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2부 선수와 회귀자
시간이 갈수록 스켈레톤 나이트의 공격은 거세졌다.
이제 내 움직임에 익숙해졌다는 듯, 예측하여 공격을 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까진 괜찮긴 하지만…….’
에어앵커와 에어비트의 사용빈도가 늘어났고, 사용하는 마나도 늘어났기에 허락된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내야 했다.
바로 머리 위로 스켈레톤 나이트의 검이 스쳐지나가는 가운데에서도.
공중제비를 돌며 회피기동을 하는 순간에도.
생각을 멈추면 그 순간 끝이니까.
‘지금껏 방어력이 너무 높은 적을 어떻게 상대했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회귀 후 바로 만났던 김도준에게 보여 줬던 ‘탱커클론’ 격파.
결을 따라 약점을 부순다. 기각한다.
저 녀석의 뼈에는 별다른 결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단단한 녀석 그 자신의 몸으로 부수기?
저 녀석은 그럴 만큼 멍청하지 않다.
고유 진동수를 맞춰서 공진을 일으킨다?
그 진동수는 어떻게 알아내고 흉내 낼 건데.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생각이 찰나에 스쳐지나갔다.
뼈를 무르게 만들기? 그런 화학 약품을 가지고 시작했을 리가 없잖아.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드릴을 만들어 부수기? 아니야. 드릴도 결국 그 드릴 끝이 저 녀석보다 단단해야 한다.
뜨겁게 만든 후 다시 급냉동을 시키는 건? 발상은 좋은데 내가 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저 녀석이 실제 사람 같은 뼈를 가지고 있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텐데…….’
그랬다면 연골을 공략한다던지, 뼈 사이의 취약점을 공략해서 토막 낼 수 있을지도 몰랐으리라.
대부분의 중립 몬스터는 살아 있는 생물이었고, 그런 생물들은 어떻게든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지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당연히 연골 따윈 없었다.
……?
그 순간 뭔가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연골도, 근육도 없다.
근데 저 녀석은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지?
‘그게 정답이었구나.’
언데드 몬스터를 너무 오랜만에 봤기 때문에 바로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너무 당연한 이 사실을 왜 이제서야 알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는데.
행동방향을 잡은 이상 어려울 건 없다.
에어앵커를 이용한 회피기동을 멈추고, 동굴의 천장에 가까워 질 정도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 후 마나봄버를 장착한 탄을 이용해 동굴의 천장을 때려 부쉈다.
타타타탕!
[꿰뚫는 눈]으로 쉽고 많이 무너뜨릴 수 있는 지점이 비춰졌기에, 바닥에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가득 쌓이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돌덩어리들로 운신이 굼떠진 스켈레톤 나이트의 척추에, 순간적으로 달라붙었다.
인체의 구동 범위 특성상, 쉽사리 공격이 닿지 않는 사각.
물론 무언가 방어 수단이 있을 수 있으므로, 오래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으리라.
‘연골도, 근육도 없는 녀석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 그야 마나가 이 거대한 녀석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말은 달리하면, 그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면, 척추를 끊어 두 덩어리로 나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근육, 신경을 대신하는 마나의 통로가 느껴졌다. 뼈에 비하면 훨씬 얇고, 수가 셀 수 없이 많은 마나의 가닥들이.
[마법공학 무기변환] 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서늘하게 빛났다.
이 쓸데없이 단단하기만 한 녀석을 두 동강 내어 버릴 시간이었다.
‘이걸로 완전히 죽지는 않겠지만, 무력화시킨 후 천천히 죽일 방법일 생각해 볼까.’
***
“그건 그렇고, 얼마 전까지 3부였다곤 믿을 수 없는 공중기동 능력이네요.”
“그치? 나도 쟤 처음 에어앵커 쓸 때 보고 놀랐다니까. 써 본 적도 없을 텐데 한 몸처럼 쓰는 거 보고.”
공중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창현을 보고, 강준혁과 이민석이 칭찬을 쏟아 냈다.
‘에어 앵커를 저렇게까지 잘 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거의 예술에 가까운 경지였기에 강준혁으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다른 경기를 봤을 때도 꽤 괜찮았지만, 빌딩만 한 몸채를 가지고도 어마무시한 속도로 움직이는 스켈레톤 나이트가 상대였기에 그 실력이 더욱 잘 드러났으니까.
“그래도 이제 난사는 안 하는 것 같네요. 언제까지 하나 싶었는데.”
“뭐…… 그것도 아무런 의미 없이 하진 않았을 거야. 생각보다 영리한 녀석이라.”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레 회피기동을 멈추더니 이창현은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연이은 동작은 바로 천장을 어느 정도 무너뜨리기 위한 총질이었다.
“무너뜨리려는 걸까요?”
“음…… 글쎄.”
그 행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이민석과 강준혁뿐만이 아니었다.
“저거 저러다가 무너지면 쟤도 죽는 거 아니야? 무너뜨려서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알겠는데…….”
“게다가 무너뜨려도 저 스켈레톤은 안 죽을걸? 저렇게 단단한데 뭐 돌덩이 좀 떨어진다고 뭐가 되겠어?”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예상과는 약간 다르게 진행되었다.
“어……? 저렇게 부쉈는데 안 무너지네?”
“동굴을 아예 무너뜨리려던 게 아닌가?”
동굴 천장의 꽤 많은 돌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천장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대신 스켈레톤 나이트가 서 있는 바닥에 거대한 암석들이 가득 찼을 뿐.
“저런 방식으로 발을 묶는다니. 어떻게 보면 아이디어가 좋지만, 무너진다는 위험부담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네요. 이번엔 성공했지만.”
“원래 쟨 저런 식으로 하는 게 많더라.”
이민석이 웃었다.
자칫하면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는, 그런 플레이.
이창현의 플레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바닥의 거대한 암석덩어리들로 인해 운신이 어려워진 보스의 척추쪽으로 파고든 것이었다.
빠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운신을 제한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척추…… 척추라. 선택 자체는 좋네요.”
“몸의 중심이니까. 그런데, 아까 부술 수 없는 강도라는 건 전체적으로 확인했을 텐데, 생각해 둔 부분이 따로 있는 건가?”
그 답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창현이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무기를 단검으로 변환시키더니, 척추 사이의 허공을 가른 것이었다.
“뭐 하는 거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짓말처럼 스켈레톤 나이트가 이창현이 가른 구간을 중심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둘은 알 수 있었다.
“아…… 그렇네.”
“스켈레톤 나이트라는 게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다 보니,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었네요.”
평범한 크기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죽일 때는 그냥 단순히 머리를 격파해 버리면 된다. 그 외에도 다른 언데드를 죽일 때에도 그렇다.
그렇기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상대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기본기지.’
사냥의 기본기. 상대방을 관찰하고, 급소를. 약점을 알아낸다.
모든 중립 몬스터의 약점과 공략법을 기억할 순 없다.
어느 순간, 한번 쯤은 반드시 그걸 직접 관찰해서 알아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잘려 두동강 나 버린 스켈레톤 나이트는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지만, 사실상 무력화되어 버렸다.
‘그럼 2부 그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나 볼까…….’
이창현에게서 2부 선수로 화면이 돌아갔다.
“엉망이네요.”
“그치…… 근데 저게 보통이긴 해.”
애초에 최대한 도망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었던 만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야 마나장비를 이용해서 멋들어지게 피할 수 있었지만, 마나는 소모자원인 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꽤나 필사적으로 피하고 막았는지, 무기도 옷도 너덜너덜했다.
똑같은 시작이었고 조건이었다. 둘 다 물리력이 부족해 잡기 어려운 상황.
그런게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한 쪽은 이미 다 잡아 놓고,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쫓기다 못해 마무리 당하는 입장이었다.
뿌득.
이걸 지켜보던 한지후는 이를 갈았다. 멍청한 녀석. 저런 거 하나 캐치하지 못해서 지레 포기하고 추한 모습이나 보이고.
나가지 않는 것만 못했다.
“이근택 회장님이 고르셨다더니, 뭐. 좀 하긴 하네.”
“애초에 3부에 있을 애가 아니긴 했네. 뭐. 느낌만 보면 경력직 신입이랄까.”
결과적으론 이창현만 띄워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
경기가 끝난 후. 두 사람이 나온 후 결과 창이 집계되었다.
랜덤 타임어택 모드
[이창현 : 8분 14초]
[김주한 : 실패]
경기 전, 그리고 파티 당시의 분위기랑은 달라져 있었다.
“그럭저럭 꽤 하네. 강준혁이 얘기할 정도까지인 지는 솔직히 모르겠는데. 잘부탁한다.”
먼저 악수를 걸어오는 선수가 있을 정도.
“직접 맞붙으시면 아실수도 있는데.”
“하하. 진짜 투쟁심이 넘치는 친구네. 난 오늘 땀 낼 생각이 없어서. 아, 그리고 그런 얘기는 나중에 1부 올라와서나 하라고. 하핫“
뭐, 아직 완전히 인정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1부나 국제리그에서 나오는 중립 몬스터는 저런 것보다도 훨씬 굉장한 것들이 많으니까 저런 것쯤이야 나도 ㅡ. 하는 거겠지.
아무래도 좋다.
대신 진 쪽은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으니까.
“큰소리치고 나가더니 꼴불견으로 그게 뭐냐.”
“미안…… 지후야.”
“하.”
2부 쪽 선수들은 1부 선수들과 달리 분위기가 정말 별로였다.
큰소리 쳤다가 대놓고 신인에게 깨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정도의 결과만 되어도 괜찮았다.
“덕분에 망신은 안 당했다 야.”
앞에 서서 보고 있던 강준혁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시상식에서 나를 띄워 줬던 만큼 내가 잘했어야 했겠지.
근데 이 사람, 의도야 알겠는데 사실상 오늘 처음 만났는데 왜 이렇게 친한척하지.
“맞아. 아까 시상식 때 말하는 거 보고 느낀 건데, 아는 사이였나 봐? 꽤 친해 보이던데.”
이민석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냥 뭐 친한 형 동생 정도죠.”
“아닌데요.”
내가 즉답했다.
그 말에 이민석은 어이가 없었는지 웃어 버렸다.
“그래그래. 다 좋다. 근데, 그건 그렇고 창현이는 오늘 신경 쓸 것 좀 많겠다?”
“이제 파티도 다 끝났는데요?”
강준혁이 이민석의 말에 반문했다.
“파티? 하하. 얜 파티보다 이제 2부가 시작이지.”
이민석이 말하는 2부란, 더 헌터스 데이, 비즈니스 세션이었다. 파티가 열리고 시상식, 친목이 주였던 1부와 달리 감독 코치진, 구단주, 스폰서들이 메인인 행사였다.
“네 그렇죠.”
팀원들도 더 늘리고, 코치 충원, 팀 시설교체 등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이 파티에 참가한 가장 주된 이유이기도 했고.
그리고 어쩌면 가장 피곤한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 다 선수랑 달리 능구렁이들밖에 없을 텐데. 피곤하면 다른 사람 만나지 말고, 이 사람이나 한번 만나 봐.”
이민석이 명함을 하나 건넸다.
[Lehman]
‘레만…….’
“이게 누군데요?”
“이제 이근택 회장님 네임벨류도 있는데. 이상한 곳에서 눈치 싸움하는 거보다, 크게 한 건 무는 게 낫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