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첫 여정의 끝
생존을 위한 투쟁의 과정은 항상 순탄치 않다.
아마, 초식 동물들이 나름 각자의 무기를 갈고닦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연주도 다르지 않았다.
이 주간의 헌터 서바이벌.
거기에서 이연주가 겪은 일 중에, 이런 막다른 상황을 한 번도 겪지 않았을 리가.
당연히 이런 상황을 겪은 적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비도 되어 있었다.
다만, 급격하게 불리해지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런 상황을 반기지 않았을 뿐.
이연주는 이를 악물고, 마나 봄버와 유사한 폭탄을 상대에게 던졌다.
“뭐야, 같이 죽겠다는 거야?”
자포자기한 것으로 본 상대는 웃으며 그 폭탄을 반으로 깔끔하게 잘라 버렸지만.
놀랍게도 폭탄은 아무런 지장 없이 발동했다.
‘폭탄이 아니야?!’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연기.
그것도 감각에 혼동을 일으키는 고농축된 마나의 입자로 이루어진 연기였다.
이창현이 이연주에게 쥐어 준 특질계 마나장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게 발동되자마자, 막다른 길 반대편으로 뛰었다.
“어딜……!”
당연하게도 SMB의 녀석은 소리로 기척을 알아채 막으려 했지만, 연막에 멈칫한 사이 허공에서 솟아오른 검은 무언가가 그녀를 속박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연막 속을 뚫고 나온 것도 찰나.
최소한 팀원에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이연주는 계속해서 달렸다.
새삼스럽게 후회가 됐다.
‘창현이한테 괜히 이쪽으로 오라고 했던걸까?’
오래 버티지 못해서 탈락하면, 상대방은 다른 곳으로 가 버릴 텐데.
그럼 이창현은 시간을 낭비하고 헛걸음하게 되리라.
그 사이에도 팀원 한 명은 더 죽어 나갈 테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상대방의 위치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당분간 감각에 이상이 있겠지만, 상대방은 청각에 상당히 민감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 따라 붙을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없었다. 이연주는 바로 옆 우주선 복도에 보이는 문을 열고는 들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각이 져 있는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가구들이었다.
‘이건…….’
버튼을 누르자, 캡슐로 이루어진 침대가 벽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이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자라고 만든 모양인데, 숨기에 딱 좋아 보였다.
그걸 보자, 이연주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 어쩌면, 상대방을 날려 버릴 좋은 생각이.
***
SMB의 박선미. 그녀는 SMB에서 일종의 에이스이자, 스트라이커격인 인물로, 지금 현재의 상황에 꽤나 화가 난 상황이었다.
팀원 상황판으로 보아하니, 이미 팀원 몇 명이 상대에 당한 것 같은데, 그것도 모자라 3부의 떨거지에 불과한 상대방이 자신을 귀찮게 했다.
“뭣도 안 되면 그냥 얌전히 탈락할 것이지 귀찮게 시리.”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잡은 줄 알았더니, 마나더스트가 잔뜩 든 폭탄을 던지곤 도망가 버렸다.
덕분에 마나를 쓰는 초능력, [청력 강화 : A]도 잠시간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감각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멀리 도망간 듯 했던 상대방의 기척도 잘 느껴졌다.
‘후……제까짓게 도망가 봤자.’
상대방의 기동성이나 무력적인 능력은 이미 대충 다 가늠이 끝났다.
그 속박능력이 좀 귀찮긴 했지만…….
결코 위협적인 능력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별 경계심 없이 상대방의 기척이 느껴진 방의 문을 열었다.
“여긴가?”
한 면이 통 유리로 된 뭔가 가구와 기계장치가 꽤 많은 방.
이상하게도 통째로 바깥이 보이는 통유리 벽면이 꽤나 크게 깨져 있었다.
‘설마 뛰어내린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고요했던 방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청력강화 : A]가 아니라면 못 들을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가.
다름 아닌 벽 쪽의 캡슐 안이었다.
‘오호라……’
아무래도 외부 소음으로 소리도 덜 들리게 하고, 시선도 돌리기 위해 벽면의 유리를 깨 놓은 듯 한데…….
“그럴 거면 안에서 소리도 내지 말았어야지!”
웃으며 버튼을 눌렀고, 벽면에서 캡슐이 나왔다.
그리고 캡슐이 나오는 것에 맞춰,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찔렀다.
하지만, 캡슐 안에 있었던 것은 이어폰과 마나 봄버였다.
콰콰쾅!!
마나 봄버의 폭발이 작렬했다.
***
콰콰콰쾅!
같은 시각, SMB의 박선미 쪽에선 잘 보이지 않는 방 안의 거대한 기계 뒤.
이연주는 여전히 숨죽인 채로, 마나 봄버가 터진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치웠나……?’
극한의 긴장상태였기 때문일까?
폭발의 여운이 다 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호흡소리가 크게 울리는 듯한.
무언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스럭. 부스럭.
온갖 무너진 잔해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놀랍게도, 거기에서 SMB의 박선미가 머리에서 피를 철철흘리는 상태로 일어났다.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마나 실드를 최대 출력으로 발동시켜 충격을 최대한 줄인 모양이었다.
“너…….”
놀랍게도 명확하게 먼지 속에서도 이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머리에서 떨어지는 선명한 핏자국과, 새빨갛게 빛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또렷한 눈.
반드시 죽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섭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지는 기운이었지만, 이연주는 직감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아직 몸 상태가 어지러운 상황에, 속박을 걸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그 방법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속박 스킬을 사용하려는 찰나, 눈앞에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주먹……?’
퍽.
에어대시로 도약한 탓인걸까, 인지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X같은 게, 3부 리그 새끼가 감히…… 감히!”
과연 2부 팀이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버틴 것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상대방의 힘이 느껴졌다.
‘아…… 이대로 탈락인가.’
이젠 정말로 솟아날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장비도 거의 사용했고, 상대방을 따돌릴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마음은 왠지 편안했다.
과거와는 달랐으니까.
‘그래도…… 예전이었다면…… 진작에.’
어쩌면 도망칠 생각도 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막다른 벽에 막혀서. 끊임없이 따라오는 상대방에 겁먹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끝났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막다른 벽에 막혀도 막히지 않고, 상대가 쫓아와도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맞고 쓰러져도, 바닥을 굴러서라도 이기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 정도면, 잘한 게 아닐까.’
그렇게 탈락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쉬아아아악 ㅡ.
탁.
먼지투성이 우주선 실내에 깨진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한줄기의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두 방의 총성이 울렸다.
타탕!
털썩.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폰이 아니라, 바로 저 너머에서.
“뭐야, 아직 살아 있었어?”
쓰러진 상대편의 너머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이창현이 서 있었다.
***
한 쪽 유리벽이 박살난 우주선 실내, 그 안에는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었다는 걸 증명하듯 박살난 기계와 가구들이 즐비했다.
그 뿐만일까, 거칠게 그을리고 탄 재가 휘날리는.
방금 머리가 총으로 꿰뚫린 피가 흥건한 시체도 한 구 있었다.
‘그리고 이연주…….’
그녀 역시도 멀쩡하진 않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머리카락이 떡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좋다고 웃는다.
“웃는 거 보니까 멀쩡한가 보네. 뭐, 1부 리그처럼 통각 설정이 리얼한 것도 아니니까.”
“뭐래…….”
처음엔 말도 잘 안 하던 녀석이 이젠 좀 친해졌는지 말도 좀 트고 말대꾸까지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싫진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리 말해 둔 대로, 남은 인원을 윤한결과 김도준이 잘 마무리 지은 모양이었다.
‘우주선에서 찾은 유물도 전해 줬었고, 상대는 에어앵커도.
에어비트도 장착하지 않았으니, 밖에서의 전투는 훨씬 유리했겠지.’
물론 그렇더라도 솔직히 다들 경기를 기대 이상으로 해 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역시, 이연주의 성장 아니었을까.
“고생했어.”
[경기가 종료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경기장 바깥은, 2부 승강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5년 만에 3부라는 언더독의 승리가, 그것도 불리해 보였던 상황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악바리 근성으로 이겨 낸 것이 관중들 눈에는 인상적인 경기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3부에선 느끼지 못할 만한 뜨거운 함성에 김도준은 물 만난 듯 관중석에 손을 흔들어 댔고, 이연주는 도리어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도 다들 감동했다는 듯, 물기를 머금은 듯한 표정이었다.
‘겨우 2부에 올라온 것 가지고 저래서야…….’
혀를 찼지만, 한편으론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여러모로, 회귀 후 몇 안될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답을 찾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멤버들이 하나 둘 성장해서 어느덧 한 선수분의 몫을 한다는 것.
누군가를 키워 낸다는 게 이런 감각인 걸까.
그런 가운데, 경기장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설자 : 그렇게! 지난 시즌 3부의 꼴등 팀이었던 PER이 이변을 일으키며 2부 승급에 성공합니다!]
***
유혜주가 나간 뒤, 혼자 남은 RIX의 대기실. 그 대기실의 한 화면에서는 PER과 SMB의 경기가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단지, 괴로워서. 이대로 경기장을 떠날 수 없어, 주저앉아버린 것뿐이었다.
그렇게 홀로 이곳에 남아 버린 상태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이, PER과 SMB의 경기를 비췄다.
중계가 나왔다. 맵이 선정되었다. 해설자가 설명했다.
절대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경기였다.
SMB가 우리 팀인 RIX와 연습경기를 했었기에 알았다. 2부 팀인 QQ와의 경기에서 패배했기에 알았다.
처음, 이창현의 전투는 감탄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뛰어난 녀석 같았으니까. 하지만, 경기가 가면 갈수록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났다.
솔직히 이창현과 몇을 제외하곤 허접하다고 생각했던 PER의 팀원들이 SMB를 이겨 낸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은 결과들이 모여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SMB를 PER이 이기다니…….’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PER의 선수들이 자신들은 할 수 없는 멋진 플레이를 했는가? 그런 것도 아니었다.
특별한 능력을 보여 준 것도, 기상천외한 전술을 보여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번 더 생각하고, 고뇌한 흔적이 보였을 뿐. 악바리같이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뿐.
그들은 특출나게 RIX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아직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가능성이 충분히 많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재능 없이 묻혀 가는. 3부 리거로 스러져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언젠가 재능이 부족해서 멈춰 서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PER이 보여 준 것은 분명, 가능성의 한 분기였으니까.
RIX였어도 어쩌면, RIX가 조금 더 연습했더라면. 다른 방향성을 고민해 봤더라면.
승강전에서 완패하는 게 아니라,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기적을 일으키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재능이 없다고. 2부로 영입받지 못해 3부에서 이름도 모를 선수로 남겨질 거라고, 세상을 저주했던 자신이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저 팀의 서포터보다 분명 훨씬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시 오늘의 패배를 되돌아보고, 담담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해 나가다 보면.
분명, 언젠가 분명 저 자리에 직접 나의 두 다리도 2부의 자리에 설 수 있을 테니까.
‘그래…… 3부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야.’
넘어지더라도 계속 걸어야 했다. 내려다보지 말고, 앞을 본 채로.
나는 3부 리그 RIX의 유혜주의 이름 모를 선배도, 3부에서 쓸쓸하게 사라져 갈 무명 선수도 아니었다.
나는 RIX의 김정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