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승리
콰아아앙ㅡ!
마지막의 마지막. 이창현은 숨겨 둔 비장의 수를 꺼냈고, 그게 먹혀들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 심사위원도 채팅창도 숨죽이며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의 폭풍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이창현이 터뜨린 마나 봄버의 여파였다.
그리고 곧이어 걷힌 먼지 속에서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추어 헌터 선수, 핸디캡 있었다고는 하나 1세대 헌터랑 건곤일척의 승부 벌여……
ㄴ [와 마지막에 봤냐? 폭탄 터지고 나서 다 탈락해서 아무도 없는 거 개간지 ㅋㅋ]
ㄴ [창에 찔린 순간 진 줄 알았는데 그 찰나에 마나 봄버 ㅋㅋ 자폭공격 지렸다리]
ㄴ [미리 체력 많이 안 깎아 놨으면 저거로도 안 죽었을 거 같긴 함. 이근택 회장도 진짜 괴물 같더라. 지금 봐도 쓰러뜨린 게 기적]
ㄴ [아무튼 이창현 쟤, 이번 시즌 다크호스로 걸어봄. ㄹㅇ 물건이네]
ㄴ [씹인정]
ㄴ [22222222]
먼지가 걷히자 빠르게 댓글창으로 반응이 올라왔다.
심정적으로는 이민석도 완전히 같은 심정이었다.
결코 이창현이 이길 리 없다고 생각했거늘…… 그 생각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창현의 완전한 승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에서는 이창현이 승리했다.
삐이익 ㅡ!
[레드 팀 승리]
그리고 뒤늦게 나오는 판정소리가 온 경기장을 메웠다.
게임 자체는 유혜주 측이 전멸한 상황에서 진즉에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근택이 없었다면. 그는 일종의 덤이나 다름없었으니 승부는 이미 끝났을 수밖에.
아마 그럼에도 이근택을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몰아세운 건 이창현의 승부욕 때문일지도 몰랐다.
‘진심으로 이기려 하다니…….’
이민석은 자신도 헌터 지망생이었던 시절 저렇게 활활 타오르던 때가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이나 격차가 아득한 상대로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므로.
하지만 소년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방안을 궁리했으며, 실제로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다.
보통은 포기하고 마는 상황에서, 이근택과의 승부에 무승부까지 이끌어 낸 녀석이었다.
‘진짜 괴물은 저 작은 소년인지도 몰라.’
이민석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보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
“후…….”
꽤나 아까웠다. 마지막에 몸을 비틀어서 창만 피하고 폭탄을 던졌으면 오롯이 승리로 끝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긴 하지만.
아마 이제 3부 리그에서 시작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겐 충분한 어필이 되었겠지. 나 이창현이라는 선수가 이 정도다. 이렇게.
그건 그렇고 이근택도 양심이 있으니 솔직히 이건 내기에서 이긴 걸로 쳐주겠지?
PER에 들어가서 원하는 팀원을 모은다는 계획대로 가려면 이게 어그러지면 곤란한데……아무래도 나중에 말로 담판을 지어야 할 듯했다.
‘아무리 이근택이 유리했다고는 하나, 이근택과의 싸움에서 난 판정은 무승부긴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대기실에서 다른 녀석들이 나왔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좀 더 기뻐해도 좋지 않겠어?”
“이근택 회장님이랑은 무승분데 뭘 그리 기뻐해.”
“…… 너 못 들었구나?”
“뭘?”
윤한결은 다소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모름 됐어…….”
김빠지긴. 모름지기 말하다가 마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랬는데. 윤한결이 딱 그 모양이었다.
제각각 제 몫을 다해 준 김진승, 김도준 등도 나와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 줬는데, 아무래도 경기가 성공적인 여파인 듯했다.
그리고 금방 다 모여서 준비를 갖추고 홀로 다시 나가자, 언제 갈아입었는지 근사한 정장을 입은 이근택. 그리고 심사위원진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 슬슬 결승전 마무리라도 하려나.’
솔직히 긴장되진 않았다. 아무리 눈이 삐었어도 내게 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해에 각성하는 사람이 몇 명인 줄 아십니까? 나이 구분 없이 약 1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쯤은 꿈을 꾸게 되죠. ‘나도 헌터가 되고 싶다.’하고. 하지만 헌터는 힘든 직업입니다. 그들이 직접 탑을 공략하는 1세대 헌터가 아닌, 헌터스 리그에서 뛰는 스포츠선수라도 그렇죠.”
조아라의 말과 함께 중앙 홀에 구멍이 생기더니 거기에서 거대한 트로피가 솟아올랐다.
“헌터는 용감해야 합니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강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헌터는 심지어 ‘운’도 타고나야 합니다. 그걸 모두 갖춘 사람만이 진정한 헌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또 한 명이 자신이 그런 헌터임을 증명했습니다.”
또각. 또각.
조아라가 앞으로 나가 트로피 앞에 섰다.
그 직후.
“이창현 선수.”
조아라가 있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본능적으로 그래야 함을 알 수 있었으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은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최고의 헌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고양감. 과거 회귀 전 힘들었던 설움. 그런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 했으니까.
물론 내 마음이 어떤지 상관도 없이 무대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긴장해서 그런지, 조아라가 건네주는 트로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긴장 풀어요.”
조아라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회귀 전 수없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실수였기에, 볼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다잡은 트로피.
그 트로피를 양 손에 꽉 쥐고 들어올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
[Hunters, The next generation]우승 후 당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기다렸다는 듯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그런 경험은 꽤나 신선했다.
‘그냥 우승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이라 그런지 좀 색다르긴 하네…….’
단순히 우승 후 특전만 해도 종류가 꽤나 다양했으니까.
인터뷰는 물론, 모라스 공방에서 맞춤 무기를 만드는 것까지 빼곡히 일정이 잡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근택 회장을 만나기까지 해 보아야 했으므로, 정신이 없을 수밖에.
그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새삼 회귀 후 삶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우선 부모님.
처음에 약간 반대하고 회의적이었던 입장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바뀌어 있었다.
“아니, 얘가 참. 네가 그렇게 잘해 줘서 기쁜 건 말도 못해. 친척들이랑 모여서 [Hunters, The next generation]프로그램 보는데 다들 감탄만 연발했지 뭐야. 헌터스 리그 경기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야.”
되레 엄마에 비해 아빠는 별 말은 안하셨지만, 역시나 기분이 좋은 걸 숨기지는 못하셨다. 다소 걱정스러웠던 평소의 표정이 아니라, 꽤나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 계셨기에.
“너한테는 내색은 안하셔도 저 양반이 제일 난리였어. 네가 뭐 하나 할 때마다 저게 자기 아들이라고. 친구들한테도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나 원 참. 네 아빠 친구들은 헌터는 몰라도 니 이름은 알 거다.”
좋아하신 건 그리고 역시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문제였던 헌터의 돈 문제. 그 중 장비 문제도 모라스 공방에서 지원 받을 수 있었기에 걱정을 덜 수 있었으니까. 제시받았던 계약조건도 슬그머니 입을 열었더니 부모님은 흐뭇함을 감추실 수 없어 보였다.
그렇게 되니 새삼 회귀 전의 기억이 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땐 힘들었었지.’
하위 리그에 안 좋은 조건으로라도 아등바등 들어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던 시절.
그 때는 계약조건도 조건이고, 미래도 불투명해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과거와 비교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회귀 후, 확실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약간의 확신이 들었달까.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
결승전 우승 후.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팀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결승전이래 봤자, 아마추어끼리의 싸움에서 우승한 것일 뿐. 이제야 제대로 된 스타트라인에 섰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첫 팀으로 물색하고 있는 것이 이근택이 실권을 쥐고 있는 팀 PER이었고.
그랬기에 지금 이근택을 만나고 있었다.
일전에 받은 명함에 연락하여 만나게 된 곳은 일종의 헌터협회 사무실이었다.
‘생각보다 꽤나 으리으리하네.’
평범한 사무도구들과 책상, 하지만 꽤나 큰 규모의 사무실이었기에 찾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탓에 계속 연락을 이어 가며 찾는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게 창현군.”
여전히 허허 웃는 모습으로 맞아 주는 이근택.
저 웃음을 보니 새삼 저번 경기에서 보여 줬던 박력 넘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엔 저런 모습이다가도 그렇게 플레이를 하다니…….’
그 갭에 아무래도 쉽게 익숙해지진 못할 것 같았다.
“차라도 한 잔 마실 텐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좋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나?”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는 이근택.
능구렁이가 보통 능구렁이가 아니었다.
찾아온 건 나였기에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심산이었을까.
“우승한 건 저니까요. 팀 PER을 받으러 왔습니다.”
“PER을? 호오…… 그런데 자네의 승리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거인들을 이용하기도 했고…… 나랑의 승부도 사실상 무승부기도 하고…….”
하아…… 이 영감은 항상 웃는 표정을 하면서도 쉽게 져주는 법이 없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기를 보여 줬음에도 그렇게 꼬투리를 잡다니.
마음 같아선 아마추어 헌터한테 무승부까지 몰린 1세대 헌터가 되어 놓고 부끄럽지도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하수의 말이었다. 적어도 이런 밀고 당기기에는 정도가 중요한 법.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깔끔하게 단념하고 물러나는 액션을 취해 주는 게 더 좋으리라.
어차피 원래 제안, 내가 팀 PER에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근택으로는 이득인 제안이었으니 굽히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
물론, 운영에 대한 다양한 권리까지 가져간다는 조건이었긴 했지만…….
지금 보여준 내 폼으로 봐선 이근택 입장으로서는 쌍수 들고 환영해야 정상이니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이근택이 내 손목을 잡았다.
“허허…… 젊은이가 참 살벌하고만. 농담도 못하겠어. 이리 살벌하게 굴 것 있나? 이제 한 배를 탄 사이인데.”
역시나. 자리를 일어서자 아쉬운 쪽이 붙잡기 마련이었다.
“그 말은…….”
“자네가 PER을 맡아도 좋네. 이번 경기는 진심으로 감탄했어.”
그 말을 하는 이근택의 얼굴에는 약간 시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약간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