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시상식
“그럼…… 선택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경험으로 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말에 조연화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 사실 나라고 해도 저런 능력이 있다고 하면 경악을 금치 못할 자신이 있다.
딱 봐도 완전 사기능력이잖아.
“미래시…… 같은 걸까?”
“뭐, 거창하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면도 있죠.”
“그럼 그때, 이기어검을 다루던 녀석을 가르치던 것도……!”
뭐야. 윤한결에게 검을 가르쳐 줄 때, 주변에서 보고 있었나?
오히려 좋다.
“맞아요. 제가 이기어검을 쓴다고 가정하고 그려 본 수만 번의 가상 대련 시뮬레이션에서 체화한 비법을 알려 줬어요.”
조연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일종의 사기라고 느낄 수밖에 없을, 그런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한 이상 이걸 토대로 지금까지 들었던 내 정보를 역산하리라.
내가 몸담은 팀 PER의 급성장한 것도. 그 팀원들이 급격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줬던 것도.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나 자신이 강해지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것도.
‘끼워 맞추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겠지.’
각성을 하고 나서 얻는 능력의 종류에 대해선 아직 다 알려진 바가 없다.
각성을 하고 나서도 자기가 가진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런 게 알려졌을 리가.
그렇기에, 오히려 먹히리라 생각했다.
“그런 거였구나…… 그럼 따로 가르쳐 준 분도 없을 테고…… 그래. 내가 멋대로 조금 착각했네.”
조연화는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류재준은 크게 놀란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쪽은 아무렇지도 않나 봐요?”
“그걸 보고 뭔가 강한 리액션이라도 해 줘야 했나?”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류재준은 이런 녀석이었다.
“상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그게 실제 전투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굳이 능력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훈련하는 경우는 이미 많다.
그게 강화되어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로 보진 않아. 그보단 오히려 네가 궁금하군.”
“뭐가요?”
“방금 말한 그런 능력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런 팀을 들어간 건지.”
훅 들어오네.
이걸 설명하려면, 내 회귀의 역사와, 내가 그 끝에서 깨달은 생각.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완전히 팀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선수를 구성하고, 시너지를 맞춰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을 설명해야 하는데…….
정작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이유도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물론, 좋은 팀은 더 많았겠죠. 그런데, 저는 좋은 팀이 아니라 내 팀이 필요했어요.”
“내 팀? 내 팀이라…….”
류재준은 꽤나 고민하는 듯 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듯 보였다.
정적이 길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주제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제 류재준 선수도 2부로 올라오지 않나요?”
“스카우트야 많이 왔지.”
3부에서 2부 팀으로, 2부에서 1부 팀으로. 한 시즌에 한 단계씩 상위리그의 팀으로 옮기는 것.
그게 헌터의 엘리트코스다. 그리고, 능력치도, 초능력도 좋은 류재준에게는 당연히 2부 팀의 영입제의가 왔으리라.
“고민해 본 팀은 있으신가요?”
“다들 매력적인 제안을 해 준다만,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아직 결정을 안 하셨구나. 그러면 나중에 한 번 구경하러 와요.”
“뭘?”
“좋은 팀이 아니라, 내 팀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를.”
그 말과 동시에 류재준에게 새로 판 PER 감독 명함을 내밀었다.
내가 영입제안을 하리라고 생각치는 못했는지, 멀뚱멀뚱 보고만 있자 대신 손에 쥐어줬다.
“아~ 답답하네. 어차피 동갑이니까 말 놓을게. 대충 건너간다고 생각하고 아무 팀이나 가면, 건져가는 거 하나도 없을걸. 그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그래.”
피식 웃는 게,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잠깐 동안이지만 정신을 못 차리던 조연화는 어느 샌가 다시 이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그래서 나랑 처음 만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거야? 지금 성장이 대충 끝났다느니 했던 거.
그것도 그렇고, 그럼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지? 네 능력에 의하면.”
방금 전과 달리 화색이 도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질문이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좋냐.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더 성장하는 미래가 보이느냐. 기타 등등……
물론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기에, 뭉뚱그려서 내가 회귀 전 했던 좋았던 연습방법이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적당히 가공해서 들려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언가 인정하고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호한 구석도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뭐, 팀이 아니니까 너무 자세히 전수해 줄 수 없다는 건 이해해. 그래도 가끔은 어울려줬으면 좋겠네.”
그 말과 동시에 파티 홀 쪽에서 시상식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볼까? 꽤 즐거웠어.”
“심심하면 재준이 손 잡고 저희 팀 홈 놀러 와도 되니까요.”
이제 진짜 파티가 시작될 때였다.
***
되돌아온 파티 회장은 어느 샌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테이블에 사람들도 가득했기에, 진짜 파티분위기가 제대로 난다고 해야 할까.
“으음…… 왔어?”
이연주는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취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 근데, 그거 들었어 창현아?”
“뭐? 나 없을 때 별 일 있었어?”
“이번 시상식에 도준이도 상 받는다더라.”
김도준이? 상을?
받을 만한 상 목록이 있나 회귀 전 기억을 헤집어 봤지만, 도저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올해의 슈퍼플레이 상? 생존 상? 팬 투표 올해의 장면 상?’
회귀 전 받았던 상들을 모조리 떠올려도 없었다.
그래서 의아하던 찰나. 올해의 슈퍼플레이 상이나, MVP 딜러 상 등이 끝나고 김도준의 이름이 호명됐다.
“팀 PER의 김 도 준 선수.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술은 반쯤 깬 상황이었기에, 비틀거리지 않고 꽤나 멀쩡하게 단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윽고, 단상의 스크린에 김도준이 받는 상이 무엇인지 등장했다.
“네. 이번 3부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김도준 선수. ‘올해의 미디어 상‘입니다. 축하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단상의 뒤에서 비춰지고 있는 영상은 바로 그 PER대 RIX전의 하이라이트였다.
그걸 편집해서 일반인이 리액션하는 영상.
빛나는 검에 인비저블 클록을 둘러 입고 상대방을 도륙하는 장면에 웃으면서 물개박수를 치는, 그런 영상이었다.
가장 압권인 건, 아래에 보이는 그 영상의 넛튜브 조회수 [391만]. 크……
“올해의 미디어 상은, 넛튜브에서 가장 높은 하이라이트 영상 조회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3부에서는 사상 최초!입니다.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리며, 상 수여하겠습니다.”
김도준도 이걸로 상을 받을지는 몰랐는지, 꽤나 놀란 눈치였는데, 가관인 건 이 상을 받으면서 마이크에 대고 한 말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아직 술이 완전히 깨지는 않았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감성적인 모습으로 말했다.
“술 한잔…… 마셨습니다. 경기에서 선발이 안 되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김도준 저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경기력이 별로 일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준비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김도준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미친놈이?’
술이 좀 깼나 싶었더니만 올라가서 수상 소감으로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더 사고치기 전에 내가 빠르게 데리고 들어왔지만, 얼굴이 후끈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시상식이 무르익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상 몇 가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올 한 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 한국 선수에게 수상하는 상. [올해의 MVP 상] .
그리고 1부에서 3부까지, 새롭게 데뷔한 선수 중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 선수에게 수상하는 [신인상].
‘MVP상이야 당연히 올해 1부 선수가 가져가겠고…… 어쩌면 신인상은 노려 볼 만할지도?’
뭐 솔직히 상이라는 게 크게 별거는 아니긴 하지만, 주면 좋으니까.
이제 스폰도 더 구해야 할 텐데. 이런 타이틀이 하나 더 있다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MVP 상의 대상자가 호명되었다.
“팀 1부 LTD의 강준혁 선수. 축하드립니다. 올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금일봉과 함께 상패를 수여했지만 큰 감흥은 없어 보였다.
확실히 그리고 그건 소감에서도 드러났다.
“최고의 한국 선수라고 선정되었다고는 하나,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올해 국제전은 일본에도 참패했고, 아직 한국 헌터스 리그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리그의 톱으로서 그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구요.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상패를 건네받았다.
‘꽤나 냉정한걸. 완전 축제 분위기인데 저런 말을 할 줄이야…….’
이건 파티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어가면서라도, 내년엔 분발 좀 하자, 이런 메시지를 이 파티회장 전체에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던 것일까, 진행자는 진땀을 흘리고는 곧이어 다음 수상자인 [신인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신인상 수상자! 발표합니다. 올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 괴물 같은 신인. 팀 PER의 이창현 선수! 축하드립니다!”
그 말과 함께 단상에 있는 스크린에 3부에서 있었던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비춰졌다.
솔직히 반쯤은 예상했다. 그래서 아까도 시상식이 있으니 시작되기 전에 들어온 거기도 했고.
보통 일반적인 선수는 기존 리그랑 새로 데뷔한 리그의 급격한 환경차이에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내가 받을 거라는 건 약간 계산된 부분이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의 반응이 그리 좋진 않았다.
방금 전, MVP 수상과는 달리 박수 소리도 적었고, 오히려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보였으니까.
‘주로 2부 쪽의 반응인가?’
리그별로 테이블 구역이 나뉘어져 있어 파악이 어렵지 않았다.
“아니 이걸 한지후가 못 받네. 이번에 2부 리그 승급되고 나서, 그냥 거의 휩쓸었는데.”
“요새 3부 쪽 신인이 없어서 밀어주는 거겠지.”
“좀 역하네.”
“아니 아무리 신인상이라고 해도 어떻게 3부 애를 주냐.”
“고 수준에서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어휴.”
수근거리는 소리.
뭐, 사실 나 외에도 활약한 사람이 아예 없진 않으리라.
그러니 이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헌터들이 모인 시상식을 하는데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어떻게든 자신의 말에 책임질 자신이 있다는 걸로 봐야겠지.’
그야 헌터들은 각성자라 그런 작은 소리들까지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게다가 지금 나는 단순히 PER의 일개 한 팀원이 아니라, 구단주 겸 감독의 입장까지 맡고 있는 상황.
웃어 넘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망치더라도 그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려고 한 참이었다.
그런데 내 뒤쪽, 무대 위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내가 말하려는 것을 제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