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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43화 (43/270)

043. 마법 같은 순간

“이 팀의 오더는 제가 합니다. 전적으로 따라 주셔야 합니다.”

그게 처음으로 이어폰에 대고 한 말이었다.

물론 그 말을 하면서도 오더를 그리 잘, 완벽하게 들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더가 잘 통하고 그래서 전술을 촘촘하게 짜는 게 가능했으면 팀이 무승으로 끝났겠는가.

팀 상황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것보다 좋지 않다는 걸 전제로 임해야 했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새로 온 팀원이 전부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PER 팀원 5명에 나와 김도준만 참가하는 경기였다.

새 팀원으로 인한 전력 증강의 덕도 보기 어려운 상황.

하지만 일부러 이런 상황을 조장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해.’

지금까지는 아마 압도적으로 계속 패해 왔고, 그랬기에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으리라.

이렇게 패배에 찌들어 있는 기존 팀원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이번 경기의 의도였으니까.

물론 그와 별개로 ESP측에서는 대놓고 상대인 우리 팀을 우습게 보고 있었지만.

“아…… 새로 구단주?? 감독? 을 맡으셨다고 했나요? 아무튼 뭐. 잘 부탁합니다.”

ESP의 감독 최한규의 말은 건성건성, 표정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절대적 약팀이기도 하고, 우리가 연습 게임을 부탁한 입장이었기에 대놓고 어느 정도 무시가 깔려있는 듯한 태도였다.

뭐, 거기엔 구단주 겸 감독 겸 선수라는 말도 안 되는 막장 캐릭터인 내가 끼어 있어서 그런 거기도 하겠지만…….

‘무례하긴.’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런 건 경기로 보여 주면 족하니까.

“그럼, 경기 시작합니다!”

***

변수가 적고 한타위주인 3부 헌터스 리그 경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은 기본적으로 바로 진형을 갖추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말로 하면 쉽지만, 실제 상황에선 또 그만큼 수준차이가 나는 것도 없지.’

진형을 갖춘다. 상대방 근접딜러와 원거리 딜러. 그리고 우리 팀의 딜러들의 위치를 고려해 자신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수정하여 보완한다.

우리 팀의 선봉이 싸움을 걸 때 바로 호응할 수 있는 위치. 그리고 동시에 우리 팀 딜러들이 공격에 노출되지 않도록 중간에 저지할 수 있는 위치.

그런 위치는 움직임과 상대의 공격 특징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므로.

이런 7대 7의 대규모 전투에서는 이런 세심한 포지셔닝이야말로 전투의 향방을 가른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에 본 PER과 ESP경기도 진형이 완전히 망가져서 한번에 무너진 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쉽게 무너질 게임은 아니었어.’

그런 진형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하나 세심한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이길한. 이전 경기처럼 최전방에 서되, 신호를 주지 않으면 절대 앞으로 혼자 돌진하지 마. 별다른 오더가 없으면 마나 봄버가 날아오더라도 그 자리를 지켜.”

“……알겠다.”

“이연주는 내 옆. 최소한 같은 라인에 서도록 노력하고. 김도준은 내 바로 앞쪽 라인. 거기에서 들어오는 상대를 견제해.”

“상대를 나가서 내가 쳐내지 않아도 되겠어?”

김도준은 오더에 의문이 들었는지 의문을 물어왔지만…….

그 말에 난 씨익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보면 알아.”

이번 맵은 특히 진형 갖추기 싸움이 중요한 “제국의 다리” 맵이었다.

거대한 다리 위에서 싸우다 보니 별다른 변수를 주기도 어렵고, 진형과 진형의 힘싸움이 주로 이뤄지는 맵이었기에.

‘자신이 없을 수가 없지.’

피지컬이 아닌, 전장의 지휘자라고 불렸던 내 뇌지컬을 보여 줄 차례였다.

***

ESP의 감독 최한규는 경기를 비추는 화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헌터스 리그에는 진형보다 중요한 요소도 많다. 맵에 따라선 선수의 개인 기량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곳도 있고, 소규모 교전이 많이 일어나 순수한 힘싸움이 중요한 곳도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클래식하게 선수들의 호흡을 맞추고 팀으로서의 의식. 그리고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에는 진형을 갖춘 채로 싸우는 것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맵을 선택한 것도 있지.’

게다가 이 진형이라는 것은 쉽게 익히고 그러기가 어려운 것이었기에. 팀 PER은 저번처럼 쉽게 쓰러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게 내 분석이었고, 실제로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님. 급조된 팀 치고는 꽤나 진형이 정교한데요?”

“음…… 모양새만 그런 것일 가능성이 더 크지. 마지막 경기 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게다가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진형이 유지되는 거지.”

실제로 모양새만 그런 것이긴 했다.

하나하나 위치를 이창현의 오더로 모조리 조정하고 있었으니,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올 수밖에.

하지만 위력은 단순히 급조된 진형의 그것이 아니었다.

‘묵직하다…….’

“저 감독 겸 구단주 대리?? 라던 녀석이 한 걸까요.”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아니나 다를까. PER과 ESP의 진형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원거리 딜러인 이창현이 노출됐다. 팀이 서로 이동하면서 생긴 순간적인 빈틈이었다.

ESP의 감독인 최한규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다른 녀석들 지휘하느냐고 자기 위치를 체크 못한 모양이구만.’

흔히 말하는 터널 시야. 많은 역할을 맡은 선수들에게서 나타나는 일 중 하나였다. 사람이기에 너무나 많은 걸 하려다 보면 하나쯤은 놓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

그리고 그런 최한규 감독의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팀 ESP는 원거리딜러인 이창현이 진형에서 순간적으로 노출된 순간, 이창현의 저격을 대비해 전면에 내세웠던 겹겹의 마나실드를 내리고 돌격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송곳 같은 찌르기였다.

‘쯧쯔…… 체면치례도 못 하겠군.’

저렇게 빨리. 그것도 팀에서 핵심적인 녀석이 처음으로 죽었다가는 팀의 신뢰를 잃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뭐. 우리 팀원도 아니고 거만하게 인터뷰했던 죗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이었다.

“…….”

앞으로 좀 삐져나왔다 싶었던 이창현이 언제 뿌려뒀을지 모를, 바닥의 에어비트를 밟고 원래 팀원이 있던 자신의 자리로 튕겨져 나갔다.

그야말로 의도된 움직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순식간의 움직임이었다.

‘실수…… 가 아니라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된 움직임이었던 건가…….’

팀 ESP가 상대 팀의 진형에서 어긋난 이창현을 잡기 위해 공격적인 태세로 전환하여 있는 사이, PER은 다시금 팀을 단단한 진형으로 굳힌 것이었다.

그 변화를 눈치챘는지, ESP의 주장은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한번 공격진형으로 바뀐 진형은 금방 다시 돌아오기 힘든 상태였다.

그렇게 진형 변화에 있어 갈팡질팡하는 동안……

타앙 ㅡ.

겹겹이 세워졌던 마나실드가 잠시 내려진 틈을 타, 아군의 엄호를 받는 이창현의 총격세례가 쏟아졌다.

‘이런 미친…….’

최악을 상정해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상대를 얕보고 있었다고 해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기엔 미끼가 너무 매력적인 건 사실이었으니.

한번 진영이 무너져 총격 세례를 받자 재빨리 ESP에서는 마나실드를 올렸지만, 겹겹이 세워지지 않은 마나실드는 이창현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나봄버…….’

녀석은 마나봄버를 갈아 에테르를 섞어 쏴, 전과는 다른. 마치 미사일을 떠올리는 총탄을 쏴재끼고 있었다. 단순한 마나실드 하나로는 터무니없는 저 공격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그랬기에 ESP 멤버들은 이창현의 총탄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고 그야말로 진형은 완전히 무너진 채였다.

그래도 7대0으로 이겼던 상대에게 이렇게 질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을까.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ESP의 주장은 이어폰에 소리쳤다.

“어차피 녀석들 개인 기량은 우리 팀에 비빌 수 없어. 총력전으로 가자!”

진형이 무너졌지만,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아…… 안 돼!’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최한규 감독으로서는 그조차도 이창현의 의도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의 진형은 파괴적인 딜링 능력을 가진 원거리 딜러, 이창현을 둘러싸는 일종의 둘러싸기식 진형. 이창현을 잡지 못한다면 앞의 진형을 뚫다가 이창현의 저격에 의해 빈틈이 꿰뚫려 하나씩 제거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창현이 앞세운 PER의 앞 라인부터 잡으려다가 이창현의 지원사격에 의해 ESP의 팀원들이 쉽사리 쓰러진 것이다.

그제서야, ESP의 주장은 그것을 깨닫고 안쪽의 원거리 딜러 먼저 노리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리 ESP가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팀이라곤 하나 진형이 전혀 깨지지 않은 PER을 상대로는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창현을 노리려고 이를 갈고 달려든 ESP 팀원들의 위치나 공격 경로를 미리 읽고 있었다는 듯, 앞세워진 김도준이 아주 정확한 위치에서 들어오려는 녀석들만을 잘라 냈다.

“이럴 수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ESP는 전멸. PER은 전원 생존한 채로 경기가 끝나 있었다.

***

이길한의 심장이 어느 때보다 뜨겁게 뛰고 있었다.

‘이럴 수가…….’

처음에 이창현이 한 말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원거리 딜러이면서 사령탑인 녀석이 팀원들에게 진형을 갖춰 놓고 움직이지 않을 것을 주문하고 혼자 뛰쳐나가다니.

순간적으로 녀석이 미쳤나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가.

그 결과는 상대방의 단단한 진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게끔 했고,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일까?

다시 진형 안으로 들어온 녀석은 소름만큼 정확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김도준, 좌측 위주로 신경 써. 위치를 고수한 채로 그쪽을 신경 쓰다 보면 공격 타이밍이 나올 거야.”

아직 상대가 들이치지도 않았던 상황에 마치 미래를 보는 듯한 오더. 이창현이 왼쪽을 조심하라고 하면 왼쪽에서 상대가 들이쳤으며, 오른쪽에 카운터를 준비하라고 하면 오른쪽에 공격이 이어졌다.

처음은 믿을 수 없었지만, 두 번, 세 번 계속 그런 오더와 상황이 이어지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흐름을 완전히 읽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상대가 어떻게 대응할지, 그 대응을 어떻게 대처할지까지. 전장을 한 눈에 넣고 완전히 읽으며 팀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우리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무슨 행동을 할지 모두 알고 있다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심으로 그 녀석의 오더를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이 말한 대로 행동하면 착실히 성과가 나왔으니까.

그렇게 몇 번이 지났을까.

처음 저격으로 두 명을 줄인 이창현. 그리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찌르고 방어하다 보니, 어느 샌가 전장에는 일곱 명. 팀 PER의 인원밖에 서 있지 않았다.

7대 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졌던 ESP를 반대로 똑같이 되갚아 이긴 것이었다.

‘이건 대체…….’

경기가 끝나고도 이길한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이건 마법이다.’

이창현과 김도준. 2명을 제외한 5명의 PER팀원들은 이 순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창현이 말했던 그 어떤 것도, 빈말이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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