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폭풍전야
일곱 명. 많다면 많고, 적다고 하면 또 적다고 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그리고 이곳엔 그 인원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주장을 맡는 거에 별다른 의견은 없는 거지?”
그들 앞에 서서 이창현은 일회용이긴 하나, 착실히 자신의 팀을 꾸리고 있었고.
꽤나 의외였던 점은 윤한결도 같은 팀이었기에 한 번쯤 주장으로 나서려나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윤한결은 주장을 맡겠다는 이창현의 말에 힘을 실어 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부담스럽게 초롱초롱한 눈으로나 쳐다보고 있고 말이야…….’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자신을 패배시킨 상대인 나를 저런 눈길로 쳐다보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럼 우선 전략부터 이야기할게.”
“응!”
팀원은 김도준과 윤한결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전략도 무게를 그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윤한결과 나. 이렇게 두 사람이 가장 강하다는 거 인정하지? 그러니까 우리 둘을 메인으로 한 전략을 짤게.”
이창현은 앞에 있는 메인 화이트보드에 검은 마카로 죽죽 선을 그었다. 한쪽은 상대 진영, 그리고 한 쪽은 우리 진영. 중간에는 중립몬스터 진형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우선, 상대도 그렇겠지만, 이 ‘신들의 전장‘은 성장 후 한타하는 것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니, 그쪽 전략을 베이스로 삼을 거야. 하지만 이번 전장에는 이근택 회장님이라는 변수도 있으니, 나를 비롯해 몇 명이 변칙 전략을 쓴다.”
이어진 이창현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첫 출발지점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역시나 성장을 우선적으로 하는 전략을 펼친다. 그에 따라 팀원은 몬스터를 무찌르고, 아이템을 파밍하며 천천히 중립 몬스터 지역까지 진군한다.
하지만, 이창현과 윤한결, 김도준은 거기에 끼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중립몬스터 진형으로 돌격해 이근택 회장을 먼저 정찰하는 데 목표를 둔다.
“이근택 회장을?”
윤한결이 반문했다. 합당한 의문이기도 했다.
“응. 난 이근택 회장을 잡을 생각이니까.”
그 말을 하자, 꽤나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급격히 조용해졌다. 그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누군가에게 들려온 한 목소리.
“상대는 이근택 회장인데. 미친 거 아니야? 고작 너희 셋으로 이근택 회장님을 뭐 어쩌겠다고. 아무리 회장님의 힘에 제한을 걸었다고 한들……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 이번에 거의 초면으로 막 팀이 된 원거리 딜러, 박지원이었다. 역시나 아직 짜이지도 얼마 안 되고,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기에 나온 반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린 말이라는 건 아니지.’
어느 정도 합당한 의문인 만큼 대답해 줘야 할 의무는 있었다.
“네가 저번 탈락미션에서도 압도적으로 이겼고, 생존미션에서도 활약하고. 그랬던 건 알아. 근데 너. 고작 그걸로 네가 한국 헌터계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생각 하지 마.”
박지원의 말투에는 특유의 빈정거림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탈락미션에서 꽤나 미움을 샀던 것일까. 이래서 어린 애들은 피곤하다니까……
의문을 풀어 줄 필요는 있었지만, 괜한 열등감의 표출 같은 걸 받아 줄 만큼, 마음이 넓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반박하려던 찰나였다.
“이근택 회장님이 세다는 것쯤이야 다 알 텐데 창현이라고 생각 못 했을까? 탈락미션 비롯해서 다 캐리한 앤데?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이창현이 채 해명하기도 전에 입을 연 것은 윤한결이었다.
‘얘는 또 왜…….’
오디션 프로그램때문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나랑 쌈박질만 한 녀석이 나를 두둔하고 나서니 기분이 이상했다.
약간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뭐. 지가 내 편 들겠다는데. 그리고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고.
여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물론 이근택 회장님을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맞서 싸우겠다는 건 아니지. “
이창현의 눈이 번뜩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역사를 새로 쓸 계획의 시작이었다.
***
헌터 연합훈련소의 방송 전용룸.
그곳에서는 분주하게 결승전 시작에 앞선 부분에 나올 분량이 촬영되고 있었다.
오가는 내용은 주로 결승전 예측과 처음 헌터스 리그를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략한 설명.
“네. 그럼 헌터스 리그를 잘 모르는 일반인분들에게 한 마디 설명 부탁드립니다.”
“헌터스 리그는 주로 각각 7대 7게임으로, 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몬스터를 퇴치하고 레벨을 올리며 아이템을 파밍하는 ‘파밍 단계’, 그리고 중립몬스터나 거점을 점령하는 ‘미션 수행’, 그리고 7대 7의 인원이 싸움에 돌입하는 ‘한타 단계’로 크게 나눠집니다.”
“호오……그렇다면 파밍해서 아이템을 갖추고, 미션을 수행하면서 싸운다고 보면 간단하겠군요?”
“얼추 맞습니다만…… 재미있는 점은, 선수들이 다양한 마나 장비와 초능력으로 한타 단계에서 여러 변수가 나오는 점. 그리고 맵의 특징에 따라 미션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양상으로 게임이 전개된다는 점이죠.”
이상혁의 설명에 맞춰 세 명의 심사위원진 앞에 홀로그램으로 맵이 드러났다.
울창한 삼림. 그리고 그 중간을 가르는 거대한 폭포. 그리고 마치 지금도 싸우고 있는 듯 생생하게 조각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신상들. 그야말로 신들의 전장이라는 말이 딱 알맞는 맵이었다.
“그리고 이번 결승전에는 일종의 조커라고 할 수 있는 이근택 현 헌터협회 협회장님께서도 참가하십니다.”
“그럼…… 참가자들은 어떨지 알겠는데, 이근택 협회장님은 어떤 역할이라고 볼 수 있죠?”
“재미있게도 이번에 선택하신 역할은 ‘중립 몬스터’, 그러니까, 일종의 몬스터와도 같은 역할을 맡은 셈입니다.”
“신인들이 직접 이근택 협회장님과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인들에 비해 이근택 협회장님은 프로 위의 프로, 1세대 헌터신데 너무 상대가 되지 않는 건 아닐까요?”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스테이터스의 차이뿐 아니라, 단련된 초능력의 차이까지 생각한다면 7명이 다 달라붙어도 이기지 못할 정도의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이근택 회장님에게는 리미트가 걸려 있습니다. 우선 모든 스테이터스가 대략 2씩 떨어지는 제한을 받습니다.”
“2씩이나요? 프로 단계에서는 소수점 수준의 차이도 꽤 크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정도면 확실히 지원자보다 스테이터스가 우세하긴 하더라도 크게 우세하진 않겠군요.”
“그 외에도 어쨌든 참가자는 14명이고 이근택 협회장님은 1명이니까요. 어떻게든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
“그럼, 이번 결승전을 기다리시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네. 이번 결승전 정말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준비해 둔 것들도 많고. 최고의 유망주와 최고의 기성헌터, 이근택 협회장님이 붙는 만큼 재미있는 모습이 나올 테니 꼭 시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민석의 클로징 멘트를 끝으로 방송 카메라의 불이 꺼졌다. 울려 퍼지는 수고했다는 말들. 방송인들은 삼삼오오 모이더니 나가기 시작했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에 반해 심사위원 셋은 아직 자리에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직 그들끼리 할 이야기가 남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결승전의 향방은 꽤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으므로.
“이번 결승전. 어떻게 보세요? 이민석 선배는 거의 뭐 이창현 팬이라고 할 만큼 계속 밀어 줬으니까 이번에도 이창현이 우승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도 뭐, 이번엔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요.”
아무리 조아라라고 해도 지금껏 이창현이 잘 해 온 건 확실한 사실이었고, 자신의 기대를 깨고 계속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준 것이 사실이었기에. 조아라는 솔직하게 이창현이 우승할 것이리라. 동의하는 말을 먼저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석은 이번만큼은 조아라의 예상을 빗나가 다른 말을 꺼냈다.
“아니…… 이번엔 이창현이 우승 못 할 것 같은데?”
이민석이 웃으면서 답했다.
“이번에 이근택 협회장님이 직접 중립 몬스터 진영에 들어간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
“직접 하나하나 상대하면서 우승자를 심사하겠다…… 그런 의미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그래…… 그렇지. 근데 그렇게 되면 이창현은 도저히 나설 자리가 없을 거야.”
“왜죠?”
확실히 조아라는 모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석 자신도 어깨너머로 들었던 1세대 헌터들의 경험담에서 깨달은 것이었으므로.
“이창현의 강점은 뛰어난 기동성. 원거리 저격능력인데. 그것들은 이근택 협회장님한테는 의미가 하나도 없어. 이근택 협회장님의 강점은 원거리 딜러에 대한 영격(迎擊). 원거리 딜러로는 절대로 대적하지 못해. 강력한 근접 격투능력,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추격능력…… 한 번에 협회장님을 끊어 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게 가능할 리는 없겠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아무리 이창현이 지금까지 기상천외한 전술을 보여 줬다고는 하나, 경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이창현의 전술이 이근택 협회장님한테까지 통할 가능성은 적어…… 지금까지 통한 건 상대가 아마추어 수준이었기에 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아라는 그에 지지 않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만큼 이근택 회장님도 패널티를 걸어서 힘을 제한했잖아요. 스테이터스 차이가 극심하지는 않을 텐데 해볼 만은 한 거 아닌가요?”
이민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님의 능력을 제한한 건 문제가 아니야. 그런 만큼 이근택 협회장님은 봐주지 않겠지.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건 오디션 참가자들 쪽이다.
너도 알겠지만, 1세대 헌터는 사선을 넘나들며서 패배는 곧 죽음이었던 세대의 헌터들이야. 실제로 헌터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1세대 헌터들이 다 괴물 같은 걸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지…… 규격외의 존재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창현이라도 이번엔…… 별 수 없을 거다.
오히려 이번에야 말로 주목해야 하는 건 윤한결과 유혜주지. 유혜주는 특히나 성역 스킬로 회복하면서 뛰어난 근접전을 자랑하니, 협회장님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니까.”
이민석이 이창현이 우승할 수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자, 조아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없었기에.
“뭐, 그래 봤자 헌터스 리그 경기에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혹시 모르겠지.”
그렇게 이민석이 전체적으로 평했지만, 슬그머니 조용히 있던 진수혁이 새로운 의견을 냈다.
“민석 선배 말에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지만……그 래도 역시 이번 게임은 약간이나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번 전장은 다름 아닌 ‘신들의 전장’맵이니까요.”
진수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이민석은 그제야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