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결승 시작
째깍.째깍.째깍.
띠 ㅡ
골든타임인 8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그 방송 소리는 시작되었다.
그 방송은 바로 저번과 같이 생중계로 나오는 [Hunters, The next generation]였다.
그 사이 열린 댓글 창에선 봇물 같은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근택 협회장 참가 뭔데 ㅋㅋ 공식전은 커녕 친선전도 안 나오는 사람 아니었음?]
ㄴ [늙은이가 애들 노는 판에서 뭐하는 건데~]
ㄴ [할아브 찍으려고 하는 중 ㅋㅋ 무쌍찍는 할아버지의 헌터스리그 V로그]
ㄴ [이른바 ‘젊은이 참교육’이랄까?]
ㄴ [1세대 헌터라더니 어떤 능력이나 무기 쓸지 좀 궁금함.]
[충격! 이근택 협회장 방송에서 헌터능력 드러내는 것은 사상최초로 알려져……]
ㄴ [ㄹㅇ임? 좀 기대되긴 함. 루키들 보는 것보단 이쪽이?]
ㄴ [화제성도 저 할아범이 1빠긴 하지.]
주로 이근택 회장의 행보에 대한 기대가 대다수였다.
아무래도 중립몬스터 진영으로 참가하는 만큼, 참가자와 이근택 회장의 충돌이야말로 시청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리라.
그런 반응 속에서 어느새 경기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중앙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신들의 전장 맵 가상 미니어쳐. 그 뒤로 솟아오르는 3명의 심사위원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모습의 웅장함에 댓글 및 방청석은 놀라는 반응으로 술렁였다.
한편, 신들의 전장 맵 가상 미니어쳐를 지긋이 관찰하듯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회귀 전이랑 다행히 맵에 차이는 없어…… 그렇다면…….’
이창현으로서는 미리 짜온 전략에 청신호가 들어온 셈이었다.
준비해 온 전략에서는 맵의 변수에 의존하는 면이 있었기에, 이창현으로서는 그 또한 아주 중요한 정보였으니까.
물론 모두가 이창현처럼 맵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긴장했는지,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지원자.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하품을 쩍쩍 내쉬고 있는 지원자. 다양한 모습으로 강단에 서 있었으니까.
그 지원자들 사이에서 이민석의 한마디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헌터스 리그. 그 결승전을 개막합니다. 맵은 ‘신들의 전장‘. 룰은 7대7 정규 헌터스 리그 룰과 동일합니다. 한 팀이 모두 전멸할 때까지. 그럼, 시작합니다!”
***
헌터스 리그.
과거 갑작스레 ‘탑’이라 불리는 던전들이 속속 생겨나며, 국가 간의 헌터들이 분쟁을 벌일 당시에 벌어지던 일종의 ‘작은 전쟁’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새롭게 생겨난 ‘탑’은 몬스터로 가득한 위험지역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유물’들의 보고였기에. 끊이지 않는 분쟁은 필연적이었다.
탑의 유물은 국가들끼리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암묵적인 룰이 팽배하는 가운데, 이윽고는 서로 쟁탈을 벌이기까지에 이르렀다.
몬스터가 가득한 전장. 그 속에서 상대를 무찌르고 전리품을 쟁취한다. 그것이 바로 헌터스 리그의 본질적인 기원인 것이다.
‘그래서 헌터스 리그의 실제 맵들은 대부분 실제 ‘탑’의 던전을 그대로 따오기도 했고…….’
그만큼 1세대 헌터는 전장에 대해 신참 헌터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창현이 경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신들의 전장’을 이미 알만큼 알고 있을 이근택이 어떻게 행동할지 명확히 가닥을 잡기가 어렵다는 점. 그로 인해 전술을 짜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 전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진짜 그 작전으로 가는 거야?”
“응.”
그래서 이창현은 7명이라면 적다는 적을 인원수를 가지고도 흩어지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 윤한결. 김도준.”
이창현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전장에 몸을 내던졌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까.’
***
“네. 그럼 중계상황 보여드립니다.”
경기 바깥에선 한참, 경기에 대한 중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거대한 홀로그램 시뮬레이션에 비춰지는 전장.
그 전장의 한 측면에서는 7명이서 열심히 몬스터를 잡는 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B팀은 유혜주를 필두로 정직하게 몬스터 레이드를 벌이고 있네요. 아무래도 몬스터 토벌 후 성장하여 마치 보스 레이드를 하듯이 이근택 헌터 협회장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려는 모양이죠?”
“네. 그게 제일 합리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근택 헌터 협회장에게 전 스테이터스가 2에 가깝게 떨어지는 제약이 있다고 한들, 참가자들과의 차이가 좀 크니까요.”
그렇게 해설을 이어 나가던 도중, 이번엔 반대편의 화면이 비춰졌다.
다름 아닌 이창현의 A팀.
“어…… 그런데 A팀은 좀 다르네요? 왜 몬스터 레이드를 하는 인원이 넷밖에 남아 있지 않죠?”
“아……! 나머지 세 명. 이창현, 윤한결, 김도준 지원자는 정석 루트를 완전히 이탈했습니다.”
이민석은 공적인 중계 자리였기에 조심스럽게 발언의 수위를 조절했다. 동시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보다 훨씬 센 적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도 상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맵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이근택 회장인데도 정석이 아닌 비정석 루트를 택한다니.
‘게임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이 가지 않는군…….’
비정석 루트는 몬스터를 최대한 피해 가는 루트. 그렇기에 성장할 수도 없고, 그저 이동에만 강점이 있는 샛길 같은 루트였다.
‘게다가 저 이동 방향은…… 이근택 협회장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역시나 그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성장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이근택 회장한테, 몬스터도 전혀 잡지 않고 바로 향하다니.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민석은 이 게임을 일반인에게 중계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까.
“정석루트를 이탈하면 지금 이창현 지원자가 노리고 있는 건 뭘까요?”
비어있는 중계진의 보이스를 의식한 조아라가 이민석에게 질문해 왔다.
‘이런…….’
이민석으로서도 정확히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행보였기에 답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게임의 목표는 어차피 상대방의 전멸 아니면, 중립 몬스터 진영의 이근택을 쓰러뜨리는 것이었으므로. 말할 만한 답은 있었다.
문제는 그게 진짜 의도냐는 것이겠지만.
“역시 비정석 루트로 이동하고 있는 방향을 보면, 이근택 협회장님을 노리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성장치로는, 그것도 셋으로는 이근택 협회장님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지 않나요?”
“네…… 그 말씀이 맞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이민석으로서는 지긋하게 화면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이냐 이창현…….’
***
‘신들의 전장’은 헌터스 리그에 현존하는 맵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맵이다. 그리고 그 특이점은, 바로 이 전장에 가득 존재하는 ‘전투하는 신들의 형상을 그대로 본뜬 거대한 신상’에 있다.
신상에 숨겨진 특수한 퍼즐을 풀 수 있다면, 그 신상을 독립적인 몬스터로 살려 낼 수 있는 일종의 기믹이 존재했으니까.
‘물론 지금껏 헌터스 리그 경기를 봐선 그걸 발견한 녀석은 없는 것 같지만…….’
이근택으로서는 어찌되었든 제거해도 좋을 변수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정보는 과거 1세대 헌터로서 직접 ‘탑’의 던전에 들어가서 공략했던 이근택 정도나 알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의외의 정보가 귀에 들어왔다.
‘……?’
이근택은 중립몬스터 존, 그니까 맵의 정 중앙 즈음에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벌써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반적인 공략이라면 천천히 경험치를 쌓아 가며 자신을 대적할 성장치를 마련해 와야 했을 터. 그런데 그런 전술을 썼다기엔 타이밍이 지나치게 빨랐다.
물론 초반에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했다. 초반의 경우, 아직 헌터들의 성장이 덜 되었기에 그에 기반해서 중립 몬스터 진영 또한 어느 정도 약화되어 있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적은 인원으로 이근택을 쓰러뜨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호오…….’
이윽고 드러난 기척의 정체. 바로 이창현이었다.
예상치 못한 진행. 이근택으로서는 흥미로운 기색을 드러냈다.
‘무슨 꿍꿍이냐…….’
그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한편으론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론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지난 경기에 지나치게 활약한 이창현이 만용을 부린 것일 수도 있었으므로.
그리고 실제로 그랬던 걸까?
이창현은 겁도 없이 동료들과 이근택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면 접근하고 있는 걸 내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저번 게임에서 이창현은 저격으로 많이 재미를 봤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타앙!
어느 순간 접근하는 기척이 사라졌다 싶더니, 전장을 때리는 총성이 들려왔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맞아 줄 이근택이 아니었지만.
이근택은 들고 있던 원형 쇠 방패로 쉽사리 총을 막아 냈다.
초인적인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을 가진 최상위권 헌터로서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거기서 그만뒀으면, 굳이 이렇게 처음부터 찾아오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으리라.
탕 타탕! 탕!
마치 상대가 맞든 안 맞든 화력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듯한 사격이었다.
‘어림도 없다.’
이근택은 생각보다 너무나 단순했던 이창현의 전략에 혀를 찼다.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보여 줬던 전술들은 뭐였냐. 묻고 싶었을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격돌이었으니까.
실제로 이근택은 총을 하나도 빠짐없이 피하고, 막으면서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어떤 행동을 취하나 더 보기 위해 여유를 부리고 있었을 뿐.
“이창현군. 준비한 건 이게 끝인가?”
그 말에 대답은 없었다. 마치 초조한 감정을 대변하듯 더 빠른 속사로 총이 연사될 뿐. 분명 총은 헌터계에서 쓸 수만 있다면 아주 강력하고 좋은 무기였다.
‘하지만…… 아무 전략도 없이 막 들이댄다고 먹힐 정도로 강력한 무기는 아니다.’
이근택은 풋내기 지원자들과 달랐다. 얼마든지 피할 방법도, 막아 낼 방법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총을 쏜다는 행위자체가 이근택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근택은 근접 딜러 겸 탱커. 막아 내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물론 이창현만 습격해 온 것이 아닌 만큼 패턴이 하나는 아니었다.
김도준과 윤한결의 콤비. 그 공격이 뒤이어졌다.
이창현의 총을 막아 내는 동안, 김도준은 뒤돌아갔고, 윤한결의 이기어검 또한 이근택의 사각을 노렸다.
하지만…….
“느려……!”
이근택이 방패를 든 손의 반대편, 들고 있던 창으로 둘을 쳐내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김도준이 연이은 쾌검으로 이근택을 몰아붙이려 했지만…… 이근택의 창술은 김도준에게 전혀 간격을 주지 않을 뿐더러 완전히 김도준을 압도하고 있었다.
“노부는 개인적으로 이창현군에게 많은 기대를 했네만…… 이걸로 끝이라면 정말 실망이군. 무리수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재밌는 무언가를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이근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도준을 내리치려고 했지만, 자신이 내쳐낸 김도준도, 윤한결도, 이창현도 보이지 않았다.
‘……?’
다만, 뒤에서 무언가 거대한 신상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쿠쿠쿠쿠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