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50화 (50/270)

050. 새로운 물결

타앙!

마치 공중에 부유한 듯한 느낌을 주는, 우주의 미로와도 같은 컨셉의 공허의 광장. 그곳에 강렬한 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총 소리를 듣고 타쿠미가 회피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애초에 이창현의 총알 속도가 소리의 속도보다 빠를 뿐만 아니라, 지금 이창현이 든 총은 ‘에테르‘를 쏘아 내는 마법공학으로 이루어진 총.

하지만, 이창현으로서도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웜홀을 이용할 때마다, 웜홀에 파문이 일어 약간의 진동이 발생한다는 점.

물론 총알의 속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웜홀을 총알이 지난 후 피할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 찰나는 타쿠미에게 충분한 것이기도 했다.

마치 사각을 무시하는 도탄처럼 웜홀을 이용해 공격해 온 탄환. 그것이 몸에 닿기 직전에 느낀 타쿠미가 [신속 : A]을 이용해 반응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계하지 않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전히 피해 낸 것은 아니었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신속 : A] 스킬을 썼음에도 왼팔에 탄환을 빗겨 맞았으니.

‘피하는 게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타쿠미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아마도 결과는 급소에 직격. 바로 끝났을지도 몰랐다.

타쿠미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격이었으니까.

당연히 저 웜홀들이 다 어딘가에 연결되어 이론상 보이지도 않는 이런 각도에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쯤은 타쿠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위치를 예측하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웜홀의 루트를 유기적으로 계산하여 상대를 실제로 저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더라도, 웜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완벽하게 외워 두진 않았기에. 타쿠미라도 할 수 없는 기예였으니까.

후…….

방금 상대한 헌터스 리그 한일전에서도 느끼지 못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이거…… 설렁설렁 하려고 했는데…….’

이민석의 말대로 말도 안되는 녀석이었다. 쉽게 생각했다간 루키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 순간 웜홀을 통해 궤도를 꺾더라도 총을 맞을 일이 없는 사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전략과 생각을 재조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 타쿠미의 계획은 이러했다. 이창현이 일반적인 맵을 고르고, 서로 원거리 전을 하는 가운데 스테이터스가 압도적인 타쿠미는 더 빠르게 쏘고 빠르게 피하며, 적당히 수준을 관찰하는 것.

그후, [신속 : A]으로 이창현의 배후를 잡아 쉽사리 끝내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일반적인 맵을 고르지도, 보이는 곳에서 상대할 생각도 없다…… 라.’

생각도 하지 못한 영리함이었다. 마치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많이 상대해 본 것과 같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에게 불리한 점은 모두 감춘 채, 상대에게 자신의 장점을 강요하는 듯한 플레이.

그로서는 방금 한 발로, 상대가 만든 판에서 놀아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타쿠미는 되려 웃음 지었다.

신인이 이런 플레이를, 경험을 보여준다는 일종의 경이로움이 솟아났다. 또 한편으로는 원초적인 재미가 느껴졌으니까.

지금껏 1대1로 일본에서 원거리 딜러로 적수가 없는 타쿠미였기에 따분한 일상을 보내던 중, 기대하지도 않던 한국에서 이런 녀석을 만날 줄이야.

그것도 녀석은 1부도 아니고 3부 리그의 녀석이라고 한다.

‘인생은 길게 살고 볼 일이군…….’

물론 그렇다고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녀석이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준 만큼, 자신도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타쿠미는 웜홀의 출구를 피해 가며 오른손에 장착한 속사 석궁으로 벽을 부쉈다.

[연사 : A]와 [약점공격 : S]의 연계. 단 두 방만으로 미로 같고, 형체 없는 공허의 광장의 벽이 쉽게 허물어졌다.

그리고 첫 벽이 허물어진 것을 시작으로 이 미궁같이 복잡한 공허의 광장 맵에 속속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타쿠미가 벽을 모두 없애 버리겠다는 집념으로 손 위에 있는 석궁을 연사해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벽이 다 사라지고 녀석이랑 나만 남으면 낙승이다.’

***

쿠쿠쿵……. 쿠쿠쿠쿠쿵…….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웜홀 너머에서 계속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소리의 진원지는 타쿠미의 주변일 텐데,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다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타쿠미의 주 무기는 연사가 가능하도록 개조한 석궁. 석궁으로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런 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건지…….

꿰뚫는 눈으로 감지하는 타쿠미는 그저 웜홀에서 나오는 탄환을 피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첫 발이 빗나간 이상 저격에 대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고 있긴 할 텐데…… 그리고 저 소리랑 그 대책이라는 게 맞물리겠지.’

거기까진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단 꿰뚫는 눈으로 파악한 타쿠미의 위치로부터 웜홀을 이용해 멀어지는 것뿐.

그렇게 웜홀을 타고 이동하던 도중.

툭.

천장에서 작은 돌 덩어리가 떨어졌다.

‘천장…… 이? 흔들리고 있다……?’

그래. 이 ‘공허의 광장’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마치 ‘벽을 부수는 것’처럼.

아마 부서지는 소리의 정체는 그것이리라.

무기가 석궁이라 제외시켰던 한 가지 선택지를, 다시 재빨리 부활시켜 머릿속에 넣었다.

그런 도중에서도 계속 벽을 부수는지 진동이 이어졌다.

‘벽을 다 부수려는 생각인가…….’

머리에 흩어져 있는 퍼즐이 합쳐지는 듯한 감각.

타쿠미가 생각한 지금의 전략도, 미래의 행동도 예측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 타쿠미는 위협을 느끼는 거겠지.

‘아마 전술을 막 짠 건 첫 저격…….’

자신과 격차가 꽤 많이 나는 상대였기에, 타쿠미는 자신을 위협한 의외의 일격에 놀랐으리라. 그리고 [필승]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롭게 궁리했겠지.

그리고 타쿠미가 선택한 그 [필승]법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저격이 불가한. “사방이 뚫린 곳“에서의 1대1 전투.

그렇게 되면 스테이터스 상 연사 속도도, 파괴력도, 반응 속도, 심지어 기동력마저 더 빠른 타쿠미는 쉽게 승기를 가져가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겠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얼굴에 웃음이 맺혀 있었다.

‘어쩌면 이번 경기에선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어…….’

아무리 타쿠미가 스테이터스가 뛰어나다고 해도, ‘공허의 광장’이 맵인 만큼 전면전에서도 밀릴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이민석은 혼자 헌터스 리그 선수 대기실에 남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외로 이창현이 선방할 줄이야…….’

경기의 흐름은 생각 외로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창현이 ‘공허의 광장’이라는 아주 의외의 맵을 선택하더니, 맵을 이용한 전술을 극한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웜홀을 이용한 사각에서의 사격이라…….’

아마 이게 타쿠미가 아니라 근접 딜러나 탱커, 혹은 쉴드류 스킬이 있는 선수에게는 통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창현은 상대의 특성을 완전히 감안하고 그의 장점을 차단하고 유일하다시피한 ‘원거리 딜러이기에 부실한 방어능력’이라는 단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첫 발이었기에 효과적으로 들어간 것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이민석이 경기를 보고 있던 도중 선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오…… 민석 선배 오랜만이네요?”

다름 아닌 한국 국가대표였던 진경태. 아무래도 경기가 끝난 이후 대기실에 무언가를 두고 왔는지 다시 들어온 모양이었다.

“응…… 경태야. 오늘 경기는 좀 아쉬웠겠다.”

진경태는 뒷머리를 긁으며 눈을 피했다. 오늘 경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이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경태는 새로운 볼거리를 찾았다는 듯,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게임이 중계되는 화면을 쳐다보았다.

“어? 쟤 오늘 뛴 타쿠미 아니에요? 지금 쟤랑 1대1 하는 건 또 누구에요?”

“음…… 내가 소개해 준 유망주인데 생각보다 잘하네.”

“유망주요?”

진경태는 유망주라고 부를 법한, 그것도 특징적인 무기인 총을 쓰는 유망주를 떠올려 보았지만 도무지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총 같은 무기를 쓰면 당연히 알 텐데? 하다못해 2부 리그 정도만 되더라도……. 물론 3부 리그 정도면 진경태가 모를 수도 있긴 했다.

그렇게 많은 선수를 다 기억하고 살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1부, 그것도 국가대표로 출전할 만한 선수를 3부 리그 선수랑 맞붙여 줄 리가 있겠는가? 그것도 1대1로.

게다가 지금 경기 상황 보면 꽤나 박빙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쟤, 선배가 따로 키우는 애에요? 왜 지금까지 몰랐지?”

“아냐, 이번 시즌에 3부에 데뷔한 프로 헌터야.”

경악스러웠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3부였다니……. 그것도 싸우고 있는 걸 보면 꽤나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진경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뀌어 가는 전황에 이윽고 진경태는 안정을 되찾았다.

“암 그렇지……. 아무리 선배님이 꼽은 유망주라 해도 상대는 일본 국가대표인데…….”

앞으로의 경기 양상이 예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두 번 같은 곳을 맞추면 대상을 파괴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기급 스킬을 가진 타쿠미가, 이창현이 숨어서 저격하지 못하도록 공허의 광장의 벽을 보이는 대로 부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어 공허의 광장의 벽이 사라지면 엄폐물이라고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웜홀뿐.

기본기인 스테이터스의 차이가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리라.

직접 타쿠미와 싸워 본 진경태였기에 더더욱 타쿠미의 승리를 예감했다.

진경태는 그래서 사실 이 게임의 승부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이민석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경기장까지 와서 왜 한국 대표 애들 안 만나고 갔어요. 선배 만나고 싶어 하는 애들도 많았는데.”

진경태는 대표 애들도 안 만나고, 남아서 유망주의 경기나 보고 있는 이민석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듯싶었다.

그래선지 진경태는 그 말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 와서 얼굴 한번 비추시고 하면 애들 사기도 올라가고 그랬을 텐데…… 아쉽다는 거죠 제 말은…… 다들 선배 좋아하니까요. 예전에 국가대표로 같이 나가기도 했었고.”

그런데 이민석은 그런 진경태에 말에 침묵할 뿐,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은 채로 눈 앞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진경태는 그 모습에 속이 더 상할 수밖에. 비록 졌지만, 힘들게 국가대표로 나갔는데 격려는 못해 줄 망정 일본 애랑 3부 리그 애 경기에나 더욱 관심을 쏟고 있기에 속상했다.

‘이미 진 것 같은데…….’

진경태는 흘긋 화면을 쳐다보았다.

공허의 광장의 벽이 모두 무너지는 순간. 타쿠미가 정확한 석궁 연사로 이창현을 한 번에 넉 아웃 시키는 모습이 쉽사리 연상이 갔다.

그래서 진경태는 자기 말을 안 듣고 묵묵부답으로 경기화면만을 쳐다보는 이민석이 답답했는지 경기 화면을 막아섰다.

자신의 말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고 다른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민석이 속상하다 못해 마음이 상했으니까.

“이민석 선배님!!”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민석의 싸늘한 반응뿐이었다.

과거 소년가장처럼 팀을 이끌어 가야만 했던, 자기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국가대표팀원들을 얹고 캐리해야만 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였을까?

이민석은 싸늘하고, 무겁게 말했다.

“비켜. 지금 너네들 경기보다 쟤 경기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갑작스레 변한 온도감에 자신도 모르게 진경태가 뒷걸음치자, 경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

‘이럴 수가…….’

이름도 모를, 3부 리그 선수가. 한국 국가대표팀을 손쉽게 무너뜨린 일본 국가대표 중 한 명인 타쿠미에게서. 승리를 쟁취한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