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빌드업
다음날 아침은 빠르게 밝아 왔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이제 6일 후면 끝인가…….’
꽤 길게만 느껴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지만, 새삼 곧 끝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리그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두근거림은 덤이었다.
“기다려 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결승전은 지금으로부터 6일 뒤. 지금 팀원 편성과 맵 선정을 발표합니다.!”
이창현을 비롯한 살아남은 14명의 지원자 앞에 심사위원들이 나란히 섰다.
그리곤 뒤에 거대한 화면이 띄워지더니 이번에 대결하게 될 맵, ‘신들의 전장’ 전경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아주 거대하고 다양한 형상을 한 신상들이 전투를 하는 박진감 넘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빼곡히 존재하는 험한 산세의 삼림이 있었다.
“오오오…….”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에 지원자들이 술렁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싸워 왔던 시가지나, 생존게임의 맵과는 또 다른 웅장함이 있었기에.
실제 ‘탑’의 던전을 모티브로 삼았기에 더욱 그런 감이 없잖아 있었다.
뭐, 물론 내 경우에는 이미 몇 번 싸워 봤던 전장이었기에 전장의 특성이나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꽤나 재밌으리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적을 토대로 두 팀으로 나눈 팀원을 소개합니다! 우선 블루팀!”
[블루팀 : 유혜주, 진 한, 한지수 …………
[레드팀 : 이창현, 윤한결, 김도준, 김진승 …………]
“팀원이 제대로 발표된 미션인 만큼, 팀워크와 협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일주일짜리 팀에 팀워크는 무슨…….’
혀를 찼지만, 어차피 상대도 똑같은 입장이니 크게 상관은 없으리라.
그후, 이제 발표할 것도 없겠거니 신경을 끄고 전략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진짜 제대로 중요한 발표는 오히려 이 뒤에 있었다.
“그리고 깜짝 발표! 이번 게임에는 특별 룰을 적용하여 중립몬스터와 같은 진영으로 ‘1세대 헌터’이자, ‘헌터협회 협회장’ 이근택 회장님이 참가합니다!”
“뭐?”
어이가 없었다. 전례고 뭐고, 스테이터스도 비교가 되지 않을 베테랑, 1세대 헌터가 전장에 난입한다고? 밸런스 붕괴도 이런 밸런스 붕괴가 없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지원자들 또한 술렁이고 있었다.
“1세대 헌턴데 중립몬스터 진영…… 회장님만 잡으면 스카우트 골라 잡아갈 수 있는 거 아냐?”
“와…… 그렇네 7명이서 먼저 협회장님을 잡아라! 이런 타임어택 같은 건가?”
……멍청한 녀석들.
주최 측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리라.
1세대 헌터는 지금의 헌터들과는 다르게 목숨을 걸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최전방에서 탑에서 직접 싸워 온 최고의 헌터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금의 스테이터스나 숙련도로는 어지간해서 비벼 보기조차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직접 시험해 보려는 건가?’
생각해 보면 우승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이긴 했다.
게임의 MVP를 우승자로 꼽겠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윤한결 또한 표정이 굳고 있었으므로.
“허허…… 다들 좋게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맙구먼.”
한편 당사자, 이근택 회장의 등장이었다.
“이번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어 이 노부가 작은 선물로, 경험을 안겨 주고자 참가하게 된 것이오. 너무 긴장 말고 결승전을 즐겨주면 좋겠구만.”
말은 온화하게 하고 있었지만…… 내겐 결코 적당하게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어쨌든 아카데미 차원에서 현역 헌터랑 붙어 봤다던지, 하면 그 차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현역 헌터랑도 차이가 무지막지한데, 그중에서도 1세대 헌터 중 손에 꼽히는 이근택이라면 더더욱 차이가 클 것은 뻔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심사위원은 재빠르게 클로징 멘트를 했다.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럼!”
심사위원이 나가고 방송촬영이 마무리되자, 두 팀으로 지원자들 사이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풍겼다.
아무래도 새로 팀원이 짜여졌기에 할 말도 많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화젯거리가 많은 발표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심사위원들이 나갔던 바깥으로 따라 나갔다. 이근택 회장과 다시 만나기 위함이었다.
***
PER. 3부에서도 만년 꼴찌인 팀으로 팔리지도 않는, 한마디로 악성 재고 같은 팀. 원래라면 회귀 전에도 기억할 이유가 없을 정도의 팀이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 팀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근택이 구단주로 있다는 게 아주 나중에 밝혀져 화제가 된 팀이었으니까.’
이창현이 회귀하기 직전에나 밝혀진 사실이었고, 당시 적잖은 파장이 일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뭐라고 했었지…… 협회장으로 있는 동안은 일이 너무 많아서 못했지만, 자기가 구단주 겸 감독으로 팀을 키울려고 구단을 오래전에 샀었다고 했었나…….
대충은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이근택 앞에 서 있었다.
“…… 창현군? 무슨 일인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받았던 명함 하나를 꺼내들었다.
일전에 이종규에게 받았던 팀 PER의 명함이었다.
“돌려드리려구요.”
“이걸…… 나에게?”
이근택 회장은 표면상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종규 스카우터님이 구단주님을 만나 보라고 했었잖아요.”
‘뭐, 아무래도 지금 구단주 행새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 자신에게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긴 했겠지.’
“허허…….”
그렇게 잠깐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이근택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는 듯 느껴졌다.
‘이게 1세대 헌터…….’
잠시지만, 그 압도적인 위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정상급 헌터에서 회귀한 나였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목상 구단주는 이중근 헌터가 맡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알았지?”
더 이상 그에게는 인상 좋고 허허 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없었다.
그 자리엔 야성적이고 위협적인 오오라를 뿜어내는 1세대 헌터만이 있었을 뿐.
하지만 이럴 때일 수록 뻔뻔해져야 했다.
‘회귀했다는 말 따위를 할 순 없으니까.’
강하게 내둘러지는 마나의 압력이 온몸에 가해졌지만 오히려 표정을 찡그려서라도 웃었다.
“다 보이니까요.”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다.
내 능력이, 당신을 꿰뚫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에 대한 개인 신상정보까지도 알 수 있었다고.
실제 스킬 꿰뚫는 눈으론 그런 것 따윈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이근택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약간 고민하는 듯, 아니 놀랍다는 듯.
말하기를 잠시 주저하는 듯 보였다.
‘그렇겠지…… 인간이 정한 사회적 지위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스킬 따위가 존재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까. 뭐, 사실은 스킬 덕에 안 건 아니지만…….’
이근택 입장에서는 스킬에 경악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경험들 속에서 그런 스킬을 접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더더욱.
긴 침묵 후 나온 말은 작은 감탄사였다.”
“놀랍군. 그런 스킬이 있을 줄이야…… 뭐, 그건 그렇고 그 말이 맞네. 정식으로 소개하지. 지금은 전면에 서고 있지는 않긴 하지만, 내가 팀 PER의 실질적 구단주이자 헌터 협회 협회장인 이근택이네. 어찌되었던 내 저번의 스카우트와 이종규의 스카우트 제안은 좌절된 것 같았는데, 생각이라도 바뀐 겐가?”
이제 더이상 거리낄게 없다는 듯, 이근택은 자신을 드러냈다. 그러곤 내 의중을 물어왔다.
‘됐다.’
이제, 진짜 딜을 할 때였다.
“제 영입의 대가로 팀 PER을 원합니다.”
***
‘허어…….’
이근택은 오랜만에 가슴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던전의 몬스터와 직접 대면해야 하는 탑을 나온 후로는 얼마간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PER의 실질적 구단주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명목상으로 구단주를 맡고 있는 이중근, 그리고 프론트 직원 서넛을 제외하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당연히 그들과의 관계도 없을 이창현이, 스카우터에게 구단주가 만남을 원한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을 찾아왔다.
‘그런 스킬이 있을 줄이야…….’
팀 PER의 구단주라는 건 사회적 지위였다. 차라리 추상적이더라도 ‘강함’이나 ‘마나량’같은 걸 볼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다니. 스킬의 범용성이 얼마나 뛰어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긴 했다. 히든피스를 찾아낸 것도 그렇고, 먼지 속에서 어마무시한 정확한 사격을 해낸 것도 그렇고. 무언가 ‘꿰뚫어보는 듯한’스킬이 있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더 놀라운 것은 다음이긴 했지만.
‘영입의 대가로 팀 운영에 대한 권리와 영입권한을 자신에게 달라고 할 줄이야…….’
정말 묘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자신을 메인으로 한 3부 리그 팀을 짜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근택이 투자하지 않아 가난한 구단 PER에 투자까지 겸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노련한 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근택의 입장으로서는 환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창현이 직접 찾아왔다는 건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뀐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번 영입제안을 거절당했던 이근택으로서는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금 이창현이 나간 후 이근택과 같이 있는 PER의 스카우터 이종규도 화색을 띄고 있었고.
“그럼 제가 들고 갔던 명함을 구단주님에게 드린 겁니까?”
“그렇네.”
“그런데 그 조건으로는…… 솔직히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이창현 선수의 가치가 지금 그 정도까지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회장님.”
확실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지금껏 한국 헌터 역사상 없던 저격수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무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건 아마추어의 영역. 프로의 영역에서는 어떨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팀에 대한 전권이나 다름없는 영입 권한을 달라는 것은 과한 처사였다.
‘더 재미있는 건 그 녀석도 거기까지 다 읽고 있었다는 거지만…….’
“자네 말도 맞네. 그래서 그 녀석이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하더군.”
“제안이요?”
“마지막 결승전. 나와의 승부를 내기했네. 그리고 결승전에서 우승할 뿐 아니라 나를 이기겠다고 하더군.”
“미친 거 아닌가요?”
이종규는 혀를 찼다. 결승전 우승이라면 모를까, 헌터 협회장이자 1세대 헌터인 이근택을 이기겠다니.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없었으니까.
“물론, 내 온전히 힘을 모두 발휘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야 그런 녀석을 그 정도 값어치로 가져오는 건 오히려 쌀지도 모르겠지.”
“그거야…… 가능하다면이겠죠…….”
“더 가관인 건 내가’물론이다’라며 수락하자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 줄 아나?”
이근택이 마치 손주를 자랑하는 것처럼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창현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물론은 무슨, 그렇게 되면 회장님이 아니라 제가 회장님을 뽑는 겁니다.’라고.