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위기 속 기회
당연하지만 헌터스 리그에서 각각의 헌터가 가진 [스킬]의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만으로는 전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지는 못한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만큼, 과거의 경기를 보며 그 스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대응방안을 생각해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종 전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버리는 스킬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스킬은 대게 아주 한정적인 상황에서만 극한의 효율성을 보여 주는 스킬들이었다.
거의 등장하지 않으나 완벽하게 상황이 들어맞을 경우 극한의 이점을 보여 주는 스킬.
거의 등장하지 않기에 상대는 그 스킬의 대응방법을 고려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상황이 갖춰진 상황에서만 사용하기에 일순간 사기적으로까지 보일 효과를 보여 줬다.
‘그게 하필 이번 경기일 줄이야…….’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폭음을 내며 마나봄버를 RIX의 진영에 내리꽂았다.
그렇기에 근접 딜러 셋은 내 손짓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답을 줄 수 없었다.
“……막혔다. 계획은 수정한다.”
[꿰뚫는 눈]으로 인해 먼지구름 너머,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팀 RIX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황금의 모래시계 : S]라…….’
자신을 반경으로 일정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찰나의 시간 동안 정지하며, 동시에 고정불변한다.
즉,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잠깐 동안 무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아마 RIX는 이 스킬로 폭격을 카운터 칠 생각으로 처음부터 일제 폭격을 유인한 모양이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인한 변수조차 주기 싫었기에 아예 대놓고 바깥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겠고.
PER팀원들도 이변을 감지한 것인지 슬쩍 물어왔다.
“폭격이 막히면 어떻게 해? 어차피 전면전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이렇게 된 이상 정면대결은 당장은 피하는 게 좋겠어. 거리를 벌리자.”
그 말이 끝나기게 무섭게, 방진을 짠 RIX의 반격이 이어졌다.
마치 미사일이 날아온 듯한 거대한 충격으로 건물이 흔들렸다.
RIX의 방진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거대한 설치형 원거리 딜러의 무기였다.
마치 중세시대의 공성용 무기인 거대한 석궁, 발리스타와 흡사했다.
‘이번 경기는 산 넘어 산인가.’
압도적 방진과 함께 안에서 쏘아 대는 육중하지만, 기동성 없는 무기의 조합.
알고는 있었지만, 첫 폭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 조합의 무서움이 다시금 느껴졌다.
3부라고는 하더라도 꽤나 짜임새가 느껴지는 한타 전술이었으니까.
“산개하면서 RIX의 방진이랑 최대한 거리를 벌려!”
그렇게 말하면서도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던 머리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빠르게 돌아갔다.
상대의 장점은 뭐고 단점은 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을 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현재 상황으로서 최적의 답일 뿐, 평소처럼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답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성이 너무 안 좋았으니까.
아무리 상대 수준이 높더라도, 내 공격력으로 뚫어 낼 수 있는 상대였으면 3부 리그인 만큼 내가 차력쇼를 해서라도 결국은 정리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방진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총질하더라도 [성역]스킬의 존재로 단독으로 무쌍을 찍는 건 불가능했다.
헌터스 리그라는 것 자체가 실력과 별개로 상성이 꽤나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방증이었다.
뭐, 그것도 그렇고. 이번 기회에 PER의 팀원에겐 좋은 경험이 되리라.
지금까지 이뤄지는 3부 경기는 거의 모든 것이 내가 브리핑한 대로, 계획대로 되었지만 팀 수준이 오르면 오를수록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태반이다.
‘뭐, 그렇다고 이번에 무력하게 질 생각은 추호도 없긴 하지만.’
“기동성을 최대한 살려서 시간을 끌면서 대응사격 위주로 간다. 가능하면 근접딜러는 상대 발리스타의 시선을 끌면서 기동성으로 회피하면 좋고. 기본적으로 모두 지속적으로 위치를 바꾸면서, 뭉치지 않고 개인행동을 하도록 하자.”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 둘 PER의 팀원들이 흩어졌다.
아무래도 해본 적 없는 진형이기에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다만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었다.
***
팀 RIX의 방어 진형의 중심을 지키던 유혜주는 경기가 시작되고 5개의 이기어검이 일제히 마나봄버를 달고 날아오는 순간, 승리를 확신했다.
‘모두 계획대로야.’
아마, RIX에서 분석하기로 상대 팀에서 차출할 수 있는 마나봄버의 양은 5개.
그렇기에 이번 PER의 총공세를 막아 낸다면, 지금 이 방어진형을 뚫어낼 만큼 강력한 공격은 아마 불가하리라.
그 후엔 상대 근접딜러는 이 방패위주의 방어진형으로 든든하게 막고, 이창현의 저격은 급소만 가린 후, 다른 부위가 맞으면 [성역]으로 회복한다.
이걸로 RIX의 방어진형이 완벽한 카운터로 완성된다.
콰콰콰쾅!
유혜주의 시야 바로 앞, 방패가 둘러싸지 못한 부분에서 동시에 이기어검에 달린 마나봄버가 폭발했다.
하지만 역시 계획한 대로 RIX팀원의 [황금의 모래시계] 스킬은 완벽했고, 아무런 피해 없이 상대의 가장 강한 화력을 모은 총공세를 넘길 수 있었다.
“뭐야, 별거 아니네.”
“내가 뭐랬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댔지?”
“뭐래 눈 앞에 검 날아오는 순간 쫄아서 팔로 가리고 움찔한 주제에.”
RIX 팀원들이 놀리는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서로 농담하는 가벼운 분위기였다.
그만큼 이 한 순간에 꽤나 유리해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잡담그만ㅡ. 바로 공세로 전환한다. 바로 쏴 버려!”
“예이예이. 갑니다~”
RIX도 상대가 폭격을 날리는 동안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그 근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PER이 있다고 예측되는 지점으로 발리스타를 발사할 수 있었다.
콰콰쾅!
곧바로 굉음이 이어졌다. 마나봄버의 폭발음 못지않게 강렬하게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아…… 아쉽네. 한 놈도 안 맞았나?”
“새끼야. 눈 감고 쏘냐?”
뭐, 아쉬웠지만 상관없다. 이제 상대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수 외에는 마땅한 공격수단이 없으니, 일방적인 공격만 이어질 뿐일 테니.
그리고 남은 그 공격수단인 정면대결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 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유린해 주마.’
유혜주는 지난 헌터 오디션에서 이창현에게 당했던 나날의 울분을 털어 내리라고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사리 무언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왜 자꾸 빗나가? 너 진짜 눈 감고 쏘냐?”
“아니, 쟤네가 생각보다 날쌘데…… 저번 브리핑 때 분석했던 진형 중에 없던 패턴이라 잘 안 맞네.”
“잡담 그만하고 집중 좀 해!”
‘진형을 바꾼 건가?’
PER은 별로 다양한 진형을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진형을 바꾼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으리라.
이창현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팀적인 호흡이 필요한 일이니까.
……아마 바로 즉석에서 전술을 수정해서 진형을 개편한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혜주는 가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꽤나 좋은 임기응변이야. 하지만…….’
콰콰쾅!
불현듯 날아간 발리스타가 PER의 이름 모를 선수 한 명을 정확히 꿰뚫었다.
임기응변은 괜히 임기응변이 아니다. 갑자기 연습되지 않은 진형으로 바꾼 만큼 분명 빈틈을 보이리라.
게다가 어차피 이쪽이 계속 공격하는 양상에서 변할 리도 없을 테고.
그러자 PER측은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서인지 진형을 바꿔 저번 UQQ전에서 취했던 근접 딜러 쓰리톱 진형으로 전환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녀석들. 오히려 그거야말로 우리가 더 원하는 건데. 모조리 꼬챙이로 만들어 주마.’
코 앞에 승리가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승리를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저게 무슨…….’
***
첫 폭격이 지지부진하게 막히고, 진형을 분산시키며 대응에 나선 PER이었지만 이는 순탄치 않았다.
‘역시…… 저격에 치명적인 부위는 방패로 완전히 다 틀어막고 있어.’
성역이라는 강력한 회복수단이 있는 이상,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마나봄버와 같은 강력한 수단 외에는 옵션이 없었다.
이대로 가서는 피해만 누적될 뿐, PER측으로서는 RIX에게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 중 한 명이 발리스타에 의해 꿰뚫렸다.
‘……돌격진형으로 전환해서 승부수를 봐야 하나……?’
아니. 아니다. 그랬다가는 그대로 떼죽음이다. 상대는 대다수가 근접딜러로 이루어진 데다가, 유혜주의 [성역]이 있기에 전선 유지력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완벽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PER측의 근접 딜러가 상대 측의 근접 딜러보다 강했다면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또한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었다.
그렇게 큰 의미 없는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던 도중, 이어폰에 팀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하겠는데. 차라리 한 명이라도 더 줄기 전에 정면대결하는 게 나은 거 아니야?”
음. 솔직히 이대로 가도 답이 있는 게 아니긴 했다. 뚜렷한 대응방법이 옵션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마, 한번 믿어 봐라. 이번엔 내가 캐리한다.”
오랜만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팀의 분위기가 내려앉은 상황이었는데 김도준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뭐, 최악이더라도 한 번 팀 꼬라박고, 팀원 녀석들 경험치 쌓는다고 생각하지 뭐.’
대응사격을 멈추고, [마법공학무기변환]으로 저격총이었던 무기를 근접 전투용 쌍권총으로 변환시켰다.
“이연주는 지금처럼 후방에 포지셔닝 후, 서포트. 그 외에는 전원 RIX의 진형으로 돌격한다. 내가 추가된 걸 빼면 저번 근접 쓰리톱 전략이랑 크게 다르지 않게 가 보자.”
“오케이.”
각자의 대답이 이어진 후, 흩어졌던 PER의 팀원들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모두 이번에는 김도준의 빛나는 검을 의식했는지 선글라스를 쓴 채였다.
지금 1위와 2위가 갈리는 진지한 상황에서 김도준의 빛나는 검에 눈부셔하지 않으려 다들 선글라스를 끼는 상황이 뭔가 우스웠다.
물론, 그런 감상과는 달리 진지함을 유지한 채로, 발리스타가 쏘아진 순간 이어폰에 외쳤다.
“가자.”
이길한이 쏜살같이 상대의 진형을 흩트리기 위해 [파괴적 돌진]스킬을 발동했고, 동시에 윤한결의 마나봄버로 그을려진 이기어검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는 둘이서 만들어 낸 빈틈을 꿰뚫으며 후진입 각을 고민하던 찰나.
‘…….’
김도준은 어디 갔지? 설마 이번 경기에서 도망갔을 리는 없고…… 그보다 방금 분명히 보였었는데?
그 잠깐, 어리둥절하고 있었던 찰나에 여전히 철통같은 방어진을 자랑하던 RIX의 진형에 갑작스레 이변이 일어났다.
“어어…….”
방패를 들고 앞라인을 지키고 있던 RIX의 근접딜러 중 한 명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