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정상의 편린
[이근택] : 거, 인맥도 쌓는 겸 한번 어울려 주거라. 따지고 보면 비슷한 처지 아니냐. 믿고 있겠다. ^^
조연화와 내가 정원으로 나간 사이, 이근택에게 저런 문자가 와 있었다. 아니 무슨, 내가 애 돌보는 사람도 아니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으나, 사실 나에게도 나쁜 시간은 아니긴 했다.
앞으로 좋은 팀을 꾸려 나갈려면 당연히 인맥이 중요하니 좋은 선수나 조준호 사무장 같은 헌터업계 권력자와 연을 만들어 놓는 게 편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꿰뚫는 눈]으로 잠깐 조연화를 흘겨봤다.
[조연화]
[스킬]
[대지의 부름을 받은 자 : S] : 마나가 허락하는 한 대지의 기운을 이용해 흙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대지의 가호 : A] : 1회에 한해 상대방의 공격의 피해를 크게 감소시켜 주는 갑주를 생성합니다.
[신체능력]
[힘 : 7.3 ]
[반응속도 : 9.4 ]
[유연성 : 9.3 ]
[지구력 : 9.4 ]
[재생력 : 8.7 ]
‘오…….’
확실히 3부에 있는 애들만 보다가, 지금 1부에 있는 녀석을 보니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과연 최연소 1부 리거라고 자랑할 만했다. 나이가 나랑 비슷한 정도 수준임에도 스테이터스가 거의 개인의 성장 한계까지 개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킬 또한 범용성이 넓으면서도 강력한 계열이었다.
‘조준호 사무장이 어릴 적부터 교육했다고 봐야겠지…….’
일반적으로 헌터는 주로 각성하고 나서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훈련하기 시작하기에, 이렇게 이른 나이대에 스테이터스가 많이 높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교육도 환경이 중요한 법.
류재준이 그랬듯, 조연화도 조준호 사무장이라는 1세대 헌터에게 각성하기 한참도 이전부터 일종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리라.
그렇다면 아마 보지 않아도, 스테이터스를 제외한 무기술이나 스킬활용 능력, 마나장비의 활용능력 같은 것들도 이미 수준급이겠지.
어느 정도 조연화에 대한 파악이 끝나자 한편으론 의구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이 녀석을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거지?’
스킬도 좋은 것뿐만 아니라 꽤나 특이한 편이고,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도 한데.
조연화…… 조연화…….
‘…….’
초능력을 생각하며 이름을 되뇌이고 있자, 불현듯 머리를 스치듯 생각나는 게 있었다. ‘대지의 여제’ 조연화.
잠깐이나마 회귀 전 과거에서 이 이름을 봤던 것 같다.
아마, 은퇴관련 기사였던 것 같은데…… 최연소 나이로 1부 데뷔한 슈퍼루키, 세간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하다. 였나?
대충 그때의 헤드라인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하니 어렴풋이 이게 무슨 일인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녀석. 우리 팀에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조연화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들었어.”
“?”
“이근택 회장님의 기대주라고. 얼굴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 1부 리그로 승급 예정인 거니?”
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건 어렴풋하게 기대하고 있는 기대주라는 것 정도인 듯했다.
음…… 어떻게 한다. 장단을 맞춰서 타쿠미 이야기나 이력을 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건드려 볼까?’
“아니, 지금 3부 리근데?”
“?”
조연화가 내 대답에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러곤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
아까 전부터 이 미묘하게 쌀쌀했던 분위기가 더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3부라고 말하기 전엔 마지못해도 말 한두 마디는 섞어 주겠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말 섞기도 아깝다는 느낌?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지금 벽에 부딪혀서 은퇴를 겪을 정도로 심하게 슬럼프를 겪고 있는 상황이리라.
그렇다면 다소 불편하겠지만 그 부분을 건드려 보는 수밖에.
“그쪽은. 1부에서 경기하는 거 할 만해?”
“응.”
“?”
역시나 그 이야기는 하기 싫은지 단답으로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최연소 한국 1부 리거 라던데. 다음 목표랄 건 없어?”
“글쎄.”
음. 이쯤 되면 아무래도 아예 대화할 생각이나 의지 자체가 없는 듯 보였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는데 미래 목표니 지금 경기하는 이야기 따윈 이야기하기 싫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것과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정답이다.
그랬기에 일부러 더 기분이 나쁠 법하게, 직설적으로 쏘아붙였다.
“너, 혹시 나랑 대화하는 게 싫냐?”
“후…… 오늘은 아빠 때문에 나온 거니까. 그래, 그것도 그렇고, 솔직히 말하면 시간 아까워.
뛰어난 헌터한테 레슨 받고, 더 올라갈 수 있는 시간에 너랑 이렇게 대화 나누고 있는 거. 까놓고 말해서 3부 리거엔 관심 없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내가 유도한 부분이지만, 순간적으로 욱할 뻔했다.
하지만 차라리 가식적이고 단답으로 자신을 숨겨 버리는 것보단 속마음을 꺼내는 게 낫다.
그래야만이 성장의 실마리를 던져 줄 수 있으니까.
“레슨 받아서 위로 더 올라간다고? 내가 보기엔 더 성장할 단계는 아닌 거 같은데.”
내겐 보였다. 한계라도 돌파하지 않는 이상 아마 어린 시절부터 조준호에게 훈련받은 녀석은 기량 자체는 이미 완성되었을 터.
아마 지금 즈음에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으리라. 여기서 더 올라가려면 1세대 헌터에게 배워선 이제 큰 진전을 이루진 못하겠지.
‘능력치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이 속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솔직히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 이 녀석은 지금 상황에 이 한마디가 머릿속 언저리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연화는 그 말에 냉소적이다 못해 표정을 흉신악살처럼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더 성장할 자신 있어?”
아마, 저쪽에서는 폐부를 찌르는 말일 것이다.
“……네가. 네가 나에 대해 뭘 아는데?”
격앙된 어조. 완전히 억누르지 못해 살짝 떨리는 억양에서 분노가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듯싶었다.
조연화는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한 손으로 짚더니 뜨겁게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하. 내가 3부 리그 떨거지랑 뭔 말을 하는 건지. 말을 말자.”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조연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원의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나는 그 길로 조준호 사무장과 이근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아무래도 조연화는 아예 바깥으로 나가 버린 듯했다.
‘이번 만남은 여기까지인가…….’
너무 급할 필요는 없었다. 첫 만남인 만큼, 파격적으로, 그리고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면 충분하니까.
꿰뚫는 눈으로 살펴본 조연화의 능력치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
“……그래서 연화양이 조금 화가 난 듯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난 먼저 연화를 따라가 볼게요. 아, 창현군 오늘은 즐거웠어요.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요.”
조준호 사무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먼저 조연화가 떠난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동시에 꽤나 씁쓸해 보였다.
하지만 뭐, 내가 애 보기는 특기가 아닌데 어쩌겠는가.
“아니. 녀석아. 애 하나 잘 못 돌보냐. 너랑 연을 만들어 주려고 데리고 나온 녀석인 것을……쯧쯧.”
“영감님. 제가 애 돌보러 왔습니까?”
뭐, 이근택 영감한테 내가 일부로 그랬다는 말을 할 필욘 없었다.
이근택은 한숨을 푹 쉬더니 생각했다.
‘아…… 이 녀석도 애지.’
이창현의 성격을 모르지 않았는데 붙여 둔 자신의 잘못도 없다고 할 수 없으리라.
이근택은 갑자기 자신의 책임도 꽤나 큰 것 같아 조준호에게 미안해졌다.
“그래, 그건 그렇고 요새 경기는 어떻느냐?”
“? 보면 아시잖습니까. 설마 아무리 3부라 해도 자식 같은 PER 경기도 안 보시는 겁니까?”
“내가 3부 리그 경기를 볼 거라 생각하는 게냐?”
물론 이근택은 이미 결과며 경기 과정이며 모두 알고 있었지만, 다 지켜봤다고 하기엔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거짓말을 했다.
‘아니 어쨌거나 자기 팀이나 마찬가진데 경기를 안 봤다고?’
뭐…… 그럴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내 표정이 순간적으로 괴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단독은 아니지만 1위로 순항중이죠.”
“뭐, 그럭저럭 해내고 있구나.”
그럭저럭은 무슨. 회귀 전에 이근택이 직접 지휘했을 때도 이렇게 쉽게 순위 안 올라갔는데. 하여간 잘 하면 잘 했다고 쉽게 말하는 법이 없는 영감탱이다.
“하지만, 순위라는 건 항상 올리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려운 법이지.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미 한 번 네 주요 전술이 깨졌던 이상, 두 번 , 세 번 깨지는 건 일도 아닐 게다.
아직 상위리그로 올라가지 못했을 뿐, 스킬만 보면 충분히 네 전술을 상대할 법한 히든카드 하나 둘 정도는 몇몇 팀에서 갖고 있을 거고.
꼭 굳이 3부에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은 분명.”
이근택은 그러면서도 속으론 이창현이 어중간하게 방심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뭐, 전에 상대해 봐서 알지만 겉보기엔 어리고 데뷔한지 얼마 안 되었어도, 경기에 있어선 능구렁이같이 노련한 녀석이니까. 그런 것에 쉽사리 당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무결하게 걸어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리 능숙해 보이는 저 녀석도 이근택이 보기에는 아직 어렸으니.
“네가 대비해야 할 게 무엇인지 알겠느냐?”
“뭐, 말씀하신 대로겠죠. 폭격기 조합이 카운터당해서 뚫리는 거. 그 해결책 정도만 대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여차하면 대부분 마나장비를 다루는 게 미숙한 3부 리그에서는 막말로 내가 어느 정돈 전장을 휩쓸 수도 있으리라.
혼자 다하면 PER에 좋은 영향이 안 갈 것 같아서 안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대답에 이근택은 웃었다.
“네 녀석 생각이야 뭐, 정 안되면 네 몸으로 때우겠다는 정도의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역시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꽤 잘 맞추는데?’
“하지만 아이야. 만약 한 수를 더 내다보는 코치나 감독이 있다고 항상 생각하는 게 좋을 게다.
폭격기 조합은 파훼되는 한 가지 방법만 노출 된 게 아니며, 네 무력도 일단 드러난 이상 예상치 못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는 못해.”
이근택의 눈이 깊어졌다.
솔직히 여기까진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쉰 후, 다시 나온 이근택의 연륜이 느껴지는 말에서는 무언가 힘이 느껴졌다.
“한 번 파훼된 전술은 그 전술의 바닥까지 상대에게 다 보였다는 뜻. 쏠 수 있는 마나 봄버의 갯수.
즉, 지금까진 몰랐기에 더 위협적이었던 가능한 폭격의 횟수까지 들킨 게지.
그리고 네 존재 자체도 그러하다. 모든 무기는 드러난 이상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지.
예를 들면, 네가 나를 상대로 그러했듯 ‘맵’의 변수를 이용하는 것같이.
네 일신의 무력은 강하나, 그 어떤 강한 헌터라도 맵의 핵심 기믹으로 봉인한다면, 혹은 강력한 몬스터와 1대1로 대치시킨다면 그 일신의 무력은 무력화되기 마련이지.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항상 방법은 있어. 그건 개인이 얼마나 강하건 간에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러기에 팀 게임이지.”
하지만 이근택이 내뱉은 이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3부 리그는 오디션 때와는 달리 맵이 단순하기에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건 예시 중 하나일 뿐이고, 이근택의 충고는 좀 더 폭넓게 봐야 했다.
제일 위험한 순간은 이기기만 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패배하지 않으니 피드백할 수 없고, 문제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하게 준비되어온 미지의 위협에 패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완전무결에 가까운 길. 회귀 전과는 다른 길. 그 길에는 분명 이런 이근택과 같은 시점이 필요하리라.
‘솔직히 1~2판쯤 패배해도 1위를 지키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좀 쉽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 번의 패배조차 하지 않는 게 목표여야 했던 거다.
회귀 전보다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어쩌면 은연중에 아직 3부라고 긴장을, 준비를 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이근택이 1세대 헌터 중 가장 뛰어났던 탑 공략자라는 건가…….’
그 연륜은 어디 가지 않았다. 아마, 이근택은 패배는 곧 죽음으로 이어져 다음이 없는 전장에서 싸워 왔겠지.
그것으로 하여금 그가 절대 방심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게끔 모든 상황을 염두하고 사고하는 능력으로 이어진 것일 터다.
그리고…… 아마 내가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정상을 쥐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또 다른 정상이었던 이근택에게서 내가 이번 생에 바라는 것을 위한 편린을 본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