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폭격
“진짜 괜찮겠어?”
“전술은 아끼는 게 아니야. 거기에다가 한 번 보여 준다고 쉽게 막힐 전략도 아니고.”
“그건 그렇긴 한데…….”
윤한결은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가 8등팀인 만큼 기본 기량으로 해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기려면…… 아무래도 팀원 개개인의 활약보다는 내 위주의 활약으로 게임을 캐리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겠지.’
지금 필요한 건 내 활약이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3부에 올라오고 나서도 눈에 띌 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폼이 올라와야 하는 건 나머지의 팀원. 그리고 1부의, 아니 세계구급의 팀으로 만들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도 팀원의 비중이 꽤나 컸다.
‘물론 그렇다고 내 성장을 뒷전에 두면 안 되겠지만…….’
“이번 경기엔 그리고 네 역할이 제일 큰 거 알고 있지?”
“집중할게.”
“그럼, 경기장으로 가자.”
뜨거운 함성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야말로 회귀 후, 3부이긴 하더라도 정식 헌터스 리그에서 뛰는 첫 걸음.
그런 첫 걸음이니만큼 눈에 띄는 족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10등 팀 대 8등 팀임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와…… 진짜 구단주 겸 감독 겸 선수를 한다고? 개에바 아니냐?]
ㄴ [그래도 일단 경기 나왔으니 경기에서 하는 거 보고 말하는 게 좋을 듯]
ㄴ [딱 봐도 어딘가에서 굴러들어온 낙하산인데 그걸 볼 필요가 있나 ㅋㅋ 그냥 역겨움]
ㄴ [약간은 기대해 볼 만 하지 않나? 헌터스 –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 우승자 출신이잖아.]
ㄴ [거긴 아마추어들끼리 싸웠던 거고 여긴 3부긴 해도 프론데 그걸 비교하냐;;]
[“3부 리그 전부다 수준 낮아“발언한 이창현. 사실상 인터뷰 때도 캐릭터 삭제빵급 발언 했던데 지면 대박]
ㄴ [ ㄹㅇㅋㅋ]
ㄴ [ 이기면 개멋있는 거고 지면 개쪽팔리는 거지 뭐 그냥]
ㄴ [ 근데 솔직히 3부 수준 낮다고 해놓고 상위권 팀은 몰라도 8위 팀한테 지지는 않겠지]
ㄴ [ 8위팀 무시함? PER은 전시즌 10등에 무승이었던 걸 기억하길]
ㄴ [ 헐 그렇네 ㅋㅋㅋㅋㅋ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 말했음?]
아쉽게도 주로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아직 실력을 증명했다고 하기엔 멀었지.’
회귀 전의 과거를 떠올려 봐도 그랬다. 1부, 아니 세계 리그에서 우승하더라도 한 번은 운이라고 쉽게 폄훼되곤 하는 것이 이쪽 판이었다. 물론 우승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런 말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때에도 한 번이라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면 매번 재평가 되곤 했으니까.
“가자. 그리고 증명하자.”
할 수 있는 건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이기는 것뿐이었다. 패를 아껴 두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
헌터스 리그에서는 순위가 더 낮은 팀이 맵 선택권을 갖는다.
물론 포스트시즌이나 동 순위의 경우에는 랜덤으로 맵이 정해지는 등 공평하게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더 낮은 순위의 팀에게 승산을 주기 위한 배려 조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등수가 더 낮기 맵을 고를 권리도 우리에게 있지.’
첫 경기부터 이른바 ‘폭격기 조합‘을 잘 쓰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 갖춰졌다는 말이었다.
말로만 들으면 이 조합은 무적 같지만,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맵의 이점이 있으면 더 좋았으니까.
내가 고른 맵은 그중 평범한 시가지A맵.
가장 무난하게 나오는 맵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평범하게 고층빌딩이 즐비한 시가지맵이었다.
‘무난하기에 어떤 전술을 펼칠지 숨길 수 있다는 점이지.’
이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맵의 광활함으로 인해 위치 파악 능력이 있는 이연주가 있는 우리 쪽이 팀원 합류가 더욱 용이했다.
그뿐만일까.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이 도시에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한결의 검만을 원격으로 날려 보내 폭탄을 터뜨리기 좋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리한 점을 하나하나 짚어 보며 집중해야 할 포인트를 잡았다.
그리고 이내, 리스폰이 시작되었다.
“이연주랑 한지수랑 한결이. 그렇게 셋이서만 모이면 바로 전에 말했던 전술을 사용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나머지는 말한 대로 조를 짜서 각개격파할 수 있으면 각개격파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생존을 목표로 해보자고.”
“오케이.”
“알았어.”
연결된 이어폰 너머로 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쪽 끝 칠성전자 건물 23층 왼쪽 끝 오피스에서 기다릴게.”
먼저 들키지 않을 만한 자리를 잡은 이연주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상대 위치는…….
[244, 165 , 266]
[152, 125 , 25]
[24, 161 , 66]
[5, 165 , 53]
이 좌표는 조심하는 게 좋겠어.”
‘역시 맵이 넓은 만큼 도움이 되는군…….’
불시에 마주칠 전투조차도 회피할 수 있게 해 주는 이연주의 능력이었다.
“상대는 아무래도 우리 측의 저격을 의식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우리를 탐색하기보다는 합류를 우선시하는 것 같아.”
“오케이.”
이 또한 예상한 부분이었다. 무시당한 만큼 내 경기를 제대로 찾아본 모양이었다. 더 높은 리그라면 모를까, 3부 리그에서도 내 저격은 충분히 위협적인 요소였기에.
하지만 상대가 합류를 우선한다면 우리 또한 그만큼 시간이 생기는 법이었기에.
“상대 합류 지점은 체크했어. [145,255,5] 지점이야.”
이연주가 꼽은 지점이 정확하게 홀로그램 지도에 맵핑되었다.
우리 팀은 이미 폭격기 조합의 셋을 제외하곤 해당 지점을 둘러싸 진형을 갖춘 상황이었다.
“1차로 폭격해서 진형과 건물을 무너뜨리고 나오는 녀석은 저격, 내 저격을 피해 가는 녀석은 갖춘 진형대로 그대로 돌진한다.”
“알겠어.”
“폭격할 준비는 다 끝났어?”
“물론이지. 말만하면 큰 거 한방 바로 간다.”
“그럼, 시작해 볼까?”
***
박준영. 그는 팀 TGD에서 활약하고 있는 주전이었다.
‘이번 적은 꽤나 주의하는 게 좋다고 했었지…….’
유기한 감독님은 어리고 낙하산인 상대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아선지 그런 말을 했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쥐꼬리만 한 뉴비 녀석은 전략이고 뭐고 딱히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보통 막 각성한, 자기가 잘 나갈 거라고 착각하기 시작한 녀석들의 일반적인 특징이었으니까.
뭐, 어찌되었든 지금은 감독의 전술을 따르고 있었다.
우선 팀원들과의 합류 후, 저격 포인트가 별로 없는 곳에 숨어서 방비를 단단히 할 것.
그리고 진영을 무너뜨리지 못한 상대방이 진형 대 진형 싸움으로 가게 되었을 때, 혹은 소규모 교전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내가 나서 달라고.
쉬운 일이었다.
[파멸적인 발걸음 : B] : 이동과 동시에 강력한 파동을 뿜어 땅을 뒤흔듭니다.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고 근접하기만 한다면, 이 스킬을 통해 빈틈을 만들고 일제히 돌격하면 쉽게 정리할 수 있으리라.
이 자신감의 근원은 꽤나 확고한 편이었다.
어느 팀이더라도 TGD와 대규모 근접전을 피하는 이유가 바로 박준영의 그 스킬 때문이었으므로. 진형을 망치기는 물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움직이도록 해 몸의 균형감각을 잃게 만든다.
그것이 그 스킬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렇기에 진형 대 진형 싸움으로 몰아가기만 한다면, 아니, 하다못해 소규모 교전으로 가더라도. 녀석이 좋아하는 저격 포인트만 쉽게 내주지 않으면 쉽게 이긴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7명이 모두 합류해서 모이는 동안 녀석은 저격에 성공하지 못했어.’
그 시점에서 우리의 승리였다.
녀석이 뛰어난 사격 능력으로 한 명이나 두 명을 줄였으면 모를까. 팀 대 팀으로 싸웠을 때, 무승인 PER에게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위에 건물 천장이 흔들리는 것 같지 않아?”
“건물 천장? 녀석이 사격이라도 하는 건가?”
저번에 마나를 실은 사격을 해 건물을 반파시켰다는 기록은 이미 봐 둔 터였다.
“마나실드 위쪽으로 전개!”
저격을 못하도록 실내에 있었으니 저번처럼 건물을 무너뜨리리라는 것은 예측 범위. 그렇기에 대응할 방법도 다 생각해 둔 터였다.
쿠쿠쿵…….
그리고 그 예측이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건물이 무너졌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녀석은 방금 저 사격으로 가진 마나의 대부분을 소모했을 거다. 저런 한 방은 또 쏠 수 없어.”
“확실히 그렇겠죠…… 그러더라도 대단한 위력이네요.”
“집중해. 이제 곧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사격으로 먼저 건드려 보든지. 곧 공격이 올 거야.”
그리고 그 다음의 예측까지도 꽤나 정확도가 높은 편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다음의 공격은 이창현의 에테르 탄 ‘사격‘ 따위가 아닌 대량의 마나봄버 투하라는 폭격이 있을 것은 상상을 못했을 뿐.
“옵니다! 아무래도 윤한결의 이기어검 같아요.”
“원거리 전투로 먼저 간을 보려는 건가. 건방진 새끼들…….”
하지만 당장 대응을 할 필요는 없었다.
TGD의 방진은 단단했고, 녀석들의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므로. PER은 접근해야만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테니까.
‘공격을 하는 건 녀석들이 나타난 이후다……!’
게다가 어디에서 저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창현도 방해였기에.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
팀 TGD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던 이기어검이 슬그머니 위로 꺾었고, 위쪽에서 상대를 노렸다.
“저건 검이니까 굳이 마나실드를 돌릴 필요는 없어. 오히려 이창현의 저격 각을 만들어 주기 위한 미끼일 가능성도 있다. 무기엔 무기로 대응해!”
TGD는 거기에 근거리 딜러가 뛰쳐나와 이기어검으로 날아온 윤한결의 검을 직접 마주해 칼로 쳐냈다.
아니,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검을 쳐내려고 검이 맞대어진 순간.
검에 부착된 마나봄버가 떨어지며 폭발했다.
콰콰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방진은 튼튼했을 터였고, 원거리에서 조종하는 그 검은 직접 휘두르는 검보다 강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어야 했다.
“검... 검이 폭발했어...”
[TGD의 김서현이 사망했습니다.]
“크윽…….”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비웃듯이 두 번째 검이 날라 왔다.
마나실드를 돌려서 저걸 막으면 이창현의 저격에서 노출될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고, 그렇다고 이번에도 또 저 검을 직접 상대하자니 이번에도 터지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심리적으로 불리한 양자택일.
박준영은 저 검을 마나실드로 막는 것도, 막지 않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걸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원거리 딜러! 저 검을 격추해!”
근거리에서 안 된다면 원거리에서……!
검이 폭발한다면 진영과 떨어져있을 때 격추시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
눈 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TGD측의 원거리딜러들이 견제사격을 하자, 날아다니는 검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것처럼 모든 원거리 공격을 피한 것이었다.
윤한결이 직접 자유롭게 조종한다는 걸 모르는 TGD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날아오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파국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젠장...!
“기동전으로 간다! 모두 에어비트로 여기에서 벗어나! 저격을 조심해라!”
빠른 기동으로 다들 제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때. 건물 밖에 대기 중이었던 세 개의 이기어검과 회피했다고 생각한 검이 각각 떠올라, 회피기동을 하는 TGD 대원들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