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잠재능력 찾기
헌터들의 싸움은 확실히 흥행할 요소가 많다.
기존의 다른 격투기와 달리,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종목도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수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걸 꼽으라면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가장 메이저하면서도 내가 신경 쓰고 있는 종목인 7대7 정규 헌터스 리그.
상대적으로 마이너하지만 골수팬들을 다소 가지고 있는 서바이벌 형식의 3인 1팀 난투 형태의 미니 헌터스 리그.
그리고 지금 훈련소에 와서 팀원들이 개개인으로 치루고 있는 1대 1 랭킹전.
정규 헌터스 리그나 미니 헌터스 리그와 다르게 1대1 랭킹전은 따로 송출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1대1 랭킹 타이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상위 레이팅의 경기만 송출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내 팀원들이 상위 레이팅에 들진 않으니까, 나로서는 직접 찾아가서 관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사람 많네…….’
“이종규 코치님. 오늘 주말인데 1, 2부 리그 유명 선수들이라도 왔어요?”
“그게…….”
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네.
바로 앞 화면에서 1대1 상위 레이팅 랭크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4813점] <근접 탱커> 김한길 vs [4727점] <중거리 딜러> 이민솔
‘호오…….’
미래에도 꽤나 폼을 유지해서 1부 리그에서도 계속 볼 수 있을 두 사람의 경기였다.
물론 내가 정상에 오를 즈음에는 조금 주춤하고 1부와 2부 사이를 오가는 정도이긴 하지만.
미래에 ‘나이트’라고 불리우는 김한길과 ‘연쇄 폭탄마’ 이민솔의 대결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둘 다 지금 1부 리그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이기에 보는 맛도 났고.
경기 시작과 동시에 리스폰 되자마자, 한손에 방패, 다른 손에 검을 든 김한길이 [신속] 스킬을 이용해 이민솔에게 달라붙었다.
아마 다량으로 쪼갠 마나봄버로 단단히 무장한 이민솔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무위로 돌아가기 까지는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이민솔이 동시에 [고유마나 : 화력강화]의 성질을 이용해 마나봄버를 가속폭약처럼 사용해 폭발의 추진력으로 순식간에 달아난 것이었다.
그 이후는 일방적 공세였다.
한 치 앞을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한 마나봄버의 투척.
김한길은 그걸 모조리 방패로 막으며 꾸역꾸역 한 발자국씩 다가갔지만 어이없게도 바닥에 매설된 지뢰폭약에 한쪽 다리를 잃고 게임이 바로 끝났다.
“오오오오오!!”
게임이 끝남과 함께 들려오는 환호성.
관람하고 있던 헌터들이 호응하듯 열을 띈 채로 경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이종규도 마찬가지였다.
“점수는 김한길 선수가 더 높은데 이민솔 선수가 압도했군요.”
“흠……글쎄요. 그렇게 압도적인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
“첫 접근에서 만약 김한길 선수가 가속 폭약을 제거하거나, 혹은 딱 한번만 더 따라붙을 수 있었다면 그대로 김한길 선수가 이겼을 테니까요.”
그래. 헌터스 리그에서도 랭킹전은 그런 상성과 싸움 구도가 가장 도드라지는 대결이었다.
이민솔의 무기는 마나봄버와 화력강화 스킬들. 강력하지만 근접한 상황에선 쓸 수 없으므로 전투력이 급감한다.
반면, 김한길은 방패로 막으면서 자기만 검으로 공격할 수 있으니 압도적 공세를 취할 수 있다.
즉, 둘의 싸움은 붙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압도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게임인 것이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단순히 이민솔이 압도한 걸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덜도 더도 아닌, 한 끗 차이였을 뿐이다.
그렇게 이종규와 게임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을 찰나, 어느 샌가 경기장 바깥으로 나온 이민솔이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땅딸보만 한 작은 키. 유치원생의 의상처럼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으로 채워진 옷을 입고 있는 이민솔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너, 몇 부 리그? 어느 팀 소속? 레이팅 몇 점?”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게 아무래도 접전이었다는 내 말을 듣고는 기분이 약간 상한 모양이었다.
하긴, 압도적으로 이겨서 좋아하고 있는데 실은, 박빙의 승부였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마냥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3부 리그, PER 소속, 레이팅 1천점”
그 말을 듣고는 이민솔의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1천점은 처음 시작하는 헌터에게 주어지는 기준점이었고, 이민솔은 방금 전의 승리로 4700점 중반대였으니까.
‘후…… 내가 회귀 전에 전 세계 최초로 랭킹전 8천점을 돌파했다는 말을 해 줄 수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실력으로도,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상성이 내게 아주 좋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팀원을 봐주러 헌터연합 훈련소에 와서, 딴 짓으로 남하고 대련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미 충분히 경기를 보느라 시간을 소비했으니 특히.
그래서 코웃음 치며 비웃는 이민솔을 뒤로하고, 윤한결이 랭킹전을 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민솔이 총총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가만 가다가 멈추니 이민솔도 멈추고, 뒤돌아보니 그냥 다른 곳 보는 척 하고. 다시 걸으니까 또 따라온다. 마치 새끼오리가 어미오리를 따라오는 것 마냥.
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상위권 헌터 녀석들은 괴짜가 많으니까.
‘내 알바는 아닌가.’
***
이민솔이라는 긴 꼬리를 달고, 가장 먼저 보러 간 사람은 이연주였다.
전에 한 번 봐준 적 있는 김도준이나 윤한결보다는 아무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정말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한숨이 나오는 실력.
활을 들고는 도망가면서 쏘지만 상대를 하나도 맞추지 못했을 뿐더러, 쉽게 거리를 내주는 바람에 연속해서 패배하고 있었다.
1대1로는 도무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상황.
‘하긴…… 헌터연합훈련소는 1, 2, 3부 리그 선수들이 다 같이 쓰는데 3부 리그에서도 최하위인 선수니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랬기에 한 번. 경기가 끝난 후, 이연주를 찾았다.
아무래도 자기 경기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눈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쪽팔린가…….’
뭐, 나 같으면 엄청 쪽팔릴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개개인이 가진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보강하는 것이니까.
“이연주 씨. 활 잡으신 지 얼마 안 됐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연주.
후……
예상은 했지만 원거리 딜러의 기초서부터 가르쳐야 할 팔자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연주]
[스킬]
[위치특정 : B-] : 주변 상대방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속사 : C+] : 빠르게 속사합니다.
잠재 스킬 : [속박 : A+] : 지정한 위치에 있는 생물을 잠시간 속박합니다.
[신체능력]
[힘 : 5.6]
[반응속도 : 5.6]
[유연성 : 5.6]
[지구력 : 5.3]
[마나량 :7.6]
‘속박…….’
이 스킬을 여기에서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반적인 랭크도 아니고 A+등급이라니. 아무래도 ‘지정한 위치’에 있는 생물을 속박하는 만큼 사거리도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건 대박이다. 저건 개방하기만 해도 100% 대박이다. 하고 감이 왔다.
‘속박이 잠재능력으로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모를까…… 아는 이상 방향성을 다시 잡을 필요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원거리 딜러의 기본. 딜링을 위해 화살에 마나를 싣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주 경로 찾는 법.
그리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사격하는 법 등, 가르칠 것이 아주 많았다면, ‘[속박 : A+]’와 ‘[위치특정 : B-]’가 있는 이상 그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원거리 딜러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후에 다시 말했다.
“제 생각에 연주 씨의 소질은 활보다 [위치특정 : B-]을 활용하는 능력에 있는 것 같아. 원거리 딜러보다도 뒤인 최후방에서 팀원을 지원하는 역할 같은?”
“하지만…… 위치특정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팀 단위 전투에서는 저번처럼 폭격기 조합의 일원으로 강력히 활약할 수 있었지만, 1대1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전투인원.
하지만, [속박 : A+]의 잠재능력만 개방된다면, 보이지도 않는 최후방에서 상대의 발을 순간적으로 묶는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포터로서는 꿈에나 나올 법한 능력.
‘문제는 이 잠재 능력을 개방하는 건데…….’
능력을 알고 있으면 사실 개방 방법도 꽤나 떠오르긴 한다. 회귀 전만 하더라도 각성자 진흥원에서 매년 알려진 능력 개방 요건을 발표하고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지금 당장 잠재능력을 개방시킬 방법은 없었다.
공을 들여서. 천천히 그 개방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그 잠재능력이 개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당장 조급해 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이종규한테는 폭격기 전술 하나뿐이라 다른 전술을 새롭게 지금 당장 뽑아내야 할 것처럼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고안해낸 전술인 만큼 그것 원툴이라도 우리 팀은 꽤나 강력한 편이니까.
일단 잠재능력 개방은 홈에 돌아가서 할 필요가 있으니, 지금 당장은 이연주에게 필요한 다른 것들을 가르쳐 볼까 했다.
“지금 아무것도 팀에 별 도움이 못 되고 있다고 하지만, 연주 씨는 이미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시작하자마자 팀원과 상대방의 위치를 특정하고, 요격할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레이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연주는 그 말을 듣고는 조금은 안심한 건지 약간 풀어진 표정으로 아래를 쳐다봤다.
당근을 줬으니 이번엔 채찍질할 차례인가.
당연하지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 인간 레이더 역할만 하는 것도 아까우니까.
“물론 이대로만 있어도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희의 목표는 3부 리그에서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더 높은 곳을 보고 있으니까요. 연주씨도 몸값도 좀 올리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중간에 팀원이 트레이드 되거나, 이적하더라도, 더 좋은 팀원으로 바꿔 올 만큼 몸값을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 팀원으로 끝까지 가는 것도 좋겠지만…… 소꿉놀이나 하려고 회귀한 건 아니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연주는 오히려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윈 ㅡ 윈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아무튼, 연주 씨한테 필요한 건 이제 “원거리 딜러”로서의 능력보다는 “서포터”나, “탐색가”로서의 능력이라는 거죠.”
“……탐색가요?”
헌터스 리그의 기본 골자는 7대 7의 전투이지만, 그 과정이 단순히 집단 패싸움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탑’의 던전에서 싸우는 만큼, 그 던전을 잘 숙지하고 탐색할 필요가 있으며 거대한 컨셉과 테마를 가진 맵. 결승에 가까운 화려한 무대일수록 그 탐색과정의 중요성도 극대화되므로.
“ㅡ이를테면.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연주는 거기서 처음으로, 헌터연합훈련소에서 이연주에게 적합한 훈련이랄 만한 것을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