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72화 (72/270)

072. 집중 연습

“그렇게 개같이 못해도, 왜 늬들 정도는 충분히 이길 것 같지?”

“아니 뭐 기껏해야 이제 막 3부 된 새끼가……”

“야…… 야. 가자 그냥.”

한 녀석이 내 눈치를 보는지, 화를 내려는 녀석을 말렸다.

하지만 그 녀석은 진짜로 화났는지 씩씩거리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물러나는 듯 싶다가 뒤돌아서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제 막 데뷔해서 연승하니까 계속 승승장구할 것 같지? 쯧. 근데 어쩌냐. 더 이기기는커녕 2부에 올라오지도 못할 텐데. 야. 가자.”

대답하려는 찰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뭐…… 더 상대해 줬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적당하게만 말하고 내뺀 걸 보면, 1대1로는 나한테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이렇게 시비를 걸면 헌터들끼리는 한 번 부딪혀 보기 마련인데.

선빵 맞고도 빼는 걸 보면 백퍼센트다.

하여간 뭣도 없는 애들이 제일 시끄럽다니까.

한편으론 내빼는 녀석들을 보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고작 2부를 노려 보는 위치인데, 그래도 나름 유명해진 것 같기도.’

아니면 썩어도 준치라고, 2부 정도의 수준은 되는지 상대와 자신의 격차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그건 그렇고, 사실 기분 나쁘긴 해도 쟤네 말이 전체적으로 크게 틀리진 않았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PER의 전력이나 오늘 ‘헌터 서바이벌’에서 관찰한 팀원들의 플레이를 보면…….

내가 녀석들을 개인으로 이기는 건 쉬워도, 우리 팀이 저 녀석들의 팀을 이기기는 척 봐도 어려워 보였다.

마침 화면 너머로 이연주의 헌터 서바이벌 화면이 비추어졌다.

‘이연주는 특히나 힘들겠지…….’

상대를 저격하기 위해 위치를 알려 주고, 원거리에서 상대를 속박하는 후위의 서포터.

저런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꽤나 머리를 잘 굴려야 할 것이다.

이연주도 자신이 대인전에서 약하다는 걸 알았기에, 위치파악 능력으로 상대가 없는 곳을 찾아가며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유물’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에 있던 옹이구멍 속에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구멍 속에 손을 넣었지만…….

푸슉 ㅡ.

구멍 속에 손을 넣은 그 순간.

갑작스레 이연주의 뒷편에 있던 풀숲이 어그러지며 인영이 나타나, 이연주의 등 뒤를 찔렀다.

“……!”

이연주는 한 마디 내뱉지도 못한 채로 그대로 아웃.

‘많이 당황했겠지.’

특히나 지금껏 다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습격이나 암살이란 걸 당해 본 적이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건 3부 리그에 제한된 상황에서나 그런 것이고 이제 더 위를 향하는 만큼 ‘절대적인 것’이라는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다양한 능력을 지닌 탑의 산물. ‘유물’이나 혹은 맵에서 일어나는 ‘특이현상’ 혹은 ‘초능력의 상성’에 따라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상황이 손쉽게 뒤집어지니까.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너무 약했던 탓도 있지만.’

만약 저 사람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저 자리에 나. 아니, 하다못해 윤한결이 있었더라도 저리 쉽게 암살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지금껏 우리 팀은 개개인의 약함과 미숙함을 가리기 위해 팀 단위의 특별한 전술이나 호흡 위주로 싸웠지만, 이젠 그것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다.

막말로 우리 팀이 한타 전술을 선호한다는 걸 안 시점에서, 시작하자마자 상대가 각개격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컸다.

3부에서야 이연주의 능력으로 상대를 피해가며 합류했지만, 방금 헌터 서바이벌에서 본 것처럼 이젠 완벽히 통하기는 힘들 것이다.

즉, 이제 앞으로의 경기에선 각자 최소한의 개인기량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위한 최소한의 연습이 ‘헌터 서바이벌’이었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전체가 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긴 하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좁아지고 있는 맵에서 PER의 팀원들은 대부분 초장부터 탈락했지만, 남아 있는 사람도 몇 있었다.

초장부터 맵의 정중앙에 안착해, 중력능력으로 빠르게 구덩이를 파 감쪽같이 숨어 있는 한지수.

그리고 상위 리그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딸리지 않는 개인 무력을 기반으로 헤쳐 나가는 윤한결. 두 명이었다.

물론 그 둘도 PER의 팀원 중에서 잘했을 뿐,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탈락했다.

여러 자루의 검을 날려 대인전투를 하던 윤한결은 너무 요란하게 싸운 나머지, 다수의 이목이 집중되어 다굴당해 아웃.

한지수는 숨은 걸 눈치챈 상대 탐색가가 구덩이에 넣은 마나봄버로 아웃.

‘뭐, 자기 나름대로 좋은 전술로 잘 싸웠다고 생각했겠지만…….’

워낙 별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 헌터 서바이벌, 헌터스 리그에서는 아주 쉽게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쉽게 간파당해 아웃당한 것이었다.

일단은 이 정도인가.

헌터 서바이벌 한 판으로 대부분의 멤버의 개선점,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

‘헌터 서바이벌’ 한 판이 끝난 후. 다시금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이 시끌벅적해졌다.

‘헌터 서바이벌도 정규리그가 없을 뿐, 랭크 점수 제도를 가지고 상위 선수들의 경기는 송출되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화제성도 꽤나 높았다.

“지금껏 창현이한테 그렇게 많이 배워 놓고, 광탈하냐?”

윤한결이 김도준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로 김도준은 헌터 서바이벌에서도 빛나는 검을 번쩍이다, 저격당해 순식간에 탈락했다.

“그건 비겁하게 저격한 원거리 딜러 놈 때문에 그렇지. 그렇게 졸렬하게 하는 놈이 있을 줄 알았나.”

뭐…… 솔직히 말해 윤한결이나 김도준이나 죽은 이유는 똑같았기에 내 눈으로 보기엔 도찐개찐이었다.

그래도 대놓고 번쩍이는 김도준보다는 여러 개의 검으로 싸우다 보면 필연적으로 화려해질 수밖에 없는 윤한결이 조금 낫다는 정도의 차이일까.

“아무튼, 이제 한 번 해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대충 알았을 거야. 승강전을 포함해서 2부 경기부터는 ‘모이는 것’ 자체부터가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아.”

“지금까지처럼 연주가 위치 프리핑 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 의문에 이연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방금 헌터 서바이벌로 느꼈겠지.

“그게 실은…… 전에도 조금씩 느꼈지만, 유물이나 스킬로 은신하는 경우에는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건 확실히 문제겠네.”

지금까지처럼 강점이 있는 팀 단위 전술이나, 깜짝 전략을 사용하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암살포지션이나 각개격파 전략으로 오는 상대에게는 뭣도 못해본 채로 팔 다리가 잘려 나가겠지.

“그래서 어떻게 하게?”

“아직 모르겠어? 생존연습이지.”

그 말을 듣고서야 PER의 팀원들이 내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은 모양이었다. 방금 헌터 서바이벌을 한 이유도.

그리고, 앞으로의 연습 방향성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랑 1대1로 대인 생존연습을 할 거야. 그 시간 동안 나머지는 헌터 서바이벌에서 최후 생존자가 되는 연습을 하는 거고.”

그렇다. 헤쳐 나갈 방법은 간단하다.

나를 상대로 연습해서 어느 정도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된다면, 2부 리그의 그 녀석들 상대로는 그거보단 더 버텨 주겠지.

***

PER의 코치…… 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창현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이종규는 헌터협회 협회장 이근택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회상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바뀐 팀 연습 메뉴얼. PER팀원들의 헌터 서바이벌. 그리고 이창현의 1대1 개인 레슨……

주로 랜덤으로 지정된 다양한 맵에서 이창현에게서 살아남아 지정 포인트까지 생존하여 도망가는 연습이었다.

“이런 연습이…… 효과가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끌끌…… 헌터 서바이벌이라. 재미있는 선택이군.”

“생존 연습은 된다지만, 결국 헌터 서바이벌은 헌터스 리그와 본질적으로 다른 게임인 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근택의 고개를 들자, 눈에서 안광이 슬쩍 비춰졌다.

순간적으로 위압된 이종규는 잠시 말문이 막혔고, 이근택이 그 사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헌터스 리그와 헌터 서바이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실제로 각 경기에서 상위권으로 활약하는 선수들도 다르고. 유리한 초능력도. 사용되는 전술도 꽤 차이가 있어.”

“그런데 왜…….”

그 말이 나오자 이근택이 껄껄 웃었다. 이종규로서는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자네는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구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외형적이고 세세한 전술은 결국 한끝차이를 가를 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그런 세세한 전술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그게 뭐가 있겠는가.”

“음…… 그런 부분이라고 하면 역시 초능력 아닐까요. 초능력에 따라 전투양상도 많이 변하고, 전술도 변하니까.”

“아니, 더 원초적인 부분.”

“그럼…… 전투기술?”

이근택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뭐.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 있지. 헌터스 리그는 결국 상대를 쓰러뜨리는 경기. 맵도, 초능력도, 유물의 사용도. 모두 그걸 위함이야.

그렇다면 이 게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건, 자신의 공격을 맞추고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네.”

그 말을 들은 이종규는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뭐 그런 당연한 말을……

다 맞추고 다 피하면 당연히 이기지. 그런 말을 하려고 이리 떡밥을 까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기본기. 일종의 기본기, 기본 체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런 시점에서 다시 헌터 서바이벌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어떤가.”

‘……!’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이종규는 머리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팀이 가장 취약한 부분은 팀이 모두 모이기 전. 각자가 상대를 돌파해 팀원과 합류해야 하는 부분.

그리고 헌터 서바이벌에서 연습하게 되는 부분은 정확히 ‘팀원과 모이기 전의 단계의 헌터스 리그’과 다름이 없다.

그뿐만일까, 그로인해 각자의 기량이 향상되어 상대의 위협적인 공격을 선별해 더 잘 피하는 생존 능력이 향상된다면 단연 팀으로서의 체급에도 악영향이 있을 리 없다.

아니, 오히려 약점만을 직접적으로 연습하기에 헌터스 리그 연습경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신인에 불과한 녀석이 다양한 종목을 활용해서 근본적 전투 감각을 일깨우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승강전 경기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어.”

이근택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자신이, 3부 팀 PER을 소유하고서도 제대로 키우지 않았던 이유.

그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3부 선수들을 데리고 상위 리그로 승급시키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근 5년간 승강전에서 하위리그가 이긴 적이 없었지. 자…… 그래서 어떠냐. 이창현.

네 녀석은 나마저 포기했던 팀 승급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3부에 주저앉을 테냐.’

아무래도 당분간은 심심할 일이 없을 듯 했다.

어디, 한번 보자꾸나.

이근택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