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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81화 (81/270)

081. 계승

이종규 코치가 운전대를 잡아, 얼마 지나지 않아 PER의 홈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평소에 경기를 끝마쳤을 때와 차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얼떨떨했다.

“우리 근데 언제까지 여기에서 사냐? 이제 2부 됐으면 홈도 좀 좋은 곳으로 옮기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번 경기에선 별 활약을 못한 한지수가 툴툴거렸다.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땐 금방 나갈 것처럼 굴더니, 아예 눌러앉다 못해 이젠 저런 것까지 훈수 두고 있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언제까지나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긴 하다.

“2부에서 새로운 스폰서를 구해 봐야지. 앞으론 팀원도 더 늘 테고, 다른 시설도 더 많이 필요할 테니까.”

아무래도 시즌 오프기간일 때 꽤나 바쁠 듯싶었다.

“뭐, 2부 정도야. 다들 원래 예상했잖아?”

“창현이랑 같은 팀 올 때 당연한 예정이긴 했어.”

김도준이나 윤한결도 말은 저렇게 해도 기분은 무척 좋아 보였다.

반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기존 PER의 팀원이었던 나머지 팀원들.

그중 이연주가 유독 걱정이 많아 보였다.

“……근데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경기해야 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느껴졌다.

‘하긴…… 이번 경기는 특히 이연주한테 힘들었겠지.’

무력이 약할 뿐 아니라 스킬도 대부분 보조에 특화되었기에, 정말 답답했으리라.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힘들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하지만 그 부분은 사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번 맵이 조금 지나쳤을 뿐, 기본적으로 헌터스 리그는 집단전투가 제일 중요하니까.”

이번처럼 개인전에 가까운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물론 집단전투가 제일 중요하다고 해도, 앞으로의 싸움은 점점 힘들어질 테지만.’

그걸 굳이 지금같이 좋은 상황에 말해서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이제 당분간 경기도 없는데 뭐하고 지내지?”

“훈련.”

그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농담이었는데. 코드가 좀 안 맞았나?

“승강전 준비하느라 2주 동안 정말 개같이 굴렀었는데? 승강전 끝나자마자 또 이럴 거야?”

김도준이 징징거리듯 매달렸다. 진짜 농담이었는데. 물론 반쯤은 진담이긴 했지만.

“물론 훈련만 있는 건 아니지. 일주일 후에 [Hunters Day]가 있으니까. 일주일간 쉬고 거기 다녀와야지.”

“아…… 맞아. 그게…… 있었네.”

“헌터스 데이? 그게 뭔데?”

기존 PER의 팀원들은 알고 있었지만, 김도준과 윤한결은 아예 그게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아…… 이번에 처음 데뷔해서 모르겠구나. 헌터스 리그 관련 종사자들이 다 모여서 하는 파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오…… 그럼 1부 선수들도 오나?”

“1부 선수뿐 아니라, 해설자나 캐스터, 헌터스 리그 스폰서들까지 웬만한 관련자들은 다 온다고 봐야지.”

헌터스 데이는 단순히 시즌이 끝난 후 가지는 친목 파티의 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즌이 끝난 후 일종의 최종 결산이자,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비즈니스 행사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드레스코드 생각해서 갈 때 입을 옷이나 준비도 좀 해 두고 그래. 다 오는데 후줄근하게 하고 가긴 좀 그렇잖아?”

그렇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있던 찰나에, 알람소리에 내려다보니 이근택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하면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평안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다고, 이근택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탑과 이능의 존재. 그 존재들로부터 사람을 지키고, 싸우기 위해서 헌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날 일이지…….’

이제는 헌터의 그런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으니까.

그렇기에, 과거에 가졌던 헌터의 의미를 잃어버려 감과 동시에 이근택은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었다.

이미 탑으로부터 평안을 찾은 세계에 구시대의 헌터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헌터스 리그라는 새로운 스포츠의 형태가 태어나고, 헌터는 다시금 뜨거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지키는 사람에서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역할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그뿐만일까. 형태가 스포츠로 변했을 뿐, 계속해서 능력을 갈고 닦으며, 이미 과거에 죽고 스러져 간 헌터들의 유산을 이어 나갔다.

이창현과의 첫 만남만 해도 그랬다.

과거 동료였던 원거리 딜러 문현준을 떠올리게 했던, 하체를 강조하는 습관.

그리고 마치 한 몸처럼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사용하는 모습.

물론 세세한 습관까지 모두 같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분명 과거 탑을 공략했던 헌터들의 기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뿐만일까.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경기에서.

아니, 한 번 사 두고 놓아 버렸던 팀을 일으켜 세워 기어코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서.

그랬기에, 이근택은 결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도전하고, 뜨거운 혈기를 보여 주며 자신이 포기했던 목표를 이룬 이창현에게. 뒤를 맡겨도 괜찮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소년은 이제 자기 앞에 서 있었다.

“팀도 인수인계 다 받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또. 2부 올라갔다고 이제 와서 팀 돌려달라고 하실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웃는 걸 보니, 아마 녀석 딴에 농을 한 것이리라.

“이놈이. 날 뭘로 보고. 쯧. 떡 하나 줄려고 불렀더니만, 몹쓸 소리를 하니까 이걸 그냥 주기도 그렇고…….”

“떡이요?”

말을 하자마자 눈을 빛내는 게, 역시 여간 탐욕스러운 녀석이 아니다.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팀을 다 끌고 올라갈 생각을 했겠지.

녀석 혼자 2부에 올라가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일 텐데.

보면 볼수록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녀석이다.

“그래, 떡이다. 그것도 아주 이따만한 떡이지. 뭔지 한번 맞춰 봐라.”

녀석의 눈엔 의아한 눈빛이 떠올랐다.

하긴, PER도 줬고 이미 쓸 만한 무기도 있을 텐데, 뭐 더 줄게 있나. 그런 생각도 들겠지.

아직은 어린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회장님 아시는 스폰서라도 있어요? 아유~ 우리 팀 스폰서 더 필요한 건 어떻게 아시고…….”

“스폰서는 아니다. 뭐…… 이대로 두었다가는 날이 샐 것 같으니.”

고갯짓으로 한쪽에 있는 고급스러운 상자를 가리켰다.

“열어 봐라.”

이창현이 금방 걸어가서 그 상자를 열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알아보는 건가…….’

“회장님 이건…….”

“그래.”

이창현이 상자에서 꺼내 든 것은 목에 거는 냅킨 같은 형태를 한 넥타이, 크라바트 형태의 유물이었다.

막 헌터가 된 어린 녀석이 유물의 무게를 아는 것인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 네 것이다. 그리고, PER은 오로지 너의 팀이다.

오늘 할 말은 이것뿐이니, 들어가 보거라. 경기하느라 많이 지쳤을 터이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창현을 되돌려 보냈다.

이젠 정말로 한 줌의 미련도 없었다. 헌터의 삶의 의미도.

그걸 이어 나가는 것도. 과거의 동료들을 기억하는 것도.

형태는 조금 바뀌어 나가더라도, 그건 계속 계승되어 나갈 테니까.

물론,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지켜보겠지만 말이다.

‘뭐, 그건 그렇고 그 유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전혀 모르겠지? 큭큭…… 말해 주질 않았으니 원.’

이근택이 준 선물이 유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창현은 나중에 알게 될 터였다.

***

‘유물‘이란 탑에서 발견되는 지구의 법칙을 벗어난 물건이었다.

각성한 인간이 초능력을 발현하는 것처럼, 이능의 힘을 간직한 물건.

그러니 당연하게도 유물은 이루 측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거기에 대부분은 국가 소유였고, 어둠의 경로가 아니라 정식적으로 개인이 소유한 유물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내가 그 유물을 소유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헌터스 리그 맵 속에서야 유물을 습득하기도 하고 써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오로지 내 것으로 소유해 본 것은 회귀 전을 포함해 처음이었으니까.

처음, 회귀 전과 달리 단순히 하체 단련하다가 만났던 한 할아버지(?)랑 관계가 발전되었던 게, 이렇게 되리라 누가 예상하기나 했었겠는가?

그런 놀람을 뒤로하고 [꿰뚫는 눈]을 발동해 받은 유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솔직히 말하면 우주파괴 광선을 쏜다던가 하는, 아주 대단한 유물은 아니었다.

하긴 그런 거는 국가차원에서 개인적인 이동이 불가능하도록 뭔가 조치를 취해 놨겠지.

[유물 : Befehl des Schweigens]

한국어로 하면 ‘묵언의 명령’ 정도. 아마 말하는 것과 관련된 유물 같은데…….

아무튼 조금 사용해 봐야 어떤 능력인지 정확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것은 실제로 쓰기 전까지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그건 그렇고, 다시 돌아온 PER의 홈은 한창 떠들썩했다.

“오…… 그건 뭐야? 파티 때 정장에 넥타이 대신 그거라도 하고 가게?”

“그럴지도?”

“엑…….”

윤한결은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으나,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네가…….’ 같은 표정을 짔더니 김도준과 번갈아서 쳐다봤다.

왜. 뭐. 왜.

“이제 보니 너도 관종 다됐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 사이를 못 참고 김도준도 끼어들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이게 어떤 건 줄 알고……

회귀 전에도 국제리그 우승 특전으로 유물을 몇 번 사용해 봐서 알지만, 유물의 사용에 익숙해지려면 무엇보다도 그 물건과의 교감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교감이라는 게 뭐냐, 결국 그 물건을 쓰는 거다.

‘그리고 원래 크라바트라는 게, 일종의 프랑스식 넥타이다 보니 정장에 잘 어울리기도 하겠고…….’

내친 김에 파티를 대비해서 사뒀던 정장을 꺼내왔다.

“나름 유서 있는 건데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러고 보니 너넨 뭐 입고 갈지 준비는 했냐?

그 파티하는 날은 아까도 얘기했는데, 그날 입고 오는 게 팀 얼굴이야 얼굴.”

가벼운 말을 하면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입는 정장이었다.

“오…… 정장이랑 같이 입으니까 좀 어울리긴 하네.”

“개뿔은 무슨,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저런 넥타이를 써.”

“도준아 그건 네가 너무 삐뚤어진 게 아닐까?”

“칫.”

그렇게 한번 쫙 차려입고 한 번 돌아다녀 보니, 팀원들이 괜찮다.

깔끔하게 멋진 것 같다. 한 마디씩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재미있는 건 팀의 홍일점인 이연주의 반응이었다.

보는 사람이 더 쪽팔려질 정도로 빨간 얼굴로, 말하는 게 좀 웃겼다고 할까.

“좀…… 멋지달까. 아니, 그렇게 말해 줄 수도…….”

그깟 옷 좀 입은 게 뭐라고, 평소에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돌아와 있는 게 너무 웃겼다.

그래서 어째선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더듬는 찐따라서 안 들리는데~? 크게 좀 말해 봐~.”

퍽.

싸움질도 못하는 녀석이 내 몸에 주먹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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