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갈림길
재계약을 위한 선수별 개인 상담을 하기 전.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도 회귀 전, 마지막 기억이 사실상 방출이었나.’
방출이 선수생명이 끝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수가 많은 만큼, 팀도 많으니까.
그리고 다른 팀을 가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선수도 많다.
하지만…… 방출당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는 느낌. 소외당한 기분. 함께했던 팀원들을 기억하며 드는 착잡함.
“…….”
고민이 길어졌지만 사실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내려야 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 더 어려워지는 리그 속에서 함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회귀 후에 팀을 갖게 된 것도, 결국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
팀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만큼, 인원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시즌이 끝난 지금 시점, 날 포함해 PER에 남아 있는 선수는 총 8명.
나, 윤한결, 김도준, 한지수, 이길한, 이연주, 신승현, 정혜연.
그 중에서도 신승현과 정혜연은……
‘아쉽지만 더 이끌고 나갈 수 없겠지.’
아마 [체술강화 : B+]로 꽤나 뛰어난 대인전을 보여 주어 프로 헌터가 되었을 신승현이나 [대인방어 : C+]로 적당히 버텨 왔을 정혜연.
둘 모두 성장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능력도, 스테이터스도.
그뿐만일까. 앞으로 더욱 한 팀 시합이라는게 중요해져, 전술을 위해 팀원의 능력과 시너지가 필요한 2부에서는 오히려 더 불리하리라.
게다가 3부에서도 직접 교습을 해 줬음에도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기도 했고…….
이제 PER은 2부 팀이었다.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마치고, 접었던 날개를 펼쳐야 했다.
더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없으리라.
***
정혜연과 신승현을 감독실로 부른 후, 차를 내어왔다.
둘은 갑작스러운 부름이었는데도, 얼떨떨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소 긴장해 있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랜 고민이 있었음에도 선뜻 무거운 화제를 꺼내기가 두려워서였을까. 가벼운 이야기부터 꺼냈다.
“생각해 보면 승강 전때 같이 연습할 때 빼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본 적이 없네.”
가볍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조금은 분위기가 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좀 무서웠어. 팀 상태 개판일 때 들어와서 막 싸웠잖아. 길한이랑.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완전 막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맞아맞아.”
“그때가 막 PER경기 보고 왔을 때였을 텐데, 워낙 개판이라 어쩔 수 없었어. 이제 저 팀이 내 팀이 된다니까 눈 앞이 캄캄해지더라니깐.”
“그렇긴 했어.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맞았지.”
그것도 벌써 꽤 지난 이야기인가.
새삼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빠른 것 같이 느껴져, 놀랐다.
동시에 이만큼의 시간을 같은 팀으로 지냈으면서도 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도 약간의 놀라움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그렇게 시시껄렁한 우리들의 이야기로 잠시간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팀원이 점점 많아질 텐데…… 정혜연이나 신승현 같이 별다른 기억 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는걸까.’
하는 약간 슬픈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언제까지나 말하는 걸 미룰 수 없었다.
어려운 말이었다.
“얘들아. 사실 오늘 부른 거는…….”
진지하게,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
정혜연은 내 눈을 평소보다도 결연하고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 괜찮아. 말 안 해도 돼.”
“…….”
정혜연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승현이도. 이번 승강전을 겪으면서 많이 생각했어.”
겉으론 담담한 듯했으나, 모아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재능도 없고, 나이도 찼어. 단지 그뿐이야. 그리고 특히…… 이 팀에서 함께 지내면서 우리가 방해가 되었다는 것도 알아. 여태까지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웠어, 창현아.”
“네 덕분에…… 좋은 꿈을 꿨어.”
‘……알고 있었나.’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손에 계약서를 쥐고 있어서? 아니면 부진한 둘만 부른 것을 보고 눈치를 챈 것일까?
그건 아마 지금도, 앞으로도 정확히 알 수 없으리라.
분명한 건, 지금 중요한 것이 그런 것 따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저 한마디 한마디에서 수많은 고민과 생각. 결단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보고 선뜻 먼저 말을 꺼내 준 배려가 느껴졌으니까.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신승현과 정혜연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연습을 할 때도 손수 몸에 손을 대어 가며 가르친 적이 없었기에 직접 닿아 본 적 없는 손.
처음 맞닿은 팀원에게서 느껴지는 뜨거운 손의 온도감이, 이 감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부는 잘 못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 ‘각성’이라는 것. 그건 전혀 다른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기댈 수 있는 한줄기 빛이었다.
“저, 헌터가 돼 볼래요.”
주변의 걱정 반. 기대 반.
그렇게 시작된 헌터생활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스테이터스가 압도적으로 높지도, 헌터 관련된 조기교육을 받지도, 사기적인 초능력이 있지도 않은 각성자.
그런 각성자들은 3부 리그에 발이 채이도록 많았다.
공부를 못해서였을까. 그중에서도 잘 나가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팀이 PER이었다.
사실 되돌아 보면, 나여서 뽑았다기보다는 단순히 아무 선수나 뽑으려고 했었던 것 같지만.
그래서였을까. 팀은 개판이었다.
“니가 멋대로 돌진해서 그렇잖아!”
“그럼. 거기서 안 싸워서 어쩔 건데? 맞기만 하고 있을 거야?”
헌터스 리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코치와, 팀에 관심이 없는 구단주.
열악한 환경과 재능은 부족하고 꿈만 있는 선수들.
고성이 오가는 이 팀 홈의 분위기는 정말 대단했다.
‘아으……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주.’
어떻게 버텼나 싶다. 그래도 버텼지만.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고. 이걸 그만 두면 뭘 하고 먹고사나 싶었다. 그래서 관두지 않았다.
개판인 분위기에 미래도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돈은 주니까.
무언가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으니까.
3부지만, 헌터라고.
그렇게 개판이던 PER에도 새 시즌은 찾아왔다.
“경기 봤어요. 잘 하시던데요. 삽질 잘 하시던데.”
지금에야 그리운 순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새로 온 놈이 그러니까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안 그래도 개판인 이 팀에 저런 녀석이 더 껴들어 온다고?
한숨만 가득 쉬어졌다. 그래서 팀에서 버티면서 월급루팡이나 되자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고. 그래야겠다고 단념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오고 나서부터 하나 둘,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팀 홈은 여전히 좁았지만, 무언가 체계적으로 헌터스 리그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무엇 하나 장점 없는 무승 팀이었지만, 시즌 전 스크림에서 이길 수 있었다.
우리를 아는 일반인은 여전히 별로 없었지만, 어디서 물어왔는지 새로운 스폰이 생겨났다.
하나 둘. 체계가 잡히고, 헌터스 리그에 대해 알게 되고, 새로운 녀석들이 들어오고. 점점 진짜 팀다운 팀이 되어 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서로 고성을 지르고 무승이었던 팀 PER이 어느덧 1위를 차지하고 승강전을 이겨 2부로 승급하는 팀이 되어 있었다.
‘처음 그 녀석이 들어왔을 때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패배에 찌들어 망망대해에 버려진 채로 보낸 지난 세월이었는데, 여기까지 오고 나니 팀원들은 어느덧 꿈을 꾸고 있었다.
3부의 1위에 안주하지 않은 팀은, 2부에 도전했고.
승급에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팀원끼리 사진을 찍은 것도 이게 처음이네……’
짐을 싸며 감상에 빠져 있던 도중, 액자에 끼워져 있는 사진이 보였다.
얼마 전. 승강전에서 이기고 같이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꿈을 이뤘으니, 다른 꿈을 꾸리라.
2부 승급에서, 2부의 1위로. 1부로. 그리고 더, 더 위로.
지금까지 보아온 이창현이라면 분명 팀을 그렇게 이끌고 나가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 팀에는 내가 없겠지.
조금은 아쉬울지도.
이 잠깐, 한 시즌 동안에 이렇게 많은 걸 느끼고 이뤄 냈는데.
계속 PER에 남아 끝까지 나아가는 팀원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부러웠다.
‘그래도 좋은 추억이었네.’
만약 이창현이 3부에서 스카우트 받은 다른 팀을 갔더라면. 그래서 PER의 구단주 겸 감독 겸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이창현이 그렇게 혼자서 3부에서 활약하고, 2부로 홀로 올라가 버렸다면.
이창현이 기껏 들어간 PER에서 선수들이 재능이 없다고 여기고 유기해 버렸다면.
이런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겠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이창현이 새삼 고마웠다.
“이게 마지막 짐인가.”
아까 보다가 내버려 뒀던 함께 찍은 사진이 든 액자. 그걸 캐리어에 담고서 새롭게 이사 온 팀 홈을 나섰다.
“아쉽네. 막 이렇게 좋은 홈으로 이사 왔는데.”
이사 오자마자 나가다니. 비효율적인 것도 이렇게 비효율적인 게 없다. 나갈 거면 애초에 이사할 때 먼저 말하든가.
그럼. 그랬다면 후회도 덜 했을 텐데.
구질구질한 기억이 깃든 홈에서 헤어지니, 발이 더 가벼웠을 텐데.
헌터스 리그에서 꼴불견 모습만 보이면서 별 존재감 없이 자리만 차지해서 팀에게 민폐만 끼쳤는데, 괜히 얼굴 보면서 인사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짐을 챙긴 대로 바로 나왔다.
‘어차피 창현이에겐 말했으니 크게 상관없겠지…….’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 건물 앞 정원에서 도로로 나가려던 순간.
“헉…… 헉. 언니……!”
“연주야…….”
어떻게 알았는지, 이연주가 따라 나왔다. 숨 차 보이는 것이 급하게 나온 모양이었다.
“왜…… 왜 간다고 인사도 안하고 가요. 이제 마지막이라며요. 헌터 안 한다면서요. 그래도 그대로 관둘 건 아니죠? 나만 내버려두고 혼자 어디가요.”
평소의 이연주답지 않게 말문이 뻥 뚫려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연주는 이창현이 오기 전부터 계속 같은 PER의 팀원이었어서 그런지 꽤나 정이 든 모양이었다.
말없이 연주를 안아 줬다. 할 말은 뻔했다.
“좋은 일자리가 생겨서 헌터스 리그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연주가 언니 없는 만큼 더 열심히 해 줘야 해.”
좋은 일자리는 무슨 개뿔. 이제는 그냥 백수면서.
“언니는 원래부터 경기 하는 거보다 보는 게 좋긴 했어. PER 경기도 계속 챙겨 볼 거니까, 지금처럼 계속 승승장구해야 한다.”
하는 거보다 보는 게 좋긴.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게 뭐가 좋다고.
하여간 마지막이라 그런지, 솔직해질 수가 없다.
‘그래도 뭐…… 마지막에 얼굴 보니까 좋네.’
“언니…… 그래도 시간 나면…… 꼭 여기로 놀러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냐.”
자꾸만 떠나는데 괜스레 헛웃음만 나왔다.
미련이 더 생기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
감독실의 창문 밖으로, PER의 앞마당이 보였다.
정혜연이, 그리고 곧이어 신승현이 나갔다.
어두운 방 안에서, 이창현은 씁쓸하게 두 이름을 읊조렸다.
“신승현, 정혜연…….”
가장 오랫동안 함께 3부에서 팀의 역사를 함께했을 팀원들의 이름을.
앞으로 그들의 삶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