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류재준.
이근택이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거둔 녀석이었다.
탑의 안전구역에서 제 부모와 잘 살고 있었던 녀석이었다.
적어도 안전구역이 갑작스레 무너지고 몬스터들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여느 평범한 녀석들과 다르지 않았겠지.
부모를 잃은 녀석은 몬스터에게 복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겨우 열댓 살인 어린 녀석. 그것도 겨우 막 각성한 녀석이 그것에게 승산이 있을 리가.
증오심에 무모하게 몬스터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녀석을 잡아채어 데리고 온 것. 그것이 녀석을 거두게 된 계기였다.
‘그 후로 시간도 참 많이 지났구만…….’
녀석은 그 증오로 말미암아 빠르게 헌터로서 성장했지만. 다 성장하고 난 이후에 탑의 던전은 이미 공략된 후였다.
녀석의 증오는 갈 길을 잃었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윽고는 이근택의 집에서 나가기까지 했다.
이근택은 녀석을 찾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삶의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설령 녀석이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자살한다고 하더라도 잠시 울적해 할 뿐. 하지만 결국은 담담히 받아들였을 것이리라.
그런데 그 녀석이 지금 앞에 LTD에 입단하여, 무언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한편, 이창현.
그 녀석은 재미있게도 그 녀석의 상대는 오랫동안 삶의 의지를 잃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세월에 말라죽고 있는 듯했던 이근택을 일으켰던 이창현이었다.
‘회장님이 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제가 회장님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만한 녀석.
혈기왕성한 때라면 녀석을 대놓고 발로 뻥 차 버렸겠지만, 어째선지 마음속의 무언가가 다 타 버리고 재만 남아 버린 이근택에게선 오히려 그 오만함이 새로운 삶의 불씨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 짓기를 멈출 수 없었다.
정말이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거늘, 아직 세상엔 볼 것이 남아 있었나 보다. 이창현도 류재준도.
그런 잠시간의 감상도 잠시. 냉정하게 누가 이길지도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이창현은 전에 한 번 경기에서 맞붙어 봤기에 대충 알았고, 류재준은 아주 어린 시절이나마 자기가 직접 가르쳤기에 조금은 알고 있었다.
류재준의 특기 스킬은 [파동 : S+]. 마나소모가 매우 크지만 분명 그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스킬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으로 강한 마나의 파동을 일으켜 타격을 가한다.
마치 존재 자체가 살아 있는 마나봄버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까지 하는.
그리고 이 스킬은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근택의 눈앞에 아주 인상적인 형태로 펼쳐졌다.
이창현의 PER이 자랑하는 ‘폭격기 조합’, 즉 이기어검과 마나봄버의 조합이 접근도 채 하기 전에 류재준의 마나파동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이창현 녀석도 쉽게 지지는 않겠지만…… 저걸로 꽤나 큰 타격이겠지‘
아무래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손자 같은 놈. 류재준이 다시 일어서 좋은 경기를 보여 준다고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 오만한 놈에게 네 존재를 보여 줘라.’
상상 속에서 자신이 아는 두 개의 존재가 싸우면 무엇이 이길까? 하는 순수한 아이 같은 욕망이 이근택에게서 피어났다.
저절로 이근택의 얼굴에는 짓궂게 웃음이 지어지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재미있었다.
뭐, 사실은 누가 이기든 상관은 없지만.
***
“창현아!!”
마나봄버가 모두 공중에서 폭발하자마자, 당황했는지 팀원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내가 어미 새도 아니고 뭐만 하면 다 나를 찾고 난리야.
이 전술만 써먹고 살 수 없다고 평소에도 그렇게 누누이 말했는데 말이지.
“실패한 건 신경 쓰지 마. 그런 거 하나하나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후. 애들이 승리 경험이 별로 없는데, 위로 올라오다 보니 지시해 줘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은 마나봄버로 둘을 치웠으니까 7대5. 전면전에서 우리가 유리하니까. 전에 지시했던 그대로 간다.”
“오케이“
“알았어.”
이연주를 최후방에 남겨 둔 채로, 한지수와 윤한결이 순식간에 합류했다. 그에 반해 아직까지 상대방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마치 전면전을 기다리는 듯한 움직임.
‘후…… 류재준을 믿는 거도 있겠고, LTD한테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긴 했지.’
대부분 LTD팀은 불리하게 시작해도 결국 이기는 게임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조직력과 개인하나하나의 무력이 적어도 3부 리그에선 최상위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신감 덕에 2명이 먼저 죽었음에도 전면전을 기다리는 거겠지.
게다가 지금처럼 류재준이 있어 원거리 마나봄버 저격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직접적으로 격돌하는 전면전밖에 상대하는 방법이 남지 않았다.
“가자!”
마나봄버에 의해 떠올랐던 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나와 이연주를 제외한 5명의 PER팀원이 순식간에 돌격했다.
건물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깥 저격 포인트에서 ‘꿰뚫는 눈’으로 내가 본 것만 해도 벌써 PER 팀원 두 명이 사망, 그리고 LTD측에서도 한 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니까.
‘역시 LTD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 우리 팀은 사실상 폭격기 조합 원툴로 올라온 데 비해, 상대팀은 정공법. 정석적인 한타를 했을 때, 그 강력함이 막강하니까.
정면으로 맞붙자, 그 강력함이 더더욱 크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과 아군이 너무 복잡하게 뒤엉켜 싸워 류재준이 [파동 : S+] 스킬로 광역 공격을 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정도일까.
몇 번의 지원사격을 하던 나는, 계속 우리 팀이 하나 둘 죽어 나가는 걸 보고는 작전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 안에서 위협적인 사격을 하기 어렵기도 했고.
최근 우리 팀이 3부 리그 최선두권에 자리 잡아 이 정돈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무기를 저격총에서 [마법공학 무기변환 : A]을 통해 쌍권총으로 변환시켰다.
근접전에서 기동성을 해치지 않고, 작은 부피로 인해 방향전환도 쉽기에, 가장 적합한 총기종류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는 계속 폭격기 조합을 기용해 바깥으로 나오는 녀석들만을 저격했기에 아주 오랜만에 쓰는 무기였다.
‘이젠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전에 헌터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에서 클론 잡을 때나 한번 썼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련도가 결코 더 낮은 건 아니었다.
단지 상황에 맞지 않았기에 잘 쓰지 않았을 뿐.
나는 두 개의 쌍권총을 들고, 에어앵커로 그 건물에 날아 들어갔다.
***
경기 시작 전, 류재준은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탑에 대한 증오로 헌터로서 힘을 쌓아 왔거늘, 그 목적지를 잃어버린 지금.
류재준이 가진 새로운 관심사는 헌터스 리그였다.
비슷하게 마물을 죽이며, 이윽고는 상대방이 있다는 점에서 달랐지만. 갈 길 잃은 그에겐 다시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별거 없는 녀석들뿐인 게 참 아쉽지만.’
아무래도 3부 리그여서 그런 것이리라.
명문구단이라는 LTD에도 쉽게 들어왔고, 그렇게 새로 꿰어 찬 보금자리에서도 뛰어난 전력으로 인정받아 순식간에 주전 자리를 얻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 경기에서 LTD 관계자들이 꽤나 긴장하던 PER의 전술.
뭐랬나. 폭격기 조합? 이랬었나? 아무튼 그런 것도 깨부쉈고.
류재준이 생각하기엔 탄탄대로였다.
아니, 너무 쉬웠다.
팀에서는 온갖 겁은 다 주면서 녀석의 전술이 위험하다고 했었는데, 허무하게도 자신의 손짓 한번. 마나 파동에 모조리 쓸릴 줄이야.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3부 리그는 어차피 밟고 올라갈 발판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재준은 세상을 잘 몰랐지만, 자신의 위치가,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꽤나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마나봄버를 이용한 폭격이 실패하자 녀석들은 역시나, 결국 정공법으로 들이닥쳤다.
류재준한테 붙은 녀석은 날아다니는 칼을 쓰는 녀석 하나. 귀찮게 중력을 조정하는 녀석 하나.
칼이 두어 개나 날아다니며 위협적으로 찔러 들어왔다. 미리 보고 고개를 꺾어 직선으로 날아오는 칼을 피했지만,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다.
‘3부 리그치곤 꽤나 예리한데……?’
위협적인 것은 날아다니는 검뿐만이 아니었다. 검을 피해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내딛은 순간, 강렬한 중력에 이끌려 넘어질 뻔했다.
……저건 저 옆에 녀석인가.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정도의 찌르기. 그리고 방해 공작은 익숙했으니까.
이근택과의 싸움은, 헌터가 되기 위한 수행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다시금 정면과 측면 사각을 노려 동시에 날아오는 칼. 류재준은 이 비좁은 건물 안에서 곡예 넘기 하듯, 그 검들을 뛰어넘어 피했다.
그 직후 에어비트를 순식간에 설치해 검의 간극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그 둘에게 순식간에 접근했다.
놀란 표정.
그래, 이런 반응이 정상이다.
류재준은 그 둘에게 순식간에 접근함과 동시에, 두 손벽을 마주하며 다시금 [파동 : S+]를 뿜어냈다.
그를 감싼 강력한 척력이 주변을 휘몰아치듯 퍼져 나갔다.
이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에.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치 원래 이래야 할 것처럼.
“컥……!”
공중으로 검을 날리는 능력도. 중력을 이용해 눌러 버리는 능력도 신기했지만, 나름 이 나이대에선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인 류재준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작 몇 년이라고는 하나, 그 어린 시절 이근택에게서 습득한 기본기는 어디 가지 않았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그 주변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LTD 팀원도 몇몇 쓰러지긴 했으나, 대부분 PER의 팀원이 더 많이 쓰러지고 있었다.
‘하긴…… 폭격기 조합인가 뭔가를 빼면 특별할 것도 없는 팀이라고 하긴 했었지.’
하품이 나올 만큼 쉬웠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
전면전이라 다 나온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나선 녀석이 있었나?
뭐 어차피 거의 다 정리된 상황. 새로운 녀석이 나온다 하더라도 전황에 큰 변화는 없으리라.
그리고 이미 몇몇 LTD 팀원이 그 녀석을 감지했는지, 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할 만큼 했으니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LTD에 들어왔다고는 하나 사실 팀 경기를 몇 번 본 적 없었기에 구경이나 해볼 심산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처음으로 녀석에게 달려든 녀석은 한손검, 한손 방패를 쥔 전형적인 LTD의 근접 딜러. 이름은 뭐랬었지……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났다.
그리고 그 옆으론 LTD의 서포터가 [광역 속박 : A]를 조준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기동성을 잃으면 LTD 팀원이 더 많이 있는 이 상황에서 싱겁게 정리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어떻게 [광역 속박 : A]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순식간에 에어비트를 흩뿌리더니, 실내임에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거…… 대충 뿌린 게 아니다.’
마치 짜여진 길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 쪽에서 류재준이 있는 건물 안쪽의 책상까지. 초속으로 진행하는 가운데 녀석은 이동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탕! 타탕 탕!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에어비트를 밟으며 이용해 순식간에 기동하는 것과 동시에 녀석의 두 총구가 쉴 새 없이 불을 내뿜었다.
동시에 LTD 팀원 몇몇이 힘없이 후두둑 쓰러졌다. 달려들던 녀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류재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헌터로서의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 어쩌면 자신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