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김도준
누군가 헌터스 리그의 제일 재미있는 점이 무엇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리 약팀이라도.
혹은 아무리 강팀이라도 무한한 변수에 의해 전황이 언제든지 뒤엎어질 수 있는 변화무쌍함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지금 그 말에 딱 맞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컥…… 커억…….”
거대한 이변은 큰 소리 없이 일어났다.
RIX의 물 샐 틈 없이 단단한 방어진형의 근접 딜러 중 한 명의 심장에 칼로 구멍이 뚫리며 쓰러진 것이었다.
아무리 유혜주의 [성역]이라 한들, 이미 심장에 꽤나 큰 구멍이 뚫려 피가 철철 흐르는 녀석에겐 재생력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이게 대체…….”
“집중해! 진형을 흐트러뜨리지 마!”
RIX의 물 샐 틈 없이 단단했던 방어진형은 한 명이 죽었음에도 단단했지만, 심리적 동요는 겉으로 감출 수 없었다.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RIX보다는 덜했지만, 놀란 건 PER측도 마찬가지였다.
“창현아. 방금 봤어?”
“……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갑작스레 칼이 번뜩이며 나타나 상대를 찌르곤 사라졌다.
그 칼을 찌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외에 대답은 해 줄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팀에 유리한 변수이니 지금 타이밍에 확실하게 상대의 방어진형에 파고들자고 말할 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양측 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랬기에, 전투에 집중하고자 사용하고 있지 않았던 스킬, [꿰뚫는 눈]을 발동시키자 의외의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꿰뚫는 눈]으로 상대의 진형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며 유린하는 것의 정체를 알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랬던 건가.’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빛나는 검으로 자신을 한껏 드러냈던 김도준이, 이번 전장에서는 자신을 감춤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도준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
한편, 경기 밖에서는 시작된 RIX와 PER의 정면 격돌에 대한 엄청난 반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캐스터] : 네. PER에선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결국 정면대결 양상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해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해설위원] : 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정면대결로 가는 건 좋지 않은데요.
PER측은 RIX의 발리스타로 팀원을 몇명 잃기도 했고, 정면대결은 오히려 RIX가 바라는 바거든요!
해설위원은 그 말과 함께, RIX가 정면대결에서 유리한 이유를 랩하듯 쏟아 내었다.
주로 근접딜러로 구성된 대부분의 팀원 비율. 그리고 그것을 서포팅하는 말도 안 되는 효율의 [성역]스킬.
그리고 팀 PER의 적은 전면전 경험 등……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뒤집을 건덕지가 없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 RIX 진형에 이변이 생겨났다.
[캐스터] : 어……! 어! 이게 뭔가요! [성역]버프로 압도적인 재생력 버프가 있는 RIX의 근접딜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방금 그거 뭐죠? 다시 리플레이 보여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플레이.
이번엔 경기 안이 아니라, 무엇이든 볼 수 있는 바깥 카메라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것이기에 무엇이 RIX를 흔들어 놓고 있는지 확연하게 보였다.
[캐스터] : 김도준 선수!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이게 게임 내의 시점에서는 전혀 안 보였거든요?
아마 RIX나 PER 선수의 시점으로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해설위원] : 아…… 음. 우선 보시면 김도준 선수의 의상이 보이십니까?
네. 마나장비 [인비저블 클록]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근데 인비저블 클록은 은신 기능이 있다고 한들, 움직이면 어느 정도 티가 나서 눈치 챌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해설위원도 어이가 없었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해설위원] : 선글라스가…… 선글라스로 인해 미묘한 색변화에 대해 구분능력이 다소 떨어져서 인비저블 클록을 입은 선수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해설위원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RIX는 칼을 갈고 나온 김도준에게 마치 어린아이와 성인의 싸움처럼 유린당하고 있었다.
[눈뽕빌런 개같이 부활 ㅋㅋㅋㅋㅋㅋㅋ]
ㄴ ㄹㅇㅋㅋ 눈뽕 안 당할려고 선글라스 끼니까 인비저블 클록 써서 은신해버리기~
ㄴ 와 근데 저거 완전 가불기 아니냐? 잘 안 보인다고 선글라스 벗으면 다시 검으로 눈뽕할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
ㄴ 와 ㅋㅋ 근데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안 옴.
ㄴ 그러게. 원거리딜러 저격수라도 있었으면 선글라스 벗고서 그냥 김도준 위치에 저격이라도 할텐데. RIX는 발리스타 녀석 빼면 다 근딜이잖아?
ㄴ RIX 개같이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
[캐스터] : 아…… 팀 RIX 완벽히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김도준 선수가 RIX의 진형 한가운데에 파고들어서 도저히 바깥만 보면서 방어할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PER의 팀원들. 이창현과 이길한, 윤한결도 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경이 완벽하게 분산된 RIX인 만큼, 공략이 훨씬 수월해진 틈을 타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한 번은, RIX측에서 선글라스의 맹점을 이용했다는 걸 눈치채고 선글라스를 벗는 시도를 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번쩍 ㅡ.
그런 녀석에겐 어김없이 김도준의 빛나는 검이 응징을 가했다.
***
원래는 게임을 하면서 소리나 채우려고 켜 뒀었는데……
이 경기를 관전하던 김준서는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무언가 탁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시간이나 죽이려고 본 거였는데…… 확실히 기대 이상이였다.
‘아니 헌터스 리그에서 이런 전술을 쓴다고?’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들어온 3부 리그 방송이었는데…… 3부 리그 특성상 한타 외에 전술적 요소도 적어 볼거리가 적은 편이었음에도, 상상외로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1부 리그에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술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경기는 시작부터 꽤나 남다르긴 했다.
날아다니는 검에 마나봄버를 달아 놓고 유도탄처럼 박아 버리는 해설자 왈 ‘폭격기 전술’도 1부의 전술보다 우월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1부에서 보지 못한 개성적인 전술이었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역시 그, 빛나는 검과 인비저블 클록을 입고 나온 녀석.
그 녀석은 놀랍다 못해 진짜 말도 안 되는 것이 참…… 어이없다 못해 그냥 웃겼다.
‘물론 하위 리그라 통하는 거긴 하겠지만 말도 안 되게 재밌네.’
아마 이게 3부 리그가 아니라 1부. 아니, 하다못해 2부만 되더라도, 무언가 대응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 2부 경기는 맵과 중립몬스터를 비롯해 다양한 마나장비 등 변수가 많았기에 선수들이 변수 대응에 아주 능했으니까.
하지만 3부라고 해서. 그들이 대응을 잘 못한다고 해서 재미가 없느냐?
그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X밥 싸움이 더 재미있다고, 오히려 저 나사가 빠진 듯한 전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지금껏 그동안 김준서가 봐왔던 어떤 경기와도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1부 리그의 경기나, 국제 경기의 경우 수준 높은 수 싸움과 치열함이 느껴지는 경기를 본 적도 꽤나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껏 이런 경기는 없었으니까.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경기.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경기의 여운을 느끼고 있던 김준서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이 경기를 혼자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음 짓고는, 지금껏 나온 이창현과 PER의 경기영상을 편집해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냈다.
그리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커뮤니티에 편집된 영상을 올렸다.
[헌터스 리그 3부 리그 레전드 ㅋㅋㅋ.avi]
헌터스 리그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커뮤니티도 그렇고, 헌터스 리그를 보는 팬 대다수가 보통 1부를 관람하는데 그쳤으니, 3부 리그 경기엔 관심이 없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김준서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그냥 단순히 한 명이라도 더 이 재미있다 못해 웃긴 경기를 한 명이라도 더 보고 자신이 느낀 이 재미를 공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이었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이 영상이 그리 큰 파문을 몰고 올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
그 이후는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 경기가 이어졌다.
사실상 보이지 않는 적. 아니 볼 수 없는 적과 싸우는 건 일반적인 3부 리거가 할 수 있는 기예가 아니었으니까.
자기가 이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김도준은 이상한 기합소리를 내면서 검을 찔러 댔고, RIX는 무지막지한 재생력 버프를 받으면서도 쉽사리 그 검을 이겨 낼 수 없었다.
재생력이 아무리 뛰어나봤자, 급소가 당한다면 버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사실상 방패를 든 강한 근접딜러가 다 고기방패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좋은 상황이었으니, 질 리가 없었다.
그렇게 RIX의 히든카드에 휘말려 패배할 뻔한 경기는 PER측에서도 예상 못한 김도준의 활약으로 인해 깔끔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캐스터] : 이렇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던 PER대 RIX전이 결국 혈투 끝에 PER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끝난 후,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3부 리그라고는 해도 팀전이고, 한 번쯤은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정규리그였지만 패배 없이 끝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기도 했다.
예상치 못했던, 한편으로는 혼자서 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팀이었는데, 비록 3부라고는 하지만 어엿하게 혼자 생각해 활약한 김도준을 보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찰나.
옆에서 유독 히죽히죽거리며 웃고 있던 김도준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나를 보곤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뭔 생각하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네…….’
아마, 우쭐거리면서 자기가 한 걸 봤느냐는, 그런 의미겠지. 김도준 녀석이라면 날 좀 더 우러러봐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뭐, 이런 일 한번 겪으면 영웅이 된 기분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런 김도준의 태도에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런 내 태도에도 김도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계속 쳐다봤다.
뭔가 내가 할 말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하…… 그래. 잘했다. 오늘 경기.”
그 말이 나오고서야 김도준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뭐지. 미친놈인가.
하여간 저 녀석은 칭찬을 해 줄래야 칭찬을 해 줄 수가 없는 녀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