽팔리지 않겠어?”
그래, 응당 그래야지.
회귀 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목표였는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째 그 목표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PER은 2부 팀이 되었고, 팀 내외적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를 겪었다.
생각보다 정혜연과 신승현의 일이 끝나고 대부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부적인 협상은 김성준이 맡기로 했기에, 다른 선수들과의 이야기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으니까.
그저 당연히 함께하겠지만, 재계약 희망에 대한 여부. 그리고 더 좋아지는 대우에 대해서는 당연히 마다하는 선수가 없었다.
‘게다가 레만 측에서 준 예산이 넉넉해서 옥신각신 계속 협상해야 할 부분이 없기도 했고…….’
“이 정도나 줘도 되는 거야? 나한테 이런 조건을 제시했던 팀들이 있긴 한데…… 솔직히 우리 팀 돈 별로 없는 거 아니었어?”
윤한결이 으쓱거리며 말했다. 하여간 고마운 녀석이다.
“이번에 이 건물 쓰게 됐는데 느낀 거 없냐?”
“이젠 스폰이 빠방하다는 거? 그래. 그럼 다음엔 더 기대해 볼게.”
한편 김도준은 이번에 인상되는 연봉 액수를 보고는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만족스럽다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나는데. 나오는 말은 정반대였다.
“겨우 이거야? 네가 예전에 팀 들어올 때, 한 몫 단단히 챙겨 준 댔잖아.”
“그래? 이걸로 모잘라? 그럼 관 둬.”
“아~ 그러진 말고. 다시 생각해 보니 괜찮은 거 같네.”
실제로 꽤 좋은 조건이었는데 객기 부리는 게 눈에 딱 보여서 혼쭐을 내려다가 말았다.
이길한이나 이연주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동안 이렇게 큰 액수는 제시받아 본 적이 없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2부. 그것도 더 위를 노리는 팀으로서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해야만 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느끼고는, 그걸 받아들였다.
특히 팀을 떠난 정혜연에게 애착이 있던 이연주는 계약을 하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었는지. 생각이 많은 듯 보였다.
그렇게 PER의 구단주로서 처음 맡은 재계약이 마무리되었다.
회귀 전의 삶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빛나는 무대 위에 서 보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뒷편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헌터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기를 마지않는 그 무대.
다만 선택받은 사람만 설 수 있는 무대.
그 무대에, 다시 한번 서고 싶어졌다.
***
레만이 보내 준 사람이 내 대리로 사무를 처리하고 계약의 세부사항을 체크하는 동안, 또 해야 할 다른 일들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팀원의 충원이었다.
‘8명의 선수 중 2명이 나갔으니 6명…… 헌터스 리그 참가 최소 조건은 7명이지만, 추가선수도 당연히 필요해.’
가용할 선수가 많다는 건 더욱 더 전술적 요소를 풍족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이번엔 단순히 보결로 땜빵을 때워 줄 선수가 아니었기에, 그런 점까지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바로, 새 선수를 충원하기 위한 테스트를 한다는 공고를 헌터 협회에 내거는 것.
‘시즌도 끝나고, 아직 재계약 안한 녀석들이 태반일 테니…….’
빵빵한 레만의 지원을 이용해 대어 하나만 낚아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에 새 팀원을 지원받았는데……
복지와 연봉조건이 좋아서였을까?
‘생각보다 많잖아?’
PER의 팀 홈, 트레이닝 룸인 2층.
거기에 왁자지껄하게 지원자가 모여 있었다.
태반이 3부고 일부는 2부의 선수였는데, 그중엔 아는 사람도 보였다.
류재준이었다.
‘쟨 또 왔으면 내 얼굴이나 보러 오면 되는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냐.’
하여간 저 녀석은 오래 봤어서 잘 알다가도 모르겠는 부분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종규 코치님. 시작해 주세요.”
그렇게 팀원을 뽑는 시험이 시작됐다.
***
이종규 코치가 오늘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을 통솔하고, 나는 PER의 홈, 2층 연습실의 관람석에 서서 다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옥석을 가리기 위해 제시한 시험은 다름 아닌 ‘헌터 서바이벌’이었다.
일반적인 형식은 아니었기에, 당혹스러워 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뭐, 까라면 까야지. 어쩔 건데.’
그리고 내 딴엔 그렇게 일차적으로 가려내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지금 하나하나 보기에 인원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전에 헌터 서바이벌로 선수를 훈련시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도 있다.
‘헌터 서바이벌만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능력치를 엿볼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내 경우엔 회귀 전 선수 경력이 워낙 길었기에 팀원 변화도 자주 겪었고, 많은 선수와 합을 맞춰 보았기에 그리 자세히 보지 않아도 딱 보였다.
좋은 선수가 누구인지 말이다.
‘초능력의 범용성. 시너지. 그리고 개인기.’
이것 세 가지를 위주로 면밀히 관찰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초능력의 범용성과 우리 팀원들과의 시너지는 내가 [꿰뚫는 눈]으로 관찰해서 판단하고…… 남은 건 개인기.’
개인기를 판별하는 건 쉽다. 헌터 서바이벌 환경을 조성해 놓고 거기에 던져 놓으면 지표가 딱 보이니까.
상대 잘 잡는 놈. 잘 살아남는 놈. 유물 잘 찾아내는 놈.
그렇게 헌터 서바이벌이 시작되자마자, 벌써부터 눈에 띄는 녀석들과 그렇지 않은 녀석들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화려한 개인기로 만나는 적마다 쓰러뜨리고 지나가는 녀석. 특유의 길찾기 능력으로 적이란 적은 모조리 피해 가는 녀석. 그리고……
키이잉 ㅡ.
털썩.
딜러를 압도하는 서포터, 류재준의 활약이 돋보였다.
물론 딜러를 압도한다고는 해도,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선수 선발의 조건이 워낙 좋았기에 아주 쟁쟁한 녀석들이 껴 있었던 탓이었다.
“저 사람, 이름이 김유현인가요.”
“네. 원래 2부 베테랑 선수였는데, 개인 사정상 이번 시즌을 쉬었다고 하더라구요.”
어쩐지. 3부 선수나 경력 짧은 2부 선수처럼 보이진 않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 끽해야 한두 명. 류재준 정도나 뽑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런 인재가 이번 테스트에 오니 직접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제가 직접 이번 게임 참가해서 맞상대 해보고 싶네요. 세팅해 주세요.”
***
‘연봉이 약한 것도 아니고, 옵션이 별로인 것도 아니야…… 이런 조건에 세금까지 별도로 모두 다 팀에서 지불해 준다라…….’
당장 돈이 필요한 김유현 입장에서는 워낙 좋은 조건이었기에 이를 마다할 수 없었다.
어차피 헌터스 리그로 복귀해서 팀을 구하는데, 기왕이면 조건이 좋은 곳이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1부로 올라가긴 힘들 것 같으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물론 그렇다고 2부에서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니까.’
1부는 못가더라도 2부에서 돈을 열심히 벌자. 그게 김유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자기평가는 실제로 꽤나 들어맞기도 했다.
이번 테스트로 나온 헌터 서바이벌에서 킬 수 1위로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1시즌 쉬고 복귀한 건데도 여긴 여전하네.’
이 정도면 아직 먹고 살 만하리라. 2부에서는 그래도 좋은 옵션과 조건으로 선수로 오래 뛸 수 있겠지. 가늘고 길게……
그렇게 하나 둘, 킬 수를 쌓아 가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빠른 속도로 자신의 킬 수를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이걸 따라온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능력 [요새화]는 1대 다수를 상대하기에 최적인 능력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거보다 1대 다수에서 효율적인 능력을 본 적이 없었다.
‘류재준…… 그리고 이창현?’
빠르게 자신의 점수를 따라오는 사람은 그렇게 두 명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팀원을 그리 많이 뽑을 리 없는 상황에서 경쟁자가 둘이나 있다는 건 결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안 그래도 몸이 달아올라 있었는데 점수를 바짝 추격하던 이창현이 근접했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최근 아는 선수가 없는데도 이름도, 모습도 뭔가가 낯익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쓰러뜨려야 할 녀석이 [요새화] 스킬의 범위에 들어왔다는 것. 이것 하나만이 중요한 사실이었다.
역시나 빠르게 자신의 킬 수를 따라왔던 것만큼이나 보통이 아닌 녀석이라는 게 훅 느껴졌다.
‘에어앵커와 에어비트 활용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군.’
능숙한 것을 넘어서 아예 한 몸처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공중을 제 집처럼 자유롭게 활보한다고 하더라도 무방한 수준.
‘저 녀석…… 2부 리거 맞아?’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새화]가 끝난 이 지역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자연물들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있는 포탑들이, 저 녀석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순간 일제사격을 가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녀석은 역시 생각대로 에어앵커를 타고 공중에서 난입했는데……
“……!”
보호색과 교묘한 은신장치로, 결코 보일 리 없을 [요새화]로 인한 포탑들에게 정확히 마나 봄버가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이럴…… 수가‘
아무래도 최악의 상성의 상대를 만난 모양이었다.
포탑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 한 번에 부실 수 있도록 준비된 셋팅. 김유현은 몇 명 뽑지 않을 이번 선수선발에 뽑히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수준들이 생각보다 왜 이렇게 높지?’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데, 이창현이 에어앵커로 날아다니던 중 입을 열었다.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지? 어림도 없지.”
포탑에 폭격을 가한 그 녀석이었다. 웃음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녀석은 포탑이 모두 해체되어 노출되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뭐……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 내가 다른 곳에선 몰라도 2부에선 깡팬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뼉다군지 모를 놈이…….’
실력이 뛰어난 건 알겠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2부를 지켜온 짬이 있고, 경력이 있다. 1부는 못 되어도 그렇게 비웃음을 살 만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뭘 어떻게 하더라도 저 녀석은 꼭 죽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차올랐다.
‘죽어도 저 새끼를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김유현은 결단코 가더라도 곱게 퇴장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