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67화 (67/270)

067. 유도 전술

팀 PER의 전술 회의실…… 이랄 것 까진 아니고 팀 PER의 홈, 한 아파트의 거실에서 티비를 켜 놓은 채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RIX는 지금까지 이런 공방일체의 탱크 같은 조합을 주로 쓰기 때문에, 진형을 흩트리고 큰 피해를 줄 첫 공격. 그러니까 마나봄버의 폭격이 가장 중요할 거야.”

꽤나 든든할 것으로 생각되는 유혜주의 ‘성역’이지만, 아마 마나봄버를 쉽사리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재생력이 폭발적으로 증강된다고 하더라도, 폭탄을 맞아 너덜너덜한 몸은 치유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럼 기존의 마나봄버를 이용한 폭격기 조합으로 가자는 거야?”

“그러면 좋겠지만……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대책을 세워 왔겠지.”

폭격기 조합은 분명 좋은 전술이지만 많이 노출된 만큼, 무언가 대응책을 가져오는 것도 예상해야 했다.

“그래서 마나봄버를 통한 폭격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후속타를 확실히 먹여서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할 거야.”

“마나봄버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재정비하기 전에 내가 돌진하는 건가?”

내 브리핑을 듣던 이길한이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처음 시작으로는 평소에 쓰던 폭격기 조합을.

그리고 폭격이 끝난 후엔 바로 저번 UQQ전에서 사용했던 근접 딜러 쓰리톱 조합으로 진형을 바꾸는 거야.”

만약 시즌 초의 PER이었다면 서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진형인 만큼 경기 도중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PER은 팀적으로 많이 성장해 있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만큼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미 두 진형 다 한번 실전에서 겪어 봤기도 하고.’

“그래서 윤한결, 김도준, 이길한. 셋이서 활약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

자연스럽게 팀원의 시선이 그 셋에게 향했다.

윤한결은 묵묵히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최근 꽤나 자신감이 붙은 이길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가볍게 웃으며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을 손으로 두드렸다.

반면, 평소라면 가장 활기차게 나만 믿으라며 답했을 김도준은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팀원들도 의아했는지 순간 정적이 흐르며 김도준에게 시선이 쏠렸는데도, 눈치 못 채는 걸 보니 확실히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싶었다.

“도준아?”

보다 못한 윤한결이 김도준의 옆을 툭 치며 부르자, 팀원 전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화들짝 놀랐다.

“어……? 어.”

‘뭐지……? 이런 적은 처음인데.’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최근에 윤한결의 성장을 신경 써 주느라, 김도준을 너무 신경 쓰지 못했었나?

저번에 이종규 코치한테 말해 뒀기에 아마 멘탈 케어는 그럭저럭 되었을 텐데.

김도준이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저번 경기 반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하긴 아무리 김도준 녀석이 관종이라곤 해도…….’

눈뽕빌런이 자신의 첫 별명이라니.

아무래도 그 빛나는 검을 쓰는 꼼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심하게 고민해볼 만큼 현자타임이 왔으리라.

솔직히 말해서 명예로운 별명은 아니니까. 어쩌면 이번 RIX전에서는 그 빛나는 검을 못 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사실 그걸 쓰던 말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윤한결과 이길한을 비롯한 팀원 전부에게 선글라스를 챙기도록 주문해 놨으니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전략 회의는 이쯤하면 됐고, 2부 승강전 진출은 어느 정도 확실해지긴 했지만, 경기력 유지도 중요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좋으니까 다들 컨디션 관리 주의하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팀원들이 다시 흩어졌다.

뭐, 회귀 전에도 멘탈이 그리 약한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이번에도 잘 이겨 내겠지.

***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직장인 김준서.

오늘도 여느 때처럼, 스포츠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뭐 볼 만한 경기 없나…….’

막 회사에서 퇴근했을 때, 딱 헌터스 리그 경기를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보면 그거만한 즐거움이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중계하는 경기가 없는지, 넛튜브를 켰거늘…… 역시나 딱히 기대되는 경기는 없었다.

게다가 요일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1부 리그는 커녕 3부 리그 경기만 중계되고 있었다.

‘아…… 뭔가 아쉬운데.’

오늘 딱 뭐라도 보면 좋은데. 꿩 대신 닭이라고, 게임이라도 즐기려는데 오늘따라 유독 자취방의 빈 곳이 넓어 보였다.

그래, 단순한 변덕이었다.

이유모를 적적함이, 그에게 경기를 켜게 했다. 게임하면서 고요한 이 정적이라도 채워 보려는 심산으로.

들어본 적 없는 어딘지 모를 게임단인 PER?이라는 곳의 경기였다.

‘오…… 근데 3부 리그 치곤 시청자 수가 꽤 많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팅창도 뭔가 들뜬 듯한 분위기였다.

시청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뜨거움만은 1부 리그 못지않을 정도였다.

[이번 경기는 어떨 것 같음? 눈뽕빌런 이번에도 트롤 각?]

ㄴ 감독코치진이 저번에 그 경기를 멀쩡히 봤다면 이번에도 똑같이 되겠냐? 이번에도 그러면 그건 냉정하게 돈받아먹은 거라 봐야함 ㅋㅋ

ㄴ 눈뽕빌런 이번엔 다른 이상한 거 들고 오는 거 아님?ㅋㅋㅋㅋㅋ

ㄴ 쓸때없이 번쩍거리기만 하면서 상대 시야 방해하는 무기만큼이나 이상한 건 별로 생각 안나는 듯

ㄴ 그렇긴 함 ㅋㅋ 씹인정

‘눈뽕빌런? 3부 리근데도 선수가 별명이 있네…… 저 팀은 선수 개인 팬이 좀 있나?’

뭔지는 몰라도 뭔가 아마, 경기에서 상대의 시야를 방해한 모양이었다.

뭐, 어차피 경기는 게임하면서 시끌벅적한 보이스만 메우고 사실상 안 볼 거라 나랑은 크게 관계가 없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컴퓨터로 게임을 키는 사이에 어느새 경기는 분석데스크를 거쳐, 팀별 분석이 이뤄지고 있었다.

[캐스터] : RIX와 PER. 이번 경기,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국제리그도, 1부도 보여 줄 수 없는 꿀잼 경기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단 몇 경기만으로 시청자들에게서

‘눈뽕빌런’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도준 선수부터, 데뷔부터 떠들썩하게 새 신화를 써가고 있는 이창현 선수가 있는 PER.

그리고 저번 2부 리그 승급에는 좌절되었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3부 리그의 철저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RIX. 해설위원님께서는 이번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해설위원] : 우선 이번 경기는 3부 리그 공동 1위팀 간의 대결인 만큼 치열한 경기가 이뤄지리라 예상됩니다.

사실 이 정도 되는 팀들은 2부 리그의 팀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만큼, 큰 기대가 됩니다.

[캐스터] : 네 그렇죠. 무엇보다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어떤 것도 뚫어 버리는 창 PER”그리고 “어떤 것도 막아 내는 방패 RIX”의 싸움이라고 하고 있어요. 경기 양상은 어떻게 될까요?

[해설위원] : 이번 포인트는 사실 지난 시즌부터 어느 정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 RIX보다도 PER의 방향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RIX의 [성역] 그리고 방어진형으로 이루어지는 방어를 뚫어 낼 수 있다면 PER이, 그렇지 않으면 PER이 지겠죠.

하지만 전처럼 PER이 뛰어난 개인기로 상대팀을 뚫어 내는 방법은 아마 안 통할 겁니다. 이창현 선수의 저격이나, 고만고만한 피해를 입히는 수준의 피해는 [성역]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즉, 폭격기전술이 얼마나 타격을 주고 시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네요.

[캐스터] : 그렇군요! 인공지능 미사일처럼 상대를 추적하는 걸로 화제가 되었던 만큼, RIX는 아예 웅크려서 그걸 막을 생각을 할 테니까요…….

‘폭격기 전술? [성역]?’

3부 리거들인데 상위팀인 만큼 뭔가 나름 전술도 짜고 스킬도 독특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

들어본 적 없는 전술이었기에, 게임을 하다가도 뭔가 흥미로운 장면이 나올 것 같다 싶으면 경기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보이스 듣다가 재밌어 보이면 아예 경기 보는 게 괜찮을 수도 있긴 하겠네. 싸움도 X밥싸움은 X밥싸움만의 재미가 있긴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PER의 이상하고 독특한 전술과 경기력에 흠뻑 빠지리라 전혀 생각조차 못한 채였다.

***

헌터스 리그가 3부, 2부, 1부로 나눠져 있기에 흔히 착각하기 쉽지만, 그 3개의 리그는 꽤나 다른 편이었다.

게임의 룰이나, 선수들의 싸움 방식 같은 것들은 전혀 차이가 없지만,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인 ‘맵’이 차이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3부 리그는 헌터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은 것을 고려해서 맵의 특별한 기믹이나, 강력한 몬스터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유망주 헌터 육성의 의미가 더 큰 리그였기에, 변수가 많은 요소인 현장(맵)의 변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실 2부 이상의 리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리그라고 할까나.

아이템을 파밍하거나, 경기 내에서 힘을 키울 수 있는 요소인 ‘파밍단계’나, 중립몬스터나 거점점령, 유물탈취 등의 ‘임무수행’ 단계는 거의 없고, 피지컬과 한타 위주의 게임만 이루어졌으니까.

그랬기에, 나로선 차라리 2부나 1부 경기였으면 더 쉬웠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으면 오디션 프로 때처럼 맵의 기믹이나 몬스터를 이용해서 나름의 변수를 이용해서 더 쉽게 풀어 나갔을지도 몰랐을 텐데…….’

뭐, 푸념은 미뤄 두고 지금은 경기에 집중해야지.

“이연주 씨. 상대의 위치는?”

“전체적으로 6시 방향으로 모이고 있어요. 합류 속도가 저희 팀보다 빨라서 아마 뭉치기 전에 폭격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뭐, 아쉽긴 하다만 진형을 이루는 걸 못 막는 건 어느 정도 상정한 부분이었다.

“우리 팀은 6시와 7시 사이에 모이는 걸로. 한 차례 폭격한 후에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매복하자.”

어차피 상대는 진형을 짜고 우직하게 부딪힐 뿐, 매복하거나 잡기술을 사용하는 팀이 아니었기에 팀원이 모이는 동안 별 충돌은 없었다.

그렇게 별로 높지 않은 건물의 옥상에 PER팀원 전원이 모였다.

“상대 위치 여전히 같은 자리야?”

“네.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에요.”

‘하긴, [성역]이란 스킬 자체가 전장을 정해 두고 싸우는 전투에 워낙 강하니 굳이 움직이지 않는 게 정답인 걸 상대도 알겠지.’

“다들 작전은 알고 있지? 기존에 상정한 상황이랑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대로 간다. 폭격은 떨어지기 5초전부터 카운트 해 줘.”

“네.”

아무래도 폭격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을지가 이 게임의 난이도를 결정했기에 다들 꽤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위치한 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변.

그 위에서 내가 손짓했고, 5자루의 검이 마나봄버를 안고 팀 RIX의 방패 진형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런데 문득,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아니, 아무리 [성역]스킬로 재생력이 말도 안 되게 향상된다지만, 저걸 격추할 생각이나 막을 생각도 없이 저렇게 대놓고 확 트인 곳에 진형을 꾸리고 있다고?’

물론 방패를 들고 있다고는 하나, 당연히 윤한결이 이기어검을 조종하는 만큼 방패가 완전히 막지 못하는 곳에서 터뜨릴 텐데.

게다가 사실 지난 경기들에서 몇 번 나온 방법이지만, 밀폐된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맞는 마나봄버 갯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 RIX의 진형은 그마저도 아닌 게 아예 마나봄버를 5개 전부 다 받아 내고 싸우겠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리 진이 단단하더라도 굳이 그럴 이유는 없을 텐데…….’

그 이질감을 느껴 순간적으로 [꿰뚫는 눈]으로 RIX 팀원 7명의 스킬을 샅샅이 뒤졌고, RIX가 그렇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한결! 멈춰!”

하지만 이미 추진력이 붙어 날아가는 검을 막기엔 늦은 상태였고, PER의 마나봄버를 단 이기어검들은 순식간에 RIX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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