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75화 (75/270)

075. 회귀 너머의 세계

“와…… 2부는 경기장 시설이 3부랑 꽤 느낌이 다르네.”

그 말에 픽 웃음이 나왔다.

데려온 팀원들은 오디션프로그램 출신, 그리고 나머지 PER팀원들은 3부에서 꼴등 팀이었으니 2부 경기장은 처음이려나.

“그러다 나중에 1부나 국제 경기장 가보면 고꾸라지겠네.”

1부도 2부와 차이가 큰데, 국제 리그 경기쯤 되면 그건 이제 경기장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이니까.

한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애들도 몇몇 있었다.

“뭐, 경기장 직관 정도는 몇 번 해봤으니까…….”

“오…… 그럼 국제리그 경기도 가 봤어?”

한 팀원이 눈을 빛내며 김도준에게 물었다.

“그건 티켓팅이 어려워서…….”

“쩝……”

티켓팅이 어렵다는 말에 안색이 바뀌더니 고개를 휘휘 저은 것이었다.

하긴. 헌터스 리그에서 국제리그는 아무래도 격이 다르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뭐, 새로운 경기장이라고 긴장하지 말고. 어차피 너네 보러 온 사람 하나도 없다.”

“아닌데? 나 인터넷에서 개유명한데?”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한 건데,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자랑하는 김도준의 멘탈이 한편으론 대단하게 느껴졌다.

“네 다음 눈뽕빌런. 잡설은 이만하고. 곧 경기 시작하겠다. 집중하자.”

오늘은 두 개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나는 3부인 RIX와 2부 9등을 기록한 팀 QQ의 경기.

PER과 SMB의 경기는 그 다음이었다.

즉, 선수 대기실에서 앞선 경기를 하나 본 후에야 경기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석의 모든 불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평소의 다른 경기들과는 달리 건조한 분위기였다.

해설자도, 캐스터도. 이 경기가 가진 무거움을 아는 탓이겠지.

[해설자 : 그렇습니다…… 이 경기에서 패배하는 팀은 결국 3부 팀이 되는 거거든요.

헌터스 리그 선수들이 잘나간다 말은 하지만, 사실 3부 선수들은 그런 화려하게 보이는 부분보다 열악한 환경에 속한 선수들이 더 많습니다.]

맞는 말이다. 상위리그가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 받는 만큼, 아래 리그는 그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겨서 올라가고 싶은 거겠지.’

무대 한 편으로 팀 RIX의 팀원들이 보였다. 의욕 넘치기보다는 엄중한 긴장감이 넘치는 기색이었다.

반면 2부 팀 QQ에서는 꽤나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된 경기.

의외로 초반부터 몰아붙이는 전략을 사용한 건 RIX였다.

우리 팀과의 경기도 그렇고, 모였을 때 강한 힘이 나오는 팀이라 후반 위주의 전략을 펼칠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무언가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모여서 힘을 발휘하기보다는 많아야 두 명이 모여 소규모 교전에 힘을 준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무 우직해.’

상대 2부 팀인 QQ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 흘렸다.

비슷한 방식으로 초반 교전을 준비했던 것 같지만, 상대가 같은 부분에 힘을 준 것처럼 보이자 전략을 수정한 것이었다.

초반의 싸움을 가볍게 피하면서도, 상대가 올인 전략을 펼친 것 같자, 즉석에서 수정한 것이었다.

[해설자 : 아……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RIX가 초반을 강하게 가네요. 하지만 QQ, 그 전략에 당해주지 않고 유연하게 시간을 벌며 합류합니다!]

[캐스터 : 하지만 그러더라도 결국 RIX가 좋은 것 아닌가요? 3부라고는 하나 RIX팀의 장기가 또 한타거든요……]

‘아니. 그건 지금이랑 상황이 다르다…… 우리랑 할 때야, 무기도 그렇고 마나 장비도 한타를 위주로 짜서 가능했겠지만…….’

[해설자 : 아니요, 오히려 초반에 소규모 교전으로 경기를 끝내지 못하면 RIX가 위험합니다! 단기결전에 올인한 만큼, 선수들의 무기도 마나장비도 공수 밸런스가 부족해요!]

그렇다. RIX의 팀원들이 주로 장비하고 있는 건, 에어 대시, 마나 봄버 같은 단기결전, 순간 화력용 장비들뿐이었다.

무기도 이전 경기와 달리 방진을 고려해 방패 같은 건 거의 들지 않았고…….

이런 경기가 오래 갈 경우, 에어앵커나 에어비트 같은 기동성장비와 다른 특질 마나장비들을 적절히 밸런스 좋게 구성한 상대와 전투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투와 기습을 회피한 QQ의 팀원들이 서너 명 합류하기 시작하자, 진형을 유지하며 상대를 안정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끝이네.’

***

승강전. 포스트시즌의 경기들도, 결승전도 끝난 후 이뤄지는 리그의 진짜 마지막 경기.

그 경기엔 결승전처럼 눈부신 티저 영상도, 선수 별 사전 인터뷰도. 그리고 별도의 미디어데이도 없다.

그럼에도. 그저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하는 가장 처절한 전장, 그것이 승강전이었다.

3부 선수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상위 리그로 갈 수 있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에 반해, 2부 선수들은 정말 마지막 기회.

이마저도 떨어진다면 앞으로의 자신의 미래가 크게 곤두박질 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그런 경기에서 패배했기에.

패배한 RIX 팀원들의 표정은 많이 좋지 않아 보였다.

“와…… 근데 생각보다 경기가 훨씬 일방적이네.”

“그러게. RIX도 꽤나 준비를 잘 한 것 같은데.”

“우리…… 괜찮을까?”

그리고 그런 RIX의 분위기는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팀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접한 2부와의 격차에 위축되었는지, 부정적인 분위기가 퍼졌다.

꽤나 잘했던, 그리고 일전에 우리 팀과 꽤나 팽팽하게 싸웠던 RIX의 허무한 패배가 아무래도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렇게 굳었어. 이 주일동안 다들 몰라보게 변했는데.”

“그래도…….”

“안되겠네. 너네 헌터 서바이벌 첫 경기 영상 한번 틀어 줘?”

“아아악!! 왜 그런 것 까지 찍어 둔 거야.”

실수를 제대로 복기시켜 주기 위해 찍었는데, 지금 보면 확실히 지금 보면 꽤나 충격적일 거다.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쫄아서 되겠냐? 안 그래?”

물론 절대로 쉬운 싸움은 아니리라.

근 5년간 3부에서 2부로 승급한 팀은 없으니까. 헌터스 리그 전체 역사를 봐도 승급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말한 것만 잘 기억해. 연습 때처럼만 하면 되니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회귀 전. 분명 나는, 나의 팀은 승강전에서 패배하고. 단지 나만이 상위리그에서 지명받아 올라갔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니까.

“뭐, 즐겁게 가자.”

회귀하고 지금껏 걸어온 길이 헛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

우리 팀, RIX의 경기가 끝난 후. 혼이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3부 리그에서 2위를 달릴 때와는 180도 다른 험악한 분위기가 팀을 감싸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몇몇 팀원은 이미 귀가한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유혜주는 남아 대기실을 지키고 있었다.

남은 경기인, PER대 SMB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

‘그 녀석이라면 이길 수 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3부 리그까지 악연이 이어진 녀석이었다.

얄밉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하는 그런 녀석.

아니, 남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건 PER이 SMB를 이겨 주는 것을 소망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저번 연습 경기 때 SMB 녀석들이 얄밉기도 했지만, 팀원들이 다들 고전하는 상황에서 녀석이라면 어떻게 할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의 한 화면으로 경기가 중계되기 시작했다.

[캐스터 : 네. 이어서 PER 대 SMB의 경기 보내드립니다. 해설자님. 이번 경기는 어떤 점을 위주로 보면 좋을까요.]

[해설자 : 오늘 랜덤으로 배정된 맵은 프로 사이에서 속칭 ‘우주정거장’ 이라고 불리는 맵입니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다수의 행성으로 압도적인 원경을 자랑하는 풍경의 맵입니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우주선 같은 것들이 주 전투 무대가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한 원경의 거대한 행성들.

그 배경을 바탕으로 수 없이 많이 떠 있는 우주선 형태의 많은 구조물들이 비춰졌다.

‘처음 보는 맵…….’

잘 알려진 맵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이 맵 요소도 PER보단 2부에서 다양한 맵을 경험한 SMB가 유리하리라.

‘하지만 뭐…… 이 정도야 3부로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긴 해.’

[캐스터 : ‘행성처럼 보이는……’ ‘우주선 같은……’ 진짜 우주랑은 다른 겁니까?]

[해설자 : 아. 그 설명을 빠뜨렸군요. 다들 아시다시피, 모든 2부 헌터스 리그의 맵은 ‘탑’의 필드를 재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죠.]

[캐스터 : 그쵸…… ‘탑’은 사실상 다른 차원, 별개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알려진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맵은 일견 평범한 우주정거장처럼 보입니다만…… 어떤 점이 다르죠?]

[해설자 : 우선, 가장 직관적으로 다른 점은 ‘중력’ 이겠네요.

생긴 것만 우주 같고, 사실은 우주선 같은 부유물을 제외하곤 아래로 평범하게 중력이 작용합니다.]

‘중력 작용…….’

우주선 밖에서 잘못 발을 디디거나 밀리면 ‘낙사’가 가능하다는 변수.

이 정도는 맵으로 인한 변수 중 큰 부분은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아예 SMB가 이를 이용한 전술이 준비하지 않는 이상.

‘음…… 이 정도면 이창현의 PER이 하기에 따라 할 만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캐스터 : 호오…… 그렇다면 이 우주선들을 건널 때,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요.]

[해설자 : 맞습니다. 그리고 전략적 특징으로는…… 역시 헌터스 리그에서 팀단위 전술을 쓰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캐스터 : 아하…… 이렇게 우주선에 각자 리스폰되면 모이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겠네요. 우주선을 건너다가 저격당할 위험도 있고.]

[해설자 : 그렇습니다…….

유혜주는 해설자의 해설을 듣고서야 이 맵의 무서운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맵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낙사 따위가 아니라, 부유된 우주선끼리 건너기도 어렵고, 낙사 위험도 있는 만큼 서로 고립된 상황에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각개전투가 일어날 텐데…….’

소규모 교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마나장비와 참전하는 사람들의 초능력.

유혜주는 재빠르게 그걸 살펴봤다.

하지만 볼 필요도 없었다.

PER은 전 시즌까지 3부 꼴등이었던 팀. 전술에 따라 선수를 바꿀 정도의 인원은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캐스터 : 게임의 진행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리라고 보시나요?]

[해설자 : 음…… 우선적으로 보면 PER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SMB측 마나장비와 스킬들을 보면 애초에 각개전투에 유리하도록 짠 것 같네요.

PER이 유리하기 위해선 우선 모여야 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맵의 특성 탓에 그건 어려워 보입니다…….

‘운이…… 없다.’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 없는 맵이었다.

이대론 제대로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끝나리라. 유혜주는 웃음을 쓰게 삼켰다.

어쩌면 5년 만에 승강전에서 이변을 일으켜 볼 만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은 냉정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다 준비하더라도, 이기기 위해선 운도 좋아야만…….’

유혜주는 이 경기를 끝까지 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꺾고 얄미운 모습을 보여 줬던 이창현이지만, 동시에 그가 2부 리그에 처참히 패배하는걸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엎드려 있는 RIX의 남은 팀원 한 명을 내버려두고 대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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