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각자의 훈련
헌터연합훈련소. 말만 들으면 그냥 헬스장처럼 기구나 잔뜩 있고, 싸움할 스파링 장소 정도나 추가된 곳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 규모가 크면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특별한 것들로 속속 채워져 있기 마련.
이창현이 이연주를 밀어 넣은 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훈련만 하는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훈련옵션.
“탐색가”들을 위한 일종의 던전 탐색 프로그램.
이연주는 일반적인 훈련시설을 생각했을 텐데……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것이 있어서 당황했는지, 바깥으로 소리쳤다.
“이게 뭐에요?”
물론 내가 대답한다고 안에 들리지는 않겠지만……
물어봤으니 대답해 주는 게 맞는 도리겠지……?
“던전에서 5분 버티기요.”
일종의 던전 시뮬레이션으로, 맵에서 나오는 공략 몬스터와 AI가 가득하게 덮쳐오는 훈련 시스템이었다.
물론, 그 중에 이연주 실력으로는 해치울 수 있을 만한 몬스터나 AI로 이루어진 상대 유저는 없다.
그야말로, 상대를 피하기만 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전장인 것.
피하는 방법이야 뭐…… 아무래도 좋다. 생존 그 자체가, 상대에게서 노려질 때 살아남을 수만 있으면 어디서든 서포팅할 수 있는 이연주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랄까.
“오늘은 이것만 계속 반복하세요.”
이연주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이연주만 보고 있어 줄 수도 없고. 바쁜 발걸음을 재촉해 다음 사람에게로 향했다.
***
“창현아. 근데 연주를 굳이 서포터로 전환시키려 할 필요가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연주는 서포팅 능력이라고는 위치특정 능력밖에 없잖아.”
아…… 생각해 보니 이종규도 있었구나.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다 보니까 자꾸 깜빡깜빡하게 된다.
그건 그런데 이종규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싶었다. 이종규한테 이연주의 잠재능력이 보였다고 말하는 건 별로 좋은 수가 아니니까.
‘헌터는 구체적인 능력이 남한테 알려질수록 기본적으로 손해니까…….’
만약 잠재능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후에 내가 다른 선수를 영입을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돌려서 말할 필요가 있었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핑계로 대면서.
“저희 팀의 주요 원거리 딜러는 누구죠?”
“그야…… 당연히 너지.”
“그렇죠…… 저는 3부 리그여서 그렇지만, 충분히 통할 만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구요. 근데 이연주는 어떻죠?”
“연주는…….”
이종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총. 그것도 에테르를 통해 강력한 사격이 가능한 이창현과 이연주의 화살을 비교하면, 사실 이연주의 공격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비교도 적당해야 비교가 가능한 법. 아예 대보기도 힘든 이창현과 이연주의 비교였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활은 근접 딜러들의 무기보다도 훨씬 숙련이 필요한 무기입니다. 게다가 원거리 딜러 관련 스킬이 없다면 마나실드에 막히니 더더욱 그렇구요.
그런데 지금 활의 숙련도를 보면 사실상 거의 없는 수준…… 이건 사실 이미 프로 헌터가 된 지금 시점에서 단련한다고 다른 사람이랑 비슷한 수준에 설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원거리 딜러는 저로 족합니다. 차라리 지금 기능하고 있는 능력이라도 더 살리는 게 맞아요.”
이종규는 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오히려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으니,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이민솔이었다.
어이가 없어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게 아닌 체하는데……
‘대체 왜 따라오는 거지…….’
하여간 헌터들 중에는 기행을 일삼는 녀석이 많아서 사고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렵긴 하다.
그 다음으로 볼 녀석은 이길한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나오는 거대한 공동의 한쪽. 이길한의 랭킹전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상대는 원거리 딜러. 이길한과 상대 선수는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은 공방이 이어졌다.
근접하도록 붙어서 상대를 압박하려고 하는 이길한. 그리고 거리를 유지하며 일정하게 [굽어지는 화살]로 견제하며 피해를 누적시키는 상대.
얼마간 계속 술래잡기 같은 추격이 이어지더니, 이내 화살을 너무 많이 맞았던 탓인지 이길한은 쓰러졌고 그대로 패배했다.
[1415점] <근접탱커> 이길한 - 18점
랭킹전 룸에서 나온 이길한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아직 승부욕 자체는 살아 있는 모양인가보군.’
다행히 최악까진 아니었다.
그보다 이길한한테 필요한 것은 다시 보니 실전보다는 ‘생각하는 힘’이었다.
저번 경기에서도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센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그건 랭킹전에도 유감없이 통용되었던 모양이었다.
“아…… 창현이.”
그 와중 나랑 이종규 코치를 발견했는지 먼저 아는 체를 해 왔다. 그런데도 아무래도 그리 기쁘진 않아 보이는 건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서였겠지.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전 특히 우리 팀에서 성장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이길한 선수라고 생각하니까.”
이길한은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능력 자체는 좋아요. 스테이터스도 크게 나쁜 편은 아니고…… 문제는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 그리고 움직임에 센스가 부족할 뿐이지. 당분간은 경기를 하지 말고. 생각하는 거에 집중해 봐요.
랭킹전을 직접 하기보다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를 보는 거예요. 지금으로선 [4813점]으로 근접 탱커 랭커인 김한길 선수를 위주로요.”
이길한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물론. 김한길 선수 경기를 보고 제대로 느낀 바가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분석 보고서정도는 쓴다고 생각하시고…… 매. 판마다.”
이길한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하긴. 지금껏 남의 경기를 보고 분석 보고서 따윌 써 본 적이 없었겠지.
하지만, 일차적으로 이길한이 근접탱커의 센스를 터득하기 위해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하고, 이차적으로는 내가 어느 정도 그 생각을 교정해 줘야 하니까.
보고서 쓰기는 어쩔 수 없다.
그후 이길한을 뒤로 하고, 김도준과 윤한결, 한지수를 보러 갔다.
김도준은 아무래도 지난 경기에서 별 활약을 못해서 아쉬웠는지, 자기한테는 뭐 특별한 전술이 없냐고 물었기에 저번에 설정했던 무기 발광효과를 위기의 순간에 한번 활용해 보라고 귀띔해 줬다.
반면 윤한결과 한지수의 경우는 역시 싹수가 원래부터 좀 있는 애들이라 그런지 랭킹전 점수가 꽤나 높았다.
[1814점] <올라운드 딜러> 윤한결
[1664점] <서포터> 한지수
이번에 팀에 합류한 윤한결과 한지수는 랭킹전을 참여한 게 오늘이 처음이므로, 하루 만에 천점에서 800~600점을 올렸다는 소리니……
‘확실히 프로 헌터 리그에서도 통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른 팀원들보다도 가장 걱정이 없는 둘이 아닌가 싶었다.
‘폭격기 조합‘을 못쓰게 되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가장 힘이 되리라 예상이 갔기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가기도 했고.
한지수와 윤한결에겐 딱히 큰 조언도 필요 없어 랭킹전을 하던 것을 잠깐 보다가 나와 휴게실로 돌아왔다.
“확실히 지수랑 한결이가 에이스역할을 해 줄 수 있겠네. 그런데 저 친구들한테는 조언 안 해 줘도 괜찮은 거야?”
“뭐, 알아서 잘 할 애들이니까요. 적어도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이번에 한 번 돌아보니, 팀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3부 리그에선 저번에 봤던 LTD나 RIX를 이기기는 힘들지만 하위권은 아닌 정도.
딱 중상위권 정도로 예상이 갔다. 물론, 폭격기 조합이 예상보다 더 잘 통한다면 그 위도 노려볼 수 있겠지만…….
기본기 없이 전술만으로는 그 정도가 한계이리라.
‘그래서 잠재능력이 없나 살펴본 거였는데…… 이연주를 제외하면 당장 개방할 수 있을 법 해 보이는 잠재능력도 없고…….’
당분간은 기초체력인 스테이터스, 그리고 팀의 합을 맞추는 것. 개인 능력을 기르는 것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리라.
‘어…… 그러고 보니 아까 계속 따라오던 이민솔이었나? 걔는 가 버렸나.’
뭐, 우리가 1부 리그도 아니고 당장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애지만.
대체 왜 따라왔던 건지…….
***
이민솔은 오늘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았다.
평소엔 상성이라 이기기 힘들어서 상대전적이 8대2밖에 되지 않는 김한길을 이기기도 했고.
꽤나 흥미가 돋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김한길과의 1대1 랭킹전을 하고 나오던 도중, 진경태가 말했던 이창현이라는 녀석을 발견한 것이었다.
“민솔아. 나도 안 믿기는데…… 타쿠미가 이창현이라는 3부 리거 녀석한테 진거 맞아. 확실해. 내가 봤으니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민솔 자신도 한국 헌터스 리그 대표 선발에서 떨어졌는데, 일개 3부 리그 나부랭이가, 그 한국 대표팀을 털어 버린 일본 대표팀의 원거리 딜러를 이겼다?
설령 이긴 게 운이 좋아서, 한 판 이긴 거라고 해도 절대 믿을 수 없었다.
3부와 1부의 격차는 그만큼이나 컸으니까.
‘3부에서 1위 팀이 LTD인 것만 해도 딱 각이 나오지.’
1부 LTD는 중하위권으로 현재 시작이 별로 좋지 않은 팀. 그런데 그 팀의 하위리그 팀인 3부리그 팀은 어떻겠는가.
안 봐도 비디오. 딱 그 말이 어울렸다.
그래서 흥미가 갔다.
랭킹전을 하러 온 모양이니까, 이창현이라는 녀석의 경기를 보면 되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따라다녔는데……
‘얼씨구?’
생각해 보니 녀석이 단순히 선수 직위로 있지 않는다는 걸 떠올렸다. 진경태가 감독도 겸하고 있다고 말해 줬었는데 워낙 허무맹랑해야지…… 근데…….
‘진짜 하나하나 코칭하고 있잖아?’
전문 코치진과 감독. 전력분석관까지 둔 팀에 몸담고 있는 이민솔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저걸 저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팀이 어딨느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자신의 팀도 아니니.
그런데 조금씩 따라다니며 이창현이 하는 말과 코칭을 들어보니 꽤 그럴싸했다. 팀에서 자신이 듣던 전문 코치진이 하는 소리나 처방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달까……?
게다가 선수들의 능력과 팀에서의 합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체크해 나가는 모습이 꽤나 전문적으로 보이긴 했다.
뭘 잘 하는 거 하나 없는 팀원인데도 어떻게든 장점을 살려 나가는 모습이.
그래서 약간은 평가를 수정했다.
‘흠…… 그래도 완전히 허당은 아니네. 하긴 뭐, 감독이나 코치들도 대부분 전 헌터스 리그 출신이거나, 1세대 헌터들이니까 선수가 코칭하는 것도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긴 한데…….’
생각보다 노련하다. 꽤 능숙하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오랜 기간 남을 분석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해 왔던 것처럼……
뭐, 그렇다고 해도 3부 리거. 게다가 진경태의 말처럼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창현의 경기를 본 건 아니지만, 기껏 해 봐야, 3부에서 1~3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기는 힘들 팀이니까.
그런 팀에 있는 녀석의 수준은 안 봐도 뻔하리라.
이런 애들이 뭐라고 진경태가 큰소리 쳤었던 건지 참~.
하여간 애들 호들갑 떠는 건 알아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