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74화 (74/270)

074. 승강전 전야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팀이 승강전에 가게 되면 팀 내외부적으로 여러 가지 말이 오가는 만큼, 2부 SMB의 감독으로서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프론트가 따로 처리해 주는 대형 팀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승강전은 주로 코치에게 전략 및 훈련을 일임해 놓고 있었다.

그런 것 치곤 코치가 다 잘해 주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오늘 표정도 나빠 보이지 않았고.

“애들이랑 연습 경기는 잘 준비했어?”

“후후…… 보시면 알 겁니다.”

평소엔 그리 자신감을 내비치지 않는 코치였지만, 승강전 준비라서 그런 것이었을까. 이번엔 꽤나 자신만만해 보였다.

“뭐…… 경력도 좀 쌓였으니까, 한 코치가 잘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연습 경기 상대는 누구로 잡았어?”

“아. 너무 바빠 보이셔서 따로 말씀을 못 드렸네요. 이번 승강전에 도전하는 3부 팀이랑 잡았습니다.”

승강전에 도전하는 3부 팀? 설마 우리랑 맞붙는 팀이랑 연습경기를 할 리는 없고…….

‘아…… 3부에 RIX였나?’

데이터로만 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3부 리그에서 2등을 했던 팀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등수보다도 PER전에서의 기록이었다.

[PER대 RIX전 리포트]

- 전반적으로 팽팽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였음.

- 서로 새로운 전술을 들고 왔으며, RIX가 우세를 점하는 듯 했으나, 이번에 화제가 된 김도준 선수의 투명전술로 PER의 역전승.

‘그니깐 뭐…… PER이랑 또이또이하다는 거네. 저번의 그 전술만 빼면 되려 더 뒤쳐질 수도 있고.’

상대 수준을 생각하면 딱 좋은 연습상대였다.

‘뭐, 시즌 끝나고 팀원들 바뀔지도 모르는데 괜히 2부 다른 팀이랑 연습 경기 했다가 된통 깨지는 것보다 이게 팀 분위기에도 낫겠지.’

“3부 팀이랑 연습 경기면 그래도 별로 어렵진 않겠네. 정규시즌은 속된 말로 망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 보자고.”

“네, 감독님.”

아무래도 크게 걱정할 것 없이 이번 시즌도 잘 마무리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팀 RIX라고 써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선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2부랑 경기하는 거 얼마만이냐. 작년 서머시즌 승강전 이후로 처음이니까 한 7개월은 지난 거 아니야?”

“그런 듯. 근데 너는 이번에 2부랑 승강전 하는 거만 세 번째 아니냐?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RIX의 무명 선수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3부 팀이 2부로 승격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렇기에, 2부로 올라가는 방법은 대부분 상위 2부 팀에서 영입되어 올라가는 방법이었다.

그런 그에게 3부에서 상위팀에 있음에도 상위리그로 올라가지 못하는 기간이 오래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주로 상위리그에서 영입하는 애들은 3부에서 짬이 오래 찬 녀석들이 아닌, 빠르게 배워서 치고 올라가는 3부의 신예들이니까.

예를 들면 같은 팀의 유혜주 같은.

실제로 이번에도 2부 리그 팀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진 선수들은 몇 없고, 뻔했다.

1위를 달렸던 PER의 몇 명, 그리고 그 외에 뛰어난 신예로 분류되는 유혜주와 류재준 정도겠지.

그 외에는 별로 화제가 되지도, 별다른 영입제안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누구 한 명 내 이름을 아는 일 없이, 3부에서 썩을 순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본심을 숨긴 채로, 가볍게 말했다.

“승강전 이기면 되는 거 아니겠냐? 응? 안 그래 유혜주?”

“아…… 네. 선배.”

쓴 웃음이 나오는 미적지근한 반응. 그래, 사실 유혜주 같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애들이 이 기분을 알 리가 없긴 했다.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 먼저 본때를 보여 주자고. 2부 SMB라는 팀이랬었나?”

“맞아. 2부래 봤자 어차피 2부에서 꼴등인 팀이잖아?”

옆의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꼴등인 녀석들이다.

할 수 있다. 마음을 고쳐먹고 차에서 내린 후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던 도중, 거의 동시에 승강전의 연습상대. 2부의 SMB도 도착했다.

좋은 경기 해보자고, 인사하려던 찰나에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힐끗거리지도 않은 채 자기들끼리 떠들며 먼저 지나갔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주먹이 꽉 쥐어졌다. 2부보단 아니겠지만 승강전 연습기간 동안 꽤 많은 연습을 소화했다.

콧대를 짓눌러 주겠다는 마음이 치솟았다.

“얘들아, 연습경기 이기고, 그대로 승강전도 이기자!”

“뭘. 당연한걸.”

“그래요 선배.”

…….

그래…… 경기 시작 전만 해도 그랬던 것 같은데…….

“어…… 어어?”

연습 경기 시작 직후.

리스폰 되어 상대를 경계하며 팀과 합류를 위해 이야기를 주고받던 도중이었다.

서걱 ㅡ.

분명히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앞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뭐지? 맵 특성인가? 중력 반전? 시야 혼란? ……? 아니…… 세상이 빙빙 돈다. 아니, 굴러간다. 아닌가? 왜 저기에 내 몸이 보이지?

“킥…… 우리 팀 승강전 상대랑 비슷한 수준이라더니, 너무 쉽잖아?”

헌터스 리그 속에서 들은 말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말을 들어서야, 내가 헌터스 리그 속에서 순식간에 머리가 잘려 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이게.’

허무했다. 시즌이 끝나고 여러 시간동안 승강전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것들을 하나도 채 보여주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선수 대기실을 보니 나만 죽은 것도 아니었다.

“어……? 혹시 너도?”

“…….”

RIX의 7명이 참가하는 게임에 벌써 대기실에 보이는 선수가 나를 포함한 몇 명.

게임이 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적인 격차였다.

경기장 속을 비춰 주는 TV에서 유혜주는 용케도 살아남은 것인지 분전하는 모습이 비춰졌지만, 그것도 잠시.

“저 새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유혜주가 분전하는 것이 아니라, SMB의 선수들이 워낙 유리한 상황이기에 적당히 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면 너머에서도 유혜주를 공격하는 데 집중하기보단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고 웃으며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젠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 경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

그래서였을까. 경기장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꽤나 밝았던 팀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어두워져 있었다.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 그런 분위기.

‘이렇게…… 차이가 컸나.’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과거, 헌터스 리그를 시청하기만 했을 때에는 1부 리그를 보면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나라면 더 잘 했을 텐데.

분명 그런 생각도 했었을텐데…….

이게 실제로 겪은 2부와 3부의 차이일까. 절망감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렇게 대기실에 정적이 도는 가운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경기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유혜주가 한숨을 푹 쉬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선배들은 뭐 하다 그렇게 빨리 다 죽었어요?”

순수한 의문이 아니라 힐난에 가까운 어조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암울한 RIX의 대기실과는 달리 경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2부 SMB의 대기실은 활기로 가득했다.

“마지막에 봤냐? 유혜주랬나, 그 여자애 쌍욕하고 가는 거.”

“근데 그 정도로 이쁘면 쌍욕해도 인정이긴 해.”

“뭘 인정이야. 킥킥. 근데 욕한 건 아까 우리끼리 한 얘기 들은 거 아니야?”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남자하나 잘 잡아서 결혼해서 꿀이나 빨지, 뭘 아둥바둥 3부리그에서 뛰냐고 했던 거?”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이 어이가 없었는지 웃었다.

“야, 그런 말 들으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니가 잘못했네.”

“근데 내가 틀린 말 했나? 난 진짜 여자 되면 그렇게 할 거임.”

“그래서 그런지 아까 그 여자애 우리 팀 승강전 떨어질 거라고 저주하던데.”

“걔네랑 우리 상대할 팀이랑 수준 비슷하다며. 그럼 더 볼 것도 없는 거 아니야?”

“지니까 짜증나서 홧김에 그런 말 하는 거지.”

평소와 달리 모처럼 긴장감 없는 경기였기 때문인 걸까. 승강전을 치루기 전의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경기도 끝났으니 이젠 슬슬 정리하고 마무리 지어야지.

짝짝 ㅡ.

박수를 치자, 다들 대화를 멈추곤 나를 쳐다봤다.

“음…… 전체적으로 좋아요. 경기 흐름도 대체적으로 예상한 대로였고, 세세한 플레이도 좋았어요. 승강전에서도 이대로만 합시다. 그럼 해산.”

“네, 코치님.”

승강전에 앞선 RIX와 SMB의 연습게임.

아니, 연습게임이랄 것도 없나. 경기시간이 평균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았다.

‘몸 풀기나 시험상대로는 딱 좋았던 것 같긴 해요.’

3부 팀들을 상대하는 2부 팀들은 평소 같은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대가 2부로 바뀌며 새롭게 많은 것이 변하는 헌터스 리그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3부 상대로 잘 먹히는 전술이 따로 있으니까.

2부 하위팀들은 코치나 감독끼리 알음알음 공유하고 있는 승강전 전용의 전술이 몇 가지 있었다.

방금 사용한 것도 그런 종류의 승강전 전용 전술의 일종이었다.

‘일종의 2부 리그 환영인사랄까.’

대기실의 TV를 키자, 방금 RIX와 SMB의 경기 하이라이트가 재생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SMB의 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팀원끼리 합류하려는 움직임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

주변의 기척을 찾는데 완전히 집중한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합류하지 못한 RIX의 팀원을 발견했고, 그 즉시 교전에 돌입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맵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3부 리그는 한타를 유도하기 위해, 시작 리스폰 위치를 팀원들끼리 조금 가깝게 잡아 주기도 하고, 맵도 단순하고 작은 편이라 상대를 피해서 합류하는 게 간단하죠…… 하지만.’

2부의 맵들은 3부와는 달리 컨셉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광활하다.

그리고 리스폰되는 위치도 완전히 랜덤.

그렇기에 2부부터는 게임 진행 자체가 달랐다.

대규모 한타 단계 이전에, 소규모 교전을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화면에는 RIX와 SMB의 산발적이고 작은 교전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 승자는 SMB의 팀원들이었다.

2부에서 있었던 만큼, 1대1 요령이나 개인 기량 자체가 더 높을 뿐더러 팀에서, 1대1을 잘하는 선수를 차출하고, 마나장비 세팅부터가 대인전 전용이었다.

실제로 지금 RIX의 선수가 눈치채지도 못한 상태에서 목이 베여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목을 베어 넘긴 선수는 평소에 주전은 아니지만, 특수 전술에 종종 식스맨으로 투입되는 대인전 특화 전술에 능한 암살자 포지션의 선수였다.

장착한 마나 장비도 순간적으로 폭발적 접근이 가능한 ‘에어 대시’, 기습을 위한 ‘인비저블 클록’, 그리고 최소한의 방어수단인 ‘마나 실드’ 뿐이었다.

그런 소규모 교전의 진행이 끝나자, 결과는 뻔했다. SMB의 팀원만 잔뜩 있고, RIX의 팀원들은 거의 탈락한 상황.

대인전에 특화하느라,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전혀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대가 별로 남지 않았기에 결과는 낙승이었다.

‘역시 김코치님이라니까요. 승강전에서 짬이 있으셔서 그런지 이런 잔머리는 놀랄 수밖에 없네요.

뭐…… 게다가 저 전술만이 아니라 준비해놓은 것도 더 있으니.’

아마 녀석들은 절대로 상상하지 못한 전술, 바로 PER의 투명전술이었다.

‘아무리 준비성이 좋다고 해도, 자기네들이 사용한 전술을 훔쳐서 자기 경기에 들고 오리라고 예상이나 하겠어요? 큭큭.’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 팀이 만든 전략이라, 그 팀에는 안 통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그 전략의 분석 결과, 그 전술을 파훼하기 위해선 맞대응하는 특별한 초능력을 이용하거나 마나장비를 채용하는 등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그 뿐만일까. 이제 고작 2부로 발돋움하려는 팀이 임기응변이 잘 될리도 없었다.

‘설마 전술을 만든 팀에게 사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심리적 허점을 이용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통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한편으로는 어처피 쉽게 이길 3부 팀을 괴롭히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론 기대됐다.

자신들이 만든 그 전술에 예상치 못하게 당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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