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쓰러뜨릴 수 없는 적
중립몬스터.
유물 흭득이나, 난전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맵에서 위협적으로 나타나는 몬스터.
말이 몬스터이지, 사실은 괴물 같은 형태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 중립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제일 중요한 점이 뭔가 하면, 바로 기본적으로 그 몬스터에 대한 정보.
상대의 검술을 잘 알면 쉽게 파훼할 수 있듯이, 많은 보스의 정보를 알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이제 막 2부에 올라온 녀석이 보스에 대한 걸 많이 알 리가 없지.’
설령 나온 보스가 아는 보스이더라도, 그 공략법을 직접 실행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까짓 게 감히 우리 팀 에이스인 지후를 제치고 신인상을 타?’
2부에서 거의 매 판마다 1대 2를 하며 슈퍼플레이를 보여 준 지후가 신인상을 못 탄걸 보면 아무래도 뒷배가 든든한 모양이었다.
이근택 회장이 싸고 도는 것도 그렇고.
지금이 기회였다. 저 형편없는 녀석의 민낯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
우리나라 헌터의 얼굴마담격인 이근택의 명성에 흠이 나겠지만, 뭐 어쩌겠어.
저런 놈팡이한테 유물을 넘겨 자신을 계승시키겠다는 허황된 꿈을 꾼 노망난 늙은이의 잘못이 아닐까?
“시작하자. 몬스터를 고르는 건 한쪽이 유리할 수도 있으니까 랜덤으로. 상관없지?”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 말을 하면서 녀석이 웃었다. 재수 없는 녀석.
신인상 받을 때 강준혁 선수한테 말대꾸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녀석이었다.
[타입 : 중립 몬스터 대응 훈련, 랜덤. 시작합니다.]
기계 앞 많은 헌터 관중을 두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다소 어두운, 하지만 아주 넓은 동굴.
‘무슨 몬스터지?’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샘솟았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벽에 있던 횃불들이 하나씩 켜졌다.
마치 게임 속에서 아주 강력한 보스전을 진행하는 것처럼.
거기서 직감할 수 있었다. 일단, 지금껏 겪어 본 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연출의 던전이라면 유명해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다 켜진 횃불의 빛이 어둡고 광활한 동굴을 밝게 비추자, 그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후두둑.
바닥을 뚫고, 무언가 거대한 뼈 같은 것이 올라왔다.
인간의 거대한 뼈 형상을 한 것이. 땅 속에서, 두 팔을 먼저 꺼내 몸을 끄집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몸이 전부 드러났다.
‘아니…… 이런 게…….’
스켈레톤은 흔하다. 망토를 두른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크기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존재한다고?
마치 빌딩 하나의 크기는 될 법한 압도적 크기를 자랑하는 스켈레톤 나이트였다.
***
한편 바깥에서는 한참 경기장에서 등장한 이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오…… 스켈레톤 나이트. 근데 저렇게 큰 건 또 처음 보네. 선배님은 본 적 있으신가요?”
“내가 습관적으로 보는 게, 중립몬스터 도감인데 저런 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보통 스켈레톤 나이트는 저런 보스몹 같은 느낌보다는 그냥 평범한 사람 사이즈의 쫄로 나오니까.”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구경중인 헌터들에게서 술렁임이 느껴졌다.
“그러면 이번에 랜덤으로 돌려서 미확인 중립 몬스터가 나왔다는 거 아냐?”
“미확인 중립 몬스터가 진짜 기본기 싸움이긴 해. 공략 같은 거 둘 다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거니까.”
“근데 크기가 커도 어차피 스켈레톤 나이트면 X밥 아닌가?”
지금껏 공식 경기에서 등장한 적 없는 중립몬스터. 그걸 세간에선 ‘미확인 몬스터‘라고 불렀다.
물론 정확한 표현은 아니긴 했다. 말로나 미확인 몬스터지, 이미 직접 현장인 탑에서 1세대 헌터들이 맞서 싸웠던 몬스터들이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탑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인 헌터스 리그 경기를 뛰는 선수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건 맞긴 했다.
이미 자주 등장하는 몬스터만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저런 것까지 어떻게 파악하고 공부하겠는가.
그래서였을까? 이창현에게 자신만만하게 대결을 요청한 2부 리그 선수의 전투는 그리 잘 풀리는 듯 보이지 않았다.
“오. 일단 달려드나?”
“뭐, 근접딜러니까 당연한 선택이긴 해.”
에어앵커를 이용해 스켈레톤 나이트가 휘두르는 거대한 검을 공중곡예를 하며 피해냈다.
그 후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다시금 여러 개의 에어앵커를 옮겨 다니며 시계추처럼 오르내리며 순식간에 스켈레톤 나이트의 머리 위치까지 날아갔다.
캉!!
강렬한 빛이 쏘아지며 스켈레톤 나이트의 머리뼈에 검이 부딪혔다.
마나로 강화한 것에 추가로 어떤 스킬이 작용했는지 그 파동의 울림이 눈에 보일 듯 했다.
하지만.
“와…… 저거 좀 세보였는데, 머리 뼈가 여전히 완전 멀쩡한데?”
“킥킥. 저 녀석 고생 좀 하겠다.”
“저걸로 안 되면 다른 공략방법 찾아야할 것 같은데.”
“근데 다른 뼈들도 다 비슷한 강도면 망한 거 아냐 그냥?”
그 거대한 뼈에는 작은 흠집도 없는 채였다. 그렇기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생각보다 강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민석 선배님이라면 어떻게 공략 하실 건가요?”
“음…… 검이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상대라. 쉽진 않지만, 알잖아 내 방식?”
“그렇네요. 선배였으면 능력으로 손쉽게 잡았을 것 같긴 해요.
뭐, 저도 그렇고…… 저런 건 결국 저 방어력을 쉽게 뚫을 수 있는 스킬이 있어야 잡는 거니까.”
강준혁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민석도 그의 말에 공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공격력이 그리 충분해 보이진 않는데…… 그럼 결국 버티기 싸움이네요. 누가 더 저 스켈레톤 나이트한테 오래 살아남느냐.”
“그러게. 좀 시원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그렇게 2부 선수가 단단하고 아주 거대한 스켈레톤 나이트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와……쟤는 버틸 생각이 아닌가 본데? 저거 총 쏘는 것도 다 마나 쓰는 걸 텐데. 흠집도 안 나는데 계속 난사하네.”
“…….”
그 말에 이민석이 고개를 돌려보니, 사실이었다.
‘영리한 녀석인데 왜 저러는 거지…….”
혹시 저걸로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
그러기엔 녀석의 마나 총탄에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함이 더 커질 뿐이었다.
***
헌터스 리그는 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부와 2부가 다른 것처럼, 2부와 1부도. 1부와 국제리그도 룰이나 무대, 경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차이가 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무대가 커질수록, 헌터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양하고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3부에서는 한타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지만, 2부 이상의 리그에선 ‘중립 몬스터’에 어느 정도 잘 대처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건 그렇고 미확인 중립 몬스터가 나올 줄이야…….’
재미있게도 회귀 전에도 상대해 본 적 없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즉, 상대와 순수하게 ‘기본기’를 겨룬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기는 ‘사냥’에 대한 것이랄까.
중립몬스터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기에,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각 몬스터를 체계를 나눠 분류하고, 그 분류에 따라 대체적으로 어떤 약점을 가지는지. 어떻게 공략하는 방향성을 잡아야 하는지.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그야말로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었다.
‘그리고 그 기본은 관찰이지.’
우선은 중립몬스터가 어떤 행동방식을 가지는지, 어떤 분류이고, 어떤 약점을 가질지 관찰해야 했다.
‘일단 보스급 몬스터라 특수 패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그 외에, 기본적인 행동양식. 스켈레톤 나이트가 휘두르는 검은 빠르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수월하게 피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마나가 떨어지면 피하는 게 급격히 어려워지리라.
에어앵커와 에어비트가 기동성에 날개를 달아주지만, 마나장비인 만큼 마나소모를 생각해야 했다.
‘좋아. 몬스터의 기본적인 공격을 파악하는 건 이 정도로 됐고. 그럼 한 번 때려나 볼까?’
일반적인 크기의 스켈레톤 나이트의 급소는 머리. 머리뼈가 부서지면 다른 부분이 멀쩡해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점을 생각하며, 마나 봄버를 탄창에 끼워 넣었다.
‘이걸로 한 방에 가면 좋을 텐데…….’
솔직히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마나실드를 펼친 사람에게 쏘는 거랑 완전히 다른 문제였기에 결과를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탕! 타탕!
콰콰쾅!
마나봄버를 넣었던 만큼 강렬한 충격이 공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하지만 먼지 구름이 걷히고 스켈레톤 나이트의 모습이 드러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흠집도 안 났네…….’
쉽지 않네 저거.
사실상 준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력이 마나봄버인데, 그걸로 뚫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네.
……라고 생각하겠지.
‘일반적으로는’
어쩌면 상대방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오래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회귀 전의 경험을 떠올리면 이보다 더한 경우가 없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큰 문제를 작게 쪼개는 것.
그게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지금 처한 문제가 무엇인가. 스켈레톤 나이트의 급소인 머리가 너무 단단해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
여기서 할 수 있는 생각은 첫째.
‘작은 스켈레톤 나이트는 급소가 머리가 맞지만, 과연 이런 빌딩만 하고, 특별히 단단한 이 녀석의 급소도 머리가 맞는가?’
형태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대입시키려고 했었던 건 아닌지.
그 생각과 동시에 혹시 다른 곳에 약점이 있는 건 아닐까, 스켈레톤 나이트의 다양한 부위에 총을 난사했다. 팔, 어깨, 갈비뼈, 다리, 발 등등……
아쉽게도 정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뼈는 다 강도가 저 모양이라 이거지?’
아니면 순전히 뼈의 강도가 높을 뿐, 여전히 급소는 머리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
전에 만났던 미나미노 타쿠미였다면 참 쉬웠을 선택지리라.
[꿰뚫는 눈]으로 보아도 별달리 보이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그 단단한 것끼리 부딪히게 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며 스켈레톤 나이트 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당연하게도 녀석은 긴 장검을 내버려 두고, 손으로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지.’
단련된 코어와 하체. 누구보다도 숙련된 에어앵커 기동능력은 이렇게 느려터진 녀석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그 녀석의 품속을 헤집었지만, 역시 자신의 몸에 주먹질을 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좀 격하게 팔이라도 휘두르다가 녀석의 몸이 서로 부딪히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것조차도 않는다 이거지?’
수준이 높은 몬스터일수록 지능도 높았기에, 이상한 현상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녀석도 자기가 자기 몸을 강하게 때리지 않는 이상, 단단한 뼈를 뚫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차오르는 감정은 즐거움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 하지만 복기해 보면 항상 답은 존재했으니까.
‘반드시 찾아낸다.’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