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최후의 한 방
타앙 ㅡ !
전장을 가르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표는 거인을 둘이나 상대하고 있는 이근택 회장. 하지만 그 이근택 회장의 사자후와 함께 터져 나온 무형의 기파로부터 막혀 버리고 말았다.
[저거 뭘로 막은 거임? 총이 사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한가?]
ㄴ [ 미니언 잡는 거 다 생략하고 킬도 못 먹어서 성장이 안되긴 했음 ㅋㅋ]
ㄴ [ 이근택 회장 스킬임. 파괴력 약한 원거리 공격은 무시하는 개사기스킬]
ㄴ [ 와 그럼 그냥 저 총잽이 그냥 밥아님?]
ㄴ [ 그럴 거 같긴 한데…… 거인 둘이나 상대하고 있으니까 또 모르지. 말하는 거 봐서 지원군도 오는 모양이고.]
한편, 심사위원석과 관중들의 반응 또한 더더욱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젠 이창현과 이근택뿐 아니라 중앙에 유혜주의 팀과 김진승 무리까지. 사실상 전부가 모인 한타가 벌어지기 직전이었으므로.
이창현은 충분히 성장이 끝난 김진승과 남은 팀원들을 중앙으로 불러왔고, 거기에 유혜주의 팀이 딸려왔다.
그리고 완벽한 난전상황으로 이끌었던 이창현의 신상 균열 저격샷. 거인이 더 깨어나자 완전히 전장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니…….”
조아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인을 깨우는 것도 예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이긴 했지만, 전황이 이렇게 개판이 되도록 유도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창현 선수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우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건 이 난전구도가 제일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건 이창현 선수 측이라는 겁니다.”
그래. 핵심은 그거였다. 보편적이지 않은 마나장비, 인비저블 클록을 가지고 있는 이창현 측이 이 난전에서 압도적 선공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 추측이지만, 유혜주 측이 여기에 휘말리게 된 것도 완전히 이창현 선수의 전략대로라고 봅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긴 해요. 4대7인 상황에서 유혜주 선수 측에선 추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더 성장치가 높아 도망칠 수 있는 인원, 하지만 상대 측에선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인원을 보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그후 거인이 가득한 전장에서 난전이 일어나도록 이끈다. 그 전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선공권, 인비저블 클록을 가진 이창현 측…… 이 전장 자체가 이창현 선수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럴 수가…….”
얼핏 보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했으나, 이민석의 생각으론 절대 막 헌터스 리그를 경험한 새내기나 다름없는 선수가 생각해낼 만한 전략이 아니었다.
맵에 대한 완벽한 이해. 상대방의 대한 이해. 그리고 이근택이라는 변수까지 고려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흡사 모든 변수를 고려해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생각났다.
이건 단순히 머리가 좋다 아니다의 그런 느낌이 아니라, 숙련된. 아니 노숙한 전략가의 전략이었다. 상대가 어찌할지 알고, 누구도 모르는 맵의 정보를 알고 있으며, 변수까지 합쳐 모두 하나로 버무려 냈으니까.
‘연륜…… 인가. 아니. 저 녀석은 첫 헌터스 리그 경기일 텐데 무슨 생각을…….’
잠시나마 생각에 잠길 무렵, 평온하게 생각에 잠길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귓가를 때리는 총성이 들리며 유혜주의 마나실드가 깨지는 모습이 비춰졌다.
‘어…… 이번엔 평소랑 조금 다른데?’
이민석은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
그리고 올라오는 채팅에서야 그 위화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이창현 방금 마나봄버 갈아서 총에 넣은 거임?]
ㄴ [ ㅇㅇ 내가 봄. 도랐네 진심 ㅋㅋ 난 저거 쏘다가 폭발해서 자폭 될 줄 알았는데]
ㄴ [ 저게 되네.]
ㄴ [ 저게 되네 222222222222]
ㄴ [ 야 근데 저렇게 해서 마나실드 다 뚫을 수 있으면 진심 개사기 아니냐?]
ㄴ [ 이창현도 어벙한 표정 짓는 거 보니까 처음인가 본데?]
ㄴ [ 이근택 회장한테도 저렇게 쐈으면 되는 거 아님?]
ㄴ [ 그 땐 사자후 때문에 총알자체가 튕겨 나갔어서 소용없었을??듯??]
ㄴ [ 몰??라?]
지금 전장은 그야말로 이창현의 손바닥 안이었다.
***
헌터스 리그는 개개인이 가진 기존의 무력, 초능력 그리고 마나장비 세팅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그 내의 성장. 그게 나머지 반이니까.’
아무리 일신상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상대를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임 내에서의 ‘성장치’ 그것 또한 가산되어 승부를 가렸기에 아무리 기초 스텟이 높다고 한들 승부는 끝까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성장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미니언이나 맵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잡는 것.
둘째는 상대방을 잡는 것.
‘그래서 상대방을 잡을수록 역전이 힘들어지지…….’
그리고 이창현이 이근택에게 총이 쉽사리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준비한 플랜 B도 이런 성장치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지금 시점에서 당장 이근택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미니언을 죽이고 성장한 유혜주 팀을 모두 쓰러뜨린다면 또 이야기가 다를 테니까.
그리고.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타앙 ㅡ !
마나봄버를 섞은 에테르 탄. 그게 유혜주의 마나실드를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
유혜주는 상상도 못했는지 눈이 커졌다.
물론 유혜주의 회복장판, 성역의 효과 때문인지 빠르게 아물어 갔지만, 상처가 워낙 컸기에 회복은 쉽지 않아 보였다.
‘첫 발에 한 명을 허용해 버린 시점에서 끝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마나실드를 준비했다 한들, 상대는 이창현뿐만이 아니었다.
인비저블 클록으로 눈속임 한 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달려드는 윤한결과 김도준.
근접 딜러였기에 순식간에 붙은 후 강한 무력을 보여 주며 성공적으로 교란하고 있었다.
‘이런 교착상황이야말로 저격수한테는 최고의 환경이지.’
이창현은 여전히 숨은 채로 딸깍 딸깍. 두 손가락을 놀리며 한 명씩 제거할 뿐.
그렇게 김진승 측과 윤한결 측, 이창현으로 나뉜 3방면의 합공으로 유혜주 팀은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유혜주는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노란 빛이 올라오는 장판 위에서 메이스를 휘두르며 한 명을 해치우는 괴력을 뽐냈지만, 거기까지였다.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걸 보니 어지간히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상대가 나잖아.
어리디 어린, 막 3부 리그에 진입하려고 준비하는 아카데미생이랑 나랑 비교하기는 민망할 정도니까.
너무 마음 고생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런 걸 다 스스로 이겨 내야 프로가 되는 거겠지만.
유혜주 팀의 상대가 거의 끝난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거인들의 싸움.
아니, 거인과 이근택의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한 손의 창과 다른 한 손에 방패. 그리고 등에 맨 두 자루의 투척용 창까지.
쿠쿠쿠쿵!
유혜주 팀을 막 전멸시킨 순간, 이근택도 거인 둘을 쓰러뜨린 모양이었다.
‘괴물이군…….’
아무래도 우리랑 전투할 땐 전력을 낸 게 아니었겠지. 그래봤자 지금 이근택이 유리하다는 건 아니었다.
거인과의 전투로 몸에 온갖 상처, 부러친 창. 긁힌 방패까지. 극렬한 소모전을 치렀음을 여러 흔적들이 증거하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건 그러면서도 웃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쾌하군. 얼마만의 제대로 된 전투인지……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창현군 이야기좀 들어볼까?”
갑자기 미묘하게 달라진 말투가 그가 좀 풀렸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유혜주 측을 전멸시키고 성장한 힘과, 미니언을 쓰러뜨리고 성장해 온 김진승을 비롯한 네 명이 더 있었다.
“저희가 여기서 이야기 할 게 있는 사이였나요?”
“후후……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이래 뵈도 이런 걸 준비했다는 점에 꽤나 놀랐다네. 전술…… 그래 작금의 한국 헌터스 리그는 무력 위주로 흘러가고 있지만 원래는 전술이야말로 탑 공략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지.”
이근택은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만지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였지만 이창현 측은 오히려 더 긴장했다. 그 웃음과 함께 같이 이근택이 마나를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단기결전에 힘을 쏟겠다는 건가……!’
이미 많이 체력을 소모한 이근택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리라.
“피해!”
느슨한 분위기가 숨막히는 전투의 분위기로 바뀌기까지는 찰나였다.
처음으로 노려진 건 단연 나.
‘목소리를 듣고 위치를 특정한 건가?!’
하지만 인비저블 클록을 입고 있다고, 대비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노련해. 정확히 살펴서 나를 노릴 가능성이 커.’
미리 예측했던 만큼, 뒤쪽에 미리 설치해 뒀던 에어앵커를 작동시켰다.
그로 인해 이근택이 달려가며 뻗은 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이근택 회장에게 남은 힘은 별로 없어! 힘으로 누를 수 있어!”
이어폰에 내 오더가 울려 퍼졌다.
‘후…… 방금 전 일격으로 보면 힘이 얼마간 더 남아 있을지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 쓸 수 있는 건 모두 다 썼다. 이근택을 여섯 명이서 쓰러뜨리던가, 아니면 전멸하던가.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내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퍼지자, 윤한결은 내 쪽으로 달려와 부촉하며 검을 날렸고, 김진승을 비롯한 4명, 김도준은 전위에서 전투에 나섰다.
걱정이 괜한 걱정이 아니었던 듯,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탕……! 타탕!
뒤쪽에서 견제를 위해 쐈지만. 역시 이근택의 노련한 방패에 쉽게 막히고 말았다.
마치 어디서 쏘는지, 어느 타이밍에 쏘는지 다 아는 듯한 노련함이었다.
‘이게 1세대 헌터…….’
회귀 전의 나라면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한 순간도 딴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마치 몸과 생각이 일체화가 되는 듯한 감각. 그 정도의 감각으로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다.
이근택은 괴물이었으니까. 그 괴물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그럴 수밖에.
김도준의 쾌검이 폭풍처럼 들이쳤으나, 이근택은 방패로 한순간 흘리곤 창을 깊게 찔러 김도준을 아웃시켰고, 김진승 패거리도 하나 둘 줄어들고 있었다.
“이럴 수가…….”
윤한결은 거기에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고.
이게 정상급 헌터랑 막 3부에 입문하려는 헌터의 차이다 애송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여기에 껴 있어서 차마 말하진 못했다.
지속적으로 견제했지만, 결국 남아 있는 건 윤한결과 나와 이근택뿐.
“놀랐느냐?”
“아뇨. 다 예상 안입니다.”
윤한결은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자신 없을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하는 법.
나는 그 말을 100% 지키고 있었다.
“그럼, 대처할 방법도 준비되어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근택은 나를 슥 훑어보더니 호쾌하게 웃었다.
어디까지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허세임을 알았을까? 어쩌면 알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기에 그저 할 뿐.
윤한결이 검을 날리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방패에 가로막히며 몸을 옆으로 슬금 빼더니 사선으로 그어지는 창의 궤도.
한 순간에 윤한결이 베어진다.
윤한결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뭐…… 기본적으로 실력 차이가 워낙 크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에 조금 분했다.
이근택은 이제 끝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부정할 수 없었다.
근접 딜러이면서도 탱커. 그리고 원거리 카운터. 그 속성을 지닌다고 보는 게 맞는 이근택 회장이었으니까.
아무리 체력이 적게 남았더라도 의미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겠지.
이근택이 여유롭게, 하지만 빠르게 쇄도했다.
그 속도감을 빌어, 같이 창이 내질러졌다.
마나실드를 급하게 펼쳤지만, 창의 궤도를 약간 엇나가는 데에 그쳤다.
그 창이 그대로 내게 꽂힌다.
급소는 피했지만 이대로는 끝이나 다름없었다.
“내 승리군 창현군.”
거기에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이랑 지금의 차이가 아직도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회귀 전이었다면 할 수 있었을 수많은 선택지들 대신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 주지는 않아.’
“글쎄요.”
창에 꿰뚫린 채로, 마지막 숨겨 둔 마나 봄버를, 이근택과 마주한 채로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