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지난 여정의 회고
팀 PER의 승리와 함께, 중계 화면에서는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이 편집되어 올라오고 있었다.
몇 가지 장면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화두가 되는 장면은 나의 2대1 장면이었다.
일견 위험해 보이는 순간이었지만, 허무하리만치 상대를 쌍권총으로 쉽게 마무리해 버리는 장면.
그리고, 이연주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졌을 때, 구세주와 같은 타이밍에 등장하는 장면.
선수 등장과 함께 하이라이트 다시 재생되자, 뜨거운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항성의 빛을 후광으로 내뿜으며 절체절명의 상황의 팀원을 구한다.
저렇게 편집해 놓으니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영웅이라도 출현하는 느낌이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까.
승강전이 끝나고 무대에서 환호를 받는 지금, 갑작스레 몸에서 빛이 퍼져 나갔다.
스킬 [만개 - 재능개화]의 징조였다.
[아니ㅋㅋ 뭐냐 ㅋㅋ 승강전 우승하면서 2차 각성? 이건 그냥 넛튜브각이네]
ㄴ 각성하면 초능력되어서 헌터 되는 건 알겠는데 2차 각성은 뭐임?? 첨들어보네
ㄴ 간혹 이미 각성한 애들이 각성한번 더하는거 있음 ㅋㅋ 걍 운빨
ㄴ 그냥 얘들이 만든 단어임. 각성자들 잠재능력 발현하는 거임.
ㄴ 지금도 혼자 1대2하는데 새 초능력? ㅋ 2부 애들도 개털듯
ㄴ 응 아니야~ 이제 겨우 2부 꼴등팀 이겼어~
무대에 있는 주변 사람들도 꽤나 놀란 듯 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만개]스킬이라기보다는 아마 2차각성을 한다고 생각한 듯 했다.
[만개 - 재능개화 : 이상동몽(異床同夢)의 지휘관] : 이미지하는 것을 온전하게 상대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회귀 전에는 얻어 본 적 없는 재능이었다.
‘이미지를 상대와 공유…….’
뭐…… 내가 생각하는 걸 남과 공유하는 능력인가. 팀원에게 내가 원하는 걸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 보였다.
이렇게 설명만 들으면 꽝인 것 같아 보이긴 하는데…….
혹시라도 만약, 내가 상상하는 것의 ‘감각’을 온전하게 공유할 수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스킬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건가.
한편으로는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도, [재능개화]를 했다는 건 하나의 업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까닭이었으므로.
과거 회귀전의 나는 2부 승강전에서 이기지 못했었다.
회귀 전, 3부에서 팀을 옮겨가 승강전을 처음 치르게 된 팀. 3부 LTD.
지금 생각하면, 꽤나 즐거운 팀이었다. 연승 속에서 팀 분위기는 최상.
처음으로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연습했다. 나날이 실력을 늘어갔고, 나랑 잘 맞는 친구도 있었다.
‘류재준…….’
함께 3부, 아니. 그 위로도 같이 팀을 이끌었던 팀메이트.
그런 그가 함께였음에도 2부 승강전에는 꽤 처참하게 패배했었다.
그리고 그때, 팀 분위기도 놀라울 정도로 처참했다.
3부 리거인 자신들을 2부로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팀원들을 뒤로 한 채, 나와 류재준만이 콜 업되어 올라갔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2부로 올라가서 축하한다고. 아마 속이 문드러져 가며 그런 말을 했으리라.
어쩌면,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상위 리그로 올라갈 때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실력이 좋은 선수가 올라가는 게 당연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데리고 올라가 주지 못한 게 미안했으니까.
다들 좋은 녀석이었는데.
‘후…….’
나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이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니 내게서 나는 빛이 잦아들자, 팀원들이 어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축하해. 창현아.”
“뭐야, 지금 이 타이밍에 각성한 거야?”
“운 하나는 억수루 좋네. 쳇.”
반응은 제각각이어도, 날 축하해 주는 녀석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적어도 2부도 함께하겠지. 어쩌면 그 이상.
이 순간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함께 올라간다. 이건 분명 회귀 전과 다르게 찬란히 빛나고 있는 새로운 순간일 테니까.
***
[캐스터 : 3부가 2부 리그를 승강전에서 이긴 건 무려 5년만인데, 알고 계셨나요?]
[이창현 : 네. 알고 있었습니다.]
[캐스터 : 이 압도적인 승률이라는 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음…… 솔직히 말하면 이전 경기들이랑 다르게 좀 부담감이 있었다.
나 혼자 잘해서 될 것도 아니고, 회귀 전과 달리 나 혼자만 홀라당 상위리그로 올라가 버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평소처럼. 평소처럼 가자.
[이창현 : 그럴 리가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전 시즌 저희 팀이 3부에서 꼴등이었습니다.
그런 팀을 1등까지 올려놨는데, 겨우 승강전에 부담감을 느낄 리가요.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온 몸이 부서져라 훈련시켰다고 할 수는 없지. 폼 안 나게.
[캐스터 : 좋습니다. 이제, 다음 시즌은 2부 리그입니다. 포부 한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이창현 : 어……음. 사실 포부 같은 건 딱히 없네요. 3부는 끝났고…… 2부도 결국 거쳐 가는 곳 중 하나니까.
크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서요.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러면 캐스터님이 무안하실 테니.
네. 2부도 저희가 접수하겠다? 그 정도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것도 다 꾸민 말이었다. 이번 시즌은 3부 때보다 바짝 긴장해야겠지.
팀원 충원도 좀 하고…… 가르칠 것도 산더미니까.
하지만 이 정도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바라보는 곳을 생각하면 실제로 2부는 거쳐 가는 곳에 불과한 것도 맞고.
[이창현 : 아, 그것도 그렇고 이제 저희 팀도 꽤 유명해질 테니, 3부 무명의 전패팀한테 져야했던 3부 팀들보다는 훨씬 면이 서지 않을까요?]
말을 하다 보니 즐거워서 자꾸 말을 더하게 된다.
사실 나는 2부에서도 잘할테니까 내가 욕먹을 일은 없긴 하다.
팀원들이 조금 눈총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열심히 해야겠지. 별 수 있겠는가?
그 시각, 채팅창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난 쟤 3부부터 봤는데 그냥 도발이 패시브네. 어그로 끌기가 기본인 듯]
ㄴ ㄹㅇㅋㅋ 말한 유하지, 어차피 늬들 다 X밥인 거 아니냐는 거 돌려말한 거 아님?
ㄴ 근데 3부 시작할 때도 비슷한 분위기긴 했음 ㅋ 난 솔직히 기대해볼만하다고 본다.
ㄴ 응 3부딱은 올라오자마자 참교육이야~
ㄴ근데 쟤네 궁금한 게 만약 1부 올라가면, 1부 올라가서도 저런 소리 하나ㅋㅋ
ㄴ하는 짓 보면 할 것 같음ㅋㅋㅋㅋㅋㅋㅋ 무서운 것 없는 X끼들……
뭐, 그런걸 보면 잘 했다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다.
결국 선수라는 건 팬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인데, 물고 뜯을 이야깃거리 하나 정도는 줘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캐스터 : 하하하! 3부에 이어 2부까지. PER의 도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2부 팀들도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승강전 경기, 여기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경기였지만, 승강전이었기에 당연히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던가, 시즌 MVP 선수를 선정하여 금일봉을 지급한다던가 하는 후 일정은 없었다.
평소의 경기처럼 대기실에 들러 짐을 챙겨 떠날 뿐.
“너 가끔 보면 진짜 막 지르는 거 같은데, 괜찮은 거 맞지?”
윤한결은 나한테 안티팬이라도 붙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뭐, 근데 이 정도 어그로쯤이야, 회귀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뭘 이 정도가지고.”
윤한결은 그 말에 흠칫했지만, 뭐 그래……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가관인 것은 김도준 쪽이었다.
“저거 스타성 만들려고 그러는 거잖아.”
“뭐?”
스타성이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재밌어서 하는 거긴 한데, 결국 팀 인지도도 올리고?
이기면 내 스타성도 오르니까 의외로 김도준의 말이 날카로울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나는 그런 억지 스타성 따윈 만들지 않아.”
“?”
김도준의 말에 짐을 싸서 돌아가던 팀원들이 김도준을 보고 네가 할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
팀 PER이 성장했다.
단순히 이전 3부 전패 시절이랑 비교해서 팀원이 바뀌고 이창현이 들어온 데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때의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단순히 부품을 갈아 끼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것뿐이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변했다.’
팀의 정체성이라는 게, 체질이라는 게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젠 과거, 키우기 힘들 거라 생각해 버려 뒀던 폐급 팀 PER과는 달랐다.
결국 이창현은 나 이근택이 실패할 거라 생각했던,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하면서 내줬던 팀을 키워 낸 것이다.
“껄껄…… 슬슬 내 나이 정도면 이제 내려놓고 후계자를 정할 때도 되긴 했구먼.”
녀석이 당돌하게 내게 요구할 적이 생각났다.
‘그렇게 되면 회장님이 아니라 제가 회장님을 뽑는 겁니다.’
그때는 그저 당돌하게, 재미있는 녀석이라고 웃어 넘겼다.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겨, PER을 가져갔을 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실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조준호가 끌끌 혀를 찼다.
“그거야 그렇다고 쳐. 그런데 그러면 재준이는 어쩌고?”
“내 팀 좋다고 품 안에 들어온 녀석 있는데, 제 발로 굳이 집 나간 녀석은 놔 줘야지.”
조준호가 그 말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혀를 찼다.
하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전에 류재준이 방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줬던 만큼, 스스로 더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오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맞으리라.
‘게다가 녀석에게 이근택 헌터의 후계자라는 건 또 하나의 속박이 될 수도 있을 테니…….’
“천하의 이근택이 이제 후계자를 물려주겠다니, 다른 녀석들은 부럽다 못해 질투하겠어.
질투. 그건 그렇고, 헌터협회장 자리를 준다는 건 당연히 아니겠고. 그렇담…….”
“이 늙은이가 줄 게 뭐가 있겠는가…… 허허. 그냥 소소하게…… 가지고 있던 물건이나 몇 개 쥐어주려는 거뿐이지.”
“소소하게?”
조준호가 이근택을 비웃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남에게 준다고 할 만한 것 중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나름 신세대에게 물려준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주는 거라면 보통 특별한 물건이 아닐 것이리라.
조준호는 잠깐 어떤 물건을 건네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탐낼 만한 공방의 무기도 있었고, 존재 자체가 희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마나장비의 라이센스를 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역시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함은…….
“그래 놓고서 네가 가진 유물이라도 넘기려는 게냐?”
“뭐…… 그럴 수도 있고.”
어이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준호의 눈썹이 사납게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