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61화 (61/270)

061. 뜻밖의 만남

PER의 현 순위는 LTD전 승리로 공동 1등. 그리고 LTD의 경우에는 공동 2등에서 3등으로 떨어졌고, RIX가 같이 공동으로 1등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RIX와의 경기가 아마 단독 1위를 탈환하는 분수령이 되겠지.

사실 1위냐 2위냐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2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는 승급전은 2위까지 진출할 수 있으므로.

‘뭐, 그렇다고 해서 되도록 안 지는 게 좋은 건 당연한 거지만.’

팀 RIX는 개막전부터 LTD에게 패배를 안겨 주기도 했고, 분위기 자체가 아주 좋다. 이번 시즌 새롭게 유혜주를 영입하기도 했고.

지금에서야 꽤나 지난 일이지만, RIX를 생각하니 [헌터스 – 더 넥스트제네레이션]에서 유혜주가 분해하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진짜 이를 갈고 나오겠지.’

RIX라는 팀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유혜주는 아마 나한테 쌓인 게 많을 테니까.

뭐,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저번에 문자를 주고받았을 때는 꽤나 내가 그쪽에 밉상인 모양이었다.

나 같아도 계속 앞을 가로막는 선수가 있으면 짜증이 날 것 같긴 한데…….

아무튼 RIX도 최근 들어 우리 팀. PER처럼 유혜주를 통해 특별한 전술을 기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유혜주의 [성역] 스킬을 통해 공방일체가 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원거리 딜러들로 하여금 상대를 때려눕히는 일종의 이동형 시즈탱크 같은 구성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몇 번 본 구성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도 꽤나 재미있었다.

회귀 전 유혜주는 저런 시즈탱크형 구성보다는 주로 전위라인을 강하고 크게 구축해 근접 딜러 대단위 전투를 벌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RIX의 경우 다음 경기이긴 해도, 몇일 간 우리 팀 경기는 없어서 약간 여유가 있는 편이긴 했다.

아마 그 기간 동안 RIX에 맞춰서 대처할 팀 단위 대응 연습이 필요하리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꽤 오랜만에 이근택 회장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몇일 간 경기도 없을 텐데,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이야기였다.

아…… 이제 슬슬 3부 헌터스 리그도 8부 능선에 오르긴 했다.

그런 시점에서 이것저것 팀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을 것 같긴 하다.

‘이근택이 원래 이 팀의 오너였으니……

어떻게 꾸려 가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긴 하겠지. 예상외의 성적에 꽤 놀라기도 했을 테고.’

물론, 헌터스 리그 전체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

이근택과 만난 곳은 놀랍게도 그의 자택이었다.

회귀를 거친 나로서도 처음 와 보는 곳이었기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1세대 헌터의 공로를 치하해서 이권을 많이 받았다고 듣긴 들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다. 집보다는 대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주거시설은 물론이고 개인 연무장을 비롯한 잘 다듬어진 정원까지. 시설이 번쩍번쩍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이근택은 정원에 있는 정자에 차를 따라 놓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였던 점은 이근택 혼자 있던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회장님. 그쪽 분들은…….”

이근택과 인사를 나누고 물어보자, 그 쪽에서 먼저 대화를 걸어왔다.

이근택 회장과 비슷한 나이대의 말끔한 인상의 중년이었다.

“하하. 이창현 선수. 경기 잘 보고 있어요. 한국 헌터협회 사무장 조준호입니다.”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깍듯한 태도로 인사하는 모습에서 좋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 옆에 앉은 소녀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지금의 나랑 비슷한 연령대…… 헌터스 리그 선수인가?’

근데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저런 인상을 가진 선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내가 모든 선수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유명한 선수들은 대부분 기억하는 편인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조준호 사무장이 일어나 자신의 옆에 앉은 소녀를 소개했다.

“아, 이쪽은 내 딸아이, 조연화라고 해요. 자네랑 같은 헌터스 리그 선수인데 요새 영 슬럼프인 것 같아서 바람 쐴 겸 같이 나왔지.”

그런 것 치고는 꽤나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린 채로 표정을 찡그리는 모습에서 억지로 끌려나왔다는 인상이 강했달까.

이쪽을 보는 듯 마는 듯 하는 게 예의가 없다면 없다고 할 수도 있긴 한데, 뭐 내가 그런 거 따지는 사람도 아니고.

“연화 녀석이 벌써 1부 리거여도 너랑 나이는 같으니까 친한 선후배처럼 지내면 좋지 않겠나. 허허. 그래서 소개시켜 주려고 데리고 나왔지.”

“저랑 동갑인데 헌터스 리그 1부 리거라구요?”

나랑 같은 나이인데 1부 리거이면 엄청 유명했어야 정상이고, 그러면 내가 알았을 텐데.

‘금방 은퇴하거나 폼이 안 좋아져서 강등됐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조준호가 이근택의 말을 이었다.

“최연소 1부 리거일뿐만 아니라, 최연소 헌터스 리그 프로 데뷔까지 한 아이라 이름쯤은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보에 둔하구나.”

이근택은 꽤나 의외라고 생각한 듯 했다.

아니…… 알아야 하는 선수는 회귀했으니 대부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다른 선수들은 별로 찾아보지도, 구경하지도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별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텐이 터지거나, 1부에서 오래 버티거나 활약을 했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이근택회장이 말을 이었다.

“아, 불러놓고 이런 말을 하니 미안한데. 잠깐 조준호 사무장과 할 말이 있으니 둘이 정원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떤가.”

“제가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던 나머지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자기가 불러 놓고서 이렇게 보낸다고?

이근택이 나를 보면서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의도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긴 한데…….’

아마, 조준호 사무장이랑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PER 원 구단주로서 헌터스 리그계에 인맥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하면 굳이……?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혼자서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승승장구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뭐, 물론 이런 측면이 도움이 안 된다고 하기도 모호하겠지만……

아무튼 결국 못이기는 척 하고,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조연화와 자리를 나섰다.

***

“그래서. 창현이가 샘나서는 아니겠고, 왜 연화랑?”

이근택 회장이 조준호 사무장에게 물었다.

꽤나 이창현이 유망하게 보이더라도, 굳이 나이대가 비슷하다 해서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붙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완전 어린 애들도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다 큰 애들인데.

게다가 두고 보니 연화가 보고 싶다고 말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만, 실상은 조준호가 조연화랑 이창현을 붙여 놓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뾰로통하게 혼자 앉아 있을 리 없었으니.

“자네, 지금 연화가 어떤 상태인지 아나?”

“한국 헌터스 리그계에서 최연소 기록이란 기록은 다 꿰찬 건 알고 있지.”

“후…… 겉으로 보기엔 그렇겠지.”

조준호는 이근택의 호평에도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였다.

“연화는 실력은 꽤 뛰어날지 몰라도, 멘탈은 여전히 어린애야.”

“그거야 10대 후반 남짓의 나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문제는 지금 아예 헌터를 관 둘 정도로 멘탈이 망가졌단 거겠지.”

“지금 연화가 있는 팀이 그리 못 나가는 건 아닐 텐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조연화가 1부 리그에서 최고의 수준의 활약을 보이는 건 아니더라도, 충분히 1명분의 몫. 아니, 1인분 이상의 몫을 하고 있었으므로.

“팀의 승패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네. 연화는 우리 같은 최고의 1세대 헌터를 보면서 세계 최고의 한국 헌터를 꿈꿨는데, 실상은 어떤가. 한국 헌터스 리그는 세계 리그에서 한참 변방에 불과해.”

이근택에 문득 떠오르는 건, 최근 일본대 한국 헌터스 리그 국제전이었다. 뭐, 그 경기를 본 한국인이었으면 다 분했으리라.

“뭐, 그렇긴 하다만.”

“연화는 빨리 올라간 만큼, 자기 자신이 한국 헌터스 리그를 바꾸고, 이윽고 한국팀에서 세계랭킹 1위를 찍는 걸 당연한 목표로 삼았지. 근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 버린 거네.

주위에서 천재다. 천재다 말은 많았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한계가 변방 리그에 불과한 한국리그 1부의 상위권 정도에 불과하다는 걸.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잘 나갔던 건 어릴 때부터 1세대 헌터인 내 조기교육덕분이라고 깨달아 버린 거지.”

‘한계를 깨달아 버린 건가.’

승승장구하면서 쉽게 올라갈수록, 큰 벽을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기 마련일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는 무슨. 한국 리그를 이끌고 세계에 도전하기는 무슨……

지금껏 꿈꿔 왔던 것과 현실의 괴리를 처음으로 깨달았으리라.

“그래서 창현 선수와 만나길 바랬던 거지. 아직 3부라고는 하나, 연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상에 닿은 녀석이었으니까.

최근에 타쿠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곤 딱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게지. 연화의 모티베이션을, 열정을 다시 불태우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호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창현만큼의 적임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혜성같이 나타나, [헌터스 - 더 넥스트제네레이션]에서 누구도 상상 못 할 임팩트를 보여 줬다.

감독겸 구단주 대리, 선수까지 해 가며 3부 리그의 꼴등 팀을 공동 1등까지 끌어올렸다.

일본 국대 선수인 미나미노 타쿠미를 꺾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아직 한국 헌터스 리그계를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변혁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기엔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회의감도 들었다.

“근데, 연화 녀석 한 성깔 하지 않나? 그 녀석이 창현이를 알고 있을 리는 없고.

자기소개를 하면 끽해야 그냥 3부 리거라고 생각할 텐데. 대화를 나눌 껀덕지나 나올지 모르겠군.”

이근택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1부 리그까지 승급한 조연화는 단순히 3부 리거라고 소개하면 이창현을 거들떠 볼 생각도 하지 않겠지.

조연화는 3부 리그에서 1부 리그까지 빠른 시간 내에 겪었기에, 3부와 1부의 극렬한 차이를.

마나장비의 숙련도. 그리고 스킬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스테이터스 같은 기초체력까지.

일반적인 3부 리거의 수준을 상대평가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1부에 있는 조연화가 관심을 가질 리가.

영향을 주려면 이창현에 대해 뭐라도 좀 알거나, 하다못해 대화라도 해야 알 텐데. 조연화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대할 가능성도 컸다.

조연화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종종 지나치게 쌀쌀맞게 대하곤 했으니까.

“사실 관련도 없는 소년에게 내가 과한 기대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녀석으로서도 헌터협회 사무장과 연을 맺는 대가로 연화를 한번 만나 주는 것도 나쁜 거래는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확실히 이창현에게는 남는 거래이리라. 이근택 자신이야 이제 던전같은 실제 전쟁에서 뛰는 헌터들이 거의 없기에 실제 권력이라 할 만한 게 헌터협회장이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조준호 사무장은 어떤가? 헌터스 리그를 포함한 업계 전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위였으니 앞으로 팀을 혼자서 꾸려 나갈 이창현에겐 큰 도움이 되리라.

“그건 그렇고. 확실히 궁금하긴 하군. 지금쯤 창현이 녀석이 연화랑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솔직히 말해 인터뷰 같은 거도 좀 보면 이창현도 한 성깔 하지 않는가.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이근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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