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연쇄작용
경기가 끝난 후, 대기실에서는 다른 때에 승리했던 것보다도 훨씬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와…… 개쫄렸네 진짜. 나 옆에서 얘 죽는 거 보고 그냥 그대로 끝장 나는 줄 알았어.”
“그것도 그건데 그냥 방패로 벽 세워 놨는데 거기에 결국 돌진할 때가 더 답 없긴 했음.”
“것도 그래.”
아무래도 평소보다 예측 못한 상황도 많이 나오고 극적인 경기였다 보니 다들 경기가 끝났음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도 단연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사람이 있었으니…….
“야. 봤냐?”
김도준은 남이 칭찬해 주기도 전에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는 대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휴…….’
내가 칭찬해 준 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나. 뭐, 그래도 팀원들도 녀석의 자기자랑에 질색을 하면서도 곧잘 받아 줬다.
어찌되었건 이번 경기는 김도준이 아니었으면 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맞았으니까.
더해서 다들 계속 연승을 이어 가는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맞았다.
“야 그건 그렇고 갑자기 사라졌던 건 어떻게 했던 거냐?”
“그게 다 방법이 있지. 애초에 처음부터 다 그거 계산해서 빛나는 검부터 커스터마이징 한 거야. 설계 몰라?”
“설계는 무슨~ 너 저번에 셋이서 돌진할 때 너 때문에 팀원 다 눈뽕와서 싸움 못 했던 거 생각 안 나냐?”
윤한결의 혀를 차는 딴지에 대기실에 너나 할 것 없는 웃음보가 터졌다.
김도준도 그건 반박을 못하겠는지, 약간은 포기했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건 내 실수인 거 인정.”
애써 쿨하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팀원들의 딴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미리 설계했으면 저번에 전술회의 했을 때 당연히 말했지. 솔직히 우연히 안 거 아니냐?”
“아니 뭘 우연히 알아~ 마나장비는 경기 시작 전에 정비하고 들어가는 거 몰라?”
“아니면 더 악질이네 이거~. 자기 돋보일려고 지금 팀한테도 숨기고 마지막에 어?? 혼자 캐리해서 영웅행세 하려고.”
상황이 우습게도 어느 샌가 가장 활약한 김도준이 팀원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
심지어는 표정도 잘 안 드러내는 이연주가 이 상황은 우스웠는지 고개를 돌리곤 풉. 하고 웃고 있었다.
‘아주 가관이구만.’
그렇게 쾌활한 팀 분위기를 이어 가는 가운데,
똑똑 ㅡ .
대기실 문을 열고 스태프가 들어왔다.
“오늘 경기 MVP 김도준 선수님 인터뷰 준비해 주세요~.”
그 말 한마디에 김도준은 대기실을 나서며, 자신에게 집중포화를 날리던 팀원들에게 썩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갔다.
‘뭐, 좋은 날이니까 저렇게 놔도 괜찮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들 대기실에서 인터뷰룸으로 간 김도준이 비춰지는 TV를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TV속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캐스터 : 네 그럼, 오늘 단독 MVP를 받으신 김도준 선수~ 모셨습니다!]
[캐스터 : 네. 오늘 RIX와 PER의 경기. 최근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는 루키들의 팀으로 화제를 많이 모았는데요. 김도준 선수. 오늘 어떠셨나요?]
[김도준 :오늘은 뭐……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김도준이 한쪽 입꼬리를 슥 올리며 웃었다. 나름 자신 있게 웃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 쟤 저렇게 웃는 거 좀 웃기지 않나? 너무 관중을 의식하는 가식적인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한지수의 딴지에 윤한결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진 나지막이 웃는 정도였는데……
[캐스터 : 정확히 어떤 부분이 좋으셨을까요?]
[김도준 : 음…… 경기를 제가 “캐리”한 부분이랄까요?]
이 “캐리”를 힘줘서 말하는 대목에선 팀원들이 급기야 폭소하기에 이르렀다.
캐리를 강조해서 말하는 것도 그런데, 대답을 저런 식으로 하리라곤 생각치도 못했으니까.
“아니 쟤 저거 평소에 똥만 싸다가 캐리 한번 하니까 기고만장해져가지고는…… 저거 저렇게 두면 안 된다니까?”
한지수가 어이가 없는 듯 웃다 말고 혀를 차며 말했다.
[캐스터 : 맞아요. 오늘 도준 선수의 플레이가 커뮤니티에서도 굉장한 화제가 되었는데요.
사실 헌터스 리그라는 경기가 꽤 역사가 있음에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거든요.
3부 리그임에도 일종의 새로운 전술이잖아요?
빛나는 검을 이용해서 선글라스의 사용을 유도하고, 인비저블 클록의 단점을 가리는 전술.
혹시 팀에서 처음부터 설계하신 부분일까요?]
[김도준 : 팀…… 팀이요? 그럴 리가요. 저희 감독. 흠. 창현이도 좀 하지만, 이건 제 “오리지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캐스터 : 아아…… 그렇군요. 지금껏 PER에서는 이창현 선수와 윤한결 선수가 가장 많은 화제를 끌어 모았는데 이제는 김도준 선수의 활약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캐스터가 어찌저찌 수습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김도준이 그러면 그렇지 뭐…….’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인터뷰 하는 거나, 정체성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어쩜 이리 한결같은지.
인터넷에서 올라오는 인터뷰 반응도 가관이었다.
[눈뽕빌런 인터뷰 봄? 지금껏 웃음벨 역할만 하다가 오늘 그냥 물만난 물고기마냥 자기어필하던데 ㅋㅋㅋㅋㅋ]
ㄴ 지금껏 그저 어그로 전용 캐릭터였다는 건 함정 ㅋㅋㅋㅋ
ㄴ 이창현도 좀 하지만 이건 제 “오리지날”이랄까요? (웃음)
ㄴ ㅋㅋㅋㅋㅋㅋ 아니 왜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냐?
이내 화면을 조금 내리다 휴대폰을 꺼 버렸다.
회귀하든 아니든 세상 굴러가는 건 비슷한가 보다.
***
[조연화 : 안녕하세요! 후배 조연화라고 합니다! 리그에서 몇번 뵈었었죠 ㅎㅎ……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이창현이라는 선수를 아시나요? 민솔 선배가 경태 선배님한테 여쭤 보라고 하셔서…….]
[진경태 : 아…… 초면이라고 너무 긴장 안 해도 괜찮아요. 편하게 해요 편하게. 그리고 걔는 아마 이민석 선배님이 키우는 앤데 잘 하더라구요. 뭐, 헌터스 리그 경기는 아니고 1대 1 랭킹전이긴 했는데 타쿠미랑…….
그 문자 이후로 이창현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게 개인적으로 좀 알아본 모양이었다.
뭐 공식전 기록이야 그렇다 치고, 타쿠미까지 실제로 이겼을 줄이야……
진경태에게 문자로 물어보니 조금씩 그 녀석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진경태 : 뭐 능력 같은 것들도 괜찮지만…… 센스나…… 이유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노련한 것 같기도 하고…….]
‘노련하다……?’
듣던 중 약간의 의외의 말이 나왔다. 막 데뷔한 3부 선수한테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헌터스 리그는 괜히 3부로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초능력이 좋더라도. 번뜩이는 천재성이 있더라도, 헌터스 리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이 필수적이다.
3부에는 기본적으로 ‘헌터들 끼리의 전투’에 대한 것을, 2부에서는 ‘맵과 지형 따른 전략과 기타 변수에 대한 대응’에 대한 것을.
1부는 그 모든 것과 더불어 통증과 같은 사실적인 감각까지 추가된다.
아무리 감각이 좋더라도 일정 수준에 오르는 건 반드시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진경태 선배가 직접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어쩌면 녀석도 나처럼 헌터 조기교육을 받았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노련함과 뛰어난 눈썰미, 전략 전술에 대해서 말이 되지 않는다.
조연화가 진경태가 보낸 다른 문자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TV에서는 오늘의 MVP로 선정된 김도준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캐스터 : ……빛나는 검을 이용해서 선글라스의 사용을 유도하고, 인비저블 클록의 단점을 가리는 전술. 혹시 팀에서 처음부터 설계하신 부분일까요?]
[김도준 : …… …… 제 “오리지날”이라고 할까요?…… …….]
‘……! 생각해 보니 오늘 봤던 PER의 경기에서 나온 저 전술도 혹시…….’
말로는 저 김도준이라는 선수가 자기가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저것역시 이창현이 개발했을 거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계 헌터스 리그를 통틀어 처음 나온 전략이었다.
“인비저블 클록”과 “선글라스 착용을 유도하는 전술”로 “은신할 여건을 만들어 내는” 전술.
물론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장비가 워낙 다양하고, 맵의 특성이나 다양한 초능력으로 셀 수 없는 다양한 전술이 튀어나오는 헌터스 리그 판이지만…….
그중에서도 저런 전술은 흔치 않았다.
저건 어떤 초능력이나 맵의 특성을 강제하지도 않았고, 단지 “번쩍인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커스텀이 된 검과, 흔히 기습을 위해 쓰인다고 알려진 “인비저블 클록” 두 가지만 있으면 되니까.
정말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전술이면서도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전술을 저런 신삥 3부 리거가 생각해내? 그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전부터 헌터 조기교육을 받으면서 헌터스 리그를 남모를 스승과 함께 준비했던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그제서야 모든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 녀석도 뛰어난 녀석이지만, 아무래도 그 녀석 뒤에 보이지 않는 뛰어난 스승이나 조력자가 있는 거겠지.
조준호도 뛰어난 헌터이긴 했지만, 세상은 넓은 법.
여기까지 추론해냈기에 오히려 문제는 명료해졌다.
‘이창현을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면 분명, 원하는 성취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남은 문제라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는 건데…….
뭐, 시즌이 끝나고 한국의 모든 헌터가 모이는 파티, [더 헌터스 데이]에서 물어보면 괜찮으리라.
그러면 따로 만나자고 할 필요도 없고.
조준호랑 함께 갈 테니 슬쩍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한다면서 말 걸면 어색하지도 않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조연화였다.
***
PER대 RIX전이 끝나고, 이제 시즌 중에는 2부 승급전만을 남겨 둔 상태. PER의 숙소는 때아닌 소란으로 시끄러워져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몇일 뒤, 다른 요일에 진행된 1부 헌터스 리그 방송에 김도준의 전술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도준과 같은 빛나는 검과 인비저블 코트를 이용한 1부 LTD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캐스터 : 이번 팀 LTD의 전술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굉장히 화제에요.
팀의 에이스, 강준혁 선수가 빛나는 검으로 상대의 고글 착용을 강제하고, 고글을 써서 빛을 차단하자 인비저블 클록으로 은신해 버렸는데요.
혹시 감독님께서 미리 준비해 둔 깜짝 전략일까요?]
[1부 LTD 감독 이진한 : 하하…… 다들 좋아해 주시니 기쁘다는 말씀을 드리구요.
저희 팀은 언제나 그렇듯이 국제리그 뿐 아니라 다양한 경기에서 경기를 차용하는 편입니다.
이번 경우는 한국 3부 리그에서 한 번 등장했었던 전략이구요.]
“도준아 저거 니가 했었던 거 아니냐? 저걸 또 따라하네”
“뭐, 따라할 만하긴 해.”
“근데 따라하면 니 자리 위험한 거 아니냐 김도준?”
따라하기 쉬운 전략인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김도준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게다가 한국 헌터스 리그 판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LTD경기.
이제 헌터스 리그를 하는 다른 모든 팀은 저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했다.
‘상황이 재밌어졌네…….’
어쩌면 승급전에서 이게 꽤 큰 변수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