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각자의 싸움
“X밥 컷.”
옵져버가 캐치한 것인지, 하이라이트 재생에서 이창현이 꽤나 클로즈업 되어 입모양이 선명히 보였다.
물론 그걸 공식 해설자와 캐스터가 말하는 일은 없었긴 하지만.
[캐스터 : 아니!!!! 이창현 선수.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합공을 펼치려던 SMB의 두 선수가 한번에 쓰러졌어요!]
[해설자 : 놀랍습니다…… 아마 이창현 선수의 반사신경으로 볼 때, 보이지 않게 되어서, 완전히 위치를 예상하기 어렵게 되기 전에 재빠르게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노린 것 같습니다…….]
리플레이에서는 하이라이트로 이창현이 공중제비로 상대를 피하며 인비저블 클록으로 숨은 상대를 정확하게 쌍권총으로 각각 헤드샷 하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해 줬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화면은 각 팀의 대기실로 이어졌다.
SMB의 감독과 코치진은 이창현의 입모양으로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아 버린 걸까?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반면, PER의 코치는 활짝 웃고 있는 극명한 대비가 돋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창현의 ‘그 발언’을 굳이 필터링할 필요가 없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당연히도 극렬했다.
[아니 님들 방금 이창현 입모양 봄?.gif]
ㄴ ‘X밥 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진짜 입모양 보니까 빼박이네 ㅋㅋㅋㅋㅋ
ㄴ 와 그냥 개쩐다. 이게 이렇게 가나?
ㄴ 발도싸개의 한계 = 발도 피하면 아무것도 못함 ㅋ
반응이 얼마나 컸는지, 채팅창을 채 다 읽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이근택도 그런 모습에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올라가는 입꼬리를 다잡고는 다시금 생각했다.
‘시작이 좋은 건 맞아…… 그렇지만 뛰어난 한 놈이 있다고 승강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면 내가 그렇게 PER을 운영해서 상위 리그로 올릴 생각을 했겠지.
자,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할 거냐 이창현.’
실제로 그런 이근택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창현은 마법공학 무기변환과 꿰뚫는 눈 스킬의 사용으로 당장은 마나가 그리 많이 남은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유물을 찾아서 합류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간 합류가 더 늦어지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근택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해설자 : 시작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매드무비 같은 멋진 영상이 나왔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PER이 이겨, MVP선수를 뽑게 된다면 역시 이창현 선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캐스터 : 그렇죠! 하지만 아직 경기는 초반이거든요. 다른 쪽은 어떨까요.]
[해설자 : 맞습니다. 사실 분석가 분들도 처음에 예상했던 PER의 문제가 그거거든요. PER에 뛰어난 선수가 몇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너무 약하다.
그런 거였거든요, 다른 쪽은 어떨지 바로 옵져버 이동하겠습니다.]
***
“난 끝났어. 별일 있는 사람 있어? 그쪽 위치로 먼저 합류할게.”
팀 PER의 이어폰에 이창현의 목소리가 퍼졌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곧바로 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약간의 정적이 지난 후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난 할 만한 것 같아.”
윤한결은 숨을 거칠게 쉬고 있긴 했지만, 도와 달라고 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윤한결을 시작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이 나왔지만 이연주는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팀 현황을 보면 아직 아웃된 건 아닌데…….
그렇게 이창현이 첫 행선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이연주의 마이크에서 손가락으로 톡 톡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말에, 이창현이 몇 초 뜸들이더니 이어폰에 그 소리에 응답했다.
“대답하기도 힘든 상황?”
다시금 이어폰에 퍼지는 톡 톡 소리에 이창현이 말했다.
“첫 행선지는 연주 쪽으로 잡을게. 근데 기본적으로 합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다른 사람들은 너무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 그래도 최대한 버틴다. 알겠지?”
“알았다.”
이창현의 말에 곳곳에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대로 통신이 다시금 꺼지진 않았는데……
김도준의 이어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나도 곧 쓰러뜨리고 합류할 테니까 다른 힘든 사람 있으면 말해 봐.”
놀랍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아무래도 이창현은 같은 우주선에 있는 상대방을 모두 손쉽게 쓰러뜨린 모양이었다.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역시 창현이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다시금 강하게 들었다.
반면에 이쪽은 솔직히 말해서 아까 괜찮다고는 했지만, 고전 중이었다.
검을 자유롭게 휘두르기 어려운, 좁은 우주선의 복도.
윤한결은 그곳에서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
쉭 ㅡ.
‘대체 단검이 몇 개인 거야…….’
좁은 환경의 한계로 검을 자유자재로 쓰기 어려운 윤한결과는 달리, 상대는 무기 복제 스킬이라도 있는지, 단검을 마치 총탄 쏘듯 던져 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투척되는 단검 하나하나가 김도준의 검처럼 번쩍거려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을 채 뜨기도 어려웠다.
거기에 녀석은 역시 인비저블 클록을 입고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나는 이번 전술에서는 이창현처럼 최대한 빨리 상대를 정리하고 다른 팀원을 구조하러 가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상대를 끝내긴커녕, 제대로 상대에게 접근도 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투척단검을 피하다 스쳐, 급소만 겨우 피해, 잔 상처만 계속 늘어가고 있을 뿐.
‘이대로는 위험한데…….’
장검을 휘둘러 단검을 쳐내려고 해도, 내 검은 길었기에 휘두르다가 복도의 벽에 턱턱 막히는 게 다반사였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새삼스럽게도 그 생각에 이창현이 1대1 교습을 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런 식으로 네가 습격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없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 진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는지.”
이창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네 문제는 무력 같은 건 다 좋은데, 영리함이 부족하다는 거야.”
“영리함?”
“아, 물론 네가 멍청하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똑똑한 편이지. 근데 너는 너무 정직하다고 할까.
전투를 할 때 조금 더 유연하고 약삭빠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내가 너라면 분명. 판을 엎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야.”
“판을…… 엎는다?”
‘맞아…… 그 말이 맞다.’
지금 상황은 일방적으로 전투의 불리함을 강요받는 상황.
그럴 때, 이창현은 판을 엎어야 한다고 표현했다.
판을 엎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미 답을 봐서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디션 프로, 탈락 미션 때의 이창현이 생각났다. 일 대 다수.
목표지점을 사수해야 하는 이창현의 상황.
건물을 돌발적으로 무너뜨리고, 먼지구름 속에서 모두를 쓰러뜨렸던 이창현의 플레이가.
‘유리한 지형이 아니라면, 그 환경을 조성한다. 아니면 최소한, 상대만 유리한 그 진형을 깨부순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의를 깨달은 지금이라면.
윤한결은 품 속에서 마나 봄버를 꺼내 우주선의 복도 벽면에 부착했다.
쾅! 콰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선의 한쪽 벽면이 부서져 훨씬 공간적 여유가 생겨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나 봄버가 폭발하며 만들어 낸 먼지구름.
그리고 그 먼지와 공기의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하여금, 인비저블 클록으로 몸을 가린 상대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쳇.”
상대방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공간적 여유가 생겨나자, 피하기 급급했던 상대방의 투척단검을 손쉽게 검으로 쳐낼 수 있었으니까.
“이제 제대로 다시 한번 해볼까?”
윤한결이 씨익 웃었다.
***
한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다른 전장.
PER팀원 모두가 윤한결처럼 무력적으로 상대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PER의 전위를 맡고 있었던 이길한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버티는 능력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진형파괴에는 능하지만 대인 능력이 크게 떨어졌으니까.
“뭐야~. 그때 헌터 서바이벌에서 죽 쓰던 걔잖아?”
헌터 서바이벌을 할 때 보고 있었던 걸까, SMB의 팀원이 대놓고 비웃었다.
게다가 이길한을 얕보고 있었는지,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지금인가……!’
이길한은 자신의 능력인 [파괴적 돌진]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이걸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번 제대로 충격을 준다면 이기는 것도 꿈은 아닐 터.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상대를 바라봤을 찰나.
SMB의 팀원은 여전히 비웃는 태도를 유지한 채로, 무방비하게 있었다. 그제서야 문득 위화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상대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때 암살시도나 공격을 하지 않고, 먼저 목소리를 낸 거지?’
다시 생각해 보니 마치 자신의 위치를,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되자,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미묘한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이창현이 헌터 서바이벌 개인 레슨을 해 줄 때의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이야기했지만, 각이 조금 나온다 싶으면 무작정 들이박고 보는 습관이 있어.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각이 맞느냐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
“나는 그래도 나름의 근거를 갖고 판단한다만……?”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이다.”
“정보의 불균형?”
전혀 생각치 못한 말이었다.
“네 스킬은 효과가 도드라지는 만큼, 외적으로 무척이나 티가 잘 나는 편이지.
그러니까 상대는 네 스킬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근데 너는? 넌 상대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데?”
말문이 막혔다. 그 부분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그게 네가 영리하게 플레이해야 하는 이유야. 상대에게서 보인 빈틈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지금 상황이 딱 그런 상황일지도.’
마치 상대는 먼저 들어오라는 듯, 스킬을 쓰라는 듯 대놓고 빈틈을 주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창현의 말이 자꾸만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이게 함정이라면? 사실은 쉽게 피할 방법이 있고, 돌진 후에 순식간에 뒤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라면?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한 가지.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창현의 한마디가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만 기억해. 100%로 맞출 수 있을 때가 아니면, 쓰지 마.”
당연히 상대의 능력도, 마나장비도 잘 모르는 지금, 당연히 100퍼센트 맞출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길한은 그렇기에 돌진을 단념하고 방패를 올려 빈틈이 없도록, 태세를 정비했다.
재미있게도, 이길한이 방어태세를 취하고 대치를 계속하자, 오히려 달아오르는 건 상대였던걸까?
상대는 공격하기보다 말을 걸어왔다.
“하긴, 그런 실력으로 혼자서 뭘 하기는 쫄리긴 하지.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긴 해.”
계속 상대는 무언가 말을 뱉어 냈다.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이길한을 움직여 보려는 속셈일까.
실제로 그 말에 몇 번은 욱하고, 달려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길한은 결국 움직이지 않고 방어태세를 유지했다.
대신, 그저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창현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뭔 말이 그렇게 많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