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지켜보는 자들
“……팀 분석은 여기까지입니다.”
“흠…… 다른 팀들은 이전 시즌이나 이번 시즌이나 엇비슷한데…… 의외로 PER이 굉장히 순항하고 있네.”
“네. 그건 역시 아까 프레젠테이션 했던 일명 ‘폭격기 전술‘이 잘 먹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파훼법은 생각해 뒀고?”
팀 LTD의 회의실에 침묵이 이어진다.
“후…… 이래서 선수 출신이 아니라 분석가 출신은 안 된다는 거야. 실전을 몰라요 실전을. 분석을 잘하면 뭐해. 좀만 기존이랑 다른 전술 나와도 파훼법 하나 제시 못하는데.”
총감독의 일갈에 다들 고개를 숙인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여기선 그가 왕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랬기에 그 정적을 깨는 것도 LTD의 총감독, 이형근이었다.
“우선 팀원들 멘탈 관리나 집중적으로 신경 써서 해 놔. 파훼할 방법이야 내 머릿속에 널려 있으니까. 그럼.”
이형근 총감독의 손짓에 회의가 끝나,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이 울려 퍼졌다.
지금 이런 사소한 것 따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차피 3부 리그의 LTD감독자리 따위 거쳐 지나가는 자리에 불과할 뿐이니까.
‘후…… 얼마나 경력을 더 쌓아야 상위 리그의 팀을 맡게 될지…….’
지금껏 3부 리그에서 꽤 훌륭한 성적을 연달아 거두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위에서는 이형근을 상위 리그 감독으로 옮겨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별 수 있겠는가.
이대로 성과라도 계속 올리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그보다 지금 당면한 골칫거리는 역시 PER이다.
솔직히 그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이렇게 PER이 치고 올라오리라곤 생각 못했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전술을 들고 온 채로.
한두 판 지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녀석의 인터뷰를 생각해 보면, LTD가 졌을 때 팬덤 사이에서 후폭풍이 좀 크게 올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 이야기는 물론 1, 2부 LTD 감독, 프론트 직원들 귀에 들어갈 테고.
그럼 상위 리그로 보금자리를 옮기는데 애로사항이 생길수도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 못하기도 하고. 그런 애송이 하나를 못 이겨서 이 사단이라니.’
이형근은 천천히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했다.
그리고 벤치에 있는 선수 목록들 중 한 명의 신상명세를 보고는 눈을 빛냈다.
그래, 저런 근본도 없는 조합을 차단할 수 있는 조합 즈음이야. 이 녀석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카운터를 칠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훈련의 주말이 끝나고도 계속 경기는 이어졌다. 그리고 계속 연이은 ‘폭격기 전술’은 역시나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무래도 팀 수준이 낮을수록 다양한 전술을 잘 구사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전술을 파괴적으로 구사하는 게 좋단 말이지…….’
아주 제대로 먹혀든 폭격기 전술은 다양한 파훼가 시도되었지만, 실상 통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제대로 된 전술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헌터스 리그 3부가 시작되고 거둔 성적은 5승1패. 뭐, 다 이기진 못했지만. 어느 팀이라도 정규 리그까지 모든 경기를 다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다.
패배한 그 경기는 맵 특성상 폭격기 조합을 쓸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고. 팀원들이 함정에 걸려 다들 한 번에 폭사하는 바람에 혼자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론, 그 경기를 제외하곤 승승장구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승을 거둘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지금까지 대진에 하위권 팀이 많았다는 점 때문이니까.
‘그리고 다음 경기가 LTD라…….’
처음으로 PER이 마주치는 상위권 팀이었다.
지금 LTD가 1위로 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그래도 이번 시즌 현재 순위는 2위로 우리와 승점이 같았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닐 뿐더러 서로 3부 리그 우승을 노리는 상대로서 아주 중요한 상대였다.
승점 1점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할 수 있는 상대일 뿐더러, 정규 시즌이 끝난 후 다른 경기에서 만날 가능성이 컸으므로.
“그런데 창현아…… 안 그래도 LTD전에 집중해서 훈련해야 할 시긴데 연주한테는 왜 저런 훈련을 시킨 거야?”
“아이 깜짝아…….”
아무리 나라고 해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척도 전혀 못 느꼈는데.
헌터연합훈련소에서 이연주가 내가 내준 새 훈련과제를 잘 수행하나 염탐하고 있었는데, 어느 샌가 이종규가 와서 묻고 있었으니……
‘이종규 코치한테는 별로 알려 줄 생각 없었는데…….’
왜 시키는지 들어 봤자 이해도 못 할 테고.
지금 이연주가 하고 있는 훈련, ‘맵에 들어가 몬스터나 작은 미니언 등을 산 채로 사로잡기’는 스킬 ‘속박’의 잠재능력 개방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
그 스킬은 덫을 놓아 짐승을 잡는다던가, 하다못해 잠자리채로 곤충을 잡는다던가. “잡는 것에 대한 감각”을 성취할 때 개방된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모르는 이종규로서는 그걸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보인 잠재능력 각성방법과, 이연주의 잠재능력 [속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아예 헛소리를 하기로 했다.
“코치님. 저번에 제가 연주 씨가 생존능력을 길러야한다고 했던 건 기억하죠?”
“어…… 어…… 그렇지?”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기동성?”
“그것도 좋죠…… 하지만…… 중요한건 반대로 습격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겁니다. 역지사지로 어느 곳에서 덮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상대가 공격할 루트를 이해해 보라는 의미죠.”
“아…… 그런 깊은 뜻이…….”
그 말에 이종규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분위기만 보면, 역시 다 생각이 있었구나? 하는 분위기다.
물론 그런 깊은 뜻 따윈 없지만……
‘저걸 또 믿네. 도망가려면 도망가는 연습을 해야지. 잡는 연습을 왜 해.’
나로서는 이런 설명으로 이해하고 납득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나 사실, 헌터보다 사기꾼의 자질이 있는 건가?
별에 별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다.
그러고 있을 무렵.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연주를 바라보니 무언가 변화가 생겨 있었다.
‘어……?’
마나트랩을 설치해 미니언을 붙잡고 있는 이연주에게서 일어난 변화였다.
아슬아슬하게 살짝 마나트랩을 피해 미니언이 지나가려는 순간,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해서 보고 있는 이연주에게서 무언가 뿜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미니언의 아래에서 등장한 검은 기운이 미니언을 붙잡았다.
“……!”
그 모습을 본 이연주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빨려 들어갈 듯 쳐다보던 포즈에서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됐다!”
그리고 역시나 다시 본 스테이터스 창에는
[이연주]
[스킬]
[위치특정 : B-] : 주변 상대방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속사 : C+] : 빠르게 속사합니다.
[속박 : A+] : 지정한 위치에 있는 생물을 잠시간 속박합니다. : 잠재능력 개화
[신체능력]
[힘 : 5.6]
[반응속도 : 5.6]
[유연성 : 5.6]
[지구력 : 5.3]
[마나량 :7.6]
물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이연주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해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선지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연습공간에서 나왔을 때, 환희에 차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오히려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무…… 무슨 일 있어요?”
“네. 있죠.”
한 걸음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그리곤 이연주의 양 손을 잡았다.
“새 능력 개화. 축하해요.”
이연주는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헌터관리협회. 지금에서야 그 기능이 꽤나 축소되었지만, 과거 탑을 정벌할 당시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협회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이근택은 유명한 인사들을 많이 알고 평소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자주 마주치는 만큼 친해지는 것도 당연한 처사였고.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많이 달라졌구만.”
“내가? 그렇게 보이나?”
“그래…… 무척이나.”
협회장실. 이근택 건너편에 앉아 있는 노인. 1세대 헌터이자 지금으로는 한국 헌터스 리그에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무장 조준호였다.
“자네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자넨 모르겠지.”
“왜 그러나. 내가 물러날 즈음엔 위험할 만한 몬스터도 없었을 텐데.”
“그깟 몬스터 때문에 그랬겠는가. 자네가 걱정되어서 그랬지.”
“내가?”
조준호는 과거를 회상했다.
세상에 나타난 탑을 기필코 공략하겠다는 모습으로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던 모습을.
그리고 끝내 탑을 공략했을 때 보였던 의외의 모습을. 허무감에 휩싸여 다 타 버린 재처럼 방황하던 모습을.
“자네의 목적은 순수하게 탑을 공략하는 것이 끝이었지 않는가.”
“그렇지……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었는지. 지금에 와선 하나하나 동료가 다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야. 그땐 그렇게 강렬했던 기억이면서도…… 지금에 와선 희미한 게 그들에게 몸 둘 바 없이 미안하지.”
“자네가 탑을 공략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 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다 알아. 하지만, 자신의 모든 걸 불태워 가며 목적을 이룬 노인네들은 하나같이 가만 둘 수가 없다니깐. 삶의 목적을 잃은 노인네들이 하도 자살하고 죽고 그러니…….”
“자네는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였던 건가?”
조준호는 이근택의 말에 허허…… 웃었다.
“그 땐 분명 그랬지. 지금은 많이 좋아 보이네만.”
이근택이 그 말에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최근 들어 관심 있는 것들도, 조금 더 보고 싶은 것들도 생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시답잖은 것이더라도, 더 삶을 붙들어 놓고 싶은 이유가. 최근 분명 조금씩이라도 더 생겨난 것은 분명 사실이리라.
“사실 다 들었네. 최근에 재미있는 녀석을 하나 키워 보고 있다면서.”
“키우기는 무슨. 지켜보고 있을 뿐이네.”
“에잉…… 그런 녀석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팀까지 통째로 넘겨줘?”
“그건 내가 안겨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게지.”
“네가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면 아무렴 그게 넘어갔을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이근택은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한 번 데리고 오게. 자네가 흥미를 갖고 데리고 있는 아이라니. 나로서도 흥미가 갈 수 밖에.”
“나야 한국 헌터스 리그랑은 직접적 관련이 없어서 괜찮지만, 자네는 그랬다간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편파적인 헌터스 리그 관계인이 될 텐데?”
“그런 건 관계없어. 그냥 내가 보고 싶으면 볼 뿐이지. 사람 관계에 그것보다 중한 게 뭐가 있겠는가. 안 그래?”
맞는 말이었다.
그가 무슨 지위에 있든 간에. 결국 모든 것은 그의 선택일 뿐. 지위가 지위인 만큼 노련할 테고, 알아서 잘 처신할 테니 걱정하는 건 오히려 과한 처사였을지도 모른다.
“자네가 키운다고 하니 역시 또 자네가 직접 기른 다른 제자들이랑 겨루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군…….”
조준호는 혼자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근택은 1세대 헌터로 꽤나 많은 후대 헌터를 양성했었고, 그들 역시 지금에 이르러서는 헌터스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눈여겨보고, 밀어주고 있는 녀석이 이기느냐…… 아니면 탑 공략 시절 어디서 객사할까봐 애지중지 기르던 수제자 녀석이 이기느냐. 그것 참 재미있군.”
“허…… 난 특별히 열심히 기른 적 없어. 그 녀석 스스로가 그리 열심히 배운 거지. 그건 그렇고 내가 전에도 그러지 않았나. 헌터란 건 결국 정직하게 힘을 쌓아올리는 무술가와도 다르지 않다고. 그런데…… 이창현 녀석을 보니 요샌 또 그 말이 맞나 회의감도 들고. 아무튼 그래.”
“……?”
조준호는 그 말의 뜻을 순간적으로 읽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누굴 의미하는 건지는 뻔했다.
“왜, 헌터 시절 자네가 가르친 제자보다 지금 눈여겨보는 녀석이 더 강할 것 같기라도 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조준호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그래도 잠깐이지만, 1세대 헌터와 함께 수라장을 건너 탑을 공략했었을 텐데, 일개 신인이 더 강할 수가 있다고?
물론 그런 조준호의 반응과는 달리 이근택은 묵묵히 다음 일정을 찾아볼 따름이었다.
‘드디어 다음경기인가…….’
이근택의 예상이 맞으면 꽤나 기대되는 매치업이 나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