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나아가는 방법
“야, 데뷔전은 잘 치렀냐?”
“…….”
조연화의 물음에 평소에 그렇게나 틱틱대던 류재준이 침묵으로 대답하자, 뭔가 느낌이 왔다.
전화를 받았으니 듣고 있는 건 확실한데 대답을 안 한다는 건?
말하기 싫다는 거다.
류재준이 말하기 싫다는 건?
‘보나마나 데뷔전 경기가 좋은 꼴은 아니었나 보지.’
류재준의 반응에 경기를 직접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이 진 이상 제대로 답해 주지는 않을 테니.
그 심란한 마음도 이해가 가긴 했다.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3부 리그 따윈 별거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마 쓰디쓴 패배를 벌써부터 경험한 건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걸 공감하는 건 공감하는 거고, 이근택과 조준호 아래에서 같이 배움을 받은 동기여서일까?
나온 말은 류재준의 상처를 후벼 파는 말이었다.
“여보세요? 왜 대답을 안 해. 너…… 설마 경기 졌냐? 3부에서?”
류재준이 열받아 할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이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전화기 너머로 류재준 녀석이 부들부들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1부 리그 거 별거 아니라더니 3부 리그에서? 아마추어에 가장 가까운 애들 사이에 껴서 발린 거야?”
“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쓸데없는 이야기만 할 거면 끊어.”
아무래도 진짜 화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류재준이 꺾여서 멘탈이 흔들거리는 모습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끊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면 상대가 좀 강했나? 들어보니 꽤 유명한 녀석이라고 하긴 하던데. 네가 보기엔 어때?”
“강하긴 무슨 3부 리그면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왜 졌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서 잠시 흔들린 것뿐이야.”
“그래~ 그렇다고 해 줄게.”
그 말에 류재준은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긴. 그 녀석은 예전에 같이 배우던 시절에도 나한테 지면 죽을 만큼 분해하던 녀석이었으니까.
기껏해야 최소 1부 리그 선수들이 같은 눈높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었을 텐데, 3부 리그 녀석한테 졌으니 자존심이 오죽 상했을까.
‘하지만 이창현 그 녀석은 어쩌면…….’
아니다. 이건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른다. 후……아무래도 나도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 녀석이 실제로 강하면 어떻고 약하면 어떻단 말인가.
별 것도 아닌 저번의 말싸움 하나에 그렇게 신경이 쓰여 안 하던 짓이나 하고 있고. 갑자기 스스로에 대한 한심스러움이 몰려왔다.
그 녀석이 뭐라고 한들, 얼마나 뛰어난 녀석이라고 한들. 내게 있어서 변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데.
난 벽에 가로막혀 있고, 더 나아가서 이 나이에 벌써 은퇴를 고민하고 있을 뿐인. 멈춰 선 사람이니까.
‘관두자.’
지금 쓸데없이 뭘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녀석의 경기 영상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셨다.
다만, 이 복잡한 마음을 고요하도록 만들어 줄 헌터 연합훈련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상황 속에서도, 정신없이 싸우고 대련하다 보면 그 상황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유일한 정신적 쉼터였으니까.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헌터 연합훈련소로 향했다.
***
뛰어난 헌터스 리그 선수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첫째는 당연하게도 재능이다.
이 판은 스킬이나 스테이터스의 한계치 따위가 뚜렷하게 급이 나눠지는 만큼, 재능이 없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마나장비나 기타 다른 기술로 메운다고 하더라도 태생적인 스타트라인이 다른 이상,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능만 있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아니다. 지구의 수도 셀 수 없는 인구 수만큼이나, 재능 있는 사람도 꽤나 널려 있으니까.
그리고 헌터판에는 대부분 압도적인 재능, 스킬을 가진 몇 명을 빼고는 다 고만고만하다. 거기에서 최상위권과 하위권을 가르는 것.
그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을 토대로 어떤 선수가 되도록 “방향성“을 얼마나 잘 잡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나야 [꿰뚫는 눈]이 스킬의 정보를 알려 주기에 어떤 식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한계가 무엇일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읽어 내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찾아온 재능을 이렇게 저렇게 사용해 보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헌터스 리그에서 어느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말이다.
‘스승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독학해 봐야 천재가 아닌 이상,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지.’
그건 설령 재능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헌터스 리그 팀을 평하는 데 있어서 그 헌터를 육성하는 인프라 또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이기도 했다.
LTD같이 1, 2, 3부에 걸쳐 일종의 계단식 육성 시스템을 갖춘 팀이 그래서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고.
윤한결도 회귀 전, 원래의 삶에선 명문 팀에 입단한 만큼 그런 육성을 끊임없이 받았겠지.
그게 내가 직접 윤한결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였다. 만약 녀석이 혼자 잘 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둔다면, 어쩌면.
녀석은 거기에서 더 진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윤한결. 이제 알겠어? 네 검의 가장 강력한 점은 ‘인간의 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날린 검은 검술의 ‘방어적 요소’를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어.”
그래서 꽤나 품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바로 옆에 있었어서 이 녀석이 멍청하게 받아들인 걸 바로 캐치해서 다행이지…….’
만약 윤한결이 제대로 이해한 줄 알고 넘어갔다면, 바로 다음 경기에서 대참사가 났으리라.
다행히도. 이렇게 1대1로 붙어서 가르친 결과, 윤한결은 무엇이 잘못인지 조금 이해한 듯했다.
“……이해했어. 기존의 검술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윤한결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역시 한 번 뒤통수를 맞아서일까. 쉽사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어때, 자신 있어?”
“머릿속으로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
“다시 랭킹전 한번 가 보자. 계속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 말해 줄 테니까.”
윤한결은 그 말에 잠시간 눈을 좀 크게 뜨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아마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그래.”
***
‘아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헌터 연합 훈련소에 머리를 비우기 위해 들린 조연화는 그저 한숨을 내뱉었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훈련하려 왔는데, 하필 그 훈련 장소에 머리를 어지럽게 한 녀석이 와 있을 줄이야.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만 집중하면서 랭킹전으로 시원하게 땀을 빼려고 했는데.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신경 쓰이는 녀석이기도 했고, 그냥 뒤에서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창현이 자신의 팀원으로 보이는 녀석을 코치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검을 날리는 초능력을 가진 딜러였다.
‘능력은 꽤 괜찮네. 싸우는 방식이 좀 별로지만.’
검을 다짜고짜 투척무기마냥 날려 던지는 건 무슨 근본 없는 싸움인가 싶었다. 아니면 능력의 제한으로 세세한 컨트롤이 안 되나?
그런 생각도 잠시, 녀석은 끝나고 이창현에게 무언가 어드바이스를 받더니 다른 모습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모습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아가는 세 자루의 검. 그리고 마치 세 명이 협공하는 것과 같은 검 세 자루의 각개전투를, 상대가 막아 내야 했다.
‘그래. 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게 정상이지.’
3부 리그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도로 꽤나 좋은 스킬이었다. 아마 금방 올라올 인재이리라.
그리고 그 랭킹전에서 이긴 녀석은 다시 이창현에게 돌아가 어드바이스를 다시 듣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고쳐야 한다고 하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
‘저 상태에선 단순히 검술 실력을 더 낫게 하는 방법뿐이 없지 않나……?’
그리고 그런 어드바이스는 단순히 말로 한다고 해서 전달되는 것도, 단기간에 느는 능력도 아닌데. 굳이 지금 저렇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치른 랭킹전에서 그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전과 같이 똑같이 동시에 날아가는 세 자루의 검.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그게 뭔지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똑같이 세 자루가 개별적으로 검술을 펼치고 있었는데……
푹 ㅡ.
결과는 전 판과 다르게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승부가 났다. 검을 날리는 소년의 승리였다.
‘뭐지……? 상대가 더 약한 녀석이었나?’
확실히 이창현의 조언을 듣고 무언가 달라진 듯한 모습이 보였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하기야. 검술이나 그런 것들도 디테일이나 깨달음 하나에 따라서 크게 성장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니면 단순히 진짜로 이번에 매칭된 상대가 조금 더 약할 수도 있었다.
또 다시 돌아간 이창현은 검 날리는 소년에게 무언가를 또 주문하는 듯 보이고…….
이번 매칭에서는 꽤나 강적이 등장했다.
1부 리그에서 하위권이긴 하지만, 든든하게 전위를 맡고 있는 근접 딜러였다.
아마 상대가 검을 좀 다룰 줄 아는 상대인 만큼, 검을 다루는 소년이 크게 밀릴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검을 세 자루 날린다고 하더라도, 검술의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결국 소년이 패배하리라.
그렇게 예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본 소년이 스킬 잠재력은 뛰어나도, 검술 실력이나 무력은 아직 1부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연이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등장했다.
아주 어이없게. 허무하게, 마치 전판을 답습하는 것처럼.
아니 전판보다도 더 쉽게, 검을 날리는 소년이 이긴 것이었다.
데쟈뷰를 보듯 날아가는 세 자루의 검이 날아가 검술을 펼치자, 몇 번 쳐내며 합을 나누는 듯 보였는데, 뭔가 묘한…… 공격이 바로 근접 딜러를 갈랐다.
‘아니…… 저렇게 쉽게 공격을 허용한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찜찜한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일부러 져 줬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쉽게 당했다.
이게 다, 이창현이 무언가 녀석에게 조언을 해 주고 벌어진 일이었다. 잠깐 동안 검술에 대한 조언을 해 준다고 그렇게 무언가 크게 바뀔 일은 없었어야 한다.
근데, 분명 검술의 ‘무언가’가 아주 조금, 미묘하게 변했고. 그게 큰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건 분명 이창현이 알려 준 무언가였다.
조연화는 어릴 적에만 조준호에게 검을 배웠을 뿐, 지금은 다루지 않아 정확한 차이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이창현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묘함과 궁금증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녀석이 3부 전패팀을 순식간에 1위 팀으로 올려놓은 건…….’
운이나, 단순한 요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진짜 헛된 희망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도 어쩌면 검을 날리는 저 녀석처럼 무언가 나아갈 방법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