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승리의 경험

헌터와 헌터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서로 포지션의 상성? 그렇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포지션이라면?

같은 포지션이더라도 어떤 포지션이느냐에 따라 양상은 크게 다르다.

근접 딜러 대 근접 딜러라면, 기술과 스테이터스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직하게 공격을 주고받으며, 서로 한 방에 판가름 날 일은 없는 싸움이니까.

그렇다면 원거리 딜러 대 원거리 딜러라면 어떨까?

재미있게도 기술에 따라서 현격하게 우위가 기울어지는 건 여전하지만, 스테이터스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근접 딜러끼리의 싸움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서로 방어 수단이라고 할 것은 마나장비뿐. 그마저도 다른 마나장비를 장착해 마나쉴드가 없다면 방어 수단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 그렇다고 방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기에, 서로 맞으면 치명상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창현이 노린 것도 그 부분이었다.

만약 타쿠미가 근접 딜러였다면, 탱커였다면. 혹은 서포터였을지라도 정면 대결에서 이길 방법이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정면 대결이라도 이창현에게 승산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벽은 다 무너졌을 텐데…… 투지가 살아 있어.’

그리고 타쿠미도 그걸 은연중에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원거리 딜러 대 원거리 딜러 싸움은 항상 변수가 많은 싸움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다.’

녀석의 스킬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원거리 딜러 간 싸움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정확히 맞추는 기술”과 “피할 수 있는 민첩성”.

타쿠미는 그 두 가지. 그중에서도 “민첩성”은 [신속 : A]를 가지고 있었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급작스러운 위기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신속의 액티브 스킬을 이용하여 남은 두 번은 거의 순간이동에 필적하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산을 끝낸 순간. 타쿠미가 먼저 선공을 취했다.

벽을 다 부숨과 동시에, 이창현의 사격으로부터 사각에 있던 몸을 왼쪽으로 굴렀다. 동시에 미리 장전해 둔 석궁을 속사로 발사한 것이었다.

슈슉. 슉!

혹여나 총탄이 날아올지도 모르기에. 타쿠미는 빠르게 구르며 몸이 보이지 않도록 마나실드로 웜홀을 막으며, 뒤로 숨었다.

정확한 사격이었고, 아주 빠른 사격이었지만…….

‘재미있네…… 이걸 피하다니.’

사각에서 몰래 볼 땐 이창현은 분명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터인데…… 뒷걸음질 치며 피해 버린 것이었다.

‘운인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뒷걸음치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그렇게 의심할 정도였다. 전혀 이쪽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타쿠미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에겐 경험이 있었으니까. 일본 헌터 리그라는 거대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경험이. 원거리 딜러들끼리 1대1 랭킹전을 했던 경험이. 위기 상황을 끝도 없이 헤쳐 나갔던 경험이.

비록 잘 모르는 맵이라고 한들, 그 경험은 어디 가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타쿠미를 침착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아직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듯, 타쿠미 건너편의 웜홀을 기웃거리며 쳐다보는 이창현을 향해 엄폐한 웜홀에서, 다시금 상체를 내밀어 석궁을 쏘려던 순간이었다.

타탕 ㅡ !

타쿠미의 반대편을 살펴보고 있던 이창현이 한쪽에 있는 여러 개의 웜홀에 특이한 각도로 총을 여러 발 쏘더니 그 총알이 어떻게 이어졌던 걸지.

타쿠미가 엄폐하고 있던 웜홀을 비롯해 그 외에도 주변의 몇몇 웜홀이 진동하며 어느 샌가 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었다.

회귀 전 과거, 이창현은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듣곤 했다.

“이창현 선수, 위대한 기록을 계속 써 내려가고 있는데요. 그런 이창현 선수에게 있어서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더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경험이죠.”

“경험이요?”

캐스터는 약간 의외의 답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은 모든 선수가 다 쌓아 나가는 것이었으니까.

이창현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확히는, 승리의 경험이죠.”

승리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만의 승리공식이 생겨나고, 어느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이기는 방향으로 이끄는 흐름이 생겨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렇게 횟수가 늘수록, 점점 이기기 쉬워지는 것이다. 자신의 승리 공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이창현은 마지막의 마지막 시즌, 바닥으로 팀이 곤두박질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팀이 곤두박질친 후에도, ‘승리의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간직한 선수였다.

***

타쿠미는 선수 대기실로 나와 맵 전체 뷰로 경기를 복기하면서 전율을 느꼈다.

처음, 웜홀을 이용한 기습적인 저격부터, 공허의 광장의 모든 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게 설계였나…….’

전략에서 3부 리거 초짜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압도적 연륜. 차근차근 상대의 숨통을 조여 나가는 경험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첫 저격의 의미는 말 그대로, 즉사를 노린 저격. 하지만 그것이 실패하는 것 또한 빌드업이었다.

그후 자신이 모든 벽을 부수고, 정면 대결이 되었을 때. 아니,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었을 때. 그때부터 이창현은 아무래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처음 석궁 연사를 운 좋게 피한 듯 보인 것도 다 계산된 행동이었군.’

일부로 타쿠미의 위치를 모르는 척 하면서, 빈틈을 내어주고 시간을 벌었던 것.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번 이유는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에 전방위에 있는 웜홀에서 동시에 탄알이 날아온 장면과 연결될 터였다.

‘계산…… 계산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첫 저격이 빗나갔으니, 가까운 웜홀은 마나실드로 막아 둘 거라고 다 상정하고, 그 외의 내가 신경 쓰지 못한 웜홀을 통해 저격해야 했으니…….’

그렇게 타쿠미가 마나실드로 막고 엄폐물로 쓴 웜홀을 비롯한 근처 4개,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다른 방향에서의 웜홀이 진동하며 총알이 나온 것이었다.

당연히 모든 웜홀 구멍을 인지하고 마나실드로 막을 수는 없었으니, 그대로 총알로 벌집이 된 것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걸 알게 되자, 타쿠미는 힘이 탁 풀려 버렸다.

“미친 자식.”

인간의 범주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경기였다.

저런 사격이 가능하려면, 어느 웜홀이 어느 것과 이어지는지 모조리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도까지 계산해서 아주 정확하게 상대를 노렸어야 가능한 기예였으므로.

심지어 구르면서 이동하는 것을 맞췄기에 단순 위치파악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까지 모두 읽혔다고 봐야 했다.

도저히 신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노련함이었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렇게 허탈해하고 있는 것도 잠시, 이민석이 선수대기실로 들어왔다.

“이 경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의 전술을 다 따라잡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중간에 경기장면을 놓친 걸까.

이민석은 타쿠미가 경기의 패배자임에도 열렬히 붙잡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 빠진 타쿠미로서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창현의 사고 흐름을 다시 다 읊어 줄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짧게 일축했다.

“뭐긴 뭐야. 네 녀석이 괴물을 데려온 거지.”

은근슬쩍 이창현을 인정하는 듯한 타쿠미의 말에 이민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타쿠미를 이긴게 요행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었다고…….’

“저 녀석이 국제리그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올라오면 세계 리그에 에단처럼 거대한 팬덤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타쿠미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 국가대표전을 할 때와는 달리 즐거워 보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완성된 녀석은 아니었다.

정확하고 허를 찌르는 저격 능력에 비해, 파괴력이 약했으니까. 방어력이나 재생력이 뛰어난 상대는 어찌하기 힘들 가능성이 컸다. 그랬기에 팀 대 팀으로 붙었으면 필시 파괴력이 막강한 타쿠미가 훨씬 뛰어난 활약을 했을 테고.

‘하지만, 녀석은 아직 성장 중이다…….’

이제 갓 프로가 된 3부 리거의 몸으로. 그 스테이터스로 기술과 계산. 노련한 전술의 영역으로 타쿠미를 이긴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 성장성은 끝을 모른다고 보아도 좋았다.

기대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제리그를 통틀어도 총을 쓰는 헌터는 단 한명. 영국에서 활동 중인 ‘에단’뿐. 그는 기술과 기교, 계산이나 전술보다는 막강한 마나에서 오는 압도적인 파괴력의 저격.

즉, 이창현과 양 극단에 서 있는 저격수였기에. 이창현이 국제리그에 올라가면 꽤나 재미있는 대결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

사실 이번 게임은 겉으로 보기엔, 그리고 신체 스펙이나 스킬로 보기엔 타쿠미가 유리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그도 그럴 게…… 회귀 전 힘들 때일수록 많이 했던 게 1대1 랭킹전이었으니까.’

구도 별 상성부터 시작해서, 맵의 특이성. 기믹까지도 모두 달달 외워서 이용할 수 있는 나였기에.

애초에 경험적인 측면에서 내가 타쿠미한테 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역시 재미있었던 점은, 벽을 다 부수는 타쿠미의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그런 녀석은 흔치 않지…….’

보통 원거리 딜러는 직접 무기에 마나를 실어도 무기가 날아가면서 마나의 농도가 약해져 공격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마련인데, 타쿠미란 녀석의 공격은 그렇지 않았다.

두 대만 맞으면 벽이고 뭐고 다 무너져 내리는 게 그야말로 포탄을 쏘는 탱크 같았으니까.

저런 녀석이 원거리 딜러로 팀에 있으면 전술이고 뭐고 게임이 참 편해지겠다 하는 생각은 들었다.

저런 공격 앞에는 진형이고 나발이고 공격을 피해야 할 테니까.

물론, 일본 녀석이라 팀에 영입하지는 못하겠지만 군침이 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팀원끼리 쓸 수 있는 폭격기 전술도 좋았지만, 전술의 다양성도 그렇고 더 많은 선수 풀을 채울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나와 보니, 선수 대기실에는 보지 못한 선수가 한 명 더 와 있었다.

‘아…… 아까 경기화면에서 본 한국 대표 팀이었던 것 같은데……. 누구랬지? 진경태랬나?’

하지만 대기실에 구경하러 온 것 치곤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았다. 대기실에서 맞아주는 건 이민석 뿐이었다.

“어…… 왔어? 경기 잘 봤다.”

이민석의 떨떠름해 하는 기색이 눈에 띄었다.

‘하긴…… 이번 경기는 이전 경기랑 다르게 경험이 돋보였으니까 색다르게 보였으려나.’

재미있는 건 이민석보다도 타쿠미의 반응이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니 악수하고는 어깨를 맞추며 반갑게 맞아 줬다.

졌는데 분하기보다는 즐거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말하는 걸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했고.

“재밌는 경기였어. 좀 치네?”

좀 친다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말이기도 했고.

“당신이야말로. 겨우 석궁으로 벽을 다 부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 말에 타쿠미도 기분이 좋았는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역시 분하기보다는 즐거운 듯했다.

“너, 그 첫발이 빗나갔을 때부터 이미 다 설계했던 거지? 빗나가면 어떻게 공략할지.”

타쿠미가 게슴츠레하게 웃으며 째려봤다.

“그야 생각은 했지만, 벽을 다 부술 줄이야. 게다가 조금만 내 계산이 늦었어도 네 석궁에 꿰뚫리는 건 나였겠지. 나야말로 놀랐어.”

그런데…… 그렇게 타쿠미랑 경기에 대한 대화를 하다 보니 느낀 건데, 이민석 선배 옆에 꿔다놓은 것 같은 녀석은 왜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뭔가 용무가 있어서 여기 있는거 아닌가?

자꾸 소외시키는 것 같아 신경 쓰여 물었다.

“저기, 그쪽은……?”

“아……아! 진경태라고 합니다. 네…… 경기 잘 봤어요.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인사를 대충 얼버무리며 가 버렸다. 잘 보니 얼굴이 시뻘게진 것 같았다.

뭐하는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