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이게 되네
이근택이 도끼를 방패로 막은 순간.
가장 위험한 그 순간, 쉽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이겼다ㅡ.’
실상은 전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최상위권 헌터를 상대해 보는 것이 워낙 오랜만이었기에 감이 무뎌졌나. 이 수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측했어야 했는데.
이근택은 광소하더니 무형의 마나 기파를 내뿜어 총격을 쳐냈다.
“좋다! 이제야 동등해졌구나. 이제 노부에게 제대로 덤벼 보아라!”
온몸이 저릿한 충격파의 기운이 온 몸에 퍼졌다.
주변에 은신하고 있는 김도준과 윤한결도 그걸 느꼈는지, 흠칫 몸을 떠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훨씬 유리한 점은 달라지지 않아.’
첫 회심의 한 발을 막은 건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항상 일이 계획한대로 흘러가리라고는 생각치 않는 법이기에.
플랜 B는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신상을 하나 더 깨우는 것.
그랬기에 다시 다른 신상의 균열을 맞추기 위해, 한 번 총이 막힌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연발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뜻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이근택이 자신을 향하지 않은 총격마저도 에어앵커를 이용해 기동하면서 방패로 다 막아 버린 것이었다.
‘……이런.’
“한 번은 되겠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달리 준비한 건 없는 겐가?”
총탄으로 또 다른 신상의 균열을 맞춰 더 많은 신상을 깨우려는 계획이 순식간에 저지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창현은 눈치챌 수 있었다.
이근택은 거대한 신상의 거인 하나와 대결하면서도 이창현의 총탄을 모조리 막아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 있었다. 결코 동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것이 단순히 으름장을 놓는 블러핑이라는 게 사실이었다.
이근택이 원하는 건 다시 자신에게 사격을 집중시켜 대결구도로 몰아가려는 것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는 해 주지 않아.’
물론 계속 다른 신상의 균열을 맞추려고 해도 뛰어난 기동력으로 철벽수비를 하는 이근택을 돌파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
이근택이 방패로 쳐내 떨어져나가는 탄에 다시 사격하는 이른바 도탄사격. 생존게임 당시에 드러났던 이창현의 전설의 저격수로서의 면모가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앙 ㅡ. 팅!
당연히 전혀 예상치 못한 이근택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저걸……?’
그 사이 이창현이 쳐낸 도탄은 완벽히 석상의 균열에 맞아들어갔고, 급기야 다른 석상이 깨어나기에 이르렀다.
다른 석상이 깨어나는 것을 보곤 이근택은 이내 표정을 찡그렸지만, 이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거인을 아예 쓰러뜨리려는 작정인가…….’
아무래도 결심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거인에게 방해받아서는 제대로 상대할 수 없을 게 뻔했으므로.
하지만, 이근택이 거인을 공격하려는 지금 순간이야말로 이창현에겐 한숨 돌릴 기회였다.
“한지수, 윤한결. 듣고 있지? 곧 진승이가 애들 데리고 올 거야.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
“응“
연결된 이어폰에 말할 타이밍이었다.
다음 스텝을 밟을 때가 왔다고.
***
한편 미니언을 쓰러뜨리며 무난하게 성장하고 있는 남은 4명. 남은 인원수가 적었기에 자원을 더 넉넉하게 배분받고, 성장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적당히 성장한 7명과 마주치면 인원수의 차이로 필패하겠지만.
‘후…… 이렇게 성장해서 어떻게 하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창현의 팀인 레드팀의 남은 4명은 충실하게 미니언을 처리하고 있었다.
신들의 전장 특성상 별로 강한 미니언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창현이 간 쪽으로 수상쩍게 계속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와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4명 중에 남은 1인인 김진승은 이창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을게 4명 중에 너밖에 없어 진승아.’
‘후……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받아들였던 임무였다. 인원손실 없이, 최대한 미니언과 물자를 파밍할 것. 그리고 유혜주의 블루팀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마주치더라도 도망갈 것.
‘심지어 도망칠 루트까지 정해 줄 줄이야…….’
김진승은 그렇게 이창현이 적어 준 루트를 나지막이 바라봤다.
마주치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걸까.
‘그리고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들어맞아버렸네...’
파밍을 하다 이제는 맵 중앙에 다다른 김진승과 일행은 당연하게도 유혜주의 블루팀과 마주쳤다.
유혜주는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번엔 지지 않아.”
유혜주는 아무래도 무언가 이창현을 잡을 특수한 전략이라도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이창현은 여기에 없는데…….’
그리고 김진승이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퇴각하자!”
이창현이 미리 일러 준 대로, 단지 정해진 루트로 퇴각할 뿐. 7명이 아니라 4명이서 물자를 나눠 가며 성장했기에 성장치가 더 높았다. 그렇기에 퇴각 자체는 어렵지 않았고…….
블루팀은 닭 쫓는 개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적당히 유인하면 좋댔지?’
물론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날 정도로는 도망가지 않으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모두 이창현이 바란 유인 술책이었다.
김진승은 이렇게 이창현이 일러준 대로 따르면서도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괜찮은 거냐 이창현...!’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단순한 유인술책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둔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왜 이근택 회장을 잡을 거라고 이야기했던 것일까.
어느덧 이창현과 약속한 장소에 다다르기 직전이었다.
타타탕!
들리는 몇발의 총성.
“이창현!”
누가 쐈는지는 뻔했다. 다만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주변에 널려 있던 거대한 신상에 균열이 나더니 신상의 돌이 후두둑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김진승 측 4명과 유혜주 측 모두 놀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신상이 부서지더니 안에 있던 거인이 나와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꺄아악!”
“이게 무슨……!”
예상할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근택 회장……?’
미리 앞서 이근택 회장이랑 가서 싸우겠다더니, 이근택 회장 또한 거대한 거인과 싸우고 있었다.
가장 어이없는 건 총성이 들렸음에도 이창현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근처에 있는 건 맞았던 건지, 이어폰으로 이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난전 구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어?”
“오래는 못해!”
김진승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순간, 이창현이 이 판을 모두 짰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한편으론 경악스러우면서도 아군이기에 이만큼 든든할 수가 없다는 생각 또한 동시에 들었다.
“3분. 3분이면 족해.”
“3분 동안 뭘 하려고.”
“보면 알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창현의 말이 끊어졌다.
후…… 아무튼 간에 이렇게 지 멋대로인 녀석이 없었다. 뭐, 나와는 서로 인정하는 관계이긴 하지만. 다음에는 확실히 말해야 할 듯싶었다.
우리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라고.
***
둘 이상의 거인을 깨워 이근택이 우리끼리의 전투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한다. 이게 첫 번째. 그리고 김진승이 이끌고 온 유혜주 무리도 후방의 거인을 깨워 난전을 유도한다. 이게 두 번째.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난전 구도에서 유혜주 무리부터 암살한다. 이게 세 번째.’
어차피 지금 가진 성장치로는 거인을 두 명이나 상대하고 있는 이근택이더라도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해서 처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유혜주의 블루팀을 성장할 양분으로 삼는다.’
미니언을 잡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를 잡는 것으로도 강해질 수 있는 것. 그게 헌터스 리그였으니까.
막 끌고 온 김진승을 비롯한 레드팀 네 명과 유혜주를 비롯한 블루팀 일곱 명. 그리고 방금 막 깨어나 무차별 공격중인 거인은 삼파전 구도로 완전히 난전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도준아. 한결아. 지금 노출이 안됐을 때가 제일 큰 기회다. 알고 있지?”
인비저블 클록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한 번. 그 한 번의 효과가 크지만, 그 이후부터는 상대도 경계하기에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나를 비롯해 먼저 선발대로 온 녀석들은 미니언을 죽이며 성장하지 못했기에, 한 번에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하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열세에 몰리는 건 우리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
“그럼, 신호주면 동시에 공격하자.”
저격은 모를 때 첫 한 발이 가장 위협적인 법. 또, 저격이 시작되었을 때 정신없게 만들어 다음 저격도 성공시키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대로 풀린다면 저격만으로 2명 이상을 해치울 수 있으니, 순식간에 유리해질 수 있으리라.
“3, 2, 1…….”
숫자를 다 센 순간 인비저블 클록에 숨어 있던 김도준과 윤한결이 뛰쳐나와 거인과 격전 중이던 유혜주 무리를 덮쳤다.
그리고 유혜주 무리가 습격을 눈치챌 타이밍이자, 김도준과 윤한결이 닿을 무렵.
타앙!
전장을 가르는 총성이 유혜주의 팀원 중 한 명을 날려 버렸다. 시원한 한방이었다.
“크읏…….”
유혜주는 갑작스러운 기습에 표정을 찡그렸으나, 이내 침착하더니 작전을 변경해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거인과 격돌은 최대한 회피하는 쪽으로. 난전을 각오하고 레드팀 쪽으로 붙어!”
그 말과 동시에 유혜주가 자랑하는 성역 스킬이 발동되며 땅바닥에서 노란 빛이 올라왔다.
‘성역…… 회복 필드인가.’
유혜주는 아예 자리를 잡고 죽을 때까지 싸울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게 둘 순 없었다.
난전만큼 총을 맞추기 쉬운 전장이 없으니까. 다시 한번.
타앙!
목표는 유혜주. 하지만…….
팅!
유혜주의 마나장비, 마나실드가 순식간에 발동되더니 탄을 막아 냈다.
유혜주는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
“저격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도 안하고 나왔을 것 같아?”
음…… 확실히 그렇다. 내가 너무 상대를 바보 취급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방법이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닐 것 같았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당장 생각나는 방법만 해도 대여섯 가지는 되었으나. 이번 전장에서는 역시…….
‘마나 봄버.’
에테르에 마나 봄버를 쪼갠 후 약간만 섞어 쏜다면 어떨까. 했던 저번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대충 예상했기에 챙겨온 마나 봄버를 손으로 쪼갠 후, 인공 에테르에 넣은 후 장전했다.
조금은 묵직한 느낌이 드는데…… 별일은 없겠지.
그리고…….
타아아앙!
다시 한번 유혜주를 목표로 쐈을 때 그 결과는 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마치 바주카포를 쏜 듯한 화력. 그 화력에 완전히 마나실드를 뚫은 채로 한 번에 유혜주를 아웃시켰다.
이어폰 너머로 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현이 너…… 대체 뭘 쏜 거야?”
“네가 쏜 거야?”
“와 개쩌네 혹시 저번에 내가 말한 대로 마나 봄버를 통째로 쏴 버린 거야?”
이어폰에서 들리는 윤한결, 김진승, 김도준의 목소리.
그 말을 듣고서야 다시금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