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적과 적 사이에서
‘폭격기 조합‘
윤한결이 마나봄버를 단 채로 여러 개의 이기어검을 띄운 후, 상대가 있는 위치에 한지수의 중력조정으로 마나봄버만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어야 하는 게 있었다.
‘상대의 위치 특정이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원거리에서는 치명적인 폭격을 하긴 어렵겠지.’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이연주였다.
혼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던 능력. [위치특정 : B-]가 힘을 보여 줄 차례였다.
“상대의 위치를 세세하게 브리핑 할 정도로 [위치특정 : B-] 능력의 숙련도가 필요한데. 할 수 있겠어?”
“……음.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요.”
다크서클이 짙게 낀 이연주가 답했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쉽게 어울리지도 않아 무슨 인물인지 약간 종잡기 어려웠다.
그래도 뭐, 내 전술의 중요한 키 중 하나인데. 그럭저럭 잘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양손으로 이연주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이번 전술의 핵심은 너야. 네가 무너지면 폭탄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거야. 믿어도 되겠지?”
이연주는 그런 약간 과감한 터치에 놀랐는지 눈이 약간 커지곤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그거 대답하는데 귀는 또 왜 빨개진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집중해서 상담하거나 그럴 녀석들은 없었다. 김도준이야 뭐. 전에 제대로 한 번 봐준 적이 있기도 했고, 이길한이나 다른 녀석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으니까.
당장 전술적으로 시동할 녀석들이 아닌 경우엔 스테이터스를 올리기 위한 기초체력 단련에 집중시켰다.
물론 장기적으론 전략적인 행동을 위한 특별한 훈련이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걸로 족했다.
앞으로 새로운 팀원들도 들어올 테고, 전략적 다양성도 늘어날 테니. 벌써부터 급하게 방향을 잡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
‘어처피 내가 중심에 서서 오더할 테니까.’
***
훈련의 나날은 계속 이어졌다. 윤한결과 한지수, 이연주는 합동연습. 즉 여러 개의 검을 띄워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마나봄버를 터뜨리는 연습을 했고, 나머지는 기초 단련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개막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훈련의 성과는 뭐…… 굳이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팀에 아쉬운 점이라면 뭐…… 역시 팀원이 너무 적은 게 아쉬웠다. 팀이 적어도 14명은 되어야 팀 내부 연습게임을 하면서 더욱 단련할 수 있을 텐데.
비시즌이다 보니 저번 ESP처럼 연습게임을 받아 주는 곳도 없었다.
다만 비시즌이었기에 준비하는 것도 있었다.
시즌 오프닝 영상 촬영 및 사전 인터뷰가 그것이었다.
‘저번 시즌 종료 후 미디어 데이 때는 시끌벅적하게 선전포고했으니까. 이번엔 무난하게 가 볼까.’
그런데 아쉽게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특히 개막전 2경기로 우리 팀인 PER과 붙는 TGD가 그랬다.
1경기인 LTD대 RIX는 서로를 리스펙트하면서 인터뷰를 끝냈지만, 그 다음 인터뷰인 PER과 TGD는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네. 유기한 감독님. 이번에 개막전에서 TGD는 제대로 리빌딩한 PER과 싸우게 되는데요. 시즌 중에 준비는 순조롭게 되셨나요?”
“유기한입니다. 시즌 중 준비는 정말 순조롭게 되고 선수들도 다들 자신감 있는 편입니다. 특히 첫 경기만큼은 다들 더 그렇더라구요.”
“첫 경기만큼은 더 그렇다시는 말씀은…….”
TGD의 감독 유기한이 이창현을 보면서 웃었다.
“감독이라는 게 뭡니까. 전술을 짜고 선수들을 조율하고 진두지휘하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연륜도 좀 필요하고. 전술에 대한 지식, 경험뿐만 아니라 갈등조율 능력도 필요하죠. 그런데 뭐…… 팀 PER은 솔직히 말해…… 낙하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모래성 같은 팀으로 보입니다. 아, 이런 말은 팀 PER앞에서 하긴 좀 냉혹한 말이었을까요?”
아주 대놓고 말하는구만.
덕분에 적당히 리스펙트해 주면서 끝내려고 했던 인터뷰는 물 건너갔다.
이런 말을 듣고도 웃으며 넘기면 그건 단순히 나를 넘어 팀 자체가 망신인 상황이니까.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PER측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즌 무승이었다 보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을 수도 있구요…….”
캐스터만 그 무례한 말을 웃으며 최대한 무마하려고 했지만. 이미 상대는 선을 넘은 상태.
이제 와서 어영부영 인터뷰를 끝낼 생각은 없었다.
“뭐, 제가 나이가 좀 어리긴 하죠. 근데 만약 저희 팀이 이기면 유기한 감독님은 나이만 먹은 사람이 되겠어요.”
위트 있게.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속뜻은 ‘너 같은 꼰대가 감독해 봤자 소용 있겠어?’ 같은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유기한 감독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뭐, 자기가 말한 건 다 맞고 내가 한 말은 비하로 들리나 보지?
“게다가 뭐 LTD라면 조금쯤은 긴장할지도 모르겠지만 TGD는 전시즌 8등이잖아요? 솔직히 말해 8등이나 10등이나 뭐.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이쯤 되자 옆자리에 앉은 유기한 감독은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져 한 대 때릴 기세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캐스터도 알았는지 무마하려는 멘트를 했다.
“하…… 하하 그렇군요. 팀 PER, 화끈한 리빌딩 만큼 화끈한 선전포고 해 주네요. 순위 경쟁 팀들 간의 피 튀기는 신경전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런 멘트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유기한 감독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고, 별 뒷말이 이어지지 않은 채로 어정쩡하게 인터뷰가 끝났다.
물론 그렇다고 그 상황이 끝난 건 아니었지만.
미디어 인터뷰가 끝난 감독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연스레 내 이야기가 나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창현이랬나? 저런 코치는 커녕 감독 경력도 없는 놈이 설치는데 저거 규정상 문제는 없는 겁니까?”
“살다 살다 저런 낙하산한테 그런 말까지 다 들어보네. 아니 김 감독. 자네가 보기에도 저게 맞아? 참. 어이가 없어서.”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 다른 감독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애처로워 보였다.
그런 말을 듣는 다른 감독들의 반응은 판이했는데, 유기한에게 동의하는 감독도. 한편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감독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개막 전 1경기로 일정이 잡혀 있는 LTD감독인 이형근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 보였지만 뭐. 회귀 전의 일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단순히 이전 미디어 데이 때 도발한 일 때문에 쳐다보는 듯했다.
여러모로, 시작도 전부터 적이 많은 3부 리그의 시작이었다.
***
팀 LTD는 거대한 팀으로 3부뿐만 아니라, 1부, 2부에도 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른바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자신의 팀에 원하는 선수를 넣어 차근차근 키워 더 높은 리그로 올려 보내는 것이다.
1부 LTD의 감독 이진한이 개막전을 관람하게 된 계기도 역시 그것이었다. 지난 시즌 3부 리그 1등 팀인 LTD와 2위 RIX가 붙었기에 쓸 만한 선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리고 실제로 개막전, 첫 경기의 향방은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었다.
“팀 LTD…….! 진형을 반으로 가르며 순식간에 떨어진 상대를 포위합니다. RIX의 선수…….! 초능력인 전방위 육각 방어막을 마나실드에 겹쳐 발동하지만 버티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한 몸처럼 움직였어요. 이게 LTD의 강점입니다. 지금 3부 리그의 LTD는 완전무결하게 모난 곳 없이 완벽하게 유기적인 호흡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몸 같은 유기적인 호흡이라…….’
놀랍게도 이진한은 LTD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유기적으로, 완벽하게, 완전무결한 육각형. 이는 어차피 2부 리그로 올라가면 체급 차이 때문에 통하지 않는 말이었기에.
그가 찾는 것은 좀 더 다른 것이었고, 그런 것이어야 했다.
‘최근 1부 리그에서 LTD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차라리 스테이터스가 좀 별로더라도 특이해서 특수한 전술을 펼칠 수 있는 녀석이 있으면 좋으련만…….’
눈에 들어오는 LTD 팀원은 없었다. 무난한 전투능력에 무난하게 유기적인 호흡. 자기들 딴에는 3부 리그에서 제왕처럼 행세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이진한이 찾는 인재상은 명확히 아니었다.
그에겐 새로운 영감이 필요했다.
‘후우…….’
경기가 막 끝난 후 3부 LTD의 감독 이형근이 손을 저으며 반갑다는 듯 손을 저으며 다가왔다.
“오늘 경기 봤지? 어땠어. 빈틈 하나도 없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요새 상위 리그 팀에서 원하는 선수들은 아냐.”
“특수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
“그냥 특수하면 안 되고……. 우리 팀 애들이랑 잘 맞아야지.”
“그런 애들이 쉽게 구해지나……. 허허.”
이형근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팀을 그럭저럭 잘 가꿔도, 결국 자신의 성과는 얼마나 잘, 그리고 많이 쓸 만한 선수를 육성하느냐가 관건인데…….
지금으로선 성과를 그다지 잘 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선수라는 게 타고난 잠재력이 워낙 많은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러지 말고 다음 3부 경기도 한번 보러 와. 다음에는 이번에 참가 안 시켰던 대기 선수들 위주로 참여시켜 볼 테니까.”
“음…… 뭐, 그래야겠지.”
그렇게 이형근과 이진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무렵. 다시 경기장의 불이 꺼졌다.
‘너무 오랫동안 대화했나…….’
1경기 후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2경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렇게 된 거 다음 경기도 보고 가지 뭐.’
이진한은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형근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아. 미디어 데이 때 꼴등 팀이 우리 팀한테 선전포고했다고 말했었나?”
“꼴등 팀이?”
“3부 뉴스는 하나도 안 챙겨보나 보구만……. 꽤나 화제였던 일이었는데.”
“알다시피 일이…….”
“이창현이라는 막 각성한 애송이가 대리 구단주에 감독에 선수까지 하는 팀이 저 팀이야.”
“성인도 안 된 애가 그런 걸 한다고?”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에 권태감을 느껴서였을까. 이진한은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낙하산인가?”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게……. 소문이 특이하더라고. 헌터 협회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우승하고, 비시즌에 한 연습 게임에서도 퍼펙트게임으로 이겼다고 하더라고.”
이진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0대 구단주에, 게다가 감독 겸 선수까지 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막장 팀인데. 게다가 이겼었다고?
“지금 경기하는 팀이 걔가 선수로 뛰는 지금 말한 거기야.”
“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별에 별 일이 다 있군.”
“그래도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고.”
“규정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식적인 일이 있고 아닌 게 있지.”
물론 이진한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흥미가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창의성이나 잠재력도 헌터협회 루키 프로그램 우승자 출신이면 분명 뛰어나겠고…… 그런 녀석이 감독까지?
이진한은 어쩌면 이 팀이 자신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기를 지켜보았고, 그리고 실제로.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