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34화 (34/270)

034. 노림수

‘솔직히 말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하긴 한데…….’

돌파구가 있다면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전장이 다름 아닌 ‘신들의 전장’이었으니까.

신들의 전장.

거대한 거인족들의 문명에서 전투를 벌이다 정체불명의 원인으로 갑작스레 모두 돌이 되어 버린 탑의 던전.

‘재미있는 점은 돌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저 거인들이 계속 살아 있었다는 점이겠지.’

실제로 먼 과거 탑 공략 당시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공략 당시에 실제로 모든 돌이 깨지고 신상인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이창현으로서는 그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헌터스 리그의 결승전 시리즈는 진짜 ‘탑‘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맵의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 시점이라면 결승전 무대로 저 맵이 나온 적은 없었지만…….’

이창현으로서는 회귀 전적이 있었으므로.

그렇기에 기억할 수 있는 점이 있었다.

바로, 저 거인들을 깨울 수 있는 방법. ‘해방’ 이었다.

***

“신들의 전장에 있는 신상들을 깨운다고?”

김도준과 윤한결 입장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신상? 그냥 맵의 한 오브젝트 요소가 아니었던 건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혹시…… 뭔가 보이는 거야? 생존 게임 때처럼?”

윤한결은 역시나 싹수가 있는 녀석이어서 그랬을까. 할 얘기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어차피 회귀했다고 밝힐 것도 아니었으니, 녀석의 장단에 따라주는 게 맞으리라.

“느껴져…….”

장난스럽게 진지한 얼굴로 느껴진다고 말하니 덩달아 김도준이랑 윤한결도 표정이 진지해졌다. 뭐, 실은 그냥 경력직 헌터기에 아는 거나 다름없지만.

“뭐가?”

“신상들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불확실한 거 아니야? 감으로 그런 거라면…….”

“감이겠어? 아마 스킬일 거야. 그렇지 창현아?”

“어…… 아마도…….”

윤한결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나 대신 소설을 써 주고 있으니 아주 편했다.

“그래서 방법이 뭔데?”

“균열. 신상에 있는 균열을 정확히 깨뜨려 주면 알에서 나오듯 신상이 무너지고 안에 있는 거인이 깨어날 거야.”

“오…….”

“그래서? 안에서 나오는 거인은 헌터들을 돕는 거야?”

윤한결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역시 감이 좋은 녀석이다. 회귀 전에 괜히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게 아닌 것 같다.

“아니, 안에서 나오던 거인들은 돌로 굳은 채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낸 나머지. 이성을 잃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지 않을까?”

“……확실해? 너무 불확실한데…… 게다가 이근택회장은 중립 몬스터 진형이잖아. 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깨우더라도 이근택 회장을 공격하지 않는 거 아니야?”

윤한결은 회의적으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깨울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그 결과에 대해 미지수인 것이 너무 많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뭐,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내 예상이 맞다면…….”

신상에 들어 있는 거인은 원래 그 게임에 준비되지 않은 것. 중립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창현아 게다가…… 네 말이 맞다 해도 문제야. 우리가 깨우더라도 우리가 당하면 끝 아니야?”

“그래서 마나 장비가 있지.”

이창현은 김도준이랑 같이 정비소에 들러 미리 챙겨 뒀던 마나장비를 꺼냈다.

“아…… 맞다!”

***

쿠쿠쿠쿠쿵……

전장에 널려 있던 전투하는 형상의 신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근택이 뒤에 있는 신상을 바라보자, 오래되어 균열이 곳곳에 나 있는 신상에 정확히 균열에 맞춰 총알이 박혀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쏜 게 아니다…… 나를 노리고 쏜 건 블러핑. 균열을 노리고 쏜 것일줄이야…….’

이근택으로서는 설마설마 하 고있었는데, 역시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다. 이근택이 PER의 구단주라는 것까지 꿰뚫어봤던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신상을 깨울 수 있다는 것조차 계산에 넣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깨울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도 이 맵에 들어온 후에나 알았을 텐데…… 녀석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와서 신상을 깨웠다. 대체 어떻게…….’

이근택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가기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뛰어난 관찰력을 갖게 해 주는 스킬의 존재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이근택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가는 것과는 별개로 바깥의 상황은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돌을 깨고 깨어난 거대한 거인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깨워진 신상은, 거대한 도끼를 든 신상이었기에.

이근택이 다음 순간 보게 된 것은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거대한 도끼였다.

쿠쿠쿠쿵……!

인간의 수십 배의 크기는 되어 보일 것 같은 도끼였다.

‘막을 순 있다…….’

이근택으로서도 꽤나 버겁긴 했지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스테이터스가 떨어지는 디버프가 있다지만, 그는 이미 수라장을 지나온 1세대 헌터였으므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총을 쏘며 검을 나눈 이창현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하게 숨은 거라고는 볼 수 없다…….’

아무리 거인이 움직여 세세한 기척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분명, 한 번에 맞춘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졌으므로.

그 순간 이근택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인비저블 클록……!’

특질 계열 마나장비 중 일정시간 동안 카멜레온처럼 몸을 숨길 수 있는 망토였다. 범용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충분히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기에. 잘 쓰이지 않는 장비.

하지만, 지금같이 거대한 신상이 움직이고, 세세하게 집중하기 어려운 순간에는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적중했기 때문일까.

마치 이근택의 생각이 맞았다고 증명하는 듯, 지근거리에서 총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절묘하게도 이근택이 방패로 거인의 도끼를 막을 시점. 즉,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시점이었다.

‘잡았다……!’

필시 이창현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전혀 그 다음 장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오히려 이근택 회장은 총알이 날아오는 순간 크게 광소했다.

그 직후, 알 수 없는 강한 충격파가 이근택 회장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며, 총알이 튕겨져 나갔다.

“노부를 이렇게 몰아붙이다니…… 오랜만일 뿐더러 놀랍기까지 하군.”

이창현으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 팀원이 전부 와도 이기기 힘든 상황. 그리고 맵은 상대가 더 잘 아는 맵.

하지만 이창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 많은 수로 싸워야 한다는 틀을 깼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루트로, 예상치 못한 시간에 와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했다.

비록 스킬의 힘이겠지만, 신상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을 꿰뚫었으며.

이근택을 공격하는 듯 속여 신상을 깨워 이근택의 후방을 노렸으며.

무차별 공격을 하는 신상에게서 ‘인비저블 클록‘으로 자신들만 안전을 확보했다.

‘그래…… 네녀석의 승리다.’

훌륭해. 아주 훌륭하다. 상위 리그로 올라가더라도 전략과 전술보다는 초능력과 스텟으로만 밀어붙이는 헌터스 리그의 세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상대하는 이근택으로서도 아주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부를 이기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녀석이 합격점의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하더라도 아직 이근택은 지지 않았다.

되레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좋다! 이제야 동등해졌구나. 이제 노부에게 제대로 덤벼 보아라!”

***

한편, 석상을 깨우기 전. 한참 경기를 중계 중인 심사위원석에서의 반응은 그쪽대로 뜨거웠다.

“이창현 선수……! 별다른 전략이랄 게 없이 이근택회장에게 달려듭니다. 저격을 시도해 봤지만, 역시 통하지 않는 모습이구요…….”

“여기서 이창현 선수가 이길 수 있는 어떤 변수는 없을까요?”

“음…… 아무리 봐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네요. 여기에서 판도를 뒤집을 만한 마나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다면 맵의 변수 정도일 텐데…….”

이민석은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요, 맵이 ‘신들의 전장’인 만큼 석상을 ‘해방‘시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방법도 잘 알려지지 않았거니와, 해방시킨다고 해도 무차별적인 공격에서 살아남는 건 이창현 측이 더 불리할 텐데요…….”

“확실히 짚어 주신 그대롭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민석은 냉정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물론 내가 보기엔 저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어 보이지만…….’

저 녀석이 아무런 생각 없이 저렇게 들어갈 리가 없었다. 지금 보기에는 방패와 이근택 회장의 회피기동에 총알이 모두 빗나가고 막히고 있었지만…….

[와 역시 1세대 헌터는 다르네…… 탈락게임에서 한방에 한명씩 쓰러뜨리던 그 총이 맞냐 ㄷㄷ]

ㄴ [그땐 근데 먼지랑 건물 무너지는 소리 때문에 총에 반응할 수가 없긴 했었음 ㅋㅋ]

ㄴ [ 그거 고려해도 차이 넘사벽인 거 실화냐?]

ㄴ [ 이대로 계속 총질만 해도 피해 1도 안 입을듯 ㅋㅋ]

ㄴ [ 거의 탱크에 대고 총 쏘는 수준인 거 ㅇㅈ합니다]

인터넷 상의 반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척 봐도 이대로는 답이 없는 상황.

그때였다. 총을 쏘는 이창현. 그리고 방어하는 이근택.

그 뒤로 거대한 신상의 돌이 떨어져 나가더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 방금 뭐임? 저거 움직이는 거 나만 봄?]

ㄴ [ 돌 깨지는 거 같은데? 뭐냐 저거ㅋㅋ 나 저러는 거 처음 봄]

ㄴ [ 애초에 이 맵이 경기에 나오는 거 자체가 극히 드물지 않나. 그래서 특수 기믹 같은 거 보는 것도 처음일 수도 있음]

ㄴ [ 야야 저거 이근택 회장 뒷통수 노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아아…… 이건 ‘이이제이’의 수법이라는 거다.]

파멸적인 반응과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이근택이 에테르 총탄을 막거나 피하는 동안 이창현이 정확히 신상의 균열들을 맞춘 것이었다.

‘이럴 수가…….’

이민석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다.

예상하기만 못했을까?

그것을 넘어 분명 “충격“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 충격을 받아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걸 조아라가 인지했는지, 마이크를 뺏어 들고 말을 이었다.

“아아……! 이창현 선수! 총을 막 쏘는가 싶었더니 신상을 되살리는 기믹을 간파하고 있었나봅니다. 이근택 회장이 피해 간 총탄이 신상에 맞은 게 오히려 독이 됐어요! 경기의 행방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죠?”

조금은 진정한 이민석에게 조아라가 다시 마이크를 넘겼다.

‘그래…… 놀라고 있을 틈이 아니지.’

이민석은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신들의 전장’에 정식으로 존재하는 기믹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특정 균열들을 파괴해서 신상들을 ‘해방’시킬 수 있고, ‘해방’시킨 신상들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죠.”

“무차별적……! 저렇게 강한 신상들이 저리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면 오히려 이창현 선수측이 불리할 수도 있겠는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의하는 말을 하며 화면을 다시 쳐다본 찰나, 이민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인비저블 클록……!’

이창현 일행은 특수하게 잘 쓰이지 않는 마나장비를 전략적으로 챙겨 와서는 ‘은신’하고 있었다.

그리곤, 이근택이 신상이 내지른 도끼를 막는 순간

탕!

시원하게 전장을 가르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ㅋㅋ 전략 그냥 무쳐버렸다. 이걸 이렇게 삼파전을 만든다고?]

ㄴ [ 그냥 비열한 거 아님?]

ㄴ [ 님 비열한 거랑 전략전술 차이를 모르겠음? 모르면 걍 아닥 ㄱ]

ㄴ [ 전투양상 걍 어지럽네 ㅋㅋ]

ㄴ [ 삼파전 꿀잼구도 ㅇㅈ]

그리고 그런 흥미로운 구도가 만들어진 만큼, 채팅창 또한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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