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90화 (90/270)

090. 새로워지는

‘어……?’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순간적으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들고 있는 건 짐이 들어 있는 캐리어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누군가.

그런 사람의 손에 이끌려 꽤나 시설이 괜찮은 숙소로 들어갔다.

‘근데 시설은 다 좋은데 뭐 이리 깜깜하냐.’

넓긴 아주 넓은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컴컴하다. 조명아래 나만 있는 느낌이랄까.

뭐, 훈련시설만 멀쩡하면 상관없긴 하다.

“이제부터 이 방을 쓰면 된다. 궁금한 점 있으면 말 하도록 하고. 독방이라 따로 불편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문이 쾅 닫혔다.

꽤나 넓고 쾌적한 방이었다. 과거 플레이 목록이 담겨, 재생할 수 있는 개인 피드백룸도 있었다.

그제서야 입고 있는 새 유니폼과, 팀명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팀.

‘맞아…… 난 3부 팀에서 2부 팀으로 승급했었지?’

도대체 왜 이제서야 이게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잊어버릴 만한 일도 아닌데.

아무리 ‘만개’를 개방했다 하더라도, 이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승강전에서 2부와의 경기에선 의외로 많이 힘들었어.’

개인의 무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2부로 올라왔으니 새 팀원들은 전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겠지만, 내 목표는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얼마 전 패배했던 2부 승강전의 경기를 피드백룸에 홀로 들어가 복기했다.

홀로 앉아서 무한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나아가는 시간.

이 시간에 다른 누군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고요한 정적 속에서 이전 경기를 돌아보니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쉽사리 보였다.

우선, 경험. 1대1 능력이 뛰어난 건 맞지만 노련한 상대의 움직임에 넘어가는 경우가 꽤나 있었다.

생각하는 법을 길러야겠다. 그리고 또 맵의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각종 맵에 대한 정보를 외우고, 마나장비의 사용법도………….

어느덧 피드백룸을 나오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피드백 룸 바깥은 여전히 컴컴하고 고요한 채, 무엇도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훈련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단지 방 안에 도시락 하나가 놓여있었을 뿐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어쨌든 새 팀에서 첫 날인데, 팀원들이랑 인사라도 했어야 했나.’

뒤늦게 생각이 났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1부로 올라가면 다시 얼굴을 볼 사람도 아니니, 그렇게 정을 주어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경기하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될 텐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결국 내 실력이니까.

그건 3부 경기를 하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이었다.

결국 선수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스스로의 실력 뿐. 사이좋게 지내는 사회성도, 팀워크도 결국은 허울 좋은 말일지도 모른다.

‘나만 봐도 그렇잖아. 그 녀석들은 결국 3부에서 썩는데 나만 올라왔어.’

새삼스럽게 함께 3부에서 활약했던 팀원들의 면면이 생각났다.

좋은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인 녀석들이지. 이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만개‘라는 좋은 스킬을 가지고 개방했다고 한들, 나도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

그러니, 고개를 돌리지 말고 앞만 보는 게 좋으리라.

이 날 밤도 역시 새벽을 혼자서 훈련하는 시간으로 오롯이 지새웠다.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으니까.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방 안.

그렇게 다시 훈련을 계속하려던 도중이었다.

‘……! ……!!!’

뭐지? 무언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밖에서 날 부르는 건가? 이 새벽에?

하여간, 훈련을 하는 선수를 방해하다니. 아무리 새 팀의 초면인 선수라고 하더라도 좋은 얼굴로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엄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연 순간.

화악!

갑작스레 엄청난 빛이 새어 들어왔다.

‘…….’

“야. 이창현! 언제까지 잘 거야!”

눈 앞이 뿌얘서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눈을 비비고 난 후에서야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한지수……?’

한지수가 누구였지? 난 방금까지 새로 옮긴 2부 팀에서 혼자 훈련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복잡하게 기억이 뒤섞였다.

언젠가 3부에서 승급전에 실패했던 일. 그리고 승급에 성공했던 일. 새롭게 삶이 변했던 일. 그리고 어제의 파티까지.

모두 기억이 되살아났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3부에서 2부로, 콜업되어 막 새로운 팀에 들어간 것도, 만개를 개방하고 막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구나…… 예전 꿈이었구나.’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아. 잠이 덜 깨서 그만. 늦겠다. 나가자.”

이번엔 진짜로, 한지수와 함께 방 문을 열었다.

***

평범한 아파트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PER의 홈의 거실엔 꽤나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PER의 모든 팀원. 그리고 나와 코치까지. 모두 분주한 모습이었다.

“웬일로 네가 늦잠을 다 자냐. 오늘 이사하는 거 잊은 건 아니지?”

“투자 많이 받았다면서. 내 방 인테리어 따로 요청 가능??”

“꿈 깨.”

왁자지껄하고 꽉 찬 거실에 들어오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간밤에 꾼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랬던 걸까.

오래 머물렀기에 짐을 산더미처럼 많아 보이는 이길한.

반대로 들어온 지 겨우 한 시즌에 많이 쌓아 두는 걸 싫어하는지 겨우 캐리어 하나만 챙긴 한지수.

옷 챙긴 거만 보면 의상가게를 차려도 될 것 같은 김도준 등……

다들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떠나는 게 벌써 오늘이었나……

레만의 투자를 받은 이후로, 조금 더 전문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팀 홈을 이사하기로 했었긴 했는데……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빨랐다.

‘이제 금방 팀 매니저랑 코치도 같이 알아봐준다고 했었으니.’

이제 이 팀도 조금 더 전보다 멋진 모습으로 변하리라.

자연스레 그 생각에 이종규 코치에게 눈이 갔다.

“왜? 왜…… 창현아 뭐 할 말…… 있니? 혹시 나도 막 갈아치워 버리고 싶다던가 그런 거 아니지? 우리 정이 있는데.”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니 너 왠지 보는 눈이 싸늘해서 그랬지.”

경기보는 눈은 없으면서 눈치는 더럽게 빠르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솔직히 계속 있어 주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다.

어차피 지금도 경기 내적으로는 크게 도움 주는 건 없어도 외적으로 이것저것 하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저번 파티 진짜 재밌었지. 캬. 이게 2부의 맛인가?”

“그런 건 질색이야. 술 먹으면 어지럽고 토 나오기만 하는데 그게 뭐가 좋아.”

파티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던 한지수가 이길한의 말에 일갈했다.

“그래도 안 와서 좀 아쉽네. 네가 와서 봤어야 했는데. 연주가 술 마시고 창현이한테 막……!”

“막…….”

한지수가 답지 않게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 말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보다 못한 이연주가 이길한의 발을 세차게 밟아 버린 것이었다.

“악!”

그후로 이길한이 다시 파티 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창현아. 너 비즈니스 때문에 잠깐 자리 비웠을 때 무슨일 있었는지 아냐?”

“어? 나 자리 비웠을 때 뭔 일 있었어?”

윤한결이 뭔가 웃음을 참듯 말하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데 고 새에 뭔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김도준이 기어코 시상식 끝나고 다시 술 퍼 마시더니 지나가는 다른 여자 분한테 찝쩍대다가 대차게 망신당했잖아.”

“뭐?”

테이블에 같이 있었을 땐 술 마시면 자존감이 나락을 가던데, 뭔 바람이 불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김도준이 에둘러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웃는 소리에 변명이 묻히고 말았다.

별로 중요한건 아니니까. 크게 신경쓸 필요 없겠지.

아무래도 최근에 파티도 있었고, 시즌도 끝났다 보니까 팀원들이 대체적으로 가볍고 밝은 분위기였다.

홈도 바뀌고, 코치도 새로 올 테고. 어쩌면 밑밥을 뿌려 뒀던 류재준이나 조연화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창현아. 밖에 차 왔다. 이제 개인 짐만 가지고 나가자.”

“네. 애들아. 가자.”

***

필요한 가구나 시설들의 경우엔 다 새로 설치되어 있거나, 구비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큰 규모의 이동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어떤 곳이려나…….’

해외에서 꽤 알아주는 부자라고 했으니 기대를 해 보아도 좋을 듯싶었다.

물론 시설도 시설이지만, 역시 가장 좋은 점은 대도시에 있어 교통이 더 편리해진다는 점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차 안에서 기대감을 품고, 잠깐 졸았을까?

차가 어느덧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와…… 이제 여기를 전부 저희 팀이 쓰는 거예요?”

“나는 올 때부터 이 정돈 생각했는데? 내가 다른 팀도 마다하고 왔는데, 이 정도 시설은 되어야지.”

“시설이 좀 다른 것보다 좀 좋아 보이긴 하네.”

지상 6층으로 되어 있는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이었다.

온갖 직육면체 형태를 꼬아서 예술적으로 배치한 형태의, 경제성은 좀 떨어져 보이는 그런 건물.

‘공간 효율성이 좀 떨어져도 멋지긴 하네.’

단순히 직사각형으로 길게 뻗은 빌딩이 아니라, 길게 튀어나와 있는 곳도. 뒤틀려 있는 곳도 보였다.

이연주는 훤히 뚫려 있는 1층의 통유리를 보고 감탄했는지, 어느 샌가 혼자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

편한 복장을 한 인상이 좋은 성인 남자였다.

“아, 도착하셨군요. 인사드리겠습니다. 시설관리를 맡은 김성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팀 PER의 구단주 겸 감독 이창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건물이 넓다보니, 따로 사람을 고용한 듯싶었다.

“아 그리고 이건 레만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침 좋은 매물이 있어 빠르게 매입했다. 이 편이 네게도 좋겠지. 싼 매물이 아닌 만큼, 투자에 대한 성과는 확실해야 할 것이다.

건물에 PER이라는 팀명이 안 붙어 있지? 그건 팀에 대한 투자가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네 팀의 자질을 증명하길 바란다.]

이 영감탱이, 이근택 회장님 때문에 투자해 준 거면서 겁주긴.

곧이어 시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층은 카페테리아 겸 식당입니다. 오늘은 아직 없지만, 다음 주 부터는 이모님도 출근하실 거구요.”

“여기 있는 건 마음대로 집어 먹어도 되는 거예요?”

하는 설명은 제대로 안 듣고 이곳저곳 둘러보던 김도준이 과자와 음료수가 가득 찬 스낵바에 가 있었다.

“물론이죠.”

그 말에 김도준은 벌써부터 기분이 좋은지, 뭘 꺼내서 벌써부터 집어먹고 있었다.

에휴. 애도 아니고…… 아니, 애 맞나?

“2층은 헌터스 리그 선수 여러분들을 위한 ‘가상현실 연습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설 옵션을 들어보시면 아마 놀라실 텐데, 무려 1부부터 적용되는 고통 옵션 같은 것까지도 모두 가능합니다.”

“좋네요.”

말은 1부 택도 없다고 해 놓고서, 해 줄 건 다 해 준 모양이었다.

안 해도 비싼데, 저 옵션 유무 하나로 가격의 자릿수가 달라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통 하나는 큰 양반이다.

그렇게 연습공간을 잠시 구경한 후,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온갖 유리로 된 진열장과, 단상만이 있는 층이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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