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새 팀을 꾸리는 법
“원하는 조건이 뭐죠?”
박현아가 한 수 물러준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수였다.
결코 만만하게 이 말을 넘어갈 이창현이 아니었기에.
‘대가는 충분해. 원하는 걸 모조리 얻어 내기만 하면 된다.’
이창현은 자신감 있게 웃으며 대답해 나갔다.
“후원입니다.”
“후원이요? 무기 지원만으로도 충분히 후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뭐…… 이창현선수의 개인스폰 정도는 이 모라스공방 서울 분점에서 충분히 추가해드릴 수도 있죠. 그 정도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무기를 쓰는 슈퍼 루키가 나오는 것도 저흰 항상 환영이니까요.”
“아뇨, 그런 후원이 아니라…….”
“……?”
“제가 곧 들어가게 될 팀. 팀 PER에 대한 후원, 즉 팀 PER의 스폰서가 되 달라 이 말입니다.”
기세등등해 보였던 박현아의 표정은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마치 썩어 들어가는 듯 바뀌었다.
그도 그럴게, 팀 PER은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 팀이었으니까. 3부. 그것도 꼴등인 팀에 팬이 있겠는가. 팬은 커녕 후원하는 스폰서도 없는, 그런 팀이었다.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의문이 가는 그런 팀.
“왜 하필 팀 PER이죠? 하다못해 다른 팀이면 어떨까요. 그러면 충분히 창현 씨가 들어가는 팀에 후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 전 이미 팀 PER과 계약했거든요.”
그 대답에 박현아는 그게 무슨 괴상한 말이냐는 듯 표정이 찌그러졌다.
“팀 PER이면 스폰을 해봤자 홍보효과나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에도 도움이 안 되는데…….”
“그러니까 오히려 무게추가 맞는 거 아닐까요? 저는 지금 제 무기 제작 능력을 온전히 모라스 공방 서울 지점측에 얹어 준다고 하고 있으니까…….”
나로서도 약간 이 제안은 양심이 없는 제안임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주는 혜택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무리한 제안이지만, 저쪽에게 제시한 조건도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 사실 역시 박현아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박현아는 선 채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끝끝내 무언가 떨쳐 내려는 듯 머리를 흔들곤 말했다.
“좋아요. 상세한 이야기는 팀PER 측에 이쪽 실무자를 보내드릴 테니 상세한 협의는 그쪽에서 하도록 하죠.”
그제서야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거절당할 수도 있긴 했는데…… 일이 잘 풀릴 줄이야. 그래 봤자 팀이 제대로 성장하는 첫 걸음정도밖에 못 되겠지만…….’
기념비적인 한 발자국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리라.
***
‘좋아…… 그럼 일단 스폰이나 자금 문제는 조금은 해결했고…….’
다음은 팀 자체였다.
아무리 영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6명을 다 영입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까.
어느 정도 재능이 있거나 하는 팀원이 있는지 살펴봐야 했다.
그렇게 찾은 헌터스 리그 3부 리그 경기장.
서울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해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3부 치고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드문드문 사람이 앉아 있는 게 생각보다 보는 사람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경기는.
미리 알아 본 대로 PER대 ESP.
꼴등 대 9등 더비. 팀이 10개니까 이른바 병림픽인가.
그래도 꼴에 정식 프로리그인지라, 해설자들은 열심히 쉴드를 치고 있었다.
“아…… 확실히 지금은 성적이 안 좋습니다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맨 아래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올라갈 일밖에 없다는 뜻이거든요. PER. ESP 상대로는 할 만 합니다. 이번에 해야 해요!”
“확실히 두 팀 모두 지표상으로는 할 만한 듯 보입니다. 문제는 두 팀 모두 연패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이번 경기야말로 서로 보여 줘야겠다고 이를 갈고 있을 거거든요!”
올라갈 일 밖에 없기는 개뿔.
아래에 쳐박히면 등수는 안떨어져도 지하실은 있다. 무한 연패라는 지하실이.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물론 해설자들도 이해가 가는 것이, 참으로 꼴통인 팀들끼리의 싸움입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니까.
이윽고 관중석의 불이 꺼지더니 가상현실로 경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1부랑 다르게 2, 3부는 가상현실로 경기했었지…….’
1부는 실제 던전인 탑에 들어가서 경기했기에 데미지를 입는 것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반면, 2, 3부는 그럴 일도 없는데 소극적으로 게임한다라...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연패하는 팀들은 자신감이 없을 수밖에 없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윽고 시작된 게임에서는 두 팀 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맵은 ‘잃어버린 신전’, 꽤나 미로같이 꼬인 방들의 연속인 맵이었다.
무난하게 몬스터를 잡으며 성장하는 각 두 팀은 딱히 특별한 전술을 준비하지는 않았는지, 중앙의 홀에 모여 한타가 시작됐다. 정석적으로 성장해서 싸우는 것 또한 전술 중 하나였기에 성장하는 것 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지만…….
‘저게 한타냐?’
상대와 마주하자마자 생각 없이 돌진해서 싸움을 걸고는 죽는 녀석. 뒤에 자신의 팀이 어디 있는지 전혀 체크하지 않는 녀석임이 틀림없다.
그것뿐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돌진해서 한 명이 죽자마자 남은 6명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다 각개격파.
무려 7대7 한타에서 7대 0으로 순식간에 압살당했다.
‘하아…… 이게 진짜 프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빛나는 원석을 찾기는 커녕 평균 수준의 플레이어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팀 PER! 한타에 패배해서 후퇴합니다! 퇴각! 퇴각해야 해요! 아아…… 그마저도 안 됩니다.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느라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망했습니다! 망했어요!”
“아…… 이렇게 한타가 끝나는군요. 팀 PER의 가장 큰 문제는 팀에 힘이 없다는 겁니다. 패배하더라도 무언갈 시도하고 져야 하는데, 연패의 여파가 큰지 무언가 시도하지도 못하는 느낌입니다. 아~ PER 어쩌면 좋죠!! 이대로 가면 1승도 챙기지 못하고 시즌을 종료하게 생겼습니다.”
그제서야 팀 스코어를 올려다보았더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승수가…… 0?’
과거에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이창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갑작스럽게 회의감이 휘몰아쳤다.
‘이 팀을 맡는 게 맞았나……? 그냥 적당히 좋은 조건 좋은 팀원 있는 팀에 들어갔다가 1부 팀으로 옮겨가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던 걸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떴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이 캄캄한 것만 같았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이창현은 팀PER 소속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걸 전제로 스폰까지 물고 온 상태였다.
‘아니……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 일단…… 갈 수 있는 팀원은 죄다 갈자.’
일단은 큰 액수는 아니더라도 스폰이 있긴 있으니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면서, 경기장을 나섰다.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일단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팀원의 능력치나 스킬이라도 보겠다는 마음으로 경기가 끝난 후 PER의 홈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제발 쓸 만한 선수가 하나라도 있어야 할 텐데…….’
자신이 이 팀의 소년가장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
스카우터 겸 코칭스태프를 맡고 있는 이종규에게 연락을 받아 간 팀 PER의 홈은…….
‘무슨 팀 홈이 가정집이냐…….’
처참했다. 뭐랄까. 좋게 말하면 그래도 가 족같은 분위기의 팀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헛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면 회귀 전 생각이 나기도 했다.
‘나도 회귀 전 첫 팀이 제대로 된 스폰이 없어서 가정집이나 다름없는 팀 홈에서 합숙했던 거 같은데…….’
번듯한 건물이 통째로 팀의 홈인 것과 다르게 평범하고, 여럿이 지내기에는 좀 좁은 아파트.
그게 나의 첫 팀이었으니까.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생각하며 자신을 타이르고, 미리 전달받았던 번호를 눌러 문을 연 순간.
“멍청한 새끼야! 니가 거기서 그 지랄만 안 했어도 이렇겐 안 망했어!”
“그럼 넌 잘했고? 꽁지만 빠져라 도망가다가 뒤지게 쳐맞고 뒤지고. 잘하는 짓이다.”
문을 열자. 머리에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고성과 쌍욕이 오가고 있었다.
‘하긴…… 팀 성적이 그렇게 개판인데 불화가 없을 리가 없지.’
더 놀라운 점은 그렇게 개판인 곳에 이종규도 있었다는 점이다.
“얘들아…… 싸우지 말고. 말로 하자. 말로…… 좀 진정 좀 해봐. 그렇게 하면 될 것도 안 돼.”
“아니 씨발 제가 그럼 말로 했지, 때리길 했어요 죽이길 했어요? 네? 말 좀 해보세요. 코치님.”
코치의 권위라는 건 고사하고…… 팀 위계는커녕 질서 자체도 존재하는지 의문인 발언이었다.
그렇게 어디까지 가나 보고 있었더니,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이종규가 구세주를 찾았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맞다. 얘들아! 우리 팀에 새로 온 팀원이 있어. 이창현이라고 이번에 [Hunters, The next generation] 우승한 녀석이거든? 팀 분위기 안 좋아도 구단주님이 데려오신 친군데 잘 해보자. 어?? 우리 팀 달라질 수 있어…… 구단주님도 투자 더 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일단은 내가 팀을 사실상 먹었다는 건 이근택만 아는 사항이라 이종규 코치도 제대로 모르는 듯 했다.
그건 그렇고…… 하아…… 한숨만 나오는 반응이었다.
역시나 신삥이 얼마나 뛰어난 녀석이 왔든간에 지들 기싸움이나 계속하고 있고, 다음 게임 어떻게 이길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고 있단 생각이 안 들었다.
‘이런 정신머리를 가진 애들이랑 계속 팀을 꾸려갈 수는 없지…….’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그 정신머리를 가진 녀석을 갈아치우든지, 그 정신머리를 개조하든지. 둘 중 하나는 시급해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더 세게 나가야 할 때였다.
“경기, 봤어요. 잘 하시던데요.”
“……?”
그래도 꼴에 자기네들이 경기를 못 했다는 건 알고 있나보다.
그래서 한 마디 더했다.
“삽질 잘 하시던데.”
그러자 한 명이 화가났는지 대뜸 언성을 높였다.
“어디서 굴러 온지 모를 아마추어새끼가 프로한테 목소리를 높여? 너 미쳤냐?”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입놀림은 거기서 더 빨라졌다.
“나머지도 잘한 거 없어요. 거기 바가지머리 형씨. 퇴각할 때 정신 못 차리고 원거리 딜러 노출시켰고. 거기 뒤 생머리 누나. 원거리 딜런데 딜할 각인지 도망갈 각인지 제대로 상황판단도 못하고.”
그 말에 누군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언짢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 뒤에 머리 한쪽으로 땋은 누나. 그쪽도 마찬가지니까 남 탓하지말구요.”
“남탓…… 안 했어…….”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는데,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아무래도 어수선하고 불화가 가득한 팀이, 폭발하기 직전.
“아. 혹시 신입인데 제가 이런말 해서 좀 꼽나요?”
이런 상황은 익숙하진 않지만, 썩은 부분은 모조리 도려내야 한다는게 기본적인 생각이었으므로.
“그럼 나랑 한판 뜨던가. 지면 내가 나가고, 이기면 그쪽이 팀 나가는 걸로.”
반응은 우물쭈물 의외로 미적지근 했다.
그래서 한마디 더했다.
“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