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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85화 (85/270)

085. 변화

어느 샌가 분위기가 굳어졌다.

수상자 발표 후, 빈약한 박수가 끝나고 잠시간 적막감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도, 관중 헌터의 수근거림에 내가 앞으로 나서려 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다들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으로 나서려는 내게 손짓하고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강준혁……?’

방금 막 한국 헌터스 리그 올해의 MVP로 선정되어 상을 받은 강준혁이었다.

신경 쓰지 마라는 듯 내게 눈짓하고는, 되레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창현이. 경기 재미있게 봤다.”

강준혁이 씨익 웃었다.

안면 한 번 튼 적 없는 사이이면서도, 마치 오랜 기간 형 동생으로 지낸 것처럼 친근한 태도였다.

그 순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신인상에 뽑힌 것에 대해 불평을 쏟아 내던 소리가 잦아든 것이었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건, 약간의 의아함과 놀라움의 기류였다.

“1부에서 1황을 달리고 있는 강준혁이 3부 리그를 봤다고? 대체 뭐가 좋아서? 3부는 볼 것도 없는데.”

“속 빈 강정이라더니…… 뭐가 있나 본데?”

“이번에 승강전도 이긴 게 요행은 아니었겠지…… 최근에 승강전으로 올라간 팀 없다던데.”

현재 한국 헌터스 리그에서 강준혁이 차지하는 네임벨류는 1부의 황제 그 자체.

그가 한 마디 한 것만으로도 시끄럽던 여론이 긍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특히 떠들었던 녀석들이 주로 2부인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강준혁의 말은 법이나 다름없으리라.

분위기가 바뀔 수밖에.

그렇게 분위기가 잦아든 것도 잠시. 강준혁은 센스 있게도 사회자에게서 신인상 상패와 금일봉을 자연스레 옮겨 받더니, 나에게 건네주기 위해 다가왔다.

“기대하고 있다. 이창현. 앞으로도 더욱 성장해서 한국 헌터스 리그를 빛내 주길 바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악수를 건넸다. 갑자기 커버를 쳐 준 이유는 모르겠다.

‘1부 톱급 선수가 3부 경기를 봤을 리는 없는데…….’

회귀 전의 경험으로 돌아보면 그랬다. 나는 아래 리그의 경기를 짤막한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저런 말을 한 저의가 뭘까.

그렇게 의중을 모른 채로 상을 주기 위해 강준혁이 코 앞에 다가온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2부의 녀석들이 질시하고 업신여겼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그래, 그건 잠시나마 흠칫할 정도로 방금 분위기와는 이질적이었다.

고요하지만 분명 투지의 뜨거운 불꽃을 담고 있는 눈.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강준혁이 다가와 금일봉과 신인상 상패를 넘겨주며 가까이에서 지나가듯 속삭였다.

“네가 3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헌터라도, 지근거리가 아니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

‘재미있게도 뭘 봤는지는 모르겠어도 본 모양이네.’

웃음이 나왔다.

그냥 젠틀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겉만 그렇고 속이 활활 불타오르다 못해 불을 지르지 못해 안달인 녀석이었나.

이런 녀석. 싫진 않다.

제 수준도 모르고 낮잡아보는 녀석, 대중 속에 섞여 찌질하게 궁시렁거리는 녀석들이랑은 확연히 다른 녀석인 건 확실하니까.

1부에서 가장 핫한 선수인 만큼, 어느 정도 보이는 거겠지.

‘재미있는 녀석이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화답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리라.

“왜? 당신 살아 있을 동안, 나랑 리그 할 일 없을 것 같아? 1년만 기다려. 곧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목소리.

신경을 무대 위의 소리에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강준혁과 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음을 눈치챘으리라.

그리고 내가 한 말 정도는 들었겠지.

좌중에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한편, 강준혁은 그 말을 듣고는 신인의 치기로 느꼈는지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한번 지켜보자고. 1부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래, 이제 1년이 지났으니. 다음 1년이 올 것이다.

그리곤 시상대에서 지나쳐 내려가다가 멈칫하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 그건 그렇고, 이근택 회장님의 유물을 신인인 네게서 볼 수 있을 줄이야…… 회장님은 너를 후계자로 낙점하신건가?”

“아아…… 그래서 방금 그렇게 말한 건가?”

“그건 아니다. 실제로 몇 가지를, 내 다음을 이을 선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다만…….”

“다만?”

강준혁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근택 회장님의 유물을, 그것도 헌터관계자들이 다 모이는 이곳에 끼고 올 줄이야…… 그저 조금 놀랐을 뿐이다. 그럼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 보내라.”

‘생각보다 유명한 유물이었나……?’

유물은 착용하고 있는 게 이로워서 끼고 있었던 건데, 생각한 거랑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듯 했다.

어쩌면, 유물 좀 안다하는 헌터들이나, 헌터 관계자들은 지금 모두 내가 이근택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뭐, 근데 그리 중요한 건 아닌가.

하지만, 곧이어 그게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상식의 모든 서순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근택이 단상 위에 올라왔으니까.

***

헌터협회 협회장이자, 1세대 헌터의 지위를 가졌기에 이근택이 단상에 올라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이근택이 더 헌터스 데이 파티에 단상에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꽤나 의외성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이번에 무언가 중대 사항이라도 있나?”

“크게 들은 건 없는데.”

대체적으로 의외의 상황에 웅성거리는 분위기.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근택이 한 손으로 긴 지팡이를 짚은 채,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이근택이 지팡이 가볍게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지팡이를 쥔 손의 가벼운 손짓. 하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쿠웅.

어수선한 분위기 속 본질적으로 물체를 훑고 지나가는 둔중한 마나의 파동. 그 파동에 순식간에 파티 회장이 조용해졌다.

한국 유수의 헌터들이 모인 이곳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하겠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 보였던 기량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여간 저 영감탱이…….’

내가 회귀 전의 기량을 다 되찾는다고 해도 솔직히 지금으로선 그 깊이를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세심한 마나 컨트롤이었다.

그렇게 무게를 잡고 고요를 되찾은 회장 속에서, 이근택의 목소리가 고고히 울려 퍼졌다.

“친애하는 헌터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1세대 헌터로 한국의 헌터스 리그를 발족시키고 지금까지 이어온 이근택이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건 거두절미하고, 한 재능 있는 보석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근택의 서두에 웅성거림이 거세졌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마치, 후계자라도 발표하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껏 다른 1세대 헌터들과 달리 이근택은 다른 이에게 가르침을 준 적은 있어도, 별다른 수제자나 후계자를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런 술렁거림에도 이근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헌터란 무엇인가. 헌터스 리그란 무엇인가. 이제는 희석되어 그 근본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허나, 그 역사를 구구절절 지금 말해서 끄집어내는 것도 옳지 않겠죠.

잊히는 건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기에. 그렇기에 지금까지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하지만, 이 이근택. 그 보석 같은 아이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한 명 한 명의 헌터들이 그때의 역사를 잊고, 때로는 헌터의 정신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의지를 잇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와 동시에 이근택이 이창현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전하는 것. 성장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투쟁하는 것. 그런 모든 것.”

이근택의 손에 마나가 결집되면서 푸른 빛이 발산되었다.

“늙은 저는 그래서 이만, 헌터의 앞날을 이제 이끌어가기보다는 내려놓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손에 결집된 빛은 이창현의 목에 걸린 크라바트. 이근택의 유물로 이어졌고, 이윽고는 이창현을 중심으로 푸른 빛의 파동이 퍼졌다.

“이 자리를 빌어 드리고 싶은 말은, 그것뿐입니다.

이제 미래 세대의 헌터계를, 오로지 그들 자신에게 맡기겠다는 것. 그럼,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근택은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 채 다시 단상을 내려가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당연하게도 그 화제의 대상은 넌지시 유물을 이어받았음이 밝혀진 이창현이었다.

“와…… 생각해 보니 저게 이근택 회장님 유물이었구나.”

“저거 끼고 예전에 꽤 언론에도 노출되셨던 것 같긴 해. 아마 이전 정부에서 1세대 헌터의 공로로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그래서 쟤 잘 봐 달라는 거야 뭐야?”

“유물을 준다는 건…… 일종의 자기 후계자로 보라는 거지 이제.”

물론 그 시끌벅적한 건 이창현이 앉아 있는 테이블도 포함이었다.

“뭐야뭐야? 아니, 너 전부터 이근택 회장님 자주 만나더니 언제 그렇게 결정된 거야?”

이창현한테 들이대는 김도준부터,

“다들 계속 이근택 회장님이랑 자주 만날 때부터 대충 예상하지 않았어?”

이창현 본인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긴 예상했다고 하는 윤한결.

“와…… 확실히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다르구나.”

그저 감탄하고 있는 이길한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일 혼란스러워 보이는 건 이창현의 얼굴이었다.

‘이걸 이렇게?’

유물을 준다는 것의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대충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그런 발표를 한다고?

회귀 전에는 이런 이벤트는 커녕, 이근택과의 인간적인 접점도 거의 없었기에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의 후인이 된다는 것. 그걸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는 것. 처음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주변 팀원은 전체적으로 얼떨떨한 반응이었고, 다른 헌터들에게서 보이는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질투. 질시. 경악. 놀람. 부러움. 등등……

아까 전, 강준혁이 나를 언급한 것으로도 술렁거리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아까와는 격이 다른 동요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인정받는 느낌은 아니었긴 하지만.

“여전히 간간히 내 귀엔 고작 이제 막 2부에 승급한 녀석이 뭐가 좋아서 저렇게 골라 잡으셨데?”

“야, 근데 승급 실패하면 쟤 줄 떨어지고 우리한테도 기회 오는 거 아니냐?”

뭐, 그럴 일은 없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를 인지하고 경계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내 선수로서의 역량을 가늠하려는 듯한 눈짓이 쉽사리 읽혔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암. 이래야지.

지금까지처럼 인터뷰에서 상대방을 대놓고 잘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젠 진부하다.

이미 내 존재를 인정하고 지켜보는 녀석들이 있는 가운데서 그럴 필요도 없고.

단순히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전장.

서서히 회귀 전의 전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의 털이 올올이 곤두서고, 모든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이 감각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각 끝에, 살아난 것은 내 과거의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유물이……?’

[유물 : 묵언의 명령]

목에 착용하고 있던 유물이 아까 이근택의 마나 주입에 영향을 받았는지, 완전히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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