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다음 단계로
한국 대 일본 국가대표전이 있던 다음날, PER의 숙소는 뒤집어져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특히나 팀 PER의 숙소가 그리 넓지 않아 도란도란 모여 있는데, 윤한결이 헌터 스포츠 기사를 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한 것이었다.
[일본의 원거리 딜러 에이스 미나미노 타쿠미. 그가 꼽은 인상적인 한국 선수]
제목만 읽어서는 마치 한국 대표팀원 중 한 명을 라이벌로 인정하는 듯한 제목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 기사에 언급되어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3부 리거 이창현이었으니까.
“너 어제 나갔다 오더니 설마 경기장에…….”
윤한결은 놀란 듯하더니 이내 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들이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신문기사 내용이 그만치 충격적이었으니까.
[미나미노 타쿠미 선수와의 인터뷰, 그가 말한 기대되는 한국 선수 이창현.]
“이번 국제리그 한일전은 시시했습니다만…… 한국선수들 중에도 분명 미래에 크게 활약할 거라고 생각되는 선수는 있어 다음 국제리그가 기대됩니다.”
“오…… 그렇군요. 확실히 이번 한일전에는 1부 리그의 유망한 선수들도 많이 포함된 경기였는데요, 다시 만나길 희망하는 그 유망주의 이름은 누구일까요?”
그 말에 타쿠미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 그가 국제리그 한일전에서 상대했던 한국 대표팀들의 헌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타쿠미로서도 3부 리거라 처음엔 심심풀이정도로 생각했었으니, 한국 사람들도 자신이 3부리거인 이창현을 언급하면 놀라리라고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재미있네…….’
“3부 리그의 이창현 선수입니다.”
“3부 리그요? 국제리그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3부 리그 선수를…… 혹시 추가적으로 경기를 하거나 뒷이야기 같은 것이 있는 걸까요?”
캐스터는 떠나가는 타쿠미의 뒤에 대고 계속해서 물었지만 더 이상의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얼핏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능욕인터뷰로까지 느껴졌다.
그보다 재미있는 건 역시나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이창현? 이창현이 누구임? 아는 사람 있음?]
ㄴ 2222222222 듣도보도 못함
ㄴ 3부 리거인데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게 당연하지 ㅋㅋ
ㄴ 최근에 3부 리그 첫 경기이기고, 헌터스-더 넥스트 제네레이션 우승한 애 있음.
ㄴ 근데 걔는 타쿠미랑 어떻게 엮여서 저기에 갑자기 얘기 나온 거?
ㄴ 걍 비유로 너희나라 1부 리그보다 3부 리거가 낫다는 말로 능욕한 거지 한국 리그 수듄 ㅉㅉ
ㄴ 와;; 진짜 그런 거면 인성 너무 개차반인데?
[[사진] ㅡ 나 어제 국제리그 경기장에 있었는데 타쿠미랑 이창현이랑 한판 뜸. 저 인터뷰 능욕이나 비꼰 거 아닌 듯.]
ㄴ 3부 리거랑 일본 국가대표랑 떴다고? 말이 안 되는데? 상대도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그런 걸 해 주는 사람이 있다? 삐슝빠슝~ 주작냄새 오지게 나네
ㄴ 이민석이 데리고 간 것 같던데. 네가 키우는 선수 한 수 봐주겠다 그런 거 아님?
ㄴ 그래서 누가 이김? 누가 이김? 누가 이김? 누가 이김?
ㄴ 당연히 타쿠미 아니냐? 수준차이가 있을텐데 뭘 당연한 걸 쳐묻고 있어 ㅋㅋ
ㄴ 타쿠미가 이겼을 듯? 경기 화면이 바깥에 송출되지는 않아서 모름.
ㄴ 한국 대표팀 < 3부리그따리 이창현 < 타쿠미 wwwww 한국 대표팀 수준
뭐, 물론 내가 뛰어나다거나 내게 기대를 건다는 말보다는 한국 대표팀을 까는 댓글이 많기는 했지만.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만치 관심을 받은 건 꽤 오랜만이기도 했기에 기분이 새로웠다.
윤한결은 자신의 휴대폰을 뺏어 댓글을 느긋이 보고 있는 나를 더 보다 못해 휴대폰을 빼앗았다.
어느 샌가 주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윤한결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같은 신문기사를 본 건지.
윤한결을 비롯해 김도준, 이길한에 이연주까지. 죄다 몰려와 있었다.
결국, 등쌀에 못 이겨 조금이라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 맞아. 어제 경기장 다녀왔어. 이민석 선배랑 같이.”
“그럼, 어제 타쿠미 선수랑 실제로 경기해 본 거야?”
“싸인은?? 싸인은 받았어?”
“한국 국가대표 발려서 한국 초상집 분위기인데 싸인은 무슨 싸인을.”
각자 한 마디씩 해도 사람이 많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짧게 정리 할 필요가 있었다.
“1대1 랭크전 룰로 경기했고, 이겼어.”
그 말이 끝나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간의 정적.
그 정적을 깬 건 윤한결이었다.
“캬.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우린 창현이 말만 들으면 된다니까?”
암말도 안했는데 뭔 내말만 들으면 되긴. 쟨 전에 인터뷰부터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씌인 것 같다.
정상이 아니야.
“아~ 타쿠미 선수 만날 거면 나도 데려가지 그랬어. 나도 가서 검으로 이렇게 콱 콱! 타타탓! 해서 이기는데~”
또 또 까분다. 김도준은 내가 장담하건데 근접하기도 전에 석궁을 맞고 가장 먼저 드러누울 녀석인데…… 어떻게 보면 깡 하나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뭐, 회귀 전 정상 때의 폼으론 꽤 괜찮은 대결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팀의 리더된 자로서 이런 헛된 꿈을 계속 꾸게 놔둘 순 없다.
“꿈 깨. 자식아”
그 말과 함께 김도준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김도준이 머리를 감싸는 동안 윤한결도 한 마디 얹었다.
“확실히 창현이 말이 맞지. 창현이 정도면 몰라도 도준이 네 수준으론…….”
윤한결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로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김도준이 짜증났는지 쉭쉭거렸다.
뭐, 그럴 수 있지.
사실 녀석의 본심은 이기는 것보다도 직접 싸웠다는 점에서 부러운 걸지도.
애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실력 증진이나 시야를 넓히는데 세계적인 선수랑 한번 직접 떠 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래도 폭격기 조합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윤한결과 다르게 활약상이 적어서 초조해지는 걸 수도 있고.
어쨌거나,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긴 하다.
모두가 활약할 수 있도록 내가 하나하나 다 키워 주고 있을 순 없으니까. 보모도 아니고.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점은 역시 이번 타쿠미와의 전투를 나름의 업적으로 평가받았는지,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스킬]
[꿰뚫는 눈 : A(S+) -> S(S+)]
: 꿰뚫는 눈이 더 이상 현재의 스테이터스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스테이터스의 상한선과 스킬 잠재력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투사체의 궤도를 직관적으로 완벽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인가…….’
팀의 힘을 증강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꿰뚫는 눈’의 옵션. 잠재력을 볼 수 있게 되는 능력이 개방되었다. 게다가, 투사체의 궤도를 예측하는 능력까지.
아무래도 이번 타쿠미와의 전투에서 꿰뚫는 눈을 이용해 투사체의 궤도 측정 능력과 저격 능력을 한계에 가깝게 썼기 때문이었을까.
여튼 지금 굉장히 필요한 능력임에는 틀림없었다. 팀원을 훈련시키기에 이만한 능력이 없었으니까.
본격적으로 팀의 전력 향상을 꾀할 때였다.
***
3부 리그는 흥행성이 그리 높지 않기도 하고, 경기수가 그리 많지도 않은 편이다. 경기 날짜도, 1, 2부 리그랑 겹치지 않도록 월, 화. 다 사람들이 잘 안보는 날짜에 편성되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원래 다른 프로 헌터들이라면 경기를 뛰는 주말임에도 팀 PER의 홈은 북적였다. 거실에서 경기를 보는 몇 명. 그리고 방 안에서 뒹굴거리는 몇 명.
다들 팀의 첫 승리를 거두고 난 이후라 그런지 위기 감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후…… 이런 애들을 데리고…….’
훈련을 할 것을 상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전체 훈련이라곤 한 적이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전에 몇 게임 이긴 것도 순수히 전술 차이일 뿐, 팀 대 팀으로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다행인 점은 모두가 이런 건 아니라는 것.
코치인 이종규는 첫 연습 경기 이후로 나를 감독으로 인정했는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먹히진 않더라도 이것저것 제안해 보기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코치님은 이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승리로 시즌을 시작해서 흐름은 좋습니다만…… 이대로도 어느 정도 괜찮지 않을까요? 전술이 많지는 않다고 하나 승리 공식도 하나 만들었고…… 전 시즌에 비해 팀에 활기도 도는 거 같고.”
취소. 이 양반은 전 시즌에 무승으로 리그를 끝내서 그런지 향상심이 부족한 것 같다.
되도록 빨리 팀을 1부 리그에 올리고 싶은 나로서는 적이나 다름없다.
“틀렸습니다. 완전히요.”
이종규 코치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림도 없다.
그게 냉정한 평가니까.
“저희 팀이 폭격기 전술이 막히면 할 수 있는 팀 단위 전술이 뭐가 있죠? 제가 차력쇼를 하지 않는 이상 거의 필패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잘 해 주고 있고…….”
이 사람이 또. 미련을 버리질 못하네.
전 시즌을 무승으로 끝낸 데는 아무래도 이종규 코치 지분도 반 정돈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말이었다.
“저희 팀은 그 전술이 막히는 순간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전술을 강화시키던지, 혹은 다른 전술을 만들던지…… 혹은 팀의 기초체력을 키워야겠죠.”
“기초체력…… 기초체력이라.”
당장은 새로운 전술을 만들기 어렵다. 전술 자체가 팀원의 초능력에 의존하는 면모가 크니까. 하지만, 기초체력. 개개인의 전투역량을 키우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
“오늘은 저희 팀 경기도 없는데 다 같이 랭킹전으로 단련이나 하러 가죠. 훈련 메뉴얼도 당분간은 개인 기량 위주로 하구요.”
“애들 모아 보겠습니다.”
이종규는 이제서야 갈피를 잡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후련한 듯이 방을 나갔다.
***
그렇게 도착한 헌터스 리그 연합 훈련소. 저번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로 처음인가……
아무튼 꽤나 오랜만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회귀 전 가장 오랜 시간 몸담았던 곳이었기에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도 들었고.
저번에 김도준을 가르쳤던 곳도 이곳이었던 만큼, 훈련에 있어선 역시 제일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코치님께 설명은 들었지?”
“당분간 훈련은 랭킹전 위주로 하라는 거?”
“응.”
반응은 미묘했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는 그런 느낌.
“왜 굳이 랭킹전을 하는 거야? 팀 단위 훈련이 더 좋지 않아?”
아. 그것 때문인가. 김도준의 질문이 아마 팀원 전체의 생각과 비슷하리라.
“그야…… 팀 단위 훈련을 하기 전에 일단 개개인이 강해야 팀으로 섞여도 의미가 있으니까.”
까놓고 말해. 너네, 1인분 못하잖아. 그니까 1인분이 되고 나서 팀 연습을 하든 말든 하자는 말이었다.
그 말에 움찔하는 팀원도 있었지만,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편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코치님이랑 랭킹전 뛰는 거 보고 분석할 거니까 집중해서 하고. 그럼 각자 랭킹전 잘 치르라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여 있었던 팀원들이 각자 랭킹전을 하기 위해 모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