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44화 (44/270)

044. 새 전술

ESP의 감독 최한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패배했다고는 하나 7대 0. 그것도, 진형을 갖춰 싸우는 정석과 정석 대결에서 밀리다니.

‘제국의 다리’는 유명한 정석 맵으로 전술보다는 주로 얼마나 진형을 잘 짜고, 기본에 충실한가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맵이라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창현이 뛰어나다는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어…….’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우승했다는 것도, 이근택과의 대결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책도 분명하게 있었다.

그 저격이 통하지 않도록 진형을 튼튼하게 하여 두 겹, 세 겹으로 마나실드를 전개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것.

그것으로 봉쇄되었어야 했을 텐데.

오히려 팔 다리가 묶인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진 쪽은 ESP쪽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아니, 모든 게 잘못 된 건가?

단순히 선수들 자신감 좀 채워 주려고 이기러 왔던 내 잘못인가?

아니. 그건 확실히 아니다. 확실히 경기를 진 지금도 선수들의 평균 기량은 PER에 훨씬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럼, 상대방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 그렇다고 하기엔 선수들은 순간순간 제대로 된 대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형이 무너진 순간도, 이창현이 실수해서 만약 잡혔더라면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끝냈으리라.

게다가 이창현이 돌출되었던 순간을 노린 것. 그건 노리지 않을래야 노리지 않을 수 없었던 포지셔닝이었다. 순간적으로 포지셔닝을 잘못하는 것은 3부, 아니 1부에서도 종종 나오는 실수였고 그걸 노리는 건 지극히 합당한 플레이였으니까.

‘문제는 그런 빈틈까지 미끼로 쓰는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정상적인 정신상태로 할 수 있는 전술이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이 잡히면 끝나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내줄 수 있는 포지셔닝을 하겠는가.

그건 너무나도 리스크가 컸다. 마치 떨어지면 죽는 상황에서 줄을 타는 듯한 플레이였으니까.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스테이터스와 스킬들을 모두 떠나, ‘크랙’ 그 단어가 마치 그를 위해 정해진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는 생각이 다음에 곧 시작하게 될 리그까지 미쳤다.

‘3부가 쉽다고 했던 녀석의 오만방자했던 말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

***

연습 경기가 끝난 후.

비록 연습경기였지만 아주 오랜만의 승리로 인해 팀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어떻게 한 거야?”

전에 한번 이창현에게 진 후 별다른 말없이 따르기만 했던 이길한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항상 자기가 무언가를 해야 이긴다는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진형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그야 진형이 무너지지 않는 거겠지.”

“그럼 진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거기서 이길한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창현이라는 녀석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너머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러자 이창현이 자문자답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뜨리도록 만들던가, 아니면 우리 쪽에서 능력으로 무너뜨리던가. 그 둘 중하나겠지.”

이길한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왜 생각을 못했지?’

“그중에서도 내가 한 건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한 거지. 엄밀히 말하면, 방어 진형에 있던 상대에게 틈을 흘려 줘서 공격 진형으로 바꾸게끔 유도하고, 동시에 진형이 바뀌는 틈을 노린 거지.”

지금 와서 하나하나 설명을 들어보니 이창현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왜 처음 본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탈하지 않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 상태로 왜 혼자 진형 바깥에 노출된 것인지.

모두 경기가 끝나고 보니 당연한 이치처럼 느껴졌다.

‘마치 물 흐르듯 하나도 막히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이길한은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뛰어난 전술이기 때문에 그런 것임을 알았다.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복잡하게 계획해서 상대를 죽이려 했어도 실제 경기에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왜, 생각보다 너무 단순해서 놀랐어?”

“정답은 누구나 들으면 수긍할 수 있어서 정답인 거니까. 그것보다 놀란 건 팀원의 움직임이었어. 내가 오기 전에 따로 맞춰 본 적이 있었어?”

이번에 질문을 던진 것은 윤한결이었다.

한지수와 함께 이번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은 두 명의 신인 중 한명.

“맞춰 본 적은 없어. 그러니까 최대한 단순한 진형을 갖춘 거고.”

윤한결이 생각해 보니, 방어 진형에서 공격 진형으로 바뀌면서 진격까지 하던 ESP에 비해 PER은 진형을 한 번 갖춘 후 거의 움직이지도, 진형이 바뀌지도 않았다.

‘팀원의 미숙함까지 모두 고려해서 전략을 짠 건가…….’

새삼스럽게도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신의 무력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창현은 그 너머의 무언가를 더욱 가지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후…… 그럼 지금 본 것처럼만 하면 되는 건가? 도준이랑 지수도 왔으니 이번보다 전력은 오히려 더 좋아서 3부 리그는 쉽게 쉽게 풀릴 것 같은데?”

윤한결이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안 해도 팀 PER로 온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떨까. 현실은 솔직하게 냉혹했다.

“그럴 리가. 우리가 이긴 건 아무리 승수가 꽤 있다고 한들 9등 팀인 ESP야. 하위권 팀은 여차저차 해서 저런 방식으로 또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위권 팀엔 안 먹힐 가능성이 크지. 게다가 한가지 전술만으로 몰아붙이는 건 당연하게도 점점 승산이 떨어지기도 하고.”

“…… 그럼 어떻게 하려구. 난 너만 믿고 이리로 왔는데 너무 무책임한거 아니야?”

말 흘러가는 낌새가 이상하자 한지수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지수는 내가 이 팀의 순위를 끌어올려 빠방한 계약금과 커리어를 챙기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온 거라, 불안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다른 전술을 준비해야 한다는 거야.”

“다른 전술? 별달리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도 몇 없는 이 팀에서 다른 전술이랄 게 있냐?”

한지수가 자신 없다는 듯 말했다.

분명 능력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은 꽤나 좋았다. 윤한결의 이기어검. 그리고 한지수의 중력조정에 이길한의 돌격능력까지.

하지만 능력을 하나하나 두고 놓아서 좋으면 무엇하겠는가. 연계해서 쓸 만한 능력이 아닌 것을.

……분명 한지수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조건 능력이랑 능력만 엮어야 하는 건 아니지.”

“……? 마나봄버는 왜 들어?”

“능력 대신 이걸 쓸 거니까. 잘 알아 둬. 지금부터 우리 팀은 마나봄버 전문가가 될 거니까.”

“????”

초능력 간의 조합을 이야기하는데 뜬금없이 나온 마나장비에 대다수는 물음표를 띄운 채로, 다음 훈련날이 밝았다.

***

다음 날, 이창현은 한 명 한 명 팀원의 연습 메뉴얼을 정하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검을 컨트롤 하는 거랑, 검 여러 개 띄우는 것만 연습했으면 좋겠다고?”

윤한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평소엔 그냥 수긍했기에 이창현으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왜? 훈련 메뉴얼이 마음에 안 들어?”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검을 여러 개 컨트롤하면 세세한 컨트롤을 못해서 검을 날리는 의미가 크게 떨어지니까.”

확실히 윤한결의 말도 의미가 있었다.

상대를 몰아붙일 정도의 검술. 그걸 위해선 여러 개의 검을 써서 신경을 분산시키면 안 되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창현은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의 잠재력은 이 정도가 아니야.’

적어도 이창현이 회귀 전 본 이 녀석은 일곱 자루의 검을 기본적으로 다뤘고, 수준급으로 동시에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세 자루의 검에 달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선지 겨우 검 하나를 더 다루려고 했을 뿐이었다.

‘더 빨리 성장시키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 스스로 한계를 깨게 만들어야 해.’

동시에 다루는 검의 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술에는 윤한결이 여러 자루를 다루는 게 필수적이니까…….’

하지만 그런 속내는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이창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 내가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하기 싫음 말든가.”

그리곤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이것밖에 안 되는 녀석이냐는 듯.

이는 윤한결의 심리를 꿰뚫은 결과 생각해 낸 최선의 방법이었다.

‘녀석은 나를 나름 존경해서 같이 뛰고 싶어 했었으니까. 이러면 적당히 알아듣겠지.’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딱 들어맞았다.

작게나마 한숨을 쉬며 고심하는 표정을 하더니 금방 의견을 바꾼 것이다.

“그래. 언젠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몇 자루를 다룰 수 있으면 되겠어?”

나름 자신 만만하게 나오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일단 우리 팀에 온 이상 대강대강 목표를 제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7자루”

윤한결의 표정이 기괴하게 찌그러졌다.

***

“뭐? 멀리 있는 걸 세심하게 하나씩 떨어뜨리는 컨트롤을 연습하라고?”

반면 윤한결과 달리 한지수는 다루기 좀 귀찮은 캐릭터이긴 했다.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좀 의외였다. 혹시 몰라서 말했지만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고 할까.

“되도록 세밀한 조작이 가능할수록 좋아.”

“근데 그렇게 약하게 중력 조작해선 상대를 공격하는 데 도움은 하나도 안 될 텐데?”

한지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내가 무슨 구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만했다.

중력 조작은 되도록이면 광범위하고 강하게 누를 수 있을수록 강력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일 테니까.

“아니 무슨 생각인지 말을 해 줘야 내가 거기에 동해서 연습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니야.”

저번에 죽도록 맞고도 아직도 기운이 살아 있는 걸 보면 원래 이런 모습이 본 모습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이제 같은 팀까지 되어서 때릴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고……

뭐, 한지수 정도면 말해 줘도 될 것 같았다.

“그 중력능력으로 폭탄을 떨어뜨릴 거야.”

“폭탄? 왠 폭탄?”

“마나봄버 말이야.”

한지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물론 혼자서 생각해서는 모르겠지만.

“내 계획은 이래. 우선 윤한결의 이기어검에 검에 마나봄버를 매달고, 한지수의 중력능력으로 날아다니는 검에 매달린 마나봄버를 떨어뜨린다. 이른바 둘이서 전장의 폭격기가 되는 셈이지.”

그 말을 듣자 한지수는 그제야 상상이 가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그럼, 새 전술이라고 했던 건…….”

“그래. 바로 이게 우리 팀의 새 전술이다.”

윤한결과 한지수, 그리고 마나장비인 마나봄버의 합작.

벌써부터 그 폭격기 조합이 어떻게 활약할까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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