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각자의 고민
헌터 연합훈련소에서 이창현이 훈련시키던 것을 보고 조연화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그 녀석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도, 그리고 류재준의 반응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까진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자신의 스킬도 아니고 남의 스킬을 통찰력을 발휘해서 완벽히 나아갈 진로를 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게도 특별한 조언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조연화는 어느 샌가 자신도 모르게 이창현의 지난 경기들을 하나 둘 보고 있었다.
[헌터스 – 더 넥스트제네레이션] 오디션 경기부터, PER에 올라온 후의 경기들까지.
혹시나 거기에 무슨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 때문이었다.
확실히 녀석은 뭔가 특별한 행보를 보이긴 했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거나, 전술적 역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역시 경기를 봐서는 어제처럼 다른 사람의 길을 정확히 볼 수 있는 통찰력에 대한 것까지 엿볼 수는 없었다.
그건 경기장 안의 모습을 봐서 확인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 코칭하는지 조금만 더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물론 그 녀석한테 코칭을 받겠다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티칭 방식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드러날 테니 조연화 자신도 뭔가 힌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조준호한테 말하면 다시 만나거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이쪽에서 내친 거나 다름없는데 다시 부를 만큼 얼굴에 철판을 깔진 않았으니까.
‘아…… 생각해 보니까 민솔 언니가 저번에 3부에 꽤 웃기는 녀석 있다고 한 적 있었는데. 그것도 이창현 말하는 것 같았는데…….’
총을 쓰고, 감독 겸 구단주까지 맡고 있고, 선수들을 직접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면 딱 그 녀석밖에 없다.
그 길로 바로 이민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연화] : 언니, 저번에 말했었던 웃기다던 3부 리그 애. 걔에 대해서 혹시 더 아는 거 있어요?
이민솔도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메시지 옆 1숫자가 사라지곤 답장이 왔다.
[이민솔] : 아…… 걔? 이창현? 그때 잠깐 본 거라……나보단 경태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걸? 나도 걔한테 들어서 구경하러 간 거라.
진경태. 이번 헌터스 리그 한일 국가대표였던 것 같은데……
[조연화] : 제가 그분은 잘 몰라서요……
[이민솔] : 아~ 경태? 괜찮아. 가끔 이상한 거에 집착하는 거 빼면 기본적으로 다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라. 뭣하면 내가 물어봐 줘?
[조연화] : 아녜요!! 감사해요 언니. 제가 직접 물어볼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민솔에게서 진경태의 연락처가 도착했다.
‘그나저나 국대인 진경태 헌터가 이창현을 알고 있다라…… 타쿠미를 이겼다는 게 설마?’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민솔 언니 반응이 영 미적지근한데……
진짜로 이겼다면 이민솔은 호들갑을 떨면서 나한테 먼저 말했을 만한 위인이었는데, 그런 낌새는 커녕 ‘웃기는 녀석’이라고 했었으니까.
뭐, 일단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 궁금한 건 그 녀석이 어떤 방식으로 선수들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조연화는 진경태의 연락처를 써 넣은 후 메시지를 보냈다.
***
유혜주는 PER의 지난 경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무리 파고들 전략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만만치 않은 팀임은 분명하니까.
한 명 한 명, 특히나 이창현과 새로 PER에 합류한 네 명.
김도준, 한지수, 이창현, 윤한결 이 넷만은 미리 대처 방법을 생각해 두는 게 좋으리라.
이창현의 총은 강력하지만, 공격이 급소에 맞지 않는 이상 한 번에 절명하지는 않으니, [성역]스킬의 재생과 회복으로 커버할 수 있다.
몇 방 안 쏘는 마나봄버 섞은 총탄만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김도준. 그 괴상망측한 빛나는 검은 팀원 전원이 선글라스를 쓰고 나오면 되겠고…….
윤한결. 이 녀석은 꽤 까다롭다. 검을 날리는 게 어째선지는 모르겠는데 근접딜러들도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는 게…….
‘아카데미에선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검술 과외선생이라도 따로 붙였는지 전보다 훨씬 강해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성역의 회복력이더라도 잘린 팔이 돋아나지는 않으니…….’
사실상 전투이탈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보리라.
하지만, 결국 위협이 되는 검은 세 자루. 일곱 명이 뭉쳐 방진을 이룬다면 막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기동성이 떨어지더라도 이건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중력 능력이야…… 아직까진 뭐,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어. 아카데미에서도 고만고만한 녀석이었고.’
한지수에 대해선 보류했다.
막상 다 적어 놓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 이런 구성이면 충분히 카운터 칠 수 있겠는데?’
하나하나 분석하다 보니, 유혜주의 눈엔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작은 틈이 아니라, PER 전체로 균열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틈을.
그리고 분명 RIX로서는 그 틈을 비틀어 벌리기에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시즌에 PER에 들어온 이창현으로서는 모를 수밖에 없는 RIX의 숨겨진 전략을.
‘……좋아.’
자신도 모르게 유혜주는 어느 순간 살며시 웃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전략을 세우는 건 이쯤이면 됐나. 그렇게 걱정을 한쪽으로 접어 두자, 한편으로는 PER의 네티즌 반응이 눈에 띄었다.
‘다른 건 몰라도 캐릭터성이나 인기는 3부 리그 팀답지 않게 참 좋네…….’
[눈뽕빌런 선글라스에 개같이 멸망 ㅋㅋㅋㅋㅋㅋ]
ㄴ 검에서 빛 나오니까 상대편 기다렸다는 듯이 다 선글라스 쓰는 거 실화냐 ㅋㅋㅋㅋ
ㄴ 더 웃긴 건 또 팀원들은 선글라스 없음 ㅋㅋ
ㄴ 같은 팀인데 어떻게 호흡이 안 맞아도 저렇게 안 맞냐
ㄴ 내가 보기엔 선수가 아니라, 그저…….“광대”
ㄴ 팀원 버리고 바로 빤쓰런 치는 거 보고 무릎 탁침ㅋㅋㅋㅋ
ㄴ 제가 PER팬이라 전부터 경기 챙겨봤는데. 팀원 버리고 도망친 게 아니라 일종의 도발전술입니다. 보이시나요? 김도준 선수 도망간 후부터 상대 칼 끝 흔들리는 거?
ㄴ 상대 칼 끝이 아니라 윤한결 칼 끝이 흔들리는데? ㅋㅋㅋㅋㅋ
그 중에서도 특히 김도준 저 녀석. [헌터스 -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때나, 서울 시립 아카데미때는 저런 말 들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좀 이상한 녀석 같았다.
‘혹시 머리에 문제가 있나? 뭐, 우리 팀으로선 좋은 거지만.’
솔직히 지금 저 근접 3인방이 호흡이 안 맞는 것만큼 호재도 없었다.
어떤 전술을 쓸지는 모르겠으나, RIX가 가장 자랑하는 것이 강력한 근접 딜러진이니까.
“어때요 감독님.”
유혜주가 자신의 전략과 대처 방법을 적어 낸 종이를 RIX의 감독 김종운에게 건넸다.
“오…….”
김종운은 슬쩍 읽다 말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음 경기. PER전은 이걸로 간다.”
분명, 상위 리그로 가서도 최강의 스킬로 분류될 [성역]의 초회복 효과.
그리고 그걸 둥글게 근접 딜러와 마나실드들로 탱크처럼 둘러싼 근접 방위진으로 막아 내는 것.
그리고…… 지금껏 유혜주의 성역의 강력함으로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이번 시즌에 들어온 이창현은 잘 모를 ‘전 시즌 RIX의 주력 전술’까지 더해진다면...!
아무리 이창현의 PER이라도 당해내지 못하리라.
척 봐도 이창현은 딱히 지난 시즌 경기를 보면서 세심하게 분석하는 타입은 아니었기에.
PER은 딱히 손 쓸 방법도 없이 이 전술에 무너지겠지.
그렇기에 RIX의 감독 김종운은 이 계획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PER 숙소에 있는 한 침대. 김도준은 거기에 누워 지난 경기의 속상함을 곱씹고 있었다.
저번 UQQ전이 전반적으로 최악이었으므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PER은 거의 폭격기 조합을 사용했기에 활약할 기회도, 실력을 선보이며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도 없었다.
그런 시점에서 이런 근접 딜러 위주의 전술을 사용한다는 창현이의 말에 마냥 기뻤었는데…….
결과도, 반응도 미묘했다. 아니, 안 좋았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PER, UQQ전으로 팀 체급 인증한 거 아님?]
ㄴ 그렇긴 함. 개개인 폼이 많이 높아져서 이제 정석으로 붙어도 쉽게 안 밀릴 듯.
ㄴ 윤한결이랑 이길한 호흡 좋더라. 상대가 더 많아도 슥삭 해버리는 게 속이 다 시원한 듯.
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근접딜러라인은 김도준이 붕 뜨는 듯.
ㄴ ㄹㅇ ㅋㅋ 웃기긴 한데 솔직히 하는 거 하나도 없음. 그냥 광대임 ㅋㅋㅋㅋ
ㄴ [김도준 도망움짤]
ㄴ ㄹㅇ 이거보고 개뿜음 ㅋㅋㅋㅋㅋㅋ
관심을 원하긴 했지만, 이런 걸 원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 빛나는 검을 버리자니, 이젠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게 이번 경기에서야 죽을 쒔지만 솔직히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었다.
폭격기 조합이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묻혔던 것이지, 다른 팀들의 근접딜러는 이 검으로 인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팀원의 반응이었다.
끝나고 질책이 돌아올까 두려웠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질책하지 않았다.
이창현은 오히려 윤한결을 신경 쓰면서, 그의 검술을 피드백하고 있었고, 다른 녀석들도 ‘네가 그러면 그렇지 뭐.’같은 생각을 했는지. 몇 번 눈짓을 주고 말았으니까.
차라리 질책하면 좋을 것을, 그런 반응을 보이니 마음이 속상했다.
‘한번에 여럿이 덤비면 어쩔 수 없잖아…….’
윤한결처럼 검을 여럿 컨트롤하면서 다인전을 할 수도, 이길한처럼 스킬을 통해 다인전에 기여를 할 수도 없다.
뛰어난 쾌검 능력과 1대1에 강한 장점은 다인전에선 크게 불리하다는 점을 극복하기 어려웠기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눈이 부셔서인지, 윤한결과 이길한의 지원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 점도 컸다.
‘하지만 그것도 다 핑계겠지…….’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팀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랭크전도, 헌터스 리그 정규리그에서도 정체되어 딱히 도드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이대로 정체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에 차분하게 이번 경기의 패착을 하나씩 짚어 보기로 했다.
‘빛나는 검을 너무 많이 썼나…….’
아니. 아니다. 이건 확실히 좋은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폭발적인 찌르기와 쾌검에 그 의외성의 시너지는 분명 특별했다.
‘그럼 선글라스가 문제였나?’
음. 확실히 선글라스가 조금 까다롭긴 했다. 검이 빛나서 허를 찌르는 전술에 제약이 강해졌으니 어느 정도 카운터를 맞았다고 할 순 있었으니까.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는 당연한 대응 방법인데 그것에 대해선 대응 방법을 안 짜 놨구나…….’
그랬다. 상대가 선글라스를 써서 대응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는 만큼, 그것에 대한 대응 방법도 마련했어야 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시 미친 듯이 사고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무력화시킬 방법이 없는지. 아니면 선글라스를 쓴다는 점을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 다른 전술은 없는지.
‘검은 옷을 입는다던가……하면 선글라스 쓰면 안 보이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선글라스를 낀다고 검은 게 상대적으로 덜 보일 뿐, 구분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험해 보던 도중, 김도준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김도준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뭔 말도 안 되는 발상이냐며 손을 내저을 만한 발상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