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작은 성장의 순간
이연주에게 헌터 서바이벌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이어지는 ‘헌터 서바이벌’에 절로 한숨이 지어졌다.
나름 잘 해내고 있는 팀원도 있는데…… 난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있는데, 나는 못한다는 무력감.
그리고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가진 스킬이라고는 위치측정 능력과 원거리 속박뿐.
‘솔직히 이 팀에 오지 않았으면 3부에서 존재감 없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이번만 해도 그랬다. 창현이는 ‘헌터 서바이벌’에만 익숙해져도 승강전 경기의 승산이 꽤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중간 등수도 멀게만 느껴졌다.
‘후…….’
[55명/53등 : 이연주[3부, PER]]
눈앞에 뜨는 등수를 보니 더더욱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사실 지금껏 팀에서 승승장구한 것도 다 창현이 덕이었는데…….
그렇게 침울해져 대기실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때에,
“졸려?”
갑자기 들려온 창현이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근데 왜…….”
“왜긴 왜야. 쟤들은 이미 끝났어. 이제 연주 씨 차례야.”
이창현이 손짓한 곳에는 이미 이창현과 1대1 교습을 끝마친 PER의 팀원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순진하게 시끌벅적 떠드는 게,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하긴, 저 애들의 초능력은 나름 쓸만하고, 전투능력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나와는 다르겠지…….
“왜 그래? 진짜 졸려?”
“아…… 아녜요. 가요.”
팀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한 켠의 불안감.
그리고 객관적으로 쓸모가 모호한 초능력이라는 죄책감.
그런 짐들을 뒤로하고, 이창현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마음대로 연습시설을 조정할 수 있는 커스텀 룸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연습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이창현이 뚫어져라 쳐다볼 뿐.
그러다 불현듯 이창현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진지해졌는지, 갑작스레 존댓말이었다.
“경기를 할 때, 제일 하면 안 되는 게 뭔지 알아요?”
“글쎄……. 실수?”
오늘 헌터 서바이벌에서는 실수만 한가득이었다.
유물을 먼저 선점하는 데 실패했고, 상대와의 싸움에서 발을 헛디뎠으며, 도망가다가 쉽사리 죽었다.
그리고 이창현은 묵묵히 그것을 모두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창현은 그렇게 생각하리라.
스스로의 한심스러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그 말에 이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실수가 아니라, 실수를 두려워하는 겁니다. 두려워하면 시도하지 않게 되니까. 진짜 두려워해야 할 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거죠. 설령 진짜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까지도.”
“…… .”
“유물 선점에 실패하면, 가지지 못한 유물을 하다못해 부수고, 사용을 방해해야하고. 상대의 싸움에서 발을 헛디뎌 쓰러졌다면, 눈앞의 발목이라도 잡아 부러뜨리는 겁니다.”
이창현이 평소와는 다르게 똑바른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저 투쟁하라는 듯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런 진지한 분위기도 잠시였다. 이창현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물론 실수도 하면 안 되죠. 그러니까 실수를 안 할 때까지 시도하면 됩니다.”
“……?”
***
헉……헉……..
이창현과의 1대1 교습이 시작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입에서 거칠게 숨이 내쉬어졌다.
그야말로 생각도 채 할 수 없도록,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단련이었다.
훈련방식은 단순했다. 다양한 맵과 유물이 있는 장소에서, 이연주는 임의로 정한 합류장소까지 무사히 도달할 것.
이창현은 그걸 막는 쪽이었다.
한 번은, 이창현이 멀리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합류장소까지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몸을 꿰뚫었고, 그대로 게임은 종료였다.
“하나, 원거리에서 적이 감지될 때, 혹은 상대팀에 원거리 딜러가 있을 때 저격 가능한 지점을 항상 의식하면서 이동하거나, 저격이 불가한 경로로 이동할 것.”
쓰러진 이연주를 뒤로 이창현이 조언을 하고 떠났다. 바로 시작된 다음 게임.
그 게임에서 이연주는 이창현의 말을 기억했다.
‘맞아…… 창현이는 총을 쓰니까 원거리 딜러를 의식…….’
그런데 이번에는 리스폰 위치가 좋지 않았던 걸까.
이창현이 먼저 합류장소 주위에서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순찰하는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마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합류 포인트는 꽤 크기가 있었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 장소 안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진입하기 위해 저격 포인트를 의식하며 달리기 시작했을 때, 이창현은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이용해 하늘을 날듯 접근하여 이연주를 베었다.
“둘, 근거리 딜러는 상위리그로 갈수록 뛰어난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다. 멀리 있다고 방심하지 말 것.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대놓고 목표를 지키고 있을 때는, 직접 목표를 노리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유물을 찾는 등 대항 수단을 찾는 것을 우선할 것.”
……그렇게 연습이 계속 이어졌다. 죽을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조언을 들었고, 그 조언을 최대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언제는 저격수로, 언제는 근거리 딜러로, 언제는 암살자로…… 한 가지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식에서 공략하다보니,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무지 익숙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연습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이창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연주에게 말했다.
“이만하면 됐나. 다시 한 번 헌터 서바이벌을 해보자.”
솔직히 지금 다시 하더라도 아까랑 비슷한 결과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연주는 암울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아까 이창현이 1대1 연습 전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싸움에서 발을 헛디뎌 쓰러졌다면, 눈앞의 발목이라도 잡아 부러뜨리라던 말이.
‘솔직히 잘 모르겠어……그래도…….’
그래도. 다시 한 번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헌터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맵은 전혀 모르는 곳.
눈이 한가득 쏟아져, 절벽과 이어진 다리. 특이하게 생긴 사당이 있는 묘한 분위기의 지역이었다.
우선 시작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리고, 리스폰되어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위치특정 : B-]
마나에 기반한 위치 추적능력이기에, 마나가 깃든 유물의 경우에도 해당될 거라는 이창현의 말에 먼저 유물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유물을 찾는 데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유물의 마나가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저 근방엔 분명, 몇 분 전만 해도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창현과의 1대1 교습에서 암살당했을 때의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 분명 마나를, 기척을 숨기는 상대를 대처하는 방법을 말해 줬었다.
유물 근처에는 대놓고 상대를 죽이기 위해 매복하는 녀석들이 있으니, 항상 유물을 얻기 전에 그 주변에 사람이 있었는지 고민해 보라고.
그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역시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얻을 수 있는 유물을 찾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그 유물에 접근하던 사람이 한 명 사라지고, 한 명이 갑자기 생겨났다.
‘역시나 매복이…….’
그리고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이 없었던 곳에 가니. 유물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롱기누스의 창 : 창에 찔린 대상은 반드시 즉사합니다]
다행히 공격형 유물이었다. 운이 좋았다.
‘이거라면…….’
어쩌면 이번에는 조금은 높은 순위를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에게 먼저 접근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다만 눈 속에 숨어서 점점 좁아드는 맵 가운데, 상대의 위치를 특정하며 상대가 오길 기다릴 뿐.
“근접 딜러들은 기본적으로 몸이 날래고, 정말 빠르니까. 당연히 정면승부는 승산이 없을 거야. 유물이 없다면 애초에 위치를 들키지 않게 도망가고, 있다면……”
이창현의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것 같았다.
‘있다면 상대를 기다렸다가 완벽한 타이밍에 [속박 : A+] 후 한 번에 절명시킨다.’
눈 속에 숨은 채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그리고 상대방이 움직이는 속도, 방향을 완벽히 고려한 채, 초능력을 발동시켰다. [속박 : A+].
“읏……? 뭐, 뭐야?”
눈 밖에서 상대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는 바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눈 밖으로 나가는 순간 후회했다. 떠올려 보면, 이창현과의 1대1 중에는 그가 속박당한 연기를 해서 페이크를 친 적이 꽤나 많았기에.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대는 이창현이 아니었다.
상대는 완벽히 예상한 위치에 속박스킬로 꽁꽁 묶여 있었다.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창현이랑 연습할 때보단 훨씬 쉬워…….’
이게 훈련의 성과인 걸까.
이렇게밖에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한 편으론 내가 성장했다는 걸 자각했기에.
얼굴에 작게 웃음이 스며 나왔다.
망설임은 없었다. 상대를 창으로 찔렀다.
동시에 지금껏 참아 왔던 숨을 내쉬고, 들이마신다.
하아…… 하아…….
온 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다.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붉게 상기된 볼.
포근하면서도 차가운 공기의 내음.
순간적으로 이 순간이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리라고 짐작했다.
그게 지금껏 팀이 전승을 하는 가운데서도 킬 한 번 올려 본 적 없는, 나의 첫 킬이었으니까.
***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PER의 팀원은 이창현에게 달달 볶여 가며 죽고, 무언가 깨닫기를 반복했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계속 ‘헌터 서바이벌’을 했으니까.
심지어 팀원들 사이에서 헌터스 리그 연습을 지금처럼 소홀히 해도 되나?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조차 사그라들게 하는 건 PER팀원들의 ‘헌터 서바이벌’순위의 압도적 상승이었다.
‘창현이가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48명 / 8등 : 이연주[3부, PER]]
윤한결은 다른 팀원들은 몰라도 이연주는 죽어도 10등 이내로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돌파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물론 아직 헌터 서바이벌 랭크가 높은 건 아니지만, 뒤에서 세던 게 훨씬 빠르던 일주일 전과는 수준이 다른 파격적인 성장이었다.
게다가 성장은 이연주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창현과의 1대1 교습 시에, 이창현이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다양한 무기와 포지션, 상황과 맵을 상정해 습격했기 때문일까.
PER의 팀원들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완전히 새롭거나 예상하지 못했다 싶은 상황은 많이 없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면 매 번 새로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도 큰 틀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은 반드시 있었다.
마치 이창현이 팀원들의 머릿속에 메뉴얼 북을 박아 놓은 것 같았다.
윤한결이 눈앞에 보고 있는 PER 팀원들의 헌터 서바이벌 평균 순위 차트를 보면 그것이 더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그래, 이게 우리 팀이지. 이게 우리 팀 주장이고.’
윤한결의 얼굴에 웃음이 솟아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다.
‘근데 창현이는 어떻게 그렇게 대처요령을 잘 알지……? 지금껏 3부 경기랑은 결이 많이 다른데…… 전략도 그렇고 게임 자체도 그렇고…… 하여간 우리 주장, 머리 하나는 엄청 좋다니까.’
헌터 서울 시립 아카데미를 비롯한 지금껏 만난 코치와 감독들과도 수준이 다른 노하우와 이해 능력에, 윤한결은 역시 이 팀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