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63화 (63/270)

063. 이해의 간극

헤매고 있다.

조연화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일 것이었다.

누구보다 빠른 길로, 빠르게 위로 올라갔기에 그건 조연화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상황이었다.

3부 데뷔. 너무나 쉬웠다. 미흡한 무기술, 마나장비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미숙함.

2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였다. 그리고 곧이어 바로 최연소 1부 리거 헌터로 등극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코웃음 쳤던 1부 리그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세계에서의 헌터스 리그 입지를 생각하면 한국이 뒤쳐져 있었기에 1부 리그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헌터스 리그에 도전하고, 도리어 깨져 나가는 것은 조연화였다.

그럭저럭 쓸 만한 올라운더. 그게 조연화의 1부 리거로서의 평이었으니까.

1세대 헌터를 잇는 헌터의 전설, 한국리그를 선도하는 헌터따위의 수식어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벽을 느꼈다.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데 어쩌다 만난, 아니. 유망하다고 해서 만나 준 3부 리거 따위가 말했다. 내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겨우…… 겨우 3부 리그따위에서 노는 녀석이 뭘 알겠는가.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는 없었다.

“연화야! 조연화!”

조준호가 따라오면서 팔목을 낚아챘다.

“……왜. 왜 굳이 데리고 나온 거예요.”

마음이 쓰렸다. 별 것 아닌 녀석에, 별 것 아닌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녀석이 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크게 다가왔다.

“너한테 자극이 되어 줄 줄 알았다. 저 녀석도 나름 너랑 비슷한 길을 겪고 있는 녀석이니까.”

말은 약간 듣긴 했다. 꽤나 떠오르는 루키라고. 하지만, 녀석은 아직 3부 리거. 1부는 커녕 2부에도 올라가리라 확신하기 어려운 녀석일 텐데…….

그런 생각을 대충 눈치챈 듯, 조준호가 인터넷 기사 한 개를 보냈다.

[헌터스 리그 3부, 태풍의 눈 이창현. 그는 누구인가?]

최근 격동을 맞이하는 2부, 1부뿐만 아니라, 3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선수도 있다. 바로 [헌터스-더 넥스트제네레이션]에서 우승한 이창현 선수.

일단 데뷔부터 감독 겸 구단주 대리 겸 선수 활동을 한다고 선언해 한동안 화제였는데, 그의 행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 시즌 전패팀이었던 PER을 1위 팀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었다.

이에 별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 3부 리그 팀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뿐만인가? 가장 화제가 되었던 점은 오히려 그하고 관련이 없는 지난 헌터스 리그 한일 국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유명 원거리 딜러. 미나미노 타쿠미의 인터뷰기사였으리라.

가장 인상적인 선수, 기대하는 선수를 꼽는 말에서 미나미노 타쿠미는 한국 국대선수를 한 명도 꼽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언급된 건 뜬금없이 이창현선수였다.

3부 리거였기에 다수의 한국팬은 몰랐고, 댓글로 물음표를 연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에 익명의 모 선수는 한일전이 끝난 후, 미나미노 타쿠미 선수와 이창현 선수가 랭크전의 룰을 차용해 1대1을 벌여 이겼다고 말했으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타쿠미 선수가 인터뷰에서 그를 언급한 것만으로 그의 실력을 어느 정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후략]

‘구단주 겸 감독 겸 선수? 뭐 이런…….’

처음 읽다가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전패팀을 1위로 올렸다는 데에선 약간이지만 놀랐고, 그 다음에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지만 타쿠미를 이겼다는 데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아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물론 타쿠미의 인터뷰는 나도 들어봤던 만큼, 타쿠미가 녀석을 눈여겨 본 건 사실이겠지만.

‘후…….’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3부와 1부의 차이도 극렬한데, 한국리그와 일본리그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타쿠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컸다.

하지만 인정은 인정일 뿐, 그래봐야 3부 리그에 불과한 선수다.

다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벽에 부딪힌 자신과는 달리, 하염없이 나아가는 모습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됐어요. 관심 없어요. 전 들어가서 쉴게요.”

“……그래.”

방에 들어온 후, 침대에 누웠다. 문득 막 데뷔했다고 들었던 소꿉친구이자 훈련 동기였던 류재준이 생각났다.

‘녀석도 막 데뷔했으니 지금은 3부일 텐데…….’

류재준도 그 녀석을 만났을까? 만났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약간이지만 흥미가 동했다.

갑작스레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어 휴대폰을 켜 류재준에게 연락했다.

***

이근택 회장이 꽤나 엄중한 경고를 하긴 했고, 그게 꽤 와닿는 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특별히 할 게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팀 자체의 체급이 올라가면 해결이 되는 문제였고, 내 목표도 거기에 있었으니까.

물론 팀원들을 신경 쓰느라, 내 수련을 빼먹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꾸준히 기초훈련을 통해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만개]의 영향을 받아 오히려 팀원보다 빠른 성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또, 솔직히 말해 나야 한번 성장으로 끝을 봤었기 때문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고 있기에 내 훈련은 솔직히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했고.

‘근데 이 녀석들은…….’

손이 참 많이 가는 녀석들이다.

결국 키우면 내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셈이 되겠지만, 신경을 써야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오늘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녀석은 윤한결이었다.

“요새 한결이가 통 힘을 못 쓰네…… 랭킹전 점수도 정체되어 있고 말이야. 지금 점수가 낮지않긴 한데. 영양제라도 사다 먹여야 하나?”

그리고 오늘도 역시 이종규 코치는 코치자리를 딱지치기로 땄는지 문제의 맥락을 못 잡고 있었다.

“헌터가 영양제요?”

내가 째려보자 이종규가 깨갱하며 물러났다. 자기가 말해 놓고서도 뭐가 좀 아닌 건 알긴 했나보다.

한결이의 문제는 지금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 문제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녀석의 문제는 지금 다른 검술을 공부하고 익히면서 그 ‘틀’에 갇혀 있기에 폭발적 성장을 못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기어검의 장점은 단순히 원거리 전투가 되거나 검을 여러 개 조종한다는 점이 아니니까.’

이기어검과 그냥 검술의 큰 차이점은 바로 공격의 자유분방함에 있다.

일반적이라면 사람이 하지 못할 동작들이 가능하니까.

이기어검은 인간의 관절, 인체 가동 범주 따위로 인한 검로 예측 따위가 불가능하다. 그뿐만인가?

인간의 몸과 독립적으로 움직이기에, 상대의 시선, 발 끝, 몸의 움직임을 통한 일반적 검의 유기적 흐름이라는 것 자체를 무시한다.

또한 검술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행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상대할 때 급소나 위험한 공격을 막으며 공격하기 마련이지만.

이기어검은 검을 맞대어 막을 필요 없이 오직 공격만을 생각한 휘두름이 가능하다.

그 자유로움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무한한 공격의 가능성을 낳고, 그런 자유분방함에서 나오는 압도적 공격력이야말로 이기어검의 정수인 것이다.

즉, 윤한결은 지금껏 익혀 왔던 검술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말해 주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누군가 걸었던 길을 걷는 것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걷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

잠시간 생각을 하는 동안, 윤한결은 어느새 랭크전을 마치고 나와 있었다.

“이종규 코치님 너무 괴롭히지 마. 이종규 코치님이 좀 무능하시긴 하지만……운전도 잘하시고, 무엇보다. 코치님은 늘 밥을 해 줬어.”

“한결이 너마저…….”

하긴. 전술 좀 못 짜고 분석능력이 모자라긴 하지만, 밥도 그렇고 운전도 그렇고 이종규 코치만한 사람이 없긴 했다.

아예 그쪽을 하는 게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평소에 개인 랭킹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별도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한결이도 꽤나 긴장한 듯했다.

“별건 아니고, 최근에 꽤 고전하는 것 같아서.”

“그렇긴 해…….”

윤한결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제일 답답한 건 자기 자신이겠지.

단순히 열심히 하면 올라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 치곤 요새 통 진전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나에게 어드바이스 받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아 하겠지.’

감독을 겸하고 있긴 해도 동년배인 나에게 지적을 받는 건 꽤나 자존심에 상처인 일 테니까.

뭐, 상처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실력이 최우선인 판인데 어쩌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말할 건 말해야 하니까.

“네가 지금 쓰는 이기어검 말인데. 기존의 검술을 쓴다는 느낌으로 쓰면 안 돼. 그래, 아예 검술을 쓴다고 생각하지 마.”

“검을 쓰는 느낌이 아니라고?”

그 말에 잠시 주저하더니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기다림 끝,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윤한결이 말했다.

“발상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였구나!”

역시 똘똘한 녀석이라 한 마디 했음에도 무언가 느낀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회귀 전에도 좀 느낌 있는 녀석이긴 했지.’

손이 덜 가는 녀석이 하나쯤은 있어 줘야 밸런스가 맞는 거겠지.

사실 이전부터 그랬지만 윤한결이랑은 그럭저럭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편이었다.

“알겠어.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역시. 그래도 윤한결은 요새 좀 이상하긴 했지만 머리는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꽤나 믿을 만 하기도 하고.

윤한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랭킹전으로 돌입했다.

상대는 마침 한결이와 점수대가 비슷한 근접 딜러.

상성이 좋았다. 아마 이번엔 쉽게 이기리라.

생각만 좀 바꾸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각 잡힌 검술에서 조금 탈피해 그냥 보이는 빈틈을 무작정 이기어검으로 찌르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일단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만큼 녀석도 회귀 전의 녀석만큼이나 의외성 있고 날카로운 검 놀림을 보여 줄 테고.

‘역시 이 팀엔 나뿐인가.’

이 녀석들과 그럭저럭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제대로 된 분석과 성장 메뉴얼을 줄 수 있는 꽤나 완벽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회귀의 이점을 제대로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애들 키우는 것도 일이네.’

하지만 그 기대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정말. 정말로 무참히 배반당했다.

윤한결 이 미친놈이, 이기어검을 검처럼 쓰지 말라고 했다고, 검술을 아예 펼치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그래, 총. 내가 총을 쓰듯이 미친 듯이 여러 개의 검을 조종하며 칼을 총탄처럼 날려 대기만 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상대 헌터도 초인인 만큼 날아오는 검을 모두 방패와 검으로 쳐냈다.

아니, 상대 측에서도 오히려 의아해 하는 듯했다.

아마 ‘왜 일차원적으로 검을 날리듯 쏘기만 하고, 다시 회수하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했으리라.

이런 시발…….

‘내가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별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연하지만 윤한결은 비슷한 점수대의 상대였음에도 전보다 훨씬 크게 참패했다.

“좀 더 검 쓰듯 말고 총 쏘듯 날렵하게 쐈어야 했는데. 네가 말한 방향성은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한 번에 익숙해지진 않네.”

확실히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야 이 빡대가리야.”

이 녀석은 상식에서 자유로운 검술을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검 대신 총 쏘듯 날리라고 이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결국 그 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서 윤한결을 이해시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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