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71화 (71/270)

071. 우리 애들은 욕해도 내가 욕해

최악.

이거만큼 감독으로서 현재 상황에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 같았다.

팀 순위는 뒤에서 2등이라 2-3부 승강전에 참여해야 하지.

에이스 팀원들은 벌써부터 팀 옮기려고 다른 곳 계약조건 알아보고 있지.

‘전체적으로 개판이네.’

아무리 승강전은 대충 해도 2부가 지는 경우가 손에 꼽는다고 해도, 다음 시즌을 생각했을 때 너무 안 좋았다.

“아. 맞다. 감독님 이거 보셨어요?”

코치가 건넨 자료파일은 다름 아닌 1부 LTD의 어제 자 경기였다. 넛튜브 하이라이트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던 그 경기.

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대충 알 정도로 화제인 경기였다.

“대충은 뭐…… 알지. 근데 왜 그걸? 우리 승강전 경기하는 데 그거라도 쓰자고? 애들 의욕이 바닥을 치는데 잘도 새로운 거 하자고 하면 하겠다.”

“아니 감독님 그게 아니라요, LTD 감독 인터뷰에 떴는데 저 전술 만든 원조가 저희 승강전 상대인 3부 리그 팀이래요.”

“……?”

3부 리그면 이제 막 헌터스 리그에 발을 들이민 신삥들일 텐데. 이런 전술을 썼다고?

의아함도 잠시,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전체적으로 팀 상황이 엉망이어도, 3부 리그는 2부 리그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승강전은 대충 준비해서 끝내고, 시즌을 마무리한 후, 팀원들 계약 관리, 그리고 유망주 영입이나 새 시즌에 쓸 전술을 배우는 데 시간을 써야 하는데…….

승강전에도 저런 새로운 전술을 개발해 온다면 꽤나 피곤한 일이 되리라.

“어떤 팀인데. 그냥 우연히 여러 가지 만지작거리다 발견한 거 아니야?”

저 전술뿐이라면 대응책을 준비 못할 것도 없었다.

저런 건 깜짝 전술로 나올 때나 무서운 거지. 만반의 준비를 하면 대처 못할 것도 없으니까.

“그게요…… 그건 또 아닌 것 같긴 해요. 혹시 몰라 영상을 좀 찾아보니까, 얘네 좀 이상한 거 많이 하더라구요.”

코치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둔 전력 분석 파일과 영상을 건넸다.

“음…… 확실히 특이한 게 많긴 하네.”

한타의 전술적 다양성은 솔직히 말해 놀라울 정도다.

그래도 대부분 넛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빛나는 검과 인비저블 클록의 콤보 정도로 강력하진 않았다.

‘후…… 다행이네.’

그 정도로 치명적인 전술이 하나만 더 있었더라도, 꽤나 승강전 준비에 시간을 들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기 영상을 보니 그런 불안이 다행히도 싹 사라졌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애들한테 경각심도 적당히 생기겠고, 평소처럼 가도 될 것 같네.”

“음…… 그런가요? 제가 걱정이 좀 심했나 봐요. 뭐 그래도 준비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제가 애들 모아서 연습 경기라도 좀 잡아 놓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 그럼.”

코치가 감독실을 나간 후 적막감에, 다시금 아까 건넸던 그 3부 리그…… PER이랬나? 그 팀의 경기 영상을 틀어 놓았다.

‘뭐…… 꽤 잘 하긴 하네.’

하지만 역시, 어떤 영상을 봐도 승강전에서 위협적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3부에서야 기껏해야 할 게 싸움밖에 없으니 한타 전술을 영리하게 쓰는 건 당연했다.

진짜 헌터스 리그의 시작이라고 하는 2부에서는 ‘맵과 지형’의 변수나, 새롭게 등장하는 ‘파밍 과정’의 변수. ‘중립몬스터의 위협’으로 인한 변수…….

솔직히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괜히 5년인가? 3부에서 2부로 승격한 팀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니까. 뭐, 올해도 승강전보다 애들 단속에 집중해야겠네.’

다시 생각해도 9등으로 떨어지니까 더 좋은 팀 알아보겠다고 난리치는 녀석들 때문에 피곤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승강전 일정이 잡혔다.

‘2주일 후라……’

평소랑 크게 차이는 없지만 역시나. 준비해야 하는 것들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왜 그래? 2주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야? 2부 애들도 일주일에 4번 정도는 경기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걔네들과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분량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2부와 3부는 거의 다른 게임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있었으므로.

3부와 같이 헌터끼리 일어나는 한타와 교전도 핵심적이긴 하지만, 변수를 일으키는 요소가 훨씬 더 많았다.

그걸 이미 어느 정도 익히고 있는 2부 리그 선수와 3부 리그 선수는 솔직히 그 유불리가 매우 심하게 갈렸다.

‘생각해 보면 회귀 전에도 승강전에 1-2부 승강전은 물론이고 2-3부 승강전도 아래 리그 팀이 올라가는 꼴을 못 본 것 같은데.’

당연히 내가 거쳤던 3부 리그 팀도 2부 리그 팀과의 승강전에 이기지 못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승강전을 거치지 않고, 상위 리그 팀에 콜업을 받아 팀을 옮겼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승강전으로 팀 전체가 2부나 1부로 올라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팀 상황은 활기차다 못해 어지러운 상태였다

“야 김도준, 나도 너처럼 빛나는 거 하나 마련했다.”

“쯧쯔…… 그냥 무지성으로 쓴다고 될 것 같냐?”

“응 너보다 내가 쓰는 게 훨씬 나아~.”

서로 눈뽕을 한다고 뒤에서 번쩍번쩍 난리법석도 아닌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그래도 그나마 생각이란 걸 좀 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야? 맵 공부만 좀 하고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결국 다 싸움 이기면 이기는 건데.”

처음엔 패배에 찌들어 있던 이길한도 3부 리그에서 전승해서 자신감이 좀 생겼는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근데 대체 맵 종류가 몇 가지인지는 알고 저런 말을 하는걸까? 헌터스 리그 맵은 단순히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될 분량이 아닌데.

“맞아. 창현아. 너무 걱정하는 거 같다.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준비하면 별 문제 없을 듯?”

무한한 승리의 신뢰를 가지고 있는 윤한결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긴. 2부 리그나 승강전을 겪어 본 적 없으니 걱정이 없을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이라도 겪어 봤으면 정신이라도 확 깰 텐데.

심지어 평소 김도준이나 윤한결, 한지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름 다양한 맵과 전술을 겪어서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진짜 헌터스 리그에 비빌 수는 없지…….’

일단 지금같이 일방적으로 낙관하는 상황에서는 직접 그 차이를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뭐…… 그래…… 아무리 내가 말해 봤자 늬들이 뭘 알겠냐. 일단 가자. 가서 경기장에서 두들겨 맞아 봐야 정신 차리지.”

내가 이 말을 하는 도중에도 지들끼리 번쩍번쩍거리면서 맞다이를 하고 있는 김도준이나…… 다른 녀석들이나.

이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가긴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얘들을 2주 안에 개조할 수 있을까……?

***

오랜만에 다시 찾은 헌터 연합훈련소였다. 사실 시즌 중에는 다양한 시설을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보통 자기랑 같은 수준의 리그 팀이랑 연습경기를 하느라 대부분 경기장만 사용하니까.

개인연습이 필요하거나, 시간이 좀 남는 녀석들이 랭킹전을 하거나, 따로 특별한 연습을 하지 않는 이상.

매일 쓰는 시설은 거의 비슷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오늘 PER의 팀원을 데리고 찾은 곳은 헌터 연합훈련소의 드넓은 홀이 위치한 대기실.

‘헌터 서바이벌…… 이건 회귀하고서는 처음인가.’

일반인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 있지만 헌터스 리그 정규리그로 편성되어 있지 않은 종목이기에 과거에도 한 적이 많지는 않았다.

정규리그로 편성된 헌터스 리그 프로그램은 개인전이 아예 없고, 서바이벌조차 3인1조로 편성되기에, 대다수의 선수는 이런 개인전은 겪을 일이 많지 않았다.

“에……? 오늘 팀 연습 하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웬 헌터 서바이벌?”

“맞아. 우리가 부족한 건 맵이나 전술…… 뭐 그런 부분 아니었어?”

몇몇 팀원이 의문을 제기했다.

뭐, 사실 대부분 합당한 질문이었다. 근데 바로 몸소 체감할 텐데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

“글쎄. 한 번 몸으로 직접 느껴 봐.”

우선은 지금 3부에서 승승장구했다고 자만심이 생겨 버린 녀석들에게 쓴 맛을 보여 줄 작정이었다.

이윽고 나를 제외한 모든 PER의 팀원들이 대기실에서 ‘헌터 서바이벌’ 필드로 소환되었다.

‘뭐 일단 기본적인 룰 자체는 어렵지 않아…….’

처음 시작 시, 원하는 지점을 선택하여 시작 후,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아주 간단한 룰이었다.

하지만 이 직관적인 룰에, 몇 가지 변수를 줄 수 있는 룰들이 추가된다.

싸우지 않고 한 곳에 짱박혀 숨어 있기만 하지 못하도록, 맵은 점점 좁아진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는 “유물”이 숨겨져 있어 그 유물을 찾으면 대인전투에서 큰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즉, 살아남는 것이 최종 목표이면서도, 돌아다니면서 파밍을 했을 때 이점을 주어, 지속적으로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서바이벌을 하도록 만드는 직관적인 게임이다.

뭐…… 그 외에도 탑의 다양한 환경에서 따온 맵이나, 중립몬스터 등등의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그건 결국 이 게임의 본질까지는 되지 못한다.

‘그럼 한 번 잘하고 있나 보기나 할까.’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3부에서 한동안 몸담았던 우리 팀은 2부 리그 팀처럼 맵마다 모조리 전략적 방향성을 미리 짜 두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생존도, 모르는 맵에 대한 대처도, 뜻밖에 만나게 되는 유물 흭득이나 중립몬스터 등에 대한 대처도.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기실에서 한 명 한 명 살펴보려던 찰나,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쟤네 걔네 아닌가?”

“걔네?”

“우리 팀 상대한다던 3부 애들이잖아.”

“그런 것까지 찾아봤냐? 팔자도 좋네. 애들 벌써 연봉 협상부터 다른 팀 조건 얘기하고 그러던데.”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인 양아치같이 생긴 남성이 웃으며 말했다.

“아, 나도 따로 찾아본 건 아니고, 넛튜브에 화제던데. LTD 경기 최근에 화제 된 그거 쟤네 전술 따온 거라며. 그래서 넛튜브 렉카 보고 알았어.”

“아…… 그거? 근데 3부 애들인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 그런 건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

“그건 그래. 근데 쟤네들 진짜 개못하네.”

화면 너머로 이길한이 상대 헌터에게 쪽도 써 보지 못하고 갈려 나가고 있었다.

이길한이 상대를 똑바로 직시하고, 돌진해 보았지만 날렵한 상대 헌터는 마치 투우사처럼 현란한 몸놀림을 보이며 뒤를 잡아 한번에 썰어버렸다.

뭐, 헌터스 리그와는 다르게 저긴 3부뿐 아니라 2부, 1부 선수까지 섞여 있으니 개인 기량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내 앞에서 우리 애들을 욕해?’

아무리 X밥이고 개같이 못하지만, 그래도 한국 헌터스 리그에서 역사를 썼던 내가 가르쳤던 애들인데?

“확실히 개같이 못하긴 하네요.”

갑작스런 말에 내가 있는지 모르고 대화하던 2부 리그의 녀석들이 날 쳐다보았다.

“…….”

얘가 누구지? 하는 멍청한 표정.

“…….”

그 표정이 찡그려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는 걸 보니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

“근데.”

“그렇게 개같이 못해도, 왜 늬들 정도는 충분히 이길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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